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50)
EP.651 651화 – 회의, 탐색 (2)
651화 – 회의, 탐색 (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로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이후에도 상현 형의 기억에 관한 다양한 가설이 나왔다.
영화로 치면 SF와 호러가 적절히 섞인 듯한 신비로운 기억이었는데, 그런 만큼 가능한 시나리오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시점에선 상현 형 본인이 지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이쯤 합시다. 흥미로운 가설이 많긴 합니다만, 많아도 너무 많으니 되려 머리가 어지러워지려 하는군요.”
은솔 누나가 상현 형 관련 정보를 간단히 적었다.
김상현 : 배경은 정체불명의 외행성. 불가해한 존재를 마주하고 공포에 질림. 장소, 대상, 우주로 간 배경 등이 문제.
이때, 나도 살짝 고민했다.
상현 형에게 집중해서 통찰을 써볼까?
“…”
아니지, 지금 통찰을 쓰면 회의 흐름이 끊기기 십상이다.
타이밍은 회의 종료 후야.
“그러면 다음 사람으로 가자. 순서는 -”
순서는 – 하던 아리가 순간 움찔했다.
이대로면 다음 차례가 미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 으, 은솔이부터 이야기하자.”
미로 본인은 아무 생각 없는 표정인데, 정작 아리가 부끄러워하며 미로의 차례를 넘기려는 모양새.
몇몇 동료가 부자연스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은솔 누나는 별다른 말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 내 쪽은 짧고 간단하니까.”
말마따나 은솔 누나의 꿈은 간단했다.
대양그룹 상무 시절의 간략한 설명, 형제자매에 대한 이야기, 여기에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이 섞인 기억 정도.
“아버님은 항상 우리에게 기대가 크셨어. 지금 생각하면, 남매간 사이가 안 좋아진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이의 경쟁심을 자극한 아버님이었지.”
아무래도 가족 이야기라 이러쿵저러쿵 끼어들기 어려웠고, 모두가 말없이 경청했다.
“당시엔 딱 그 정도로 느꼈어. 항상 엄격한 아버지. 항상 우리에게 실망하는 아버지. 너무 대단하고, 너무 뛰어난 아버지….”
대양그룹 회장,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뒤섞인 목소리.
“그런데, 호텔을 겪고 세상의 신비함을 알수록 종종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버님은 정말 평범한 인간이셨을까?”
할아버지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회귀자 어쩌고 한 거냐? 회귀자라서 창업에 성공한 것 같아서?”
“살면서 종종 느꼈거든요. 아버님은 마치….”
“마치?”
“미래를 아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기가 막힌 선택을 딱딱 하시는 걸까?”
“으음….”
“물론, 확신은 없어요. 그렇잖아요? 대기업 창업자쯤 되면 하나같이 비범한 사람들인 거.”
“그야 그렇지.”
나도 나름대로 의견을 냈다.
“10만 명의 사람을 모아서 가위바위보 대회를 열었어요. 그중 한 명은 결국 우승하겠죠? 이 상황에서 우승한 사람만 보면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보일 겁니다. 수백 번의 가위바위보 승부에서 매번 정답을 찍었으니까.”
은솔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지구에선 지금도 무수한 예비 사장님들이 사업을 열지. 그들 중 하나는 결국 대재벌을 일으킬 테고.”
“그렇죠.”
“최후의 승자, 그 한 사람만 보면 마치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어. 운이든 실력이든 매번 가위바위보를 이겨온 사람이니까. 그래, 나도 네 말은 이해해. 하지만….”
“하지만?”
“… 그래도 내 아버님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어.”
“저주의 방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 확인해 봅시다.”
“…”
“회장님이 정말 회귀자라면 그게 방 시나리오와 어떤 식으로 얽혀있을지 궁금해지네요.”
이 정도로 누나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이은솔 : 대양그룹 회장은 회귀자인가? 회귀자라면, 시나리오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나까지 적었어. 다음은 어 – ”
누나가 멈칫거리는 사이 미로가 끼어들었다.
“원래 내 차례 아니었어?”
“… 그렇긴 해.”
은솔 누나는 아리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지만, 미로는 이미 자랑스레 떠들기 시작했다.
새삼 상황이 우스웠다.
진실을 아는 아리는 미로 차례를 넘기려 하고, 분위기를 감지한 은솔 누나도 그걸 받아줬는데, 정작 미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서는 상황.
이런 순수한 애가 어떻게 성장해야 괴담 미로가 되는 거지?
“나는 의사 쌤과 달리 간단해!”
의사 쌤?
학교 몇 달 다녔다고 벌써 이런 표현이 입에 익은 모양이네.
“아~주 오래전에 본 산타 기억나지? 산타에게 친구들을 잃으면서 소원을 빈 것 같아. 내용은 아마도…. 악마의 소멸?”
화이트보드를 끄적이던 은솔 누나가 재확인했다.
“무고한 자의 구원, 사악한 존재의 소멸, 정의의 실현. 이런 건가?”
“응!”
“너도 상현 씨처럼 두 번째 소원 있지? 파이오니어에서 빈 소원.”
“응.”
“뭐야?”
“그, 며칠 전에 꿈꾸면서 오래전의 나를 만났거든? 그때 -”
과거의 자신을 꿈속에서 만나며 다시금 인류의 구원이라는 목표를 되새겼다는 이야기.
꿈 자체는 사실이었겠지.
괴담 미로의 소원은 실제로 정의의 실현이 맞으니까.
다만, 호텔이 보기에 어린 미로의 실제 소원은 따로 있다.
아까는 다음 사람의 꿈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 적당한 거짓말로 둘러치며 미로를 내보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거짓말을 늘릴 필요가 있나 싶다.
동료 사이에 비밀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아닐까?
— 탁!
“음? 가인아?”
“누나, 할 말이 -”
모두의 앞에서 ‘냉엄한 진실’을 공개하려는 순간.
“…”
“가인아?”
다리가 미친 듯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아리가 오래된 피를 사용해 냉기의 바람을 날리기 시작한 것.
평소 같으면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개인 메시지’를 보냈겠지만, 지금은 대화 내용을 할아버지에게도 숨기고 싶으니 애꿎은 내 다리만 괴롭히는 것 같네.
찰나의 시선 교환, 나와 아리는 눈빛으로 대화했다.
‘굳이 모두의 앞에서 말해야 해?’
‘계속 숨길 수는 없잖아.’
‘미로의 인권을 생각하라고!’
그 사이, 미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다.
“가인아? 왜 그래?”
“아, 아닙니다. 뭔가 착각한 것 같아요.”
“… 그래?”
언제나 그렇듯 눈치 빠른 누나는 나와 아리 사이의 일을 어렴풋이 느낀 것 같지만, 역시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 더 따지지 않았다.
“그러면 다음 사람!”
자연스럽게 동료들의 시선이 승엽이에게 향하는 시점, 속으로 생각했다.
아리가 부탁했다고 꼭 숨겨줄 필요가 있을까?
미로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게 문제라면, 나중에 미로 없을 때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자!
“어, 저는 -”
승엽이가 입을 여는 순간.
“꺄하하하하!”
미로가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어?”
“내가, 내가 다 말해줄게! 내가 다 알아!”
“무,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할 수 있는 -”
승엽이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무리였다.
미로가 정신없이 낄낄대며 자신이 본 내용을 여과 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시작부터 밤새 게임 하고 있던 거 알아? 얘는 진짜 답이 없어. 네 부모님이 안됐다!”
“야! 너 부모님이나 챙겨! 학교에서 공주님 놀이나 하던 주제에!”
“뭐? 공주님 놀이? 야! 게임하다가 팀 운 나쁘다고 소원 비는 게 말이 돼? 와! 다음 장면은 더 충격!”
이 시점에서 갑자기 미로가 말을 뚝 멈췄다.
“…”
마치 ‘아무리 나라도 여기부턴 차마 말할 수 없다’라는 것처럼.
물론, 상황을 모르는 다른 동료는 의문을 품었다.
예컨대 송이가 그랬다.
“다음 장면이 뭔데?”
“…”
“뭐야? 더 충격이라고 요란을 떨었으면서. 밤새 게임한 게 다는 아닐 거 아니야?”
승엽이는 부들부들 떨면서 시선만 깔고, 아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천장만 본다.
심지어 이야기를 처음 꺼낸 미로조차 후회한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상황.
그래, 어쩔 수 없구나.
답은 나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일, 내가 첫 삽을 뜨리라.
“수업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갑자기 소연이라는 여자애한테 고백하더라.”
“예?! 가, 갑자기요?”
“보니까 고백 전엔 말 한번 제대로 한 적 없는 것 같더라.”
“…”
“대사가 정확히 뭐였지? ‘소연아! 처음 봤을 때부터 -’”
“가, 가인 형! 제발 그러지 마세요!”
여기서 물러설 생각이라면,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어.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빛나는 눈동자에 푹 빠졌어!’ 이거 맞지?”
“그르륵…!”
무슨 일인지 승엽이는 반쯤 기절한 표정으로 신음하기 시작했지만, 어차피 내가 다 알고 있다. 내 기억력은 아주 좋아.
“그러다가 여자애가 말했어. ‘미안, 나 남자친구 있어.’”
송이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요?”
“승엽이가 말했지. ‘마, 만약에 헤어지면, 다음에는 -’”
“으악! 그, 그쯤 하세요!”
— 탁!
“후….”
은솔 누나가 크게 한숨 쉬며 화이트보드를 두드렸다.
“자, 자. 대충 다 알았어. 승엽이 꿈 내용을 내가 적어볼게.”
1. 매일 새벽까지 게임하면서 팀 운 탓함.
2. 학교생활은 개판. 친구도 거의 없음.
3. 말 한번 나눈 적 없는 여자애에게 고백하려다 즉시 차임. 차인 후에 한 번 더 들이대다가 또 까임.
내용이 완성되는 순간, 장내에 침묵이 감돌았다.
“맞니?”
승엽이와 아리는 물론, 처음 놀리려고 했던 미로까지 말문을 잃었다.
그 어떤 놀림도, 장난도, 과장도 없는 담백하기 그지없는 순수한 요약.
그래서 더 견디기 힘든 그런 내용.
이 시점에서 승엽이는 넋이 반쯤 나간 채 소파에 쓰러졌다.
딱 세 문장으로 천하제일고수(자칭)이 쓰러지는 신기한 순간이다.
내 생각에, 이 정도 공격이면 205호의 이자성이 살아 돌아와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승엽이도 결국 영혼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답했다.
“… 네.”
견디기 힘들다는 듯, 진철 형이 조심스레 말했다.
“야, 야. 아무리 그래도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 뭔가 더 없냐? 아, 소연이가 알고 보니 악마라던가?”
“…”
“음, 어, 네가 좋아하는 그 게임에 알고 보니 우주적 존재의 사악한 비술이 깃들어 있다던가….”
“…”
“진짜 뭐 없어? 아무것도 없을 리가 없잖냐!”
듣다 보니 조금 웃기긴 했다.
이쯤 되면 진짜 소연이가 악령 해줘야 하지 않음?
아니면 그 게임에 관리국의 음모가 있든지!
한숨만 쉬던 아리가 조심스레 내 어깨를 쿡 찔렀다.
“너, 뭐라고 하지 않았어?”
“…”
“편의적이라는 둥 그런 말 했잖아.”
“그런 느낌을 받긴 했지.”
자연스레 모이는 동료들의 시선.
특히, 승엽이의 시선이 가장 간절해 보였다.
“예컨대, 승엽이 부모님이 지나치게 승엽이를 방관한다던가….”
“일리 있네. 나도 좀 심하다고 느꼈어. 다른 점은?”
“고백하고 싶을 때 고백 대상이 적절히 탁 나타난다?”
“뭐?”
“당시 승엽이 태도를 보면 아무리 봐도 계획적인 고백은 아니었어.”
“무슨 말이야?”
“약간, 보다 보니 느껴졌거든? 고백할지 말지 고민하면서 그래도 오늘은 해야지! 하고 있는데 -”
“되게 승엽이 심리 분석이 디테일하네.”
이상하게도 아리의 말에 생략된 다음 문장이 있는 것 같았다.
‘가인이 네가 비슷한 고민을 자주 했던 것처럼.’
순간 움찔했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쓰며 말을 이어갔다.
“… 고민 중인데, 눈앞에 고백 대상이 탁 나타난 거야. 그래서 참지 못하고 마음속 말이 튀어나온 거지.”
듣고 있던 송이가 끄덕였다.
“그니까 오빠 말은 이거네요. 승엽이의 태도를 보니 계획적인 고백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그 여자애를 만나려 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수백 명이 있는 학교에서 고백하고픈 타이밍에 우연히 딱 만나는 게 특이하다?”
“대충 그런 느낌이지.”
이번엔 송이가 눈살을 찌푸렸는데, 이상하게도 송이의 속마음이 느껴졌다.
‘오빠, 학교에서 가영이를 찾으려다 실패한 적 있어요?’
대체 뭐지?
설마 통찰이 아리와 송이의 속마음을 표정과 제스쳐를 통해 읽어낸 건가?
하하! 그냥 내 착각 아닐까?
둘 다 별생각 없이 얌전히 있는데, 승엽이의 곤란을 본 나 혼자 착각 중인 게 틀림없어.
그때, 아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획일 수도 있잖아.”
“뭐? 그게 어떻게 계획이야? 유치원생도 그런 말도 안 되는 고백은 안 해.”
옆에서 승엽이가 반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계획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그리고 –
아리는 시큰둥한 태도로 답했다.
“글쎄, 일주일간 철저한 계획을 세운 끝에 카톡 고백하는 사람도 있는데, 승엽이 고백 정도면 한 달짜리 계획일 수도 있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