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53)
EP.654 654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
654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일 차
현재 위치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현자의 조언 : 1」
– 한가인
.
..
…
화려한 방에서 깨어났다.
주변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다른 동료들이 가득했다.
진철 형의 당황하는 목소리.
“이미 시작한 거냐? 301호는 다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나?”
“…”
순간 나도〖301호〗는 이미 시작했고, 이곳이 내 시작 지점인 줄 알았지만, 착각이었다.
“아직 아닌 것 같네요.”
“다들 이것 봐!”
방 중앙에 작은 탁자가 있었는데, 아리는 탁자 위의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입실 명부가 있어.”
입실 명부.
명확한 단어였기에 모두가 즉각 이해했다.
저 명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만 들어간다!
할아버지가 끄덕거리며 말했다.
“3층부터는 입실 인원을 선택할 수 있다더니, 이런 소리 – 어?”
“왜 그래요?”
“이거 봐라. 이미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네?”
할아버지 말대로 명부 상단엔 이미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① 유송이
② 이은솔
순간 모두의 시선이 얽혔고, 곧 은솔 누나가 여러 사람이 떠올린 생각을 말했다.
“새벽에 객실 숫자를 보고 예상했었지. 최소 두 사람의 소원이 얽혀서 하나의 시나리오를 이루는 것 같다고. 첫 방은….”
다음 말은 송이가 받았다.
“저랑 언니 소원이 얽혀있나 봐요.”
“그러게. 이건 예상 밖이네. 우리 이야기에 연결고리가 있었어?”
“으음…. 위기에 빠진 재벌 집 막내딸과 말하는 골든 리트리버 사이의 연결고리?”
“그렇게 들으니 더 모르겠어. 가인아, 혹시 방 제목 같은 것 떴어?”
“네. ‘종의 기원’입니다.”
종의 기원.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쓴 책의 이름이니 굉장히 유명하다.
물론, 이 정도로는 시나리오를 추측하기 어려웠다.
“종의 기원? 뭔가 점점 더 모르겠네. 에잇! 애매모호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슬슬 입실 명부에 누구 적을지나 고민하자.”
입실 명부에 누굴 적느냐의 문제는 곧 301호에 누가 들어가냐의 문제다.
상현 형이 합리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정황상 무조건 전원이 들어가기보다는 꼭 필요한 사람만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 것 같아. 지배인도 적정 인원을 고민해보라고 했으니까.”
“아무래도 가인 군은 필수 아니겠습니까? 힘도 그렇고, 시나리오를 알아내는 능력도 그렇고.”
“역시 그렇지? 가인이부터 적을까?”
자연스레 내 이름이 적히려는 시점, 순간 불길함을 느끼며 손을 저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음?”
“정해진 인원만 입실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될까요?”
“…”
“그냥 밖에서 놀고먹으며 대기한다?”
즉각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텔이 그런 장소는 아니다.
“절대 아닐 것 같은데.”
“분명 남은 사람들에게도 역할이 있습니다.”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이 상황은 말하자면 인원 배분의 문제다.
301호에 들어갈 사람과, 밖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할 사람을 나누는 것.
내가 유용한 자원이라고 무조건 301호에 들어가면 곤란하다.
밖에서 더 유용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분류하지?”
송이가 머리 아프다는 듯 날 보았다.
“오빠, 마지막 조언을 지금 쓰죠?”
잠시 송이의 제안에 관해 고민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런 상황에선 조언을 써도 말장난하는 답변만 돌아올 거야.”
“예? 아, 근거가 너무 부족해서?”
“그렇지.”
오래전, 올빼미가 해준 지혜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
‘무지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건 지혜가 아니다. 지혜로운 자라 해도 현명한 판단을 위해선 최소한의 정보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정보가 0에 가까운 상황에서 잘 찍어주는 건 지혜가 아니며, 이걸 위한 능력은 따로 있다.
자연스레 내 시선이 승엽이에게 향했다.
“승엽아, 이리 와.”
“형?”
— 지이익!
명부 하단의 빈 종이를 쭉 찢은 후, 종이를 여덟 조각으로 나누었다.
여기에 입실 확정인 유송이와 이은솔을 제외한 여덟 동료의 이름을 적었다.
이쯤에서 승엽이도 내 행동을 이해했지만, 조금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천운 써서 뽑기 하라는 거죠?”
“응.”
“… 형, 아시겠지만 천운은 그, 쿨타임이 엄청나게 길어요.”
“알아. 어지간하면 열흘 이상이지. 한 달 가까울 때도 있고.”
“지금 써도 될까요?”
지금 천운을 쓰면 저주의 방 내에선 사실상 쓸 수 없다.
이에 대한 승엽이의 불안감은 나 역시 동의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내 생각엔 지금이 제일 중요해. 혹시 생각 다른 사람 있습니까?”
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순간적으로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페로 이름도 적어야 하나?”
기다렸다는 듯 송이 어깨 위에 있던 앵무새가 ‘삐익!’하는 소리를 냈다.
송이는 페로를 툭 툭 치며 고개를 저었다.
“호텔에서 페로는 도구 판정 아니에요? 입실 명부에 페로를 적어야 한다면 방호복이나 윙 부츠도 적어야 한다는 말인데 그건 이상 – 앗! 앗! 물지 마! 물지 말라고!”
“…”
“너 보고 도구라고 한 게 아니잖아! 호텔 판정이 – 그만 물어!”
송이와 페로가 씨름하는 사이, 승엽이에게 말했다.
“자, 이제 눈 감고 뽑아.”
“며, 몇 개 뽑아요?”
뒤에서 아리가 거들었다.
“그것도 네 맘대로 해!”
할아버지도 한 마디 보탰다.
“괜히 생각하지 말고 손 가는 대로 뽑아라!”
언제나 그렇듯, 승엽이는 확신이 부족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탁자로 다가갔다.
“…”
바로 뽑는 대신 잠시 멈춰 선 모습.
본인 나름대로는 ‘이게 맞나?’하는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휴…. 모르겠다!”
“그래, 그냥 뽑아.”
“네.”
그렇게 승엽이가 손을 뻗었을 때,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아? 다시 할게요.”
— 탁!
다음에는 손이 탁자에 부딪혔다.
진작부터 눈을 감았기에 종이 뭉치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는 느낌.
승엽이가 살짝 눈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만!”
여러 사람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찰나 동안 교차하는 여러 사람의 시선.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고,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음을 알았다.
행운의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다.
승엽이가 억지로 종이를 잡으려는 행동은 행운의 선택을 왜곡할 뿐이다.
“어? 제가 종이 위치를 헷갈려서 -”
“아니, 됐으니까 내려와!”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려온 소년.
반면, 은솔 누나는 실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첫 시도는 아무도 데려가지 말고, 나랑 송이 둘이서만 해라?”
“그렇게 하시죠.”
“… 난 최소한 진철이 정도는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누님, 저 말입니까?”
“힘쓸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또, 가끔 한 생각인데 나랑 진철이 능력 조합이 은근히 괜찮잖아.”
“어…. 그렇긴 하죠.”
물리력이 부족한 이은솔, 정신 공격에 취약한 차진철.
확실히 두 능력의 조합은 그럴듯하지만, 이젠 의미 없다.
행운의 선택은 ‘아무도 고르지 않는다’였으니까.
결국, 은솔 누나와 송이가 불안한 표정으로 입실 명부 앞에 섰다.
“말하면 되는 거야? 둘이 들어가겠다고?”
“아마도요…. 어차피 호텔에서 보고 있을 테니깐.”
살짝 떨리는 눈동자.
불안하기 그지없는 표정.
송이의 표정을 보던 은솔 누나가 씩 웃었다.
마치, 연장자인 본인이 기세를 올려야겠다는 것처럼.
“자, 화이팅! 호텔이 보기엔 우리 둘이면 충분하다는 것 아니겠어? 겁먹지 마.”
“… 언니, 손이나 그만 떠세요.”
“아아…. 역시 이런 건 내가 하긴 좀 무리네. 으음, 송이야. 언니를 믿기 힘들겠으면 티켓을 믿어.”
207호, 2층 관문의 방 해결로 나온 보상 중 하나 – 소망의 티켓.
거울의 방에서 소원을 이루거나 포기한 유산을 얻는 데 쓸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용처는 역시 부활이겠지.
1, 2층과 달리 3층 저주의 방은 한 번에 전원이 들어가지 않음이 확실한 상황.
어쩌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특별한 일 없으면 티켓을 최후의 보험으로 남겨두는 데 합의했다.
“티켓! 그, 그건 믿을 만하네요.”
“난 못 믿겠고?”
“아니, 그게 아니고 -”
“들어갑니다. 들어가요!”
‘들어가겠다’라는 은솔 누나의 선언이 나오는 순간, 신비로운 빛무리가 주변을 감싸는가 싶더니 은솔 누나와 송이가 사라졌다.
두 사람이 301호로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 쿠궁!
허공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문이 생겨났다.
“…”
마치, 남은 사람은 여기로 오라는 것처럼.
“갑시다. 우리는 저쪽에서 뭔가 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
문 너머에는 익숙한 공간이 있었다.
“관측소네?”
“관측소잖아?”
— 철컹!
문이 잠기는 듯한 요란한 소리.
진철 형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관측소 입구로 달려갔지만, 예상대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잠겼는데?”
이 시점에서 대략적인 구조를 이해했다.
“3층이 대충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겠군요. 입실 명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관측소에 있는 겁니다.”
“저주의 방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관측소에서 나갈 수 없는 건가?”
“그렇죠. 그래서 침실, 욕실, 화장실, 음식이 나오는 테이블 등이 전부 있는 겁니다.”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소리.
— 위이잉…!
상현 형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관측소 중앙의 망원경을 주시했다.
“이거, 마치 초점을 조절하는 소리 같지 않습니까?”
“… 그렇네요.”
소리가 멈췄을 때, 나는 천천히 망원경을 향해 다가갔다.
이번에는 관측 시도를 중단하라는 위기 알림이 나오지 않았다.
*
– 유송이
푹신한 침대.
뭔가 ‘촵! 촵!’ 하는 느낌과 함께 깨어났다.
“…”
슬쩍 시선을 내리니, 귀엽기 그지없는 해피가 보였다.
“… 좋은 아침, 해피.”
– 멍!
그야말로 복슬복슬한 솜사탕 같은 모습이야.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해피를 껴안으려는 순간.
‘무서워, 아파, 괴로워. 날 이곳에서 꺼내줘.’
“으악!”
섬뜩한 환청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해피를 확 밀었다.
– 멍?
해피는 의아하다는 듯 내 눈치를 살폈는데, 이 모습을 보니 살짝 미안해.
“… 미안.”
유송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라고!
심호흡하며 주변을 살폈다.
장소는 서초 푸른 데미안 아파트 8동 203호, 어릴 때부터 살아온 집이야.
내 모습은 평소와 비슷해.
최초의 소원 관련 꿈에선 6~7세 정도의 어린 모습이었지?
그래서 저주의 방에서도 무력한 나이일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니었어.
다음으로는 강아지를 껴안고 정신을 집중했다.
“해피, 얌전히 있어봐.”
– 멍! 멍!
해피는 답답하다는 듯 몸을 버둥거렸지만, 그뿐이다.
딱히 목소리가 들려오거나 하진 않았다.
“… 미안하지만, 언니는 확실히 확인을 해봐야겠어.”
버둥거리는 말티즈의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해피가 말할 수 있다면, ‘드디어 이년이 미쳤구나!’ 하지 않았을까?
해피는 말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아얏! 아얏! 입 벌려!”
더럽게 아프긴 하지만, 이것으로 확실해졌어.
혼돈체의 의사를 읽을 수 있는 ‘이심전심’이 동작하지 않는다는 사실.
해피가 주저 없이 내 손가락을 물었다는 사실.
친화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해피는 ‘아직’ 평범한 개다.
그때, 밖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송이야~! 무슨 일 있니?”
“…”
“일어났으면 씻고 나와서 아침 먹어라!”
“… 엄마.”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을 느끼며 욕실로 들어가 간단히 씻었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느낀 우울한 마음은, 샤워기의 따스한 물이 목부터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순간 더 강해졌다.
“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딘가 살짝 ‘모자라’ 보였기 때문이다.
꿈의 효력이 저주의 방 내에선 미치지 않는 거야?
“… 쓸데없는 생각 그만해야지.”
*
– 다 부술 거야!
씻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야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행히도 시나리오와 연관된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다.
페로는 본래도 종종 나만 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곤 하니까.
페로는 평범한 – 페로가 보기엔 지극히 저능한 – 앵무새들 사이에 낀 채 새장에 갇혀있었는데, 소리 내는 걸 보면 1분 내로 그로테스크로 변신해 새장을 박살 낼 기세였다.
괜찮겠지?
말로만 저러는 거야.
페로는 똑똑하니깐 잠깐의 답답함은 참을 수 있어.
– 당장 열지 않으면 다 부숴버릴 거야!
괜찮은 것 맞지?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야, 씻었으면 밥 먹으러 오라니까 새장 앞에서 뭐 하니?”
그 말에 뒤로 돌아 엄마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
넋이 나갔다.
그냥, 눈을 마주치는 순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 여성은….
“… 진짜야.”
“뭐?”
“지, 진짜 엄마야!”
“어머, 얘도 참. 그럼 가짜도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