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54)
EP.655 655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
655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
– 유송이
“송이야? 어디 가니?”
“친구랑 약속 있어요!”
“어라? 페로는 왜 데려 – 송이야!”
아침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페로를 데리고 나왔다.
당연히 일차적으론 시나리오를 진행하기 위해서지만….
엄마와 얼굴 맞대는 일이 지극히 불편하다는 이유도 있어.
“…”
불편하다.
당황스럽다.
어색하다.
세계의 진실을 이해한 후, 진짜 부모님을 다시 만날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
끝없이 반복되는 루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즉 사라졌다고 생각했으니까.
지금의 상황은 대체 뭐야?
설마 이곳은 호텔에 오기 전 내가 살아온 바로 그 루프?
만약 그렇다면, 3층의 컨셉은 시간여행일지도 몰라.
과거의 우리가 살아온 ‘바로 그 루프’로 돌아가서 종말의 위기를 해결한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늘어났다.
301호에 들어온 건 나 혼자가 아니며, 은솔 언니도 나와 똑같은 판정이다.
이 세상은 은솔 언니가 살아온 루프이기도 한 걸까?
나와 은솔 언니가 같은 루프에서 살아왔다?
그렇다기엔 세상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똑같지 않았던 것 같은데.
모르겠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그 어떤 물음표도 쉬이 풀리지 않았다.
결국, 혼자 다짐하며 혼란스러운 생각을 끊어야 했다.
“… 송이야. 이럴 때가 아니야. 의문은 밖에서 동료들과 풀어도 충분하다고!”
지금은 저주의 방 해결에 매진해야 해.
그게 나와 모두가 살아남는 길이야!
*
처음 떠올린 생각은 어떻게 은솔 언니와 연락하냐는 것.
과거 루프로 돌아올 줄 알았으면, 호텔에 오기 전의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든지 했을 텐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런 작업을 하지 못했네.
덕분에 서로의 핸드폰 번호, 이메일 등을 모른다.
— 삑! 삐익!
“조용히 해. 나 바빠.”
다행히 나와 달리 은솔 언니는 재벌 집 막내딸이니만큼 유명인이었고, 검색하니 이런저런 정보가 나왔다.
“집 주소? 이건 안 되겠다.”
찾아가 봐야 만나기 어렵지 않을까?
은솔 언니 가족들이 내 존재를 아는 것도 부담스러워.
“비서실 이메일? 이게 낫겠네.”
— 삑!
괜찮은 생각이라는 듯 답하는 앵무새.
말 상대 느낌이라 고맙긴 한데, 페로 덕에 혼잣말이 늘어난 것 같아.
이메일을 보내려던 중, 언니 비서가 내 이메일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무시할 수 없는 내용을 담아 보냈다.
— 디리링!
“됐다!”
연락은 했으니, 이제 내 나름대로 301호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야.
*
강남 한복판에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동물병원 앞에 섰다.
「유해피해피 동물병원」
사람들은 알까?
해피해피 앞의 ‘유’는 고객을 You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수의사 ‘유정호’ 씨가 자기 성을 따서 붙인 이름이기도 해.
즉, 고객 여러분(You)도 해피해피하고, 의사인 본인(‘유’정호)도 해피해피하자는 중의적 표현이야.
어릴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까 병원 이름이 좀 별로야!
이게 아빠 회심의 작명 센스인걸까?
“…”
— 딩동!
정문을 열고 몇 걸음 걸어가니 카운터 직원들이 나타났다.
“손님, 예약하셨 -”
“어머! 송이야!”
아빠 직장에 몇 번 정도 들락거린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나이 든 직원 한 사람이 날 알아봤다.
저 사람은 날 되게 살갑게 대하는데, 호텔에서 어마어마한 경험을 쌓은 나는 저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는 상황.
이 순간은 미묘하게 씁쓸했다.
“아빠 안에 계세요?”
“원장님이라면, 지금 진료 보고 계시는 – 어머!”
두말없이 진료실로 들어섰다.
예의가 아닌 줄은 알지만, 이곳은 내가 살아온 세계인 동시에 호텔 피셜 ‘저주의 방’이다.
즉,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다.
병원 스케줄 따위를 배려할 여유가 없어.
몇몇 직원이 놀라서 내 팔을 잡으려 했지만….
이 정도에 제지당하면 호텔에서 쌓은 경험이 아깝지 않을까?
유산을 쓸 필요도 없었다.
— 벌컥!
다짜고짜 문을 열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누구 – 어?”
“아빠.”
“소, 송이야? 이게 무슨 – 혹시 집에 무슨 일 있니?”
아빠가 보기엔 뜬금없이 딸이 연락도 없이 직장에 들이닥친 상황이다.
너무 예상 밖 상황이니, 날 혼내기보다 무슨 큰일이 생겼냐고 걱정하는 느낌.
“직원들 근처에 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 그래.”
재미있게도 아빠는 순순히 내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을 끝낸 모양인데, 100% 틀린 해석이지만 굳이 바로잡지는 않았다.
“후…. 송이야. 아무래도 네가 충격적인 사실을 안 모양 -”
“조용히 하시고, 제 말에 대답하세요.”
“음?”
“요즘 특별히 손님이 늘어나진 않았나요?”
“갑자기 왜 -”
“그냥 대답하세요. 그냥!”
아빠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기세에 눌린 느낌으로 답했다.
“조, 조금 늘긴 했지.”
“이상한 동물 없었어요? 몸이나 마음이 아픈 동물!”
“송이야, 여긴 병원이야. 당연히 몸이나 마음이 아픈 동물이 오지.”
“제 말은, 평소와 다른…. 특별한 환자가 없었냐는 말이에요.”
이게 내가 아빠 병원에 온 이유야.
301호에 관해 내가 아는 정보라곤 ‘어린 시절에 나이 든 골든레트리버가 사람 말을 했다 .’뿐이니까.
동물과 관련한 이상 현상을 제일 먼저 감지할 만한 직종은 역시 잘 나가는 수의사 아닐까?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렴.”
“사람 말을 했다거나?”
“앵무새 이야기니?”
“개나 고양이일 수도 있어요.”
“그런 동물이 있다면, 병원에 오기보단 관리국에 신고하겠지.”
이건 맞는 말이야.
바보도 아니고, 자기 집 개가 사람 말 하는데 병원 데려갈 사람은 없다.
백이면 백 관리국에 신고하겠지.
그 후에는?
“관리국에 끌려간 동물은 어지간하면 죽겠죠?”
“어? 뭐, 말한 시점에서 정상적인 동물은 아닐 테니, 살처분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니?”
당연하다는 듯 살처분을 논하는 아빠.
이게 세간의 상식이다.
여기까지 깨닫자,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모종의 이유로 인간의 지성을 얻은 동물이 있다고 한들, 대부분 지성을 감추겠구나!
드러내는 순간 관리국에 잡혀가서 온갖 실험을 당하다가 죽을 게 뻔하니, 사람 말 따위를 섣불리 할 리가 없다.
어린 시절의 솜이처럼, 늙어 죽기 직전쯤 되어서야 한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여는 것.
“뭔가, 동물 같지 않은 행동을 보이는 동물은 없었나요?”
“음….”
무언가 떠오를 듯 말 듯 한 표정.
“동물 같지 않은 행동이라. 직원 중에 음,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 있거든?”
“네.”
“특이한 고양이를 봤다는 말을 몇 번 하더라. 하도 기억에 남아서 잊질 못하겠다고….”
이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은 후,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찾아온 건 괜찮은데, 정말 무슨 일이니? 혹시나 해서 말인데, 해피나 링링이 이상한 행동이라도 했어?”
“… 아니에요.”
“페로는 왜 데려왔고?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아빠로선 희한한 상황이긴 하겠지만, 꼬치꼬치 캐물어서 살짝 귀찮았다.
팔찌를 써서 상황을 해결할지 고민한 시점.
아빠가 주저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나는, 음, 네가 직원을 물리라길래….”
“…”
“놀랄만한, 어, 장면을 본 줄 알았다.”
살짝 머리가 아파온다.
잊고 있던 불쾌한 정보들이 기억 저편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알 수 없는 열기가 치솟았다.
“때가 되면, 음, 송이에게 다 말해주려고 했 -”
“이혼 준비 중이신 거요?”
“…”
“아니면, 두 분 다 다른 사람 만나는 거?”
“그….”
“괜찮아요. 제겐 이미 오래전의 일이니까.”
순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를 뒤로하고 병원을 나섰다.
이미 오래전의 일.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고,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
이후, 아빠가 말한 직원을 만나 ‘특이한 고양이’의 외모와 자주 나타나는 지역이 어디인지 들었다.
다행히 병원에서 그리 먼 위치는 아니었다.
*
어느새 점심 무렵.
아빠 병원에서 특이한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금방 찾을 줄 알았지.
페로와 함께 3시간 이상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았다.
“품종은 브리티시 숏헤어에 가깝고, 털색은 전체적으로 회색. 귀 한쪽이 없고, 왼쪽 뒷다리는 절고…. 아이참, 이 정도로 어떻게 찾아?”
— 삐익!
“네 생각도 그래? 근데 페로, 난 몰라도 넌 찾아야 하는 것 아니야?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잖아!”
그냥 관리국에 신고해서 협조를 얻을 걸 그랬나? 모르겠다~!
항상 그렇지만, 저주의 방 초반 진행이 가장 어려워.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모르겠다니깐?
이럴 때는 가인 오빠가 방향을 잡아주든지, 승엽이를 따라다니든지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던 시점.
— 삑! 삐이익! 삑!
페로가 정신없이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아픈데 왜 – 아.”
불현듯 발견한 기이한 풍경.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도로 한복판에 멈춰있다.
달려오던 차가 용케 발견하고 경적을 울리니 슬쩍 피하더니, 잠시 후 다시 도로 한복판에 나아갔다.
순간 스치는 환영과 같은 목소리.
‘무서워, 아파, 괴로워. 날 이곳에서 꺼내줘.’
“…”
사람의 정신이 동물의 몸에 갇혔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길거리에서 썩어가는 비루한 동물이 보기엔, 가장 비참한 인간조차 부러운 대상이다.
차라리 진짜 동물이라면 자신의 비참함을 자각할 수 없겠지.
사람의 정신이기에 고통은 더욱 생생하다.
도움을 요청해?
말 혹은 행동으로 지성이 있음을 드러내는 건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관리국이 즉각 포획해 ‘연구 후 살처분’을 시행할 확률이 높으니까.
끝이 없는 절망과 고통의 연속.
이 상황에서 많은 지성체가 자연스레 내릴 결론.
“… 자살.”
저 고양이는 자살 시도 중이다.
죽고 싶어서 도로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달려오는 차를 보니 본능적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선다.
그랬다가 다시 이 악물고 도로로 뛰어드는 과정.
여기까지 깨달았을 때, 페로에게 지시했다.
“데려와.”
벼락같이 날아간 페로가 다시 도로에 뛰어들려는 회색 고양이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고양이가 크게 당황하며 도주하려는 순간 – 두 지성체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심전심’이 발현함을 느꼈다!
*
밤마다 주린 배를 움켜쥐며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고통.
구더기 가득한 고기를 한 입 먹고 역겨움을 느끼는 기억.
낮에는 태양의 열기가 뜨겁고, 밤에는 엄혹한 한기를 막을 길이 없이 춥다.
하늘 아래 누구 하나 내 편이 없으며, 사람은 날 벌레처럼 대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인간보다 더 비참한 삶.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가 전생에 죄를 지어 이 꼴이 되었다면….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줘.
이 감옥의 탈출구는 단 하나, 죽음.
*
절망으로 가득한 목소리를 들었다.
동시에, 전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스러운 존재.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구원이자 여신, 비참한 운명의 동아줄.
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 찾았구나. 이리 오렴.”
들려오는 목소리.
상대가 내게 느끼는 강렬한 호감.
친화와 이심전심이 작동하고 있다!
‘저 개체’가 내가 찾아 헤매던 바로 그 개체다.
벼락에 맞은 듯 전신을 떠는 비참한 생물을 끌어안았다.
이 순간, 나는 누군가의 여신이요 구세주였다.
“가자. 우리가 나눌 이야기가 아주 많단다.”
*
– 이은솔
정신없이 서류를 뒤지며 정보를 수집하던 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뭐야?”
“사, 상무님!”
“방해하지 말라고 -”
“이상한 메일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상한 메일?”
“처음엔 무슨 농작물 광고메일인 줄 알았는데, 내용에….”
“농작물? 내용에?”
“… 회장님 비자금 관련 내밀한 정보가 몇 줄이 있었습니다.”
“협박이야?”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메일을 무조건 ‘은솔 언니’에게 전달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달하지 않으면 ETS 기자에게 보내겠다고….”
‘은솔 언니’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대충 감이 왔다.
하지만, 이메일 내용을 확인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풋!”
“사, 상무님?”
“걱정할 것 없어. 네가 생각하는 협박 메일 아니야.”
010 – xxx – xxxx
+ 은솔 언니에게 꼭 전해주세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