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57)
EP.658 658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5)
658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5)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관측소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내가 어떻게 보여?”
“…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것도.”
어느새 여유를 찾은 듯, 빙그레 웃는 송이의 모습.
이후, 송이는 축복의 힘으로 상대를 휘어잡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관리국 직원과 통화 중인 은솔 누나다.
“관리국 서울 지부입니다. 이은솔 양 맞으시죠? 무슨 일인가요?”
“네, 기이한 혼돈 재해 관련 정보를 얻어서 -”
.
..
…
— 사아아…!
301호 – 혹은, 아주 오래된 루프를 관측하고 있던 정신이 망원경으로부터 분리되었다.
내려오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던 엘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니랑 송이 상황은 어때요?”
“조금 전에 은솔 누나가 관리국에 신고했습니다.”
“아이참! 왜 모르는 거죠? 지금 관리국을 믿을 수 없는 상태인데!”
답답해하는 엘레나와 그 못지않게 근처에서 한숨 쉬는 동료들.
모두가 301호에 진입한 송이와 은솔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처음엔 나도 비슷했지만, 계속 관측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301호의 관리국은 믿을 수 없는 존재죠.”
“그러니까요. 그런데 관리국에 신고하겠다니! 왜 그런 실수를 -”
“문제는, 그 사실을 은솔 누나가 알아채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네?”
“애초에 우리는 301호의 관리국이 이상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순간 말문을 잃은 엘레나를 대신해서 아리가 중얼거렸다.
“대양그룹 내에 관리국 직원이 여럿 잠입해 있었지.”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난 그냥 보면 알아.”
“은솔 누나가 그냥 보면 알까?”
“무리지. 은솔이가 관리국에서 한 30년 일했으면 모를까.”
“관리국이 수상하다고 판단한 또 다른 근거는 송이가 얻은 정보야. 정체가 탄로 난 상대가 대놓고 ‘관리국이 지금 개입할 리 없다’고 했지.”
“역시 은솔이로선 알 수 없는 정보네.”
누나 이야기 다음으로 나온 건 송이 이야기였다.
“송이 상황도 비슷해. 회색 고양이 – 그레이를 얻은 후, 기괴한 시선이 송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지?”
“맞아. 동물의 시선이 상당수였지.”
“그걸 송이가 알아챌 수 있을까? 우리가 길가를 다니면서 비둘기가 어딜 보는지 매번 신경 쓰나?”
“어렵지. 눈이 10개도 아니고.”
3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송이 일대를 한번에 관측하는 우리와 송이 본인의 시점은 다르다.
인간의 눈은 당연하게도 앞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상현 형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안에선 전체를 볼 수 없다…. 무슨 말인지 슬슬 알겠군요. 다른 사람이 가도 비슷했을 겁니다.”
같은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들어갔어도 지금 들어간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과거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첫 시도에선 항상 좌충우돌했죠.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적이 누구인지부터 불확실하니까.”
역시 상현 형이 다음 말을 받았다.
“심지어 지금 들어간 두 사람은 단순히 301호의 첫 시도가 아닙니다. 3층 전체의 첫 시도죠.”
은솔 누나와 송이는 301호에 대해서만 모르는 게 아니라, 3층 자체에 대해서 모른다.
그러니 이후에 있을 302호, 303호 등의 첫 시도보다도 더 불리하다.
내가 여러 번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경고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
이런 개입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내 경고를 무시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징조 정도로 인지했는데,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때, 미로가 살짝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가인이 네가 들어갔으면 다르지 않았을까?”
“내가?”
“조언도 있고, 시나리오 이해도 있고! 그, 그리고 똑똑하니깐….”
“…”
“아무리 봐도 승엽이가 잘못 뽑은 거 아니야?”
“미로, 승엽이는 실수할 수 있어도 천운은 실수하지 않아.”
승엽이에 대한 신뢰와 별개로 ‘천운’의 압도적인 성능은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미로도 알고 있겠지만, 하루 종일 우울한 소리만 듣다 보니 이러는 것 같다.
“그러면 대체 왜 두 사람만 들어가야 해?”
어제부터 모두가 품은 의문이다.
천운은 왜 이은솔과 유송이 딱 두 사람만 선택했을까?
“…”
첫째, 처음 들어간 사람은 당할 수밖에 없는 불리한 구도.
둘째, 그런데도 딱 두 사람만 들어가라는 천운의 선택.
언뜻 생각하면 모순적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떨까?
답을 알 것 같았다.
*
– 이은솔
지성을 얻은 동물 – 혼돈 재해 신고 도중, 직원이 내 말을 탁 끊으며 답했다.
“이은솔 님, 신고 내용 접수했습니다. 상당한 위기 상황입니다. 섣불리 움직이면 위험하니 대기해 주세요. 곧 진압팀을 보내겠습니다.”
— 탁!
순식간에 전화가 끊겼다.
언뜻 생각하면, 현실이든 저주의 방이든 흔하게 벌어지는 혼돈 재해 신고 과정이다.
하지만, 불현듯 엄습하는 이 위화감은 대체 무엇일까?
“…”
나는 내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또, 대양그룹 회장 딸이자 상무인 만큼 근처에 경비원도 많지.
현실에서 명목상이나마 관리국 요원 직위를 얻고, 업무 처리를 어깨 너머로 구경했기에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이런 저강도 위험 상황에선 직원 한둘만 보내는 대응이 일반적이다.
관리국이 위기의식이 없는 집단이라서가 아니야.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모든 신고에 매번 무력을 투사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바로 진압팀을 보낸다고?
애초에 나는 내 옆에 말하는 동물이 있다고 한 적도 없는데, 뭘 진압하겠다는 –
이 시점에서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 덜컥!
“이런!”
일단 위치를 옮기면서 생각하자.
*
재빨리 차 키를 챙기고, 업무실 밖으로 나왔다.
“어머, 상무님, 무슨 일인가요?”
“김 비서, 나 급한 일정 생겼어. 오후 미팅은 취소해 줘!”
“이미 취소했답니다.”
“고마 -”
뭐라고?
이미 취소해?
놀라서 눈을 치켜뜨는 순간, 5년째 날 보필해 온 김 비서가 빙그레 웃었다.
“상무님, 기다리셔야죠. 대기하라는 말 못 들으셨어요?”
“너….”
강렬한 경계심을 느끼며 한 걸음 물러서는 시점.
— 다다닥!
요란한 발소리와 함께 양복을 입은 직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빙그레 웃는 모습.
모두가 같은 표정이다.
하나같이 오른발, 왼발 발맞추어 걷는 모습.
걸음걸이는 물론, 내뱉는 숨의 박자마저 모두가 똑같다.
마치, 한 명의 마술사가 조종하는 마리오네트 무리 같았다.
“…”
나, 관리국과 통화하고 끽해야 3, 4분 지나지 않았어?
그 잠깐 사이에 이렇게 많은 ‘진압팀’이 도착하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애초부터 회사에 관리국 직원들이 있었다?
“상무님.”
“…”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상무님 -”
대낮인데 숨이 멎을듯한 한기가 느껴진다.
바로 그 순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내 아버지 – 이석환 회장의 목소리다.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아버지가 귓가에 속삭였다.
“은솔아, 내가 수습할 테니 가만히 있거라.”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상황을 따라가려 애쓰는 동안 아버지는 기이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직원들 – 혹은, 직원을 조종하는 괴이한 존재에게 말했다.
“남작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네 딸은 방금 ‘전이’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려 했다. 이는 중대한 배신행위다.”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과의 거래는 제가 전담해 왔고, 자식들은 ‘전이’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딸이 아마도 우연히 전이 과정을 목격한 모양입니다. 그러니 -”
어렴풋이 큰 그림 – 말하는 동물과 수상한 회장님 사이의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동물의 몸에 갇힌 사람들은 ‘전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여파였어.
배후에는 알 수 없는 집단이 있고, 아버지는 그 집단과 교류 중인 건가?
“오래전에 경고했었지? 공에는 상이 있고, 과에는 벌이 있으리라고.”
“이번 일은 과가 아니라 단순 실수 -”
“다르지 않지. 허나, 네 실수는 아니니 네 딸을 벌하는 선에서 끝내겠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상대가 절대적인 우위고, 아버지는 철저히 끌려다니며 복종하는 관계.
여기까지 이해한 순간, 열댓 명의 직원이 일제히 손을 들어 올렸다.
“3년 격리형을 선고한다.”
듣는 순간, ‘3년 격리형’이라는 말의 의미를 즉각 이해했다.
사람의 영혼이 동물의 몸에 갇히는 현상을 알면서도 모를 수가 있겠어?
이대로면 난 최소 3년간 개나 고양이의 몸에 갇힌다!
숨이 멎을듯한 대기의 요동.
알 수 없는 손길이 다가와 내 머리를 녹여버릴 듯한 서늘한 감각.
즉각 손을 움직이자 직원들이 빙그레 웃었다.
배후의 알 수 없는 존재가 내게 말하는 듯했다.
총이라도 꺼낼 셈이냐고, 그래봐야 의미가 있을 것 같냐고.
물론, 내가 소환한 물건은 총 따위가 아니었다.
“피리?”
— 라아아…!
아름다운 선율이 퍼져나가는 순간, 당장이라도 내 두개골을 뜯어낼 것 같던 불길한 기운이 씻은 듯 사라졌다.
처음으로 상대가 당황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 신비로운 힘이로다. 전이를 막아낼 줄은 몰랐구나.”
이윽고 머리 위의 브로치, 호접몽이 수많은 나비를 뿜어내 일대의 직원들을 제압하기 시작했을 때 – 상대는, 내가 아닌 뒤편의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이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
어느새 조용해진 복도.
말문을 잃은 채 서로를 주시하는 아버지와 딸.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나였다.
“아버지.”
“은솔아…. 대, 대체 이런 도구를 어디서 얻었느냐?”
“서로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네요. 아버님은 내 힘의 근원이 궁금할 테고, 저는 ‘전이’라는 게 대체 뭔지, 아버님은 저들과 무슨 관계인지를 -”
그 순간, 일대의 조명이 연이어 꺼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
“흐으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온 신음.
“아, 아아…! 은솔아, 은솔아!”
“아버지.”
“차, 차라리 벌을 받아야 했다! 아까까진 실수라고 할 수 있었으니 고작해야 몇 년 고생하면 끝나는 일이었는데!”
“…”
“이, 이젠 글렀다. 네가 남작에게 무례를 범했으니 -”
이석환 회장, 아버지가 공포에 질려 횡설수설하는 모습.
이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도무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호텔, 현실에서 신비로운 일을 수없이 겪었기에 알고 있는 사실.
재벌 회장이니 어쩌니 해봐야 진실로 드높은 자들이 보기엔 그냥 미천한 존재야.
잘 쳐줘야 개미무리 사이에 있는 딱정벌레 정도에 불과하지.
악마, 괴물, 혼돈의 수괴를 만나면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애처럼 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머리로는 아는 일이다.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평생을 우러러보기만 했던 대양그룹 회장, 굴지의 사업가, 내 아버지에게 이렇게 나약한 모습이 있었구나.
“아버님, 묻는 말에 답하세요. 남작이라는 건 조금 전 우릴 협박하던 존재의 계급인가요?”
“…”
“이제 반항죄가 더해졌으니, 더 강한 존재가 와서 절 벌한다. 이런 말이죠?”
“…”
“남작보다 고위직이면 뭐죠? 백작? 후작?”
그때, 어두워진 복도 너머로 아득한 속삭임을 들었다.
그것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목소리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빈틈없는 울림은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경고였다. 그것은 위협이었다. 그것은 약속이었다.
회사의 풍경은 뒤틀렸고, 복도는 더 이상 직선이 아니었다.
무한히 꼬여 있는 짐승의 위장과 같은 장소였다.
문은 더 이상 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입이었다. 그 입은 열리고 닫히며, 누군가를 삼키려는 듯했다.
창문은 더 이상 창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눈이었다. 그 눈은 바깥을 내다보지 않았다. 그것은 안을 들여다보았다.
형체 없는 손길이 나를 스친다.
차갑고, 부드럽고, 무거운 손길이 어깨를 누른다.
이 시점에서 받아들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존재구나.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패배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다.
아득한 기분을 느끼며 눈을 감았을 때 –
호텔에서 보내온 알림이 떴다.
*
– 유송이
“…”
잘 풀려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박지호의 몸을 차지한 존재를 홀렸으니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
그냥, ‘말단’의 뒤틀림을 감지한 진짜가 나타났을 뿐.
형언할 수 없는 압박감 속에서 고개를 푹 숙였을 때 –
호텔에서 보내온 알림이 떴다.
「당신은 실패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상 현상만 좇아 적진에 뛰어든 당신!
위대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우둔한 멧돼지에 더 가까운 모습 아니었나요?
물론, 첫 시도임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었겠지요.
저주의 근원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동료들을 기다리세요.
곧,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
“… 뭐?”
종말 이후 세계?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관측소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일대의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을 때, 모두의 눈앞에 알림이 떴다.
「해결에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
“으아악! 이, 이게 뭐죠?”
“대체 무슨 소리야?”
당황으로 가득한 동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래서 천운이 첫 시도에 은솔 누나와 송이 두 사람만 넣었구나!
어차피 첫 시도는 무조건 실패니까, 최대한 적은 인원이 묶이게 하려는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