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58)
EP.659 659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6)
659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6)
– 김아리
관측소에 있던 모두에게 나타난 알림창.
「해결에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
설마설마했는데, 관측소에 남아있던 우리에게도 유령처럼 상황을 지켜보는 것 이상의 역할이 있었던 것!
“으악! 이, 이게 뭐죠?”
“대체 무슨 소리야?”
경악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온 정신을 집중해 상황을 정리했다.
송이와 은솔이가 얻은 정보부터 생각해 보자.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기에 301호의 전반적인 시나리오를 파악하진 못했지만, 두 사람이 알아낸 사실도 적지 않아.
첫째, 말하는 동물의 정체는 동물의 몸에 갇힌 인간의 영혼이다.
그렇다면, 영혼이 빠져나간 인간의 몸은 어떤 상태?
송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지성체가 그 몸을 점거하고 있다.
즉, 괴물이 사람의 몸을 뺐고, 빼앗은 몸에 있던 사람의 혼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동물의 몸에 들어간다.
일련의 과정을 ‘전이’라 칭한다.
둘째, 관리국은 신뢰할 수 없다.
송이가 찾아낸 상대는 대놓고 관리국이 개입할 리 없다고 했고, 은솔이는 관리국에 신고하자마자 배드 엔딩을 맞이했지.
셋, 은솔의 아버지, 이석환 회장은 상대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
“…”
알아낸 정보는 이 정도인가?
그 사이, 눈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알림창을 보자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종말 이후 세계’
키워드 자체는 3층에 오기 전에 이미 알아냈어.
이런 식으로 실현될 줄 몰랐을 뿐이지!
이게 무슨 의미야?
은솔이랑 송이가 실패해서 301호는 배드엔딩을 맞이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배드엔딩 이후의 세계에 들어가서 뭔가 해야 하는 모양인데….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가인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모두 눈 감아!”
통찰 혹은 위기 알림으로 무언가를 알아낸 거야?
가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시선이 미로를 향했다.
항상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미로가 이번에도 실수할지 모른다는 정체 모를 불안감 때문이리라.
내 상상 속 미로는 눈을 감는 대신, ‘가인아, 왜 그랭?’ 하면서 빙글빙글 웃다가 피를 토하고 기절했다고!
…
다행히 미로는 실수하지 않고, 얌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다.
실수한 건 나였다.
미로를 확인하느라 고개를 돌렸던 그 잠깐의 시간.
나는 가인이가 모두에게 눈 감으라고 했던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끝없이 공허하고 새하얀 공간.
그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창백한 선.
모든 것.
“… 아.”
뜨거운 액체가 뺨을 타고 흐름을 느낀다.
직후, 어둠이 내려앉았다.
*
.
..
…
안구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억지로 눈을 뜨자 고통은 더 심해졌지만, 흐릿하게나마 앞이 보이긴 했다.
그때, 부드러운 손이 내 머리를 짚었다.
“아리야! 괜찮아?”
“미로?”
“응! 시작하자마자 아리가 다쳐있어서 모두가 놀랐어!”
“…”
“무슨 일이야? 가인이 말로는 아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봐서 다친 것 같대.”
“… 미로.”
“응?”
“너 때문이야.”
“으엣?”
“너만 아니었으면 아무 일 없었어.”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농담이야.”
“아이, 참! 이상한 농담 하지 마.”
미로가 건네주는 물 한 잔을 마시며 대강의 상황을 전달받았다.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어?”
“2시간 정도?”
그리 길진 않아서 다행이네.
“다른 사람들은?”
“다 같은 장소에서 깨어났어. 지금 밖을 돌아다니면서 상황 파악 중.”
“여긴 어디야?”
“인류 보호 구역?”
“… 뭐?”
무슨 보호 구역?
이게 뭔 소린가 싶어 눈을 크게 뜨니, 미로가 몸을 부르르 떨며 속삭였다.
“의사 쌤 말로는 인간 수용소 같은 장소래.”
“… 인간 수용소.”
더 끔찍한 단어가 튀어나왔다.
“아파트단지 몇 개와 공원 몇 개가 합쳐진 자그마한 구역인데, 이 일대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해.”
이 이상은 미로도 잘 몰랐다.
아무래도 바깥의 동료들을 만나야 더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로, 일단 나가자. 시야가 아직 흐릿하니 도와줘.”
“응.”
*
밖으로 나가자마자 골똘히 고민에 빠져있던 김상현이 날 반겼다.
“깨어났습니까? 눈 상태는 괜찮으신지?”
“의사 쌤! 아리는 아직 앞이 잘 안 보인대!”
“이런! 내 손가락이 몇 개인지 말해보시길.”
“여덟 개.”
“무슨 -”
“농담이야. 손 정도는 보이니까 상황 좀 설명해 줘.”
상현은 내 장난이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이계의 괴물이 지구를 정복한 상태 같습니다.”
“시작부터 기가 막히네.”
“사람의 몸을 빼앗는 괴물들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놀라지 마시길. 이미 지구 정복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종말 이후 세계’인가?”
“아마도.”
지금은 이계의 괴물이 침공 중인 시기가 아니야.
지구 정복은 진작 끝났고 그래서 ‘종말 이후 세계’!
“그럼, 이곳은 뭐야? 인류 보호 구역이라던데?”
“당신과 내가 아는 대한민국 역사가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
“서론은 생략해도 돼.”
“친일파의 후손이 살아가는 장소지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
“일대의 사람들을 조사하다가 나온 이야기입니다. 일찍부터 ‘위대한 종족’에게 협조한 자와 그 후예는 종말 후에도 보호 구역에서 살아갈 권리를 허락받았다는군요.”
“… 이미 세상이 망하고 시간이 꽤 흐른 거야?”
“30년 정도. 확실하진 않습니다.”
그니까, 대략적인 상황을 정리하면 이거네.
정체불명의 괴물이 대량으로 몰려와 인류의 몸을 빼앗고 지구를 점령한 상황.
살아남은 인류는 괴물을 ‘위대한 종족’이라 부르며 복종한다.
침공 과정에서 적에게 협력한 인간 측 배신자들도 있다.
그들은 종말 후에도 몸을 빼앗기지 않은 채 보호 구역에서 살 권리를 얻었다.
보호 구역 밖의 인류는 몸을 빼앗긴 채 비참한 운명에 처했으리라.
“관측소에서 본 바에 따르면, 은솔이의 아버지 -”
“대양그룹 회장, 이석환 말이군요.”
“그 사람은 전이 현상에 대해 알고 있었어. 심지어 괴물들과 안면도 있어 보였지.”
“아마 인간 측 배신자였을 겁니다.”
“…”
탈출 후 이 사실을 들으면, 은솔이가 제법 괴로워할지도 모르겠네.
“앗! 가인이다!”
미로의 요란한 손짓에 가인이 쪽을 보았을 때, 살짝 당황했다.
가인이는 몇몇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가인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정도를 넘어서 아예 오체투지를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저게 뭐야? 혹시 나 기절한 사이에 교단이라도 세웠어?”
상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럴 시간 없었습니다. 단순한 속임수죠.”
“속임수?”
“보호 구역의 사람들은 위대한 종족을 남작님, 백작님 하며 두려워하지만, 외견만으로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당연한 말이다.
적은 사람의 몸을 강탈하는 괴물이니, 외견상으로는 평범한 인간과 똑같을 테니까.
“따라서 그들이 사용하는 힘 자체가 신분증입니다.”
“아!”
이해했다.
사람의 몸을 빼앗고 조종하는 힘이야말로 위대한 종족의 신분증이며, 힘의 근원은 다르겠지만 가인이도 유사한 힘을 휘두른다.
즉, 평범한 인간은 가인이를 위대한 종족과 구분하지 못한다!
“가인이가 지금 위대한 종족 행세 중이구나?”
“그렇지요. 아, 이제 우리 쪽으로 오는군요.”
여기까지 알았을 때, 관측소에서 내내 생각했던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천운은 왜 은솔이와 송이에게 한가인이라는 조력자를 붙여주지 않았을까?
장담하는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인이 한 명만 있었어도 진행이 전혀 달랐다!
전투력은 물론, 시나리오 파악 능력도 가인이가 우리 중 제일 낫기 때문이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 그쪽에서도 유용하지만, 이쪽에선 더 유용했구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아~! 가인이가 두 명이나 세 명이면 좋을 텐데!”
“부, 부끄러운 소리 하지 마!”
“부끄러운 소리? 미로, 넌 이상한 상상이나 하지 마.”
*
가인이는 내 쪽을 보며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근처의 동료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추가로 알아낸 정보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허….”
실망하는 반응들.
가인 역시 공감한다는 듯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보호 구역 내 일반인들은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위대한 종족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고, 자신들은 그분들의 은혜를 입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인식이 대부분입니다.”
“… 거의 노예가 따로 없네.”
가인이는 내 말에 살짝 다르게 반응했다.
“노예? 노예라면 부려 먹기라도 할 텐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야. 그냥 서울 반쪽만 한 보호 구역에 가둬놓고 나오지 말고 여기서 살아라.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 등은 주겠다. 이게 전부야.”
“그 말은?”
“노예보다는 인간 수용소 혹은 인간 동물원에 가깝겠지.”
“…”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 않긴 마찬가지네.
엘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가인 씨, 시나리오 이해는 어때요?”
“바로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돌아다니다 보니 시나리오 이해가 작동했거든요.”
“뭐라고 해요?”
곧, 가인이는 허공을 보며 본인에게만 보이는 문자열을 읽었다.
“시나리오 이해, 종의 기원. 아아…! 파멸이 도래했습니다. 인류는 패배했고, 영광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지구의 주인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설마 이런 끔찍한 말이 전부는 아니겠지?
“그러나, 종말의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있는 법!”
“역시! 다음은?”
“다음은 없어. 이게 끝이야.”
“희망의 불씨는 뭔데?”
“아직 몰라. 우리가 찾아야겠지.”
“…”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가인이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 3층 저주의 방은 ‘해결 조’와 ‘탈출 조’를 나눠서 진행하는 것 같아.”
해결 조와 탈출 조.
“처음 입실 명부에 이름 적고 들어가는 사람들, 이번 회차로 치면, 은솔 누나와 송이가 해결 조야. 이 사람들이 301호의 문제를 풀어내면, 그 시점에서 해결이지.”
입실 명부에 이름 쓰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해결 조.
여기서 끝내면 해결 판정이며, 보상 등이 나온다.
“해결 조가 실패하면, 다음은 탈출 조야. 탈출 조는 종말 이후 시점에서 시작해. 따라서 -”
“해결은 불가능하겠구나.”
“그래. 해결은 불가능해. 골든 타이밍은 끝났고,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어.”
“…”
“희망의 불씨를 찾으면 뭔가 벌어지긴 할 거야. 그게 아마 3층의 탈출 조건 아닐까?”
1, 2층에서 탈출이란 종말의 일시적인 지연 혹은 해당 장소에서 벗어남을 뜻했지?
3층의 탈출은 다소 다른 개념인 것 같다.
애초에 종말 이후 시점에 들어가니 종말을 늦춘다 따위가 성립할 수 없고, 세상 전체가 망했으니 도주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희망의 불씨, 이것이 3층의 탈출 키워드!
여기까지 이해한 모두가 침묵하는 시점.
가인이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리야.”
“응?”
“보호 구역의 생존자들에게 얻은 추가 정보가 딱 하나 있긴 있거든?”
“아?”
“그런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혹시 네가 알까 해서.”
“말해봐.”
다음 말은 나로서도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 Great race of Yith”
“뭐?”
“이스의 위대한 종족. 이게 뭔지 알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