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61)
EP.662 66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9)
66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9)
– 김아리
— 쿠궁!
험악한 힘을 뿜어내던 괴물이 마침내 살덩이가 되어 쓰러지는 순간, 승리의 기쁨과 안도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후!”
이 녀석을 파괴하기까진 정말이지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
한 가지 확실한 건, 나 혼자선 쉽지 않은 상대였어.
내가 고전하는 광경을 본 동료가 제때 합류해 줬기에 이길 수 있었다.
“승엽아, 잘했어.”
“…”
“아직 정신 못 차렸니?”
“…”
“대체 언제 제정신 차리는 거야? 가인이 쪽은 – 아, 저긴 된 것 같네. 트럭으로 돌아가자.”
승엽이는 마치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내 말을 따랐다.
*
트럭 쪽 상황도 끝나 있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부상자는 여럿이었다.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은 차진철이었지만, 차진철이었기에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여.
반쯤 절단되려는 오른팔 상처가 스스로 꿈틀거리며 달라붙으려 하고 있잖아?
솔직히 이 정도면 트롤도 놀라겠다!
반면, 묵성이와 엘레나는 훨씬 덜 다쳤는데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행히 트럭에는 세계 최고의 명의가 있다.
“엘레나, 아픕니까?”
“아, 아파요!”
“참으세요.”
그 말과 동시에 상현의 손이 엘레나의 배로 쑥 들어갔다.
진짜 쑥 들어갔잖아?
사람 손이 피부를 뚫고 몸속으로 들어가다니!
축복 – 성실로 인해 상현의 치유 능력이 초자연적인 경지임은 알고 있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솔직히 기괴하네.
“으아악!”
“더 참으시길.”
“꺄아아악!”
거의 전쟁터의 야전 병원 같은 분위기야.
그때, 뒤에서 가인이 나타났다.
“다행이다. 죽은 사람은 없네.”
“그러게. 가인아, 혹시 트럭 쪽 어떻게 싸우는지 봤어?”
난 트럭까지 확인할 여유가 없어서 전혀 보지 못했다.
“미로를 미끼로 삼아서 적을 유인한 후 -”
“누굴 미끼로 삼아? 미로?”
“어쩔 수 없었을 거야. 미로는 불변 때문에 정신 공격을 버틸 수 있으니까.”
“…”
“유인한 적과 싸우다가 여러 사람이 다쳤어. 진철 형이 공격을 연거푸 받아냈지. 그 틈에 엘레나가 정당방위를 써서 파괴했어.”
미로를 미끼로 삼았다는 게 순간 거슬렸지만, 작전 자체는 그럴듯하네.
나였어도 비슷한 작전을 세우지 않았을까?
가인이 이번엔 내게 물었다.
“승엽이랑 같이 싸우던데 어떻게 된 거야? 승엽이는 상대의 육체 전이 능력에 저항하기 힘들었을 텐데.”
“… 너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뭐?”
동료들이 호텔에서 얻은 힘 중 몇몇은 아주 특별한 용도로만 쓸 수 있다.
이런 능력은 평소에 거의 쓰지 않아서 모두가 반쯤 잊기 마련이지.
“태초의 인간.”
“아?”
“그걸 쓰니까 상대의 조종이 먹히지 않더라.”
가인이도 몰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태초의 인간으로 만들어 낸 자아가 육체 통제의 우선권을 가지는 개념인가?”
“그렇게 말하면 알아듣기 힘들어.”
“나도 그냥 짐작한 거야.”
이 정도 이야기를 나눌 때쯤, 트럭 쪽에서 더 이상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응급처치는 대충 끝난 모양이다.
“가자.”
*
모여서 의견을 나누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을 알았다.
제법 격렬한 싸움을 벌였음에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은 사람은 가인이 혼자라는 사실!
애초에 트럭 파티나 나와 승엽이는 적을 죽이지 못했어.
물리적인 육신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정신체의 도주를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지.
가인이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의 일은 우리가 뿌린 씨앗이라는군요. 본인들은 여러 차례 기회를 줬고, 협상까지 시도했는데 우리가 전부 걷어찼답니다.”
“‘우리’라는 건 인류를 말하는 건가? 혹은 관리국?”
“필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조언에 따르면, ‘종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머리가 점점 더 복잡해지는 느낌이네.
종의 기원과 관련한 이야기는 정말 모르겠어.
그때, 상현이가 살짝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 또, 또 관리국입니까? 이번에도 관리국이 이상한 짓을 벌인 모양이군요.”
“…”
나와 묵성이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뒤늦게 상현이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내 말은, 301호의 관리국을 말하는 겁니다. 현실의 관리국이 아니라 -”
묵성이 피식 웃었다.
“또, 또, 또 관리국이라면서?”
“그, 그건 -”
“됐다. 관리국이 해괴한 짓을 많이 벌이는 건 사실이지. 솔직히 내가 봐도 그래. 좀 병신새끼들이 맞아.”
“으흠!”
그때, 차진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나도 요원 일 좀 해봐서 하는 말인데….”
이야, 그렇네?
형식상 요원 배지만 받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진철이는 진짜 요원 일 몇 달 했잖아!
호텔 파티 내에 친관리국 파가 한 명 늘어난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뿌듯해.
“관리국이 좀 막 나가는 놈들인 건 맞는데, 진심은 있더군요.”
“진심?”
“인류를 위하는 조직인 건 맞습니다. 개인을 위하는 건 아니지만, 인류 전체를 위한다는 사명감은 확실히 있었습니다.”
상현이가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따지고 보면, 회귀자는 원한다면 아무 책임 없이 쾌락만 누릴 수 있는 놈들입니다. 그런데도 관리국 소속 회귀자들은 이 악물고 괴물, 악마를 찾아다니지 않습니까?”
“…”
“선민의식은 기본이요, 민간인은 사람 취급도 안 하고, 기본권이니 하는 단어는 사전에서 지워버린 놈들이지만….”
“…”
“인류를 지키겠다. 이런 사명감은 있는 겁니다.”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봐.
사명감이라도 없으면 어떤 미친놈이 지구 방방곡곡에 숨어있는 악마와 괴물을 찾아다니겠냐고!
그때, 진철이의 말을 경청하던 가인이 답했다.
“요약하면 이거군요. 모든 문제를 관리국 탓이라고 보는 건 이스의 위대한 종족 관점이다. 관리국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는 분명 인류를 위함일 것이다.”
“어, 그렇지.”
“일리 있습니다. 나가서 자세히 이야기해 보죠. 지금은….”
가인이 지극히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당장 상황에 집중합시다. 상황이 무척 불길하거든요.”
모두가 불안한 표정으로 가인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는 여전히 상대의 전력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상대는 우리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얻었군요.”
“…”
“요란한 혈전을 벌인 데다가, 상대 셋 중 둘이나 도주한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우리 개개의 능력도 꽤 많이 알아갔을 겁니다.”
“… 그렇네.”
“솔직히 말하면, 아직 우리가 살아있는 게 기적 아닙니까?”
숨이 턱 막혀온다.
“상대가 관리국이라 칩시다.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수십에서 수백 발의 미사일이 날아와서 우리에게 꽂혔을 것 같군요.”
“… 그러게.”
“심지어 상대는 그 관리국을 제압한 외계 종족입니다. 물론, 정신체 종족 특성상 물리적인 무기는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
이렇듯, 가인이가 현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설명하는 시점.
“- 무슨!”
가인이가 본능적으로 신성한 태양을 소환했다.
불현듯 강렬한 위기감을 느끼기라도 한 것처럼!
소환과 동시에 일대를 달구는 새하얀 빛의 덩어리, 신성한 태양.
호텔 파티가 얻은 모든 유산을 통틀어 강함의 정점에 선 유산이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유산이라고 해도 결국 도구다.
스스로 빛날 수 없는 별이니, 사용자가 으깨지고 나면 허무하게 사그라들 뿐.
바로 지금처럼!
창공에서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온 압도적인 위력의 일격!
소리는 한 타이밍 늦게 들려왔다.
— 우르릉!
가인이가 신성한 태양으로 시도한 방어는 딱 절반만 유효했다.
창공에서 날아온 일격의 위력을 줄여서 주변 동료를 지킬 수는 있었지만, 본인의 머리가 증발하는 건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으…!”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사치인 급박함!
숨 한번 쉬지 못하고 미친 듯이 부등변다면체를 사용했다.
방벽을 만들고, 만들고, 만들고 – 콰직!
다시 한번 날아든 일격이 내 혼신의 방어를 우습게 관통하는 순간, 오른팔에서 화끈한 느낌이 들었다.
팔이 사라졌구나.
체감상, 여기까지 딱 1.5초 정도 걸렸다.
— 스아아…!
하늘 너머에서 들려오는 아득한 속삭임.
그 어떤 명료한 의사도 담겨있지 않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
지극히 오래된 갈망.
이룰 수 없던 억겁의 시간.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방해받은 고통.
돌이킬 수 없는 실패.
피할 수 없는 파멸.
실낱같은 희망!
…
눈 한번 감았다 뜨기도 전에 하늘이 검붉게 물들었다.
상대는 지상의 생물을 모조리 조악한 살덩이로 취급할 만큼 고등한 존재였다.
마치 – 진화의 끝에 도달한 것만 같았다.
“…”
몸이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나 압도적인 힘이 일대의 모든 이를 돌처럼 굳힌 것 같았다.
세상이 멈춘 듯한 믿을 수 없는 순간.
꿈틀거리는 형체가 아주 잠시, 가인의 근처에서 멈춘다.
시간 낭비는 길지 않았다.
상대는 곧, 바닥에 주저앉은 날 무시한 채 후방의 동료들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처음은 미로였다.
시간 대여기는 의지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미로는 은솔이 소환까진 성공했다.
단지, 나타난 은솔이도 돌처럼 굳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미로의 몸이 둘로 쪼개지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승엽이는 상황이 조금 나았다.
몸이 파괴당하며 영혼의 함이 나타났는데, 상대도 그 자리에서 영혼의 함을 파괴하긴 어려운지 무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단단한 음식을 옆에 빼둔 정도일 뿐이리라.
진철이는 반항 정도는 한 것 같다.
움직일 수 있던 건 아니지만, 이계의 별 조각은 소환하기만 해도 위력을 발휘하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묵성이는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했다.
원 모어 찬스는 ‘튕긴다’라는 동작이 필요하니까 별수 없는 일이겠지.
10초가 지나기도 전에 동료 절반이 몰살당하는 걸 바라보며 깨닫고 말았다.
아아….
이 녀석, 이 괴물, 이 위대한 자가 바로 ‘공작’이구나.
다르다.
지금까지 싸웠던 개체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같은 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격차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심해서 억울하긴커녕, 화조차 나지 않았다.
별다른 고통 없이 단박에 죽여주는 모습에 감사함까지 느꼈다면 지금 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중 가장 강한 사람이 기습당해서 허무하게 죽고 시작한 싸움이라는 점 정도.
그렇게 넋이 나가려는 순간.
“어, 으…. 아?”
목소리가 나왔다?
몸이, 내 몸이 움직인다!
속박이 풀렸음을 자각한 동료들의 반응은 신속했다.
애초에 이 정도 괴물에게 무슨 간을 볼 여유가 있겠어?
“나는 이제 죽음이요 -”
바로 최후의 섬광이 발사되었고, 불길한 상상이 지평선을 뒤흔드는 악의를 뿜어낸다.
물론, 나 역시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의식을 집중해 공간을 연거푸 쪼갰다!
— 투두둑!
부슬거리며 떨어지는 촉수, 바닥을 적시는 보랏빛 액체!
우리의 공격이 통한다?
심지어 최후의 섬광은 감당하지 못하고 회피하다가 찐득한 액체로 바닥을 적시는 모습을 보라!
무지막지하게 강하긴 하지만, 죄수급은 아니라는 것.
바로 그 순간, 처음으로 상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직도 죽지 않았는가.’
아직도 죽지 않았다고?
누굴 말하는 –
— 덥석!
누군가의 손이 내 발목을 잡았다.
이제야 모두의 속박이 풀린 이유를 알았다!
“…”
바닥을 내려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은 머리가 없으면 죽어야 해.
설령 회귀자라 해도 마찬가지!
다음 루프에서 깨어날 뿐이지 머리 없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머리가 사라졌는데 마도서를 펼친 채 손을 뻗은 저 ‘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가인아….”
그리고 – 가인이의 품에 있던 자그마한 도구가 내 손에 들어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