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62)
EP.663 663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0)
663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0)
– 김아리
— 지이잉!
사방에 뿜어낸 불길한 상상의 악의에 이어 엘레나의 몸에서 황금빛이 서리기 시작했다.
이스의 공작은 뭘 어떻게 봐도 인간은 아니었지만, 동료 중 상당수가 죽은 상황이니 ‘정당방위’가 발현되어 정의가 깨어난 것.
곧, 심판의 천칭이 그려낸 나선의 파동이 연이어 이스의 공작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가인이의 정체 모를 술수로 인한 속박의 해제와 상현이가 쏘아낸 최후의 섬광이 만들어 낸 상당한 타격.
여기에 엘레나의 불길한 상상과 정의를 연이어 사용하는 공세까지!
상황만 보면 싸움의 판세가 뒤집힌 것 같았지만, 고작해야 10초 내외의 짧은 우세에 불과했다.
애초에 상대는 등장과 동시에 우리를 몰살에 가깝게 몰아간 존재.
가인이를 포함한 전원이 싸울 준비를 끝낸 채 붙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기습당하고 시작하면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공작의 몸에서 흐르던 피가 멎었다.
공작은 불길한 상상이 만들어 낸 저주와 같은 악의를 끊어냈다.
공작은 정의의 천칭을 하나하나 요격하기 시작했다.
공작은 부등변다면체의 공간 격리를 눈으로 보기라도 한 것처럼 가볍게 피해내기 시작했다.
다시금 절망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상황.
다행히 생존자의 발악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끈 덕택에 바닥의 머리 없는 동료가 ‘큰 기술’을 쓸 틈이 생겼기 때문이다!
— 스아아아!
혼란 속에서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곧, 이해할 수 없는 환영이 뇌리를 스치며 아득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허로 가득한 우주, 그 한가운데에서 나타난 소용돌이, 만상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인력!
— 고오오오…!
아득한 성천의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은 가인이에게 들려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공작에게 들려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착각이 있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
소리는 모든 곳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뭐, 뭐야?”
가인이가 뭔가 대단한 기술을 쓴 것 같긴 한데 대체 뭐야?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
그때, 단단한 감촉이 손에서 느껴졌다.
떨리는 손 위에 어느새 나타난 가인이의 피로 적셔진 자그마한 물건 – 모래시계.
처음 든 생각은 ‘살았어!’ 따위가 아니었다.
이걸 이 시점에서 돌리는 게 무슨 의미 있다는 거야?
돌린다고 죽은 동료가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원 모어 찬스처럼 시간을 돌리는 도구였다면 다르겠지.
하지만, 모래시계는 시간을 끄는 도구일 뿐이다.
여기서 일주일 뒤로 가면 상황이 더 불리해지는 것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내 손이 얼음처럼 굳었다.
공작이 나를, 내 손에 들린 ‘모래시계’를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젠 모래시계조차 돌릴 수 없는 상황.
덕분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일까?
내 입에서 이성을 반쯤 잃은 듯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네, 네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아? 우리가 하찮은 미물처럼 느껴지는 모양 -”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상대는 의외로 답을 돌려주었다.
‘아니다. 너희는 불가일세(不可一世)의 존재다. 또한, 나는 신이 아니다.’
뒤늦게 깨달았다.
몸 전체가 아니라 손만 굳었기에 말할 수 있다는 점, 상대가 내게 답하고 있다는 점.
두 사실을 조합하면, 상대는 지금 날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다?
“…”
아니야.
기습으로 가인이 머리를 날리면서 시작했고, 잠깐 사이에 절반 가까운 동료를 죽였잖아?
처음엔 분명 우리를 죽이려고 왔어!
지금은 아니야.
왜 생각이 바뀌었지?
상대의 다음 전언은 내 숨을 막히게 했다.
‘그것을 뒤집으면, 일주일간 불가침을 얻는가?’
“…”
공작이 모래시계의 기능을 알아챘다.
대체 어떻게 알아냈냐고 반문할 틈도 없었다.
다음에 들려온 목소리는 더욱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이 처음이로군.’
“으, 으앗!”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 아니지?
이 상황에서 처음이라고 하면 의미는 하나잖아!
상대는 내가 – 우리가 ‘호텔’에서 왔음을 알아챘다.
심지어 이번이 첫 번째 시도라는 사실까지도!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상대가 죄수였다면 놀랍지 않다.
죄수는 애초부터 호텔에 대해 우리보다도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스의 공작은 절대 죄수가 아니야.
그동안 죄수를 한두 번 본 게 아닌데, 착각할 리가!
301호의 죄수는 무조건 따로 있다.
— 우르릉!
하늘에서 거대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곧, 황홀한 빛이 내려오며 이스의 공작이 신비로운 빛줄기를 따라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설마.”
이 시점이 되어서야 받아들였다.
모종의 이유로 이스의 공작은 생각을 바꿨으며, 우리를 살려주기로 했음을!
그때,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신음하던 상현이가 이 악물고 외쳤다.
“왜 살려주는 겁니까!”
나도 궁금해. 진짜, 진짜 궁금하다고!
“이유가,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우리를 이용하려고? 그걸 위해서라도 뭔가 알려줘야 할 것 아닙니까!”
황홀한 빛줄기에 휩싸인 채 장내에서 벗어나기 직전, 이스의 공작이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 한 번 더 하라. 다음번에는, 이 단계까지 오지 말고 끝내라.’
*
피로 물든 평야.
생존자는 몇 없으며, 조금 전까지 꿈틀거렸던 머리 없는 동료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살아남은 세 사람이 넋 나간 듯 서로를 보았다.
“… 아리야.”
“엘레나.”
나와 엘레나의 애틋한 분위기를 본 상현이 한마디 했다.
“저도 좀 끼워주시죠.”
“…”
“굉장히…. 고통스럽군요.”
“너, 배에서 출혈이 엄청나. 말할 시간에 치료를 -”
“소용없습니다. 이거, 엘레나 양의 불길한 상상에 당한 거라서요.”
그 말에 엘레나가 화들짝 놀랐다.
“아앗!”
불길한 상상의 특성상 정교한 범위 조절 따위는 불가능하다.
이스의 공작을 위협할 정도의 저주에 가까운 악의라면, 인간의 몸 따위는 스치기만 해도 버틸 수 없겠지.
“나는 곧 죽을 것 같습니다.”
“…”
“그 전에 탈출이 떴으면 좋겠군요.”
“그러길 바라.”
“틀림없습니다.”
상현의 말을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탈출 알림이 뜬다!
왜? 이스의 공작이 전의를 잃고 떠나갔으니까.
“… 나가서 다 같이 있을 때 다시 말하겠지만, 이 정도를 느꼈어.”
“말하시죠.”
“공작은 이 상황이 ‘저주의 방’임을 알았어.”
“맞아!”
“우리가 첫 시도 중이라는 사실도 알았어. 또, 모래시계가 특별한 도구임도 알아봤지.”
“… 슬슬 눈이 감기는군요.”
“마지막엔 심지어 우리에게 한 번 더 하라면서 이탈했지. 대적자가 전의를 잃고 떠났으니, 탈출 판정도 조만간 뜰 확률이 높아.”
상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엘레나가 안타깝다는 듯, 상현의 눈을 감기며 중얼거렸다.
“나는…. 알 것 같아. 사실 아리도 알고 있다고 생각해.”
“…”
“느끼지 않았어? 처음 왔을 때의 공작과 떠날 때의 공작은 뭔가 달랐어.”
“태도가 달라지긴 했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음, 그러니까….”
엘레나의 눈이 몇 발짝 떨어진 곳에 있는 목 없는 시체를 스쳤다.
“살짝, 가인 씨 같았어.”
“…”
“그런 느낌 같은 느낌을 받았어. 아니야?”
너도 같은 생각 아니냐는 엘레나의 목소리.
내 생각도 비슷하다.
마지막 순간, 공작은 ‘지나칠 정도로’ 많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 무대가 호텔 내부라는 정보 정도라면 알아챌 수도 있다.
죄수는 해당 정보를 알고 있을 테니, 공작에게 알려줬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공작은 과해도 너무 과했다.
우리의 시도 횟수나 모래시계의 기능까지 알아본다?
이건 설령 죄수여도 몰라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엘레나가 쐐기를 박듯 말했다.
“가인 씨가 알려준 거야.”
“…”
“우리로선 모르는 영역에서 가인 씨가 상대와 겨뤘고, 그 과정에서 상대는 많은 사실을 알았어.”
“왜 알려줬지? 알려줬다 해서 설득당한 이유는 또 뭐고?”
“나가서 물어보자.”
— 쿠궁!
기다렸다는 듯 들려오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
곧, 두 명의 생존자가 간절히 기다렸던 알림이 떴다.
「당신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인류 보호구역을 관리하던 이스의 남작과의 충돌, 연이어 벌어진 백작급 개체들과의 혈투!
연거푸 쓰러트리시는 걸 보니, 여러분의 싸움 실력 하나는 많이 성장한 것 같아 기쁩니다.
하지만, 너무 무식한 진행이 아니었을까요?
별을 집어삼킨 세력의 말단을 죽여봐야 점점 더 강한 추격대가 올 뿐입니다!
마지막에 공작과 협상을 시도한 임기응변은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의 협상은 없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두 번 탈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저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주의 근원은 남아 있는 것을 느낍니다.
…
동료 중 탈출 성공자 발생!」
*
호텔 복도에서 정신을 차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리둥절한 표정의 동료들이 가득했다.
대부분은 탈출 알림이 뜨기도 전에 죽었으니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겠지.
하긴, 알림을 본 나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야.
“어, 어…. 뭐가 어찌 됐든 한 번은 끝난 건가?”
“그, 그런 것 같아요!”
뭐가 어찌 됐든 탈출에 성공한 건 사실이고, 덕분에 동료들의 얼굴에 화색이 깃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는 머리가 다시 생겨난 동료의 팔을 강하게 쥐었다.
“대체 뭐야? 뭐였어?”
자연스럽게 모여든 모두의 시선.
“… 특이점.”
“뭐?”
“잠깐 나와 공작의 경계가 사라졌어. 그리고….”
“그, 그리고?”
가인이는 다소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어?”
“자기들끼리 나눈 계급이지. 마지막에 나타난 게 공작이고.”
“갑자기 계급을 왜 -”
“공작 위에는 왕이 있어. 왕은 단 하나.”
“이스의 왕?
“왕이 죽었어. 죽었고…. 이스의 종족은 왕을 다시 깨우려 하고 있어.”
“왜 죽었는데?”
다음 말은, 정말이지 모두를 당황케 했다.
한편으론 살짝 ‘감동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 관리국이 죽였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