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67)
EP.668 668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2)
668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2)
– 이석환
스무 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창밖에서 몰아치는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내가 간밤에 예지몽을 꾸었구나!
아찔한 기분으로 집 밖을 나섰다.
넋 나간 듯 부산 밤거리를 걷던 중, 점점 더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 20, 30년간 대한민국에서 어떤 산업, 지역, 기업이 흥할지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에 쏟아진 것이다.
나는 현실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기업의 이름을 알았다.
그 기업이 조선업 부흥에 힘입어 약 20년간 크게 흥할 것임을 알았고, 또한 세계적인 불황을 이기지 못해 도산할 것임을 알았다.
마치, 별세계의 신 혹은 악마가 내 귀에 속삭이는 듯했다.
이후의 일을 가타부타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시간이 흐르며 예지몽의 내용이 모두 정확하진 않음을 깨달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가 내 성공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
‘반복되는 세상, 루프를 인지한 건 아니었습니다. 사라진 세상에 대한 기억을 예지몽이라고 착각하더군요.’
‘관리국식으로 표현하면, 마마처럼 불완전한 회귀자였군요.’
*
스물아홉이 되던 해의 일이다.
훗날 대양그룹의 모태가 된 대양물산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중,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순간 당황했지만, 아무리 봐도 회사 직원들이 아니었다.
분명 바깥에 직원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들어온 걸까?
눈살을 찌푸리며 바깥 직원들을 부르려던 차,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 일이 귀찮아질 뿐이니까.”
당연하다는 듯 튀어나온 권총을 보며 침묵하는 사이, 위협적인 이야기가 들려왔다.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자신들이 말로만 듣던 관리국 요원이며, 내가 ‘격리 혹은 처분’ 리스트에 적혀있다고 설명했다.
“격리 혹은 처분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를 해친 적이 -”
“정말 네가 결백하다고 생각하나?”
“모르는 사이에 지은 죄가 있다면, 듣겠습니다. 타당한 말이라면, 재산의 반을 털어서라도 속죄를 -”
“웃기는구나. 네 재산 자체가 죄의 근원이거늘! 이석환, 너는 외계에서 들려온 악마의 속삭임으로부터 미래의 정보를 얻었다. 내 말이 틀렸나?”
“…”
“미래의 정보를 남용해 이토록 큰 부를 쌓았구나. 고작 스물아홉인데 말이지. 이 과정이 정말 정당하다고 생각하나? 본래라면 다른 사람이 얻었어야 할 자산 아닐까?”
요원의 말은 내가 종종 떠올리곤 했던 죄책감을 정확히 찌르고 있었다.
덕분에 난 그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고, 고개를 숙인 채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네 죄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처분이 온당하지만, 더 온건한 이야기도 나왔다.”
“… 온건한 이야기라 하심은?”
“협조해라. 관리국을 위해, 인류를 위해 헌신하라. 이로써 네 원죄에 대해 속죄하라. 그리하면 살 수 있으리라.”
추상과도 같은 선언이 떨어진 후, 요원은 채찍에 이어 당근을 던지듯 날 달래기 시작했다.
경영은 앞으로도 내 뜻대로 하면 된다.
내 재산을 환수할 생각도 없고, 예지몽을 통해 부를 쌓아도 괜찮다.
또, 내가 직접 위험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종종 인적 물적 자원을 관리국에 제공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만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이 발생하면, 즉각 도움을 요청하라.
관리국 협력업체는 일반인보다 더욱 신속하고 강도 높은 보호가 제공된다.
당시에야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받아들였지만, 돌이켜보면 내게도 나쁜 거래는 아니었다.
적어도 ‘이후의 주인’에 비하면, 관리국은 대단히 관대한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
‘다른 사람이 얻을 부를 빼앗은 죄라니…. 관리국이 제일 열심히 하는 일이네요.’
‘루프를 모르는 회장을 속였군요. 보니까 과거 루프의 회장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현 루프의 회장을 겁박한 모양입니다.’
‘보고 있으니 궁금한데, 소위 관리국 협력업체들이 다 이런 식일까요? 회장 혹은 사장이 불완전한 회귀자다?’
‘나중에 아리 양에게 물어봅시다. 그나저나 이후의 주인이라니?’
*
마흔한 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관리국은 내 돈으로 강원도의 1만 3천 평에 달하는 대지를 매입하라고 지시했다.
산간지대였기에 매입 자금은 어찌어찌 조달할 수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느라 큰 곤욕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었고, 늦은 밤 차를 몰아 현장으로 향했다.
무슨 대단한 반항을 할 생각까진 없었다.
그냥 현장의 관리국 요원 혹은 직원들에게 항의 정도나 할 생각이었지.
예전 같으면 관리국에 감히 항의할 엄두도 못 냈겠지만, 협력업체가 된 지도 12년이 넘은 시점.
안면을 튼 직원은 셀 수 없이 많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요원 몇 명의 안면도 익혔다.
그러니까, 건방진 말 좀 한다고 설마하니 날 처분하진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자신감은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요원 T를 만났다.
그녀는 어깨 아래에서 찰랑이는 갈색 머리칼을 가진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외모와 별개로 눈빛이 섬뜩해서 가까이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T, 오랜만입니다.”
“밖에서 직원들이 짜증 내더니 너였냐?”
막상 T를 직접 만나니 요원에 대한 본능에 가까운 두려움이 엄습해서 준비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섭섭함을 표했고, T는 간단히 답했다.
“하하! 갑자기 왜 왔나 했더니 회장님이 불만이 좀 쌓이셨네?”
“…”
“요번 일은 우리도 워낙 급하게 처리하다 보니 잡음이 좀 많아. 그러니까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앞으로는 -”
“그보다 이리 와봐.”
T는 내 말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 갑자기 내게 훅 다가오더니 섬뜩한 눈으로 날 보았다.
곧, 그녀의 눈이 360도로 회전하며 마치 유리알처럼 빛나기 시작했고, 이해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주변을 채웠다.
“흐으으…!”
“너는 아무리 봐도 좀 아깝다.”
이게 무슨 말이었을까?
그때 나눈 대화는 당시는 물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크면 될 것 같은데.”
“무, 무슨 말씀입니까?”
“석환아.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에 대해 꽤 많이 알아.”
“예?”
“예컨대, 넌 4년 후에 부정맥 증상이 나타나니까 미리 치료를 받아야 해. 본래라면 2년 후에 알려줄 생각이었지.”
미래의 내게 일어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T의 말.
“알고 있니? 혼돈은 전염성이 있어.”
“…”
“평범한 인간도 혼돈 재해를 겪다 보면 영혼의 격이 올라가. 혼돈의 힘이 영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지. 물론, 보통은 한 번만 겪어도 꽥하고 죽으니 성장하고 말고 할 게 없지만!”
“…”
“운 좋게 살아남고, 또 살아남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아주 낮은 확률로 기적이 일어나곤 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넌 거의 다 왔어. 딱 한 걸음만 넘으면 우리 쪽이야.”
“예?”
“따라와. 어쩌면, 오늘 네게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당시의 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 이런 생각이 든다.
나를 데리고 움직이던 T 역시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리라.
어쨌든, T는 날 데리고 강원도 부지에 건설된 회색 콘크리트 시설 내부로 들어갔다.
일대의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며 날 제지하려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T를 막을 수 없었다.
그날에야 T가 얼마나 높은 사람인지 알았다.
*
‘가인 군, 이게 대체 뭡니까? 이석환 회장은 요원이 되기 직전 상태의 영혼이었다?’
‘요원이 100이라면, 회장은 80이나 90쯤 되었나 봅니다.’
‘그것까진 이해했는데, T라는 정신 나간 요원이 뭔 짓을 한 거죠?’
‘아무래도 회장을 혼돈 재해에 노출해서 영혼을 강제로 키울 생각이었나 봐요. 그런 식으로 요원으로 만들려고 한 것 같은데….’
‘저래도 되는 겁니까?’
‘… 제 생각엔, 관리국 기준으로도 황당한 돌발행동일 겁니다.’
*
시설 중앙엔 거대한 유리관이 있었고, 그 속에서 불투명한 형체가 기이하기 일렁였다.
또, 거대한 유리관 주변에 최소 수백 개에 달하는 침상이 있었다.
그 침상 모두에 사람이 묶여있었기에 나는 상당한 두려움을 느꼈다.
“으읏!”
“가만히 있어.”
“저, 저 사람들은 대체 -”
“진정해. 전부 중범죄자, 사형수들이야. 선량한 사람은 아니야.”
이 말은 내게 두 가지 의미로 들렸다.
첫째, 말 그대로 침상에 묶인 사람들은 죄인들이다.
둘째, 죄인을 ‘실험 대상’으로 쓰는 걸 보면 굉장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두 번째 의미 덕에 더욱 두려움을 느끼던 시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로도 수없이 당시의 일을 되새겼으나 여전히 당시 벌어진 일의 전말은 알 수 없다.
비유하자면, 일반인이 핵물리학 연구소를 견학 도중 사고가 나는 걸 본 것과 유사하리라.
굳이 묘사하자면, 갑자기 유리관이 깨지며 불투명한 형체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광기에 휩싸인 채 서로를 해치기 시작했다.
침상에 누워있던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괴력으로 구속을 뜯어낸 채 연구원에게 달려들었다.
막아내려던 연구원은 곧, 자신들도 이성을 잃은 채 서로를 물어뜯고 찌르기 시작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이성을 유지했던 건 T였다.
그녀는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한 무기를 꺼내 최소 세자릿수의 인간을 죽였지만, 결국은 이성을 놓고 말았다.
당시, 내가 이해할 수 없던 건 딱 하나였다.
왜 나만 멀쩡하지?
공포에 질린 채 바닥에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일대를 지배하는 신 혹은 악마가 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살려달라고, 내겐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으니, 지금 죽을 수 없다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때, 부드러운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덜덜 떨며 고개를 들자 익숙하기 그지없는 T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보는 순간 알았다.
‘저것’은 T가 아니다.
T의 몸을 강탈한 정체불명의 괴물이요, 악마다.
심혼을 억누르는 압박감에 숨조차 쉬지 못하는 내게 악마가 속삭였다.
“너는 미물이로다. 허나, 네게 운명을 보았노라.”
“…”
“작고 작은 너로부터 태어난 누군가가 위대한 운명을 얻겠구나.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네 어린아이 중 하나를 점지했노라.”
“…”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 나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끼며 질문했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왕이니라. 은하 너머 신실한 자들의 왕이요, 이 땅에 태어날 이들의 왕이다. 또한 네 왕이니라.”
*
‘… 아까 T의 황당한 돌발행동 말입니다.’
‘저 괴물이 진즉부터 조종한 것 같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