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68)
EP.669 669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3)
669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3)
– 이은솔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 나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왕이니라. 은하 너머 신실한 자들의 왕이요, 이 땅에 태어날 이들의 왕이다. 또한 네 왕이니라.”
불가해한 존재가 아버지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겠다’라고 선언한 시점!
— 사아아!
회색빛 안개가 시야를 뒤덮었다.
곧, 쩍! 하는 느낌과 함께 ‘이은솔’이 ‘이석환’과 강제로 분리되었다.
…
영화에 아주 깊이 몰입한 끝에 내가 영화 속 등장인물이라는 착각에 빠졌다고 치자.
그 상황에서 갑자기 정전으로 스크린이 꺼지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게 지금 내 상황이다.
“으읏!”
“어머! 언니, 괜찮아요?”
“…”
옆 사람 – 엘레나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 내 팔을 잡으며 부축하는 시점, 나는 잠깐이나마 내가 누구인지 고민했다.
나는 이은솔, 부귀의 축복의 주인이자 호텔 참가자다.
이 세상 전체는 호텔 파이오니어의 301호 내부다.
지금은 301호의 두 번째 시도이며, 첫 번째 시도는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
이번 시도에서의 내 목표는 아버지로부터 이스의 위대한 종족 및 관리국과 관련한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아침 일찍 일어나 엘레나와 연락했고, 둘이 함께 회장실에 들어왔었지.
여기까진 쉬웠어.
대양그룹 회장 이석환은 대기업 총수답게 아무나 볼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난 바로 그 사람의 딸이니까.
다소 억지스럽게, 엘레나를 데리고 찾아가도 경호원이든 비서든 날 막지 않았다.
…
한참 대화했음에도 아버지가 쉽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급기야는 엘레나가 약간의 무력행사까지 했음에도 아버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까지 읽은 기억을 생각해 보자.
아버지는 평범한 인간치고는 정말이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었다.
담력이든 판단력이든 보통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따라서 다소 강압적인 수단을 쓰자는 판단이 섰다.
동료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는데, 상대가 순순히 대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물러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호텔 도구 상당수는 쓰면 쓸수록 더 강한 힘을 쓸 수 있다.
도구 자체가 강해진다?
혹은 사용자의 숙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정확한 이유 혹은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사실은 이와 같은 이치에 ‘호접몽’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
브로치를 열어 악몽 나비를 불러내었을 때 – 강렬한 직감이 벼락처럼 내 영혼을 강타했다.
나는 내가 나비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모양새가 진실로 기뻤더라!
그래서 자기가 은솔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깨고 보니, 곧 놀랍게도 은솔이었다.
내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은솔이 된 것인가?
나와 나비 사이에는 틀림없이 구분이 있는 것인데, 그 구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
나 혹은 내 정신이 한 마리의 나비로 변해 아버지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나는 이은솔이며 악몽 나비였고, 또한 이석환이기도 했다.
모호하고 흐릿한 정신.
꿈과 현실이 뒤섞인 불안정한 인지.
그야말로 호접몽(胡蝶夢)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
언제부터 이런 힘을 쓸 수 있었을까?
계기는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그 어떤 비현실보다도 비현실 같았던 현실, 달의 영역 – 죄인의 평야.
그곳에서 난 탐욕의 손까지 쓴 채 목숨을 걸고 호접몽을 썼었지.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아.
가인이처럼 무슨 천지를 오시하는 지고한 깨달음까진 아니겠지만, 최소한 내 도구의 기능적 한계를 조금 넓혔다고나 할까?
덕분에 대화로는 알 수 없던 많은 정보를 얻어내었지만, 아직은 불충분하다.
“언니, 괜찮아요?”
“… 괜찮아.”
일시적으로 아버지의 정신과 동화했기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전부 다 알아낸 게 아니야.
분명 더 많은 정보가 남아있다!
마지막에 나타난 회색 안개는 대체 뭐야?
그게 나와 아버지 사이의 동화를 깨트리고, 날 아버지의 꿈 밖으로 쫓아냈어.
“한 번 더 해보면 -”
고민하던 시점, 나보다 한 발짝 늦게 깨어난 아버지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허억! 바, 방금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
“브로치, 그 브로치가 특별한 물건인 모양이지? 내 기억을 강제로 열어봤구나!”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아버지가 느끼기엔 딸이 갑자기 사악한 마법의 힘으로 자신을 농락한 기분 아닐까?
또, 아버지가 경호원을 부르는 등 귀찮은 일을 만들 것 같았다.
그래서 호접몽으로 아버지를 다시 재울까 고민했다.
“은솔아, 진정해라!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아버지가 내게 배신감을 느끼며 화를 내거나, 두려움을 느끼며 경호원을 부를 줄 알았지.
둘 다 아니었어.
간곡한 목소리로 날 설득하려는 모습은 예상 밖이었고, 덕분에 살짝 당황했다.
“… 듣고 있어요.”
서로가 마음을 진정하기 위한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마지막에 나타난 회색빛 안개는 무엇이죠? 그것 때문에 제가 아버지로부터 튕겨 나갔는데.”
“회색 안개? 아하! 오래전에 받은 보안 조치가 헛된 건 아니었구나!”
“보안 조치?”
“12, 13년쯤 전에 은퇴한 관리국 요원을 만난 적이 있다.”
“아버지, 관리국 요원에게 -”
“- 은퇴란 없지. 나도 안다. 하지만, 관리국의 호출을 무시하고 유유자적 사는 사람들은 종종 있단다.”
생각해보니 묵성 할아버님도 비슷한 상황이라 납득했다.
“이해했습니다.”
“그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내 기억의 일부를 지우거나 봉인해달라고 했지.”
“…”
“한 번의 시술에 무려 20억을 받아 갔다. 당시엔 이 무슨 폭리냐고 투덜거렸지만, 지금 보니 20억 값을 했구나.”
호접몽을 통한 동화를 깨트린 안개의 정체는 전직 관리국 요원이 시술한 보안 조치였구나.
기억의 삭제, 왜곡, 격리는 관리국의 전문 분야 중 하나니 가능한 일이야.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보안 조치의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호접몽은 견뎌냈을지 몰라도 안식의 피리는 견뎌낼 수 없으리라.
피리의 힘을 빌리면, 관리국 특제 보안 조치든 뭐든 무조건 깰 수 있어.
깬 다음에 다시 호접몽으로 파고들면 그만이지!
내심 그렇게 결론 내렸을 때, 아버지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눈빛을 보니 뭔가 수가 더 있는 모양이구나! 보안 조치를 파괴하고 다음 기억을 보려는 모양이지?”
순간 아버지가 독심술이라도 익힌 줄 알았다.
“… 제 마음이라도 읽으셨나요?”
“은솔아, 다음 기억을 보아선 안 된다. 그건 아주, 아주 위험한 기억이야…! 나는, 나는 안다. 그 기억, 그 정보가 외부에 새어나가면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
“무서운 일? 그게 무슨 말이죠?”
“모르겠구나!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와 내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김은 확실하다.”
반쯤 공포에 질린 아버지의 태도가 날 당황케 했다.
그때, 새하얀 손이 내 어깨를 짚었다.
옆을 확인하니 엘레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금 아버지의 말은 진실인 모양이다.
“…”
상황을 정리하자.
호접몽을 써서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아버지는 소위 불완전한 회귀자다.
이전 루프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긴 했지만, 파편화된 정보를 과거의 기억이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지몽이라 착각하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관리국과 10년 이상 교류했고, 당시 대양 물산은 관리국 협력업체였다.
이후, 운명의 인도처럼 강원도에 만들어진 관리국 연구 시설로 향했고….
대학살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이스의 왕’을 조우했다.
다음은? 왕과 만난 후 무슨 일을 한 거야?
필시 왕을 새로운 상급자로 섬기며 무언가 한 것 같은데, 그 부분의 기억만 편집되어 있다.
의문이 남았기에 피리까지 써서 억지로 알아낼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산전수전 다 겪은 분 아니랄까 봐 순식간에 내 의도를 알아채며 말했다.
본인이 그 기억을 봉인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이 기억을 내가 억지로 열어보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거라고.
이것만 해도 당황스러운데, 엘레나가 넌지시 전한 경고가 날 더욱 혼란케 한다.
아버지의 말은 진실이다.
정확히는, 아버지 본인은 분명 위와 같이 믿고 있다.
어떻게 하지? 이쯤에서 물러서?
아니, 물러서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호텔에서 하루 이틀 구른 것 아니잖아?
딱 봐도 다음 정보가 진짜 핵심인데!
“…”
결정 내렸어.
말없이 몸을 일으킨 후, 한 손에는 호접몽, 다른 손에는 피리를 붙잡았다.
내 태도를 본 아버지는 두려움과 걱정이 반반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리치며 반항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마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는 듯한 체념한 태도를 보일 뿐.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외부에서 내 행동의 의미와 목적을 정확히 이해하고 ‘신호’를 줄 수 있도록!
그렇게 약 10초에 걸쳐 느릿하게 움직였을 때!
— 드드드드…! 쨍그랑!
알 수 없는 진동이 일대를 덮치며 갑자기 여기저기 놓여있던 상패와 책자가 여럿 떨어졌다.
“앗! 은솔 언니, 이건 -”
“알아. 하지 말라는 모양이네.”
밖에서 합의한 사항, 폴터가이스트의 의미는 ‘위험해!’야.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피리를 돌려보내고 브로치는 도로 머리에 붙였다.
이 광경을 본 아버지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방금은 무엇이지? 무슨, 위기를 알리는 초능력인가?”
“비슷해요.”
밖에서 관측하던 동료가 위기다 싶으면 경고하는 거니까 대충 비슷해.
마침내 찾아온 소강상태.
세 사람 다 살짝 긴장의 끈을 놓은 채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고, 아버지는 탁자에 놓여있던 다 식은 커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
“…”
다소 뜬금없이 툭 튀어나온 이야기.
“너였구나.”
“…”
“너였어…. 너였어….”
“…”
“일찍이 그 괴물에게 계시받은 이래 항상 궁금했다. 정호, 진욱이, 너, 희윤이. 두 아들과 두 딸 중 누가 ‘위대한 운명’을 얻는다는 것인지….”
“그래서 형제들을 싸우게 하셨나요?”
“싸우게 해? 그건 정말 오해란다. 세상 그 어떤 부모가 일부러 자식들 간의 불화를 만들까!”
“…”
“다만, 그렇지. 너희 중 ‘특별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건 사실이다.”
“…”
“어쩌면, 그런 내 호기심이 너희를 몰아세웠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뭐?”
“제가 어떻게 이런 힘을 얻었는지, 이런 신비한 동료를 얻었는지.”
“…”
“당신 딸이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아버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궁금하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너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그렇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교훈이 하나 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것이지.”
“…”
“은솔아, 특별한 세상의 이야기를 너무 궁금해하면 위험하단다. 사악함, 탐욕, 선량함 – 이 셋보다 더 위험한 게 호기심이다.”
다음 말은 다소 공격적이었다.
어쩌면, 오랜 세월 응어리진 불만의 표시일지도 모른다.
“호기심이 위험한 건 아버님 이야기죠. 제가 아니라.”
순순히 인정하는 답.
“그래, 그 말도 맞다. 나는 여우니까 고개를 숙인 채 살아야 맞고, 너는 독수리니까 하늘을 보며 살아야지.”
“…”
아버지에 대해 품었던 많은 의문이 풀려감을 느낀다.
미래를 아는 사람처럼 기막힌 선택으로 회사를 이끌던 모습도, 자식들의 경쟁을 유도하던 모습도.
의문이 사라진 빈자리에 남은 것은 닳아버린 노인이었다.
작고 작은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아득한 존재의 압박 속에서 쇠약해진 정신을 보았다.
한편, 아버지에게 오늘의 일이 어떻게 느껴질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갑자기 신비한 동료를 데려오고, 터무니없는 마법 도구를 썼는데도 놀라지 않는 모습.
강압적으로 기억을 읽어냈음에도 크게 불만을 표하지 않으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는 태도.
아버지에게 오늘의 일은 언젠가 다가올 운명이었다.
위대한 이스의 왕이 ‘작고 작은 너로부터 태어난 누군가가 위대한 운명을 얻겠구나.’라고 예지한 순간, 이미 결정된 미래였다.
회장실을 나서기 직전, 나도 모르게 말했다.
“죄송해요.”
“… 내가 할 말이구나. 항상 미안했다.”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자.
더 많이 알아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이미 알아낸 것도 상당해.
“언니.”
“음?”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요, 이스의 왕이 회장님에게 한 말 말이에요.”
“응.”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네 어린아이 중 하나를 점지했노라.”
“…”
“이 말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해 보자.”
*
‘그러니까, 은솔 양이 회장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는 걸 막으셨단 말이지요?’
‘네.’
‘더 파면 위험했습니까? 통찰로 뭔가 봤나 보군요.’
‘… 누나와 엘레나는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어떤 부분 말씀입니까?’
‘이스의 왕이 회장에게 내린 계시 말입니다. 적어둔 것 보셨죠?’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 나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렇게 적어두셨군요.’
‘회장은 이미 두 번의 기회를 소진했습니다.’
‘어이쿠!’
‘억지로 기억을 얻어내면, 그게 세 번째 위반입니다. 초자연적인 응징이 시작되겠죠. 정보 유출 대상인 누나와 엘레나도 위험했을 겁니다.’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보는 포기?’
‘다른 방법을 찾아봅시다.’
‘그러면, 다시 교대하죠. 가인 군 코에서 피가 나고 있으니 -’
‘내가! 내가 할게! 자꾸 두 사람만 돌아가면서 하잖아!’
‘…’
‘…’
‘내가 할래! 둘 다 지쳤잖아? 날 믿어!’
‘믿으라는 말이 이렇게 불안한 건 처음인데.’
‘그래, 미로가 하자.’
‘가인 군?’
‘이제 송이랑 아리 쪽을 볼 차례인데, 엄마가 딸을 지키는 게 세상의 순리겠지.’
‘아리 양의 생각은 다를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아리는 여기 없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