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69)
EP.670 670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4)
670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4)
– 유송이
이른 아침, 씻고 외출을 준비하자 엄마가 의아해했다.
“이렇게 일찍 나가? 아직 7시도 되지 않았는데…. 친구 만나니?”
1회차 때는 이런 상황에서 엄마에게 살짝 톡 쏘듯이 말했던 것 같아.
나는 별생각 없었지만, 아리는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네, 조금 멀리서 만나기로 했어요.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요.”
“페로도 데려가?”
“앵무새 카페에 가기로 했거든요!”
이런 느낌으로 대충 말을 지어냈다.
“…”
신발을 신고 있으니, 간밤의 일이 떠올랐다.
정체불명의 안개가 벽을 뚫고 집을 휩쓸던 섬찟한 광경!
기괴한 일이었지만, 여전히 그 현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어.
부모님에 대한 의심 역시 마찬가지다.
아리는 내 부모님을 살펴보겠다고 했지만, 어젯밤엔 딱히 뭔가를 알아내지 못했다.
*
집 밖으로 나와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아리가 나타났다.
아리는 그새 야구 모자를 구해 푹 눌러쓴 채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는데, 본인의 화려한 외모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어 보였다.
“늦었네.”
“야, 아직 6시 40분이야. 씻자마자 거의 바로 나왔 -”
“씻었어? 샤워?”
“응.”
“위험한 일을 하네.”
“그게 무슨 -”
아리의 다음 말은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밖에서 가인이나 상현이가 보고 있을 텐데.”
“뭐, 뭣?”
“하얗고 부드러운 송이 몸이 -”
“으악!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부, 분명 -”
“분명 뭐? 네가 샤워한다고 관측을 멈췄을 것 같아? 가인이 성격에?”
“… 오, 오빠 성격이 어때서?”
“송이가 샤워하는 장면을 눈 부릅뜨고 관측할 성격.”
그 말을 듣는 순간, 206호를 진행하며 들었던 당혹스러운 기억이 스쳤다.
*
‘참, 송이의 오른쪽 어깨에 하트모양 점 하나 있는 것 아십 -’
…
‘어깨에 하, 하, 하트 모양 점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려는 시점, 아리가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
“이번 시도, 너와 내가 해야 할 일은 관리국과의 접촉이야.”
“… 알아.”
“1회차의 실패로 인해 관리국 말단에 타락이 번지고 있음을 알아냈어. 이스의 일족이 꽤 많은 직원의 몸을 빼앗은 상태겠지.”
“그럴 거야.”
“하지만, 전부가 먹혔을 리는 없어. 그랬다면 세상이 이미 망했겠지.”
소위 침묵하는 자를 비롯한 수뇌부는 멀쩡하리라는 게 아리의 추측이었고, 동료들도 대체로 동의했다.
요컨대, 타락이 번진 말단을 피해 진실을 아는 고위층과 바로 접촉해야 한다.
“할아버지랑 진철 오빠는?”
“별도의 일이 있어.”
“부모님 한번 확인하려고?”
아리는 살짝 움찔하더니, 순순히 털어놓았다.
“개 한 마리 대충 구해서 네 아빠 병원을 찾아갈 거야. 우린 우리 일에 집중하자.”
“… 알았어.”
*
강남역의 오전 7시는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인해 정신없이 붐비는 시간이다.
그 시각, 나와 아리는 커피숍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목표는 서울 내 관리국 비밀 기지를 찾아내는 것.
“서울에 있는 건 맞아?”
“무조건 있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야.”
“이렇게 수작업으로 찾아야 해? 은솔 언니가 말해준 -”
“외부인이 아는 장소는 진짜가 아니야. 그냥 위장용이지.”
대양그룹이 파악한 장소 또한 진짜가 아니라는 이야기.
관리국쯤 되면 민간인은 알 수 없는 비밀 기지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런 비밀 기지를 G사 지도 어플만 보면서 어떻게 찾아내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시간 낭비!”
“그냥 해. 스마트폰 딸깍딸깍이 뭐가 힘들다고 그래? 내가 몇 가지 조건도 알려줬잖아?”
“…”
“비밀 기지는 대부분 외부에 보이는 모습보다 실제가 더 넓어. 대체로 지하에 숨은 공간이 있지. 그래서 -”
“주변에 다른 건물이 없다.”
“또, 부지 선정과 운영에 있어서 -”
“그만, 그만. 알겠어. 근데, 하나만 질문할게.”
“말해봐.”
“만나서 어쩔 거야?”
“…”
실제 회의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말단을 건너뛰고 관리국 고위층을 만나겠다는 계획 자체는 그럴듯한데, 만나서 어떻게 하냐는 것.
“… 가인 오빠는 대놓고 협조 요청하자고 했었지.”
회의에서 가인 오빠의 의견은 모두에게 아주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좀 심하게 말하면, 가인 오빠가 ‘A로 하자’고 하면 90% A로 가는 느낌.
이번에는 10%의 예외였다.
아리와 할아버지는 물론, 진철 오빠까지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가인 오빠의 말에도 근거는 있었다.
“관리국은 호텔에 대해 불완전하게나마 알아.”
“… 그렇지.”
“또, 호텔에서 탈출한 참가자들 다수가 관리국 수뇌부에 포진해 있지.”
“맞아.”
“대놓고 참가자라고 밝힌 후, 우리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러 왔다고 하는 거야. 이상해?”
“…”
잠시 침묵한 후, 아리는 조심스레 말했다.
“가인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해. 대놓고 참가자라 밝혀서 협조를 구하는 방식이 통하면, 301호뿐만이 아니라 다른 방에서도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겠지.”
“맞아! 오빠도 그 이야기 했어.”
통한다면, 다른 저주의 방에서도 쓸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생각해 봐. 내가 1~2층을 진행하며 그런 식으로 한 적 있었어?”
“없는 것 같긴 하네.”
“지금, 이 이야기를 관리국 입장에서 생각해봐.”
우리의 관점이 아닌 관리국의 관점.
“관리국은 일반인과 달리 호텔에 대해 알아. 즉, 참가자가 대놓고 신분을 드러내는 순간, 다음과 같은 두려움에 시달리지.”
“…”
“지금 이 현실 전체가 거짓이란 말인가? 호텔이 만들어 낸 가짜 세계에 불과하며, 당장 내일 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고?”
“… 가인 오빠 말은 그게 아니었잖아.”
아리의 말은 가인 오빠의 의견과 살짝 다르다.
가인 오빠의 의견은 ‘우리가 호텔 탈출자다’라고 밝히자는 이야기였다.
즉, 이곳 역시 현실이라고 하자는 이야기고, 저주의 방임을 밝히자는 소리가 아니다.
또, 나는 내심 이렇게 생각한다.
3층부터는 가짜 세상이 아닌 것 같다고.
이렇게 보면 애초에 거짓말이 아니다.
아리가 담담한 투로 반박했다.
“나도 무슨 말인지 알아. 내 말은, 관리국으로선 그 둘을 쉽게 구분할 수 없다는 거야.”
현실인데 호텔 탈출자가 나온 것인지, 혹은 세상 자체가 거짓 환상인지.
관리국으로선 이 둘을 쉽게 구분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정체 모를 참가자의 등장 자체가 관리국을 두렵게 만든다.
“관리국 수뇌부에 참가자가 다수인 걸 평화로운 협상 결론이라 생각하면 안 돼. 많은 경우, 영화 여러 편 나올 만큼 온갖 갈등과 충돌이 있고 난 뒤 살아남은 참가자가 편입되는 과정이었지.”
“…”
“또, 이건 1, 2층을 겪으며 했던 생각인데….”
“뭔데?”
“저주의 방에는 우릴 제외한 다른 참가자가 없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축복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지. 이 경우, 관리국은 우리의 존재를 아는 순간 ‘이곳이 저주의 방이다’라는 확신을 얻을지도 몰라.”
지금 이런 내용들을 요약하면 이거다.
저주의 방 내의 관리국들은 현실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평소엔 이 문제를 이렇게 깊이 고민해 본 적 없었다.
어쨌든,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아리의 의견이 이해 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참가자임을 밝히는 순간, 관리국은 이 세상이 거짓임을 알아챌 확률이 있다.
그 경우 대체 무슨 일이 생길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렵네….”
“회의 때 대화하면서 느낀 건데, 가인이는 모든 사람을 본인처럼 생각한 것 같아.”
“뭐?”
그다음 아리의 말은 제법 의미심장했다.
“만약 관리국이 가인처럼 생각한다면 어땠을까? 글쎄, 세상이 거짓이든 말든 개의치 않았을지도 모르지. 진짜 세계니 가짜 세계니 하는 건 의미가 없나니~ 했을지도.”
“…”
“하지만, 인간은 가인이 같을 수 없어.”
50분가량이 지난 후, 나랑 아리는 약 3개의 후보지를 찾아냈다.
슬슬 직접 가서 확인하자는 말이 나올 무렵, 핸드폰이 윙 하고 울리며 보안 메시지가 날아왔다.
“은솔 언니?”
언니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엔 이은솔과 엘레나, 두 사람이 대양그룹 회장으로부터 알아낸 신비로운 정보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아리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중요한 정보가 더 있던 모양이네.”
“보지 못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뭘까?
“대양그룹 회장이 이스의 종족을 섬기며 무슨 일을 했냐 같은데….”
죽은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일반인을 정신 지배해서 학살하거나 요원의 몸을 빼앗는 정도의 일은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가인 오빠만 되어도 그 정도는 눈 감고도 가능한 일이야.
하물며 이스의 왕이라는 거창한 분이 그 정도를 못 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다음 문장은 정말 신기했다.
“작고 작은 너로부터 태어난 누군가가 위대한 운명을 얻겠구나.”
“…”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네 어린아이 중 하나를 점지했노라.”
“흠….”
“설마 이스의 왕은 은솔 언니가 호텔 참가자가 될 줄 알았던 건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해? 죄수니까?
신적인 존재들에게 미래 예지는 불가능한 일까지는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호텔에도 예지라는 축복이 있고, 통찰도 유사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02호가 종료될 때 해신은 은솔 언니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했었지.
그 외에도 ‘성운의 용’이 보였던 모습이나 ‘주’의 끝을 알 수 없는 설계를 생각해 보자.
미래 혹은 운명을 내다볼 수 있어야 가능한 안배가 꽤 있었다.
하지만!
“뭔가, 뭔가 이상해. 그니까….”
앞의 사례와 비교해도 이상한 건 알겠는데, 정확히 어디가 이상한지 혼란스러운 느낌.
그런 내 혼란을 아리가 명쾌하게 설명했다.
“이상하지. 이건 마치 이스의 왕이 ‘부처’의 행보를 읽어낸 느낌이니까.”
“… 맞아.”
“평범한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건 죄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닐 거야. 이걸 봐.”
갑자기 아리가 손을 뻗어 테이블 위를 기던 개미 한 마리를 지목했다.
“저게 어디로 갈지는 뻔히 보이지?”
“구석에 껴서 직선으로 이동 중이네.”
“사람도 개미의 행동 정도는 쉽게 읽어. 죄수에게 사람의 운명을 읽는다는 건 그런 거지.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읽는 건 어려워.”
“그렇지.”
“하물며 사람이 신의 행보를 읽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그래서 이상한 거야. 이스의 왕은 그냥 미래를 본 게 아니라, 부처가 은솔이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알았어.”
“…”
예지라는 능력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아니다.
축복으로도 존재하고, 죄수쯤 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니까.
하지만, 평범한 사람의 운명을 읽는 것과 ‘부처의 선택’을 읽는 건 전혀 다른 문제.
후자는 아무리 죄수라 해도 무리가 아닐까? 하는 게 아리의 지적.
그래서, 아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이스의 왕이 속임수를 썼다고 봐.”
“속임수?”
“주가의 흐름을 예언하는 것보다, 세력의 힘을 빌려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게 훨씬 쉽지.”
주가 예측은 위대한 과학자에게도 어렵지만, 세력을 써서 주식 시장에 장난을 치는 범죄는 전 세계에서 매일 일어난다.
“예언은 어렵지만, 자기충족적 예언은 상대적으로 쉬워.”
“그게 무슨 -”
“관리국이 부처의 선택을 읽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존재를 호텔에 밀어 넣는 건 여러 번 성공했지. 미로와 내가 그 증거야. 죄수에게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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