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
66화 – 101호, 저주의 방 – ‘기묘한 가족’ Re (4)
*
세 번째 시도
*
방송국 1층 한편에서 묵성 어르신을 만나자마자 의문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인가? 필터도 없고, 팔찌 같은 물건도 없이 어떻게?
어르신은 ‘훨씬 쉽고, 모두가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
설마?
“어르신. 혹시 그 방법이라는 게 가족의 신체 일부만-”
“어허! 자네 대체 무슨 잔혹한 생각을 하는 건가? 내가 분명 ‘모두가 따라 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하지 않았어?
은솔 양이나 아리가 대체 무슨 수로 경호원이나 ‘수상하게 강한 엄마’의 신체 일부만 가져오겠나. 애초에, 죽여서 신체 일부만 떼어도 계속 ‘가족 판정’이 남아있을지도 문제고.”
“그렇게 상세하게 설명하시는 걸 보니 실제로 그 생각도 하신 모양이군요.”
“…”
“그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는 순간이동으로 왔다네.”
…
순간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무슨 소리지? 갑자기 순간이동? 아리는 몰라도 어르신은 딱히 초능력이 없을 텐데?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이군. 나는 오히려 이 생각을 나만 했다는 사실이 더 신기하네. 아마도, 내가 관리국에서 일하다 와서 이런 초자연적인 일에 익숙한 탓이겠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난 101호에 들어온 게 처음이야. 하지만, 과거에 들어갔던 자네들이 대략 설명하지 않았나? 예컨대, 자네는 집에서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면서 수목원, 음식점, 리조트 등으로 장소를 계속 옮겼다고 했지.
그때 자네는 어떻게 이동했나? 기차라도 탔나? 차라도 탔나?”
!
깨달음이 왔다.
첫 번째 시도 때 101호에서 나는 어떻게 이동했는가?
자동차니 기차니 하는 교통수단은 전혀 타지 않았다. 그냥 가족들과 함께 어딘가로 가자! 하니까 즉시 장소가 바뀌고, 시간이 바뀌었다!
“101호는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세상의 상식이 마구잡이로 뒤틀렸네. 또, 우리는 이미 호텔이 방 내부의 시공간을 조물주처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101호에선 교통수단 없이도 그냥 순간이동으로 위치를 바꿀 수 있어. 물론 택시나 지하철 같은 교통수단이 무대에 남아있는 걸 보면 순간이동을 위한 조건이 뭔가 있긴 하겠지.
아마 우리 같은 ‘참가자’가 저주에 감염된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원리를 너무 깊이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 중요한 건 할 수 있다는 거고, 자네들도 이미 다 해본 일이라는 거지.”
“…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어르신만 도착한 걸 보니, 다른 사람들도 못 한 것 같네요. 순간이동. 가능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실제로 처음 101호에 왔을 때는 저도 했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런 황당한 수단이어야 아리도 탈출할 수 있겠군요. 아리는 물리적인 이동으로는 절대 탈출 불가능한 상태니까요.
그런데 순간이동을 어떻게 하는 거죠? 살면서 순간이동을 해본 적이 없어서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나도 몰라.”
“네? 순간이동으로 오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냥 가짜 가족들에게 거리를 유지한 채 곧 방송국에 간다고 선언했네. 그다음엔 그냥 가까이 가서 저주에 휩쓸렸지. 그렇게 휩쓸린 상태로 있다 보니 어느샌가 방송국에 와있더군.”
“저주에 감염된 상태에선 순간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응용하신 것까지는 알겠습니다. 그렇게 도착했다 해도, 저주에 감염된 상태로 오신 게 아닙니까? 어떻게 깨어나신 겁니까?”
어르신은 가볍게 손을 휘저어 주변을 가리켰다.
“여기 주변에 다른 사람이 보이는가?”
“저쪽에 경비들은 보이는군요. 우리 근처엔 아무도 없고.”
“난 원래 ABS에 여러 번 와봤거든. 1층 외곽에 있는 이쪽에는 특별히 행사가 있는 날이 아니면 사람들이 오지 않네. 그래서, 저주에 감염되기 전에 미리 ‘이 장소로 가겠다’라고 스스로 계획을 정했어.
그렇게 하자 저주에 감염된 상태로도 여기 와서 앉아있었지. 그러다가 저절로 깨어났고.”
…
이해했다.
묵성 할아버지가 방송국에 온 방법
1.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미리 방송국에 가겠다는 일정을 만든다.
2. 저주에 일부러 감염된다.
3. 미리 세운 일정에 따라 방송국의 사람이 없는 장소로 순간 이동해서 도착한다.
4.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저주가 풀려서 깨어난다.
이 방의 특징들을 짜 맞춰서 만들어낸 기이하면서도 창의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본인 말마따나, 온갖 초자연적인 현상에 수도 없이 대처해온 관리국 요원이나 되니까 떠올릴만한 방법이 아닐까.
확실히….
이런 방식대로라면 물리적으로 호텔을 나올 수 없는 아리나, 장기간 가족들과 접촉하면서 이성을 유지할 수 없는 다른 사람들도 방송국에 올 수 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입니다만, 우리 주변에 더 이상 ‘가족’도 없고, 방송국 사람들도 꽤 멀리 있는 상태인데 왜 ‘탈출’이 뜨지 않는 걸까요.”
“그게 바로 우리가 올바로 찾아왔다는 증거지.”
!
저주의 감염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에 사람이 없는 방송국 1층 구석.
이런 장소에서라면 ‘탈출’ 알림이 뜨며 종료되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이 없는 장소인데도 ‘탈출’이 뜨지 않았다는 것.
상태창을 확인했다.
[현재 위치 : 계층 1, 101호(저주의 방 – 기묘한 가족)] [저주의 방 – ㅁㅁ ㅁㅁ ㅁㅁㅁ] [저주의 방 – 상식개변 미디어]…
기묘한 가족. 아니, ‘상식개변 미디어’.
우리는 올바른 장소에 도착했다. 다음 단계가 시작됐다.
탈출이 뜨지 않은 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
가족도 따지고 보면 2차 감염자에 불과한 존재들 아니던가?
1차 감염자. ‘저주의 근원’에 더 가까이 다가섰으니 당연히 ‘탈출’ 따위가 나올 리가 없다.
“이제 대충 상황을 이해한 것 같군. 슬슬 탐색을 시작하는 게 좋겠네.
나는 아까부터 와서 한 명이라도 더 오나 기다리면서 계획을 세웠으니, 일단 내 계획을 따르게. 이제부터 우리는 방송국을 사찰하러 온 관리국 요원이야. 내 앞에 서서 누군가 오는 걸 막아주게나. 그리고 최대한 구석구석 뒤져보기로 하지. 다 이해했나?”
“이해했습니다.”
“출발하지.”
자연스럽게 내가 앞장섰다.
어르신은 나와 달리 필터 같은 게 없다. 지금까지야 근처에 사람이 없는 1층 구석진 곳에서 떠나지 않았으니 버틸 수 있었다. 이제부터 방송국 내부로 들어서면 ‘저주에 감염된 사람들’과 쉼 없이 마주칠 수밖에 없다.
필터가 있는 내가 그들이 함부로 오지 못하게 차단하는 탱커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어르신이 뭔가를 툭 하고 내밀었다.
“이건?”
“요원 배지야.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경비들은 알아볼 만한 물건이지.”
기이한 나무가 새겨진 배지. 아래쪽엔 요원이라고 작게 적혀있다.
살다 보니 관리국 요원 행세도 하는구나. 새삼 신기한 느낌이 든다.
방송국 탐색을 시작했다.
*
잠깐 속성으로 배운 ‘관리국 요원 행세’는 아주 간단했다.
1단계 : 배지만 툭 내밀고 신비주의 연출하기.
“학생! 여긴 허가받은 사람이 아니면-”
—툭!
“이게 무슨 – 아니? 관리국 분이시군요? 용무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
“죄송합니다만, 최소한 사유는 설명해주셔야 합니다.”
“…”
“혹시 비밀 임무라면 대략 설명해주셔도 됩니다.”
2단계 :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우기기.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 신분입니까?”
“아니,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저 최소한의 사유는 있어야 저희도-”
“자꾸 이렇게 방해하시면,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질 수밖에 없습니다만.”
“방해가 아닙니다. 저희도 누굴 통과시킬 때는 사유서에 뭘 적긴 해야 합니다.”
3단계 : 대놓고 협박하기
“벌써 내 시간을 1분이 넘게 낭비했군. 명함 좀 보여주시지요. 어떤 대단한 분인지 확인 좀 합시다.”
“헛!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명함이라니요? 왜 갑자기 그러시는지-”
“아, 거기 명패가 있군요? 방송국 경비팀 차승묵씨? 기억해 두겠습니다. 내 본부로 돌아가서 반드시-”
“그냥, 그냥 지나가시지요. 제가 실수한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통과했다.
…
이렇게 우겨도 되는구나.
방송국 내부로 들어가던 중 어르신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아주 훌륭했네. 베테랑 10년 차 요원의 갑질 그 자체였어. 자네 이런 쪽에 재능이 있었어? 나도 한 수 배웠네. 이름 석 자만 읊어주는데 이렇게 소름이 돋는 건 처음일세.
아주 의미심장한 분위기가 아닌가? 일반인 실명을 알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무궁무진한 상상을 자극하는데?”
“…”
“호텔을 나가면 관리국에 취직하는 걸 꼭 고민해보게.”
난 호텔을 나가면 다시는 이런 이상한 일에 엮이지 않기로 다짐했다.
*
걸어가는 도중, 오랜만에 머리에서 ‘대화창’이 떴다.
김묵성 : 내 말 들리나?
한가인 : 이거 오랜만이네요.
김묵성 : 활자 절약. 들려서 다행.
한가인 : 서로 가까워져서 그런 듯?
“그냥 말로 하자. 어차피 둘이 붙어있는데. 활자는 아껴야지.”
“그렇군요.”
“사실 나는 아까도 대화창에 너희를 불러봤다.”
“전혀 대화창이 뜨지 않았습니다.”
“아마 나랑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거리제한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 역시나 너무 멀어지면 안 되는구먼.”
누군가 다가온다.
바로 어르신을 내 뒤로 밀어냈다.
“누구십니까? 이쪽은 아무나-”
바로 배지를 툭 치고 매섭게 노려봤다.
직원은 배지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짓고 물러섰다.
“비키시죠.”
“죄, 죄송합니다. 관리국 분들이시군요. 어쩐 일로?”
“두 번 말하게 하지 마시죠.”
“…”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자, 주변에서 우리를 관찰하는듯하던 직원 서너 명이 전부 겁먹은 표정으로 물러서며 길이 열렸다.
이 기묘한 세계에서조차 관리국의 배지는 현대의 마패가 따로 없구나.
잠깐의 대화. 필터를 끼고 하는 대화인데도 머리가 아프다. 어르신은 괜찮은 걸까.
10분 정도 1층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던 중, 대화창이 떴다.
김묵성 : 화장실.
이 와중에 화장실이라니…. 게다가, 말로 하면 되는 걸 왜 대화창?
의아했지만 화장실로 향했고, 향하자마자 대화창을 쓴 이유를 알았다.
“우웨에에에엑! 으허어어억!”
들어오자마자 어르신은 변기에 토사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배에 있는 음식물을 싹 게워낼 기세. 아무리 봐도 피까지 섞여서 나오는 게 심상치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이나?”
“저주 때문입니까?”
“난 자네가 내 앞에서 그렇게 대화까지 하면서 진행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야. 그 ‘필터’의 효과가 정말 부럽군. 난 자네 뒤에 있으면서도 억지로 버티려 드니 뇌가 녹아버리고 내장이 뒤집히는 느낌인데. 자네는 상태가 어떻지?”
“머리가 좀 아픕니다.”
“부럽구먼. 부러워. 내 대화창은 왜 그런 도움을 못 주는지 아쉬울 따름이야….”
한참 동안 어르신의 등을 두드렸다.
이거 쉽지 않다. 나도 아까부터 머리가 욱신거렸지만, 필터조차 없는 어르신의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
나 혼자서 더 진행해볼까?
차가운 무언가가 내 주머니에 끼워졌다.
“어르신?”
“이 권총. 자네가 들게. 대충 쏘는 법은 익혔지? 그리고 이제부턴 자네 혼자 더 가보게.”
“…”
“미안하네. 난 도저히 더는 무리야. 같이 가다가 내가 까딱 못 버티고 결국 저주에 감염되면, 그때는 내가 자네를 해치려 들지도 모르지. 나는 그냥 이 화장실에나 있겠네.”
“다음 시도 때 여러 사람과 와도 문제겠군요. 사실상 저, 송이, 아리 셋이서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나가서 이야기해봐야겠네.”
화장실을 나왔다.
이제부턴 나 혼자서 진행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할까? 역시 윗층으로 가야하나?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