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0)
EP.671 671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5)
671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5)
– 유송이
관리국은 세상 전체를 영역으로 삼으며, 세상 그 어떤 기업 혹은 정부보다도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독차지하고 있다.
물적 자원은 당연히 세계 각지 혹은 이계에 설치된 본부, 지부, 기타 다양한 비밀기지를 포함한 개념이다.
이 중 비밀기지는 관리국 본부 혹은 지부와는 전혀 다른 시설이라고 한다.
“본부, 혹은 지부는 국가로 치면 공식 행정기관이야. 대외적으론 기밀 시설이지만…. 알만한 사람은 위치를 알지.”
“고위 정치인이나 대양그룹 회장님 같은 분들?”
“그래. 그 정도 위치면 자기 나라 관리국 지부 위치 정도는 확신까진 아니어도 짐작은 해. 지부는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 만큼 상주 직원이 많으니까.”
“몰래 접근해서 수뇌부만 만나거나 할 수는 없다는 말이야?”
“절대로 불가능해. 그래서 비밀기지를 찾는 거야.”
우리가 관리국 한국지부에 가지 않은 이유가 이거야.
몰래 잠입해서 한국지부장만 만난다던가 하는게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가인 오빠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없으니까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비밀기지는 뭐 하는 곳인데?”
“비밀기지라는 건 내가 그냥 뭉뚱그린 표현이야. 개별 시설마다 목적이 다 달라. 어디는 연구, 어디는 혼돈체 봉인, 어디는 안가 이런 식이지.”
“거길 가면 고위층을 바로 만날 수 있어?”
“고위층까진 모르겠지만, 직원을 무시하고 요원을 바로 만날 수 있어. 정확히는, 우리가 침입하면 요원이 나타나겠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섯 번째 후보지의 탐색을 끝냈다.
1. 스마트폰 지도 어플로 비밀기지로 추정되는 장소 탐색
2. 후보 지역 직접 가서 확인
3. 틀렸으면 1번으로!
위 1번부터 3번 과정을 반나절 내내 거쳤어.
분명 아침 일찍 나온 것 같은데, 어느새 해가 중천에 뜬 지 오래.
아리는 살짝 피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기도 아니었네.”
“진짜 이렇게 하나하나 뒤질 수밖에 없는 거야?”
“다른 방법 있으면 네가 말해봐.”
“…”
“가자. 다음 후보지는 관악구에 있어.”
*
일곱 번째 건물은 꽤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1층에 한정식 가게까지 있었다.
보자마자 여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자. 1층에 식당이 있는데 무슨 비밀기지? 여긴 아니야.”
아리는 내 말에 답하는 대신, 식당에 들어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
지금처럼 무작정 건물에 들어가 주변을 확인하는 일만 여섯 번째.
나로서는 꽤 답답한 과정이었는데, 아리가 대체 무슨 기준으로 비밀기지냐 아니냐를 판단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어 번 물어보기도 했고, 아리도 제법 친절히 설명해 줬지만….
들어보니, 애초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게 아니었어.
수백 년에 달하는 아리의 요원 경력 자체가 판단 기준이었다.
좋게 말하면 빅데이터, 나쁘게 말하면 요원의 감.
내가 몇 마디 듣는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번에는 제발 그 감이 들어맞길 빌 뿐이야.
“거기, 학생들! 주문 안 해?”
“메뉴판 보고 있어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역시 아니다 싶어 고개를 저으려는 시점, 처음으로 아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그림.”
“응?”
“수묵화 보여?”
서울 한복판의 고급 한정식 가게답게 그럴듯한 그림이 몇 점 걸려있었는데, 아리가 지목한 건 그중 하나였다.
“위치가 이상하지?”
“어….”
“손님이 제대로 볼 수 없는 장소야. 지금 나처럼 눈에 불을 켜고 찾지 않으면, 저런 그림이 있는지도 모를 거야.”
듣고 보니 그럴듯해.
분위기를 내기 위한 비싼 그림이라면, 손님이 감상할 수 있는 위치에 전시하는 게 맞지 않아?
또,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니 그림의 내용 자체가 이상했다.
제대로 된 배경도 없고, 섬찟한 분위기의 집 한 채만 있는 모습.
무엇보다도!
“…”
다양한 관점의 힘으로 아리에게 주변 상황을 알렸다.
지금, 아리가 그림에 주목한 순간부터 음식점 직원들이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거야말로 명확한 증거 아니겠어?
여차하면 아리와 함께 음식점에서 한바탕 할 각오로 투지를 다지는 그 시점!
아리가 갑자기 다급한 표정을 짓더니, 당황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저쪽, 오른쪽 직원부터 제치고 -”
“먼저 갈게.”
“뭐?”
갑자기 무슨 말이래?
기겁해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리가 순식간에 인지 영역 바깥으로 멀어졌다!
“…!”
아니 얘 미친 거 아니야?
자기 혼자 존재감 없는 소녀 써서 사라지면 난 어쩌라고!
페로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 삐익!
잠깐, 페로라고?
“… 페로.”
— 삐이익! 삐익?
“나 먼저 갈게.”
*
.
..
…
‘출렁!’하는 느낌.
곧, 서늘한 공기로 가득한 정체 모를 장소에 도착했다.
호텔을 겪으며 기상천외함이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온갖 경험을 쌓았지만, 그림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어렵네.
불안감을 느끼며 나아가던 중, 전방에 멈춰선 아리를 발견했다.
“야!”
“금방 왔네.”
“무슨 생각으로 혼자 움직인 거야?”
“… 함께 움직이면 늦을 것 같았어.”
“뭐?”
곧, 아리가 ‘쉿!’하는 동작으로 날 침묵시킨 채 입만 벙긋거렸다.
‘지금 이곳에 요원이 있어. 그래서 바로 들어온 거야.’
‘…’
‘넌 어떻게 직원들 제치고 이렇게 빨리 왔어?’
‘페로가 밖에서 난동 부리고 있어.’
‘…’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어디선가 다각! 하는 소리가 들렸다.
— 철컥!
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금속음.
천천히 뒤로 돌아서니 나와 아리를 겨눈 냉혹한 총구가 보였다.
“…”
이 순간만큼은 살짝 당황했다.
상대의 모습이 예상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차갑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 유령처럼 새하얀 피부, 살아있는 뱀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섬뜩한 머리카락.
여기까지만 해도 사람보다 무슨 악령을 닮은 모습이지만, 전체적인 이목구비가 고작해야 10대 초중반의 소년이라는 사실이 가장 기이했다.
물론, 아리와 미로를 보면 알 수 있듯 요원에게 외견상 나이는 아무런 의미 없다.
순식간에 교차하는 긴장 가득한 시선.
총구를 들이민 상대가 말없이 요구하는 것 같았다.
‘너희는 누구고,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곧, 아리가 양손을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밝히며 미리 준비한 거짓말을 시작했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나는 요원이야.”
“…”
“뒤에 있는 애는 내가 가르치는 수습이야. 보다시피 얘도 종말을 넘어왔으니, 조만간 본부에 보고해 요원 자격 얻게 할 생각이지.”
아리는 비밀기지에 요원이 있음을 알면서도 다짜고짜 진입했다.
처음엔 상대가 문답 무용으로 공격하면 어쩌려고 이러나 당황했지만….
“계속 총 들이밀 거야?”
“둘 다 종말을 넘어오긴 한 것 같은데….”
지금 두 사람의 문답에 내 의문 – 왜 상대는 즉시 총을 쏘지 않는가 – 의 답이 있었다.
요원은 다른 요원, 정확히 말하면 ‘회귀자’를 알아볼 수 있어.
회귀자란 본질적으로 영혼의 격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리 역시 가인 오빠 증조할아버지나 묵성 할아버지를 상대로 이런 재주를 보인 적 있었지?
물론, 그리 정확한 능력은 아니라고 들었다.
정교한 초능력이라기보단 오랜 요원 경력을 통해 터득한 직감에 가깝다던가?
‘이 사람 100% 요원이다!’보다는, ‘얘 뭔가 요원 같은데? 아님말고.’ 정도의 능력.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으음, 잘 모르겠네. 무엇보다 너처럼 예쁜 사람이면 -”
“고마워.”
아리의 능청스러운 말에 상대는 움찔 했지만, 총구를 내리진 않았다.
“- 한번 보면 잊을 수 없거든.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너 같은 사람을 본 기억이 없어.”
“그럴 수 있지. 사실, 최근 몇 번의 루프는 조금 멋대로 살았거든.”
“무슨 의미지?”
“신분을 감춘 채 세계를 떠돌며 놀았어. 이해하지? 이 일이 좀 힘들잖아?”
“…”
“초장기 휴가 같은 개념이랄까?”
이것 역시 밖에서 회의 끝에 준비한 거짓말이다.
공식적으로 요원에게 은퇴라는 개념은 없지만, 요원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자.
근본적으로 회귀자이다.
불특정한 장소, 알 수 없는 시기에 갑자기 각성해 과거의 기억을 되찾곤 한다.
기나긴 삶 속에서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쌓았고, 대체로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관리국조차도 요원 개개인을 엄격히 통제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니까, 아리 말처럼 제멋대로 장기 휴가를 떠나는 요원들도 실제 있다는 말.
멀리 갈 것 없이 묵성 할아버지가 현실에서 딱 그런 케이스잖아?
곧, 아리는 차근차근 요원이어야만 알 수 있는 관리국 관련 정보를 슬슬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아리가 아는 관리국과 301호의 관리국은 상당한 간극이 있는 만큼 많은 정보는 부정확했지만….
변함없이 일치하는 정보도 꽤 많았다.
덕분에 상대는 점점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었고, 어느새 총구도 슬쩍 내렸다.
“… 그러니까, 선배님은 2년쯤 전에 각성하셨단 말이지요?”
“맞아.”
“슬슬 휴가를 끝내고 본부에 복귀하실 생각이다?”
“그렇지.”
자연스레 상대가 아리를 ‘선배님’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머리를 긁는 소년의 모습에 살짝 긴장이 풀린 바로 그 순간!
— 철컹!
상대가 품속에서 또 다른 총을 벼락같이 꺼내며 아리의 머리를 겨눴고, 단호한 질문을 쏟아냈다.
“네, 아니오로 답하라. 너는 요원인가?”
“네.”
아리가 답변하자마자 상대는 주저함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 틱!
‘탕!’이 아니라 ‘틱!’.
방아쇠는 당겼는데,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
찰나의 침묵이 흐른 후, 소년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이번엔 정말로 총을 품속에 넣었다.
“실례했습니다.”
“…”
“하하! 뭔가 요원이 맞으신 것 같긴 한데, 혹시나 해서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게 좋지 않겠어요?”
“그래.”
그니까, 방금 그 총은 거짓을 심판하는 마법 도구 같은 거야?
아리가 거짓말을 했으면 총알이 나가서 머리를 터트린다?
참, 요원 아니랄까 봐 별의별 희한한 물건이 다 튀어나오는구나!
어찌 됐든, 위기는 넘겼어.
아리는 정말로 요원이다. 301호의 요원이 아닐 뿐이지.
“C라고 불러주시길. 그런데 선배님, 왜 한국지부에 복귀 신고하시지 않고 이런 곳에 오신 겁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이상함을 느꼈거든.”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상함?”
다음 순간, 아리가 부등변다면체를 소환해 일대에 불투명한 격벽을 둘러쳤다.
C는 살짝 당황했지만, 곧 아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뭡니까?”
“혹시 주변에 불길한 눈이 있을까 봐.”
“…”
“솔직히 말할게. 본부 쪽 직원들 몇몇 상태가 이상해.”
“…”
“꽤 많은 직원이 정체 모를 혼돈체에 의해 홀렸거나, 감염당한 것 같아. 타락이 어디까지 번졌는지 알 수 없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후….”
C는 한숨과 함께 답했다.
“본부까지 그 상태군요. 선배님은 ‘이스의 종족’의 흔적을 찾아내신 겁니다.”
“… 더 자세히 말해봐.”
“빙의, 육체 강탈, 원격 조종 등의 능력을 가진 외계 종족입니다. 최근 몇 년간 이스의 종족과 관리국 간 충돌이 이어지고 있죠.”
“…”
“스며드는 적을 꾸준히 방어 및 솎아내기 중이긴 한데…. 어렵습니다. 덕분에 최근 몇 년간 본부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상태입니다.”
“치안 유지에는 별문제 없나 봐?”
“이게 또 재밌습니다. 이스의 일족에게 감염당한 직원들도 이스의 일족과 무관한 혼돈체 문제에는 정상적으로 대처하거든요.”
“…”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상대의 태도는 마치 -”
“일을 크게 벌이지 말자. 불필요한 민간인 피해는 귀찮다. 요구사항을 관리국이 들어주면, 순순히 물러서겠다. 이런 느낌이야?”
“… 우와. 벌써 거기까지 느끼셨습니까? 맞습니다. 상대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뒤에서 들으며 아리의 말재주에 감탄했다.
종말 이후 세계에서 얻은 정보에 살을 붙이니까 상대가 점점 더 아리를 철석같이 믿잖아?
내가 봐도 이쯤 되면 아리를 의심하는 게 이상하다.
아리가 담담한 투로 말했다.
“C, 혹시 더 높은 사람과 접촉할 수 있을까?”
“가능합니다. ‘선각자’께 연락드릴까요?”
“… 부탁해.”
‘선각자’라는 단어에 아리가 순간 움찔했다.
정황상 301호에선 관리국 수뇌부를 선각자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현실에선 ‘침묵하는 자’라고 불렀지만, 명칭은 달라질 수 있겠지.
“네가 아는 정보는 더 없어?”
“… 주워들은 정보이긴 합니다만.”
“딱 좋네. 말해봐.”
C는 다소 자신감 없는 태도로 중얼거렸다.
“약 500년 전, 회사는 현 강원도 지하에서 정체 모를 유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은솔 언니의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언급된 장소다.
“유적?”
“아주 강력한 혼돈의 힘이 깃든 유적이었다고 하죠.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고도 합니다.”
“무슨 기적인데?”
“죄송합니다. 거기까진….”
“아는 대로 말해봐.”
“발견 당시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한데, 이상하게도 30년 전? 35년 전? 그쯤부터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죠.”
“…”
“그 시기에 유적과 관련한 아주 큰 프로젝트가 시작됐습니다.”
“그게 뭔데?”
C의 다음 말은 의외였다.
모르는 단어가 아니라 아주 잘 아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이 타이밍에 나올 줄 몰랐을 뿐이다.
“‘프로젝트 – 종의 기원’. 들어보셨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