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2)
EP.673 673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7)
673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7)
– 이은솔
두 번째 시도를 시작한 지 3일 차.
이번 시도에서의 내 목표는?
근본적인 목표는 당연히 301호의 해결이다.
다만, 그 해결을 위해선 길고도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법.
나는 대양그룹 회장 이석환 – 아버님으로부터 이스의 종족과 관련한 비밀을 알아내고자 했다.
이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솔직히 인정하자. 현재, 나는 진행이 막혔어.
“…”
차라리 아버님이 실종 상태라면 찾으면 된다.
입을 꾹 닫으려 들면 억지로 열면 되고, 적이 방해하면 싸우면 그만이다.
안타깝게도 문제는 위와 전혀 달랐다.
아버님은 내 건너편 탁자에 잘 앉아계시고, 각종 질문에도 꽤 협조적이다.
아버님의 경호원이 날 암살하려 든다거나 하는 기상천외한 일도 전혀 없었다.
단지, 가장 중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을 뿐.
본인 설명에 따르면, 12년 전에 만난 은퇴한 관리국 요원에게 보안 조치를 받았단다.
그 보안 조치로 인해 자기 자신조차 ‘중요한 정보’를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은솔아, 하도 뚫어져라 쳐다보니 내 얼굴이 닳겠구나. 할 말이 있니?”
관리국 보안 조치가 대단해 봐야 그 한계는 뻔하다.
안식의 피리를 쓰면 손쉽게 깨트릴 수 있고, 어쩌면 가인이나 아리도 파훼할 수 있으리라.
문제는, 아버님으로부터 해당 정보를 억지로 알아내면 끔찍한 일이 생긴다는 경고였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끔찍한 일이 무엇인지는 아버님 본인도 몰랐다.
단지, 아버님 본인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음을 엘레나가 확인했을 뿐.
심지어 밖에서 관측하던 가인이 혹은 상현 씨가 폴터가이스트로 경고까지 했으니, 나로선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에 빠진 시점.
하루가 후딱 지나갔고, 내가 대양그룹을 승계하기 위한 각종 작업이 시작됐다.
호텔에 오기 전이라면 꿈에도 그리던 순간이니까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네.
지금은 그냥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느껴질 뿐.
“…”
때려치우자!
아무리 봐도 이딴 일은 내 심력을 낭비하는 일이라고?
차라리 한숨 자는 것만도 못해.
내 소중한 두뇌는 더 중요한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 덜컥!
거칠게 몸을 일으키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각종 서류 더미가 바닥에 쏟아졌다.
아버님은 당황한 듯 내 쪽을 보았지만, 딱히 무어라 하진 않았다.
“…”
생각의 고삐를 풀었다.
‘301호’라는 키워드에 집착하니까 생각의 폭이 더 좁아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301호와 무관하다고 여기는 정보가 301호와 관련 있을지도 모르잖아?
생각.
생각.
생각.
그야말로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개중에는 301호에 관한 생각도 있었지만, 아무 상관 없는 – 혹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잡념이 훨씬 더 많았다.
“고민이 꽤 많은 모양이구나.”
“그렇죠.”
“중요한 고민이냐?”
“물론이죠.”
“… 대양그룹보다?”
“훨씬 더.”
그 말에 아버님은 잠시 고민하더니, 난데없이 책장에 다가가 자그마한 책자를 가져왔다.
“이게 뭔가요? 희망을 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
“너와는 다르겠지만, 나도 살면서 고민에 빠질 일이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었지.”
“…”
교훈적인 불교 명언 및 교훈을 모은 작은 책자다.
아버님이 종종 읽으시는 것도 봤고, 나도 예전에 몇 번 읽곤 했었지.
책 제목인 〚희망을 주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오랜만에 보니 순간 웃음이 나왔다.
석가모니란 곧 불교의 교조이자 창시자요, 부처가 인간 시절 사용했던 이름이 아닌가!
예전이라면 별생각 없었겠지만, 지금의 내게 부처라는 단어는 과거와 전혀 다른 의미로 여겨졌다.
우주 어딘가에 실존하는 아득한 존재!
하지만, 뭘 어떻게 봐도 불교에서 말하는 그런 존재와는 전혀 다른 –
“아.”
“왜 그러니?”
처음으로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안은 전부 불교를 믿는다.
“아버님. 우리 집안은 일찍부터 불교를 믿었었죠?”
“그랬지.”
“아버님은 왜 불교를 믿기 시작하셨나요?”
“예전에 말해주지 않았니? 20대 시절, 설악산의 고승 지운 스님을 만나서 -”
“아버님, 그건 방송용, 대외용으로 지어낸 말 아닌가요?”
“…”
“솔직히 말해보세요. 제게는 숨기실 필요 없으니까.”
“…”
“들으셨나요? 우주 어딘가에는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신적인 존재들이 득실거린다.”
“…”
“그들은 하나같이 손짓 한 번에 대양을 사막으로 만들 수 있고, 평범한 인간은 쳐다보는 것만으로 눈과 뇌가 녹아버리는 공포스러운 존재들이다.”
“…”
“한데, 그런 신적인 존재들조차 무릎 꿇고 조아리는 존재가 있으니 그를 부처라 한다….”
업무실 내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어느새 아버님도 나처럼 쓸데없는 서류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곧, 생전 처음 듣는 아버님의 신앙 고백이 시작되었다.
“… 개인적으로는, 불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말해보셔요.”
“석가모니 – 고타마 싯다르타는 인류사에 실존했던 사람이다.”
“…”
“그는 모종의 신비로운 과정을 통해 ‘부처’라는 아득한 존재를 알았고, 그로부터 모종의 영감을 얻어 불교를 창시하지 않았을까?”
“…”
“인간 고타마 싯다르타 본인이 무슨 신은 아니었으리라 본다. 다만, 그에게 영감을 준 ‘부처’는 실존한다는 이야기지. 그래서 나는 불교를 믿기로 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되었니?”
내게도 여러 가지 상념이 스쳤다.
세상, 호텔 그리고 부처에 대한 비밀은 아버지보다야 내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사 속 불교의 창시자는 최초의 호텔 탈출자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석가모니가 보였다는 온갖 신통력도 쉽게 설명이 된다. 유산 혹은 축복에 기인한 능력이었겠지.
물론, 모를 일이다.
아리가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관리국도 모르는 것 같아.
“하나만 더 물을게요.”
“그래.”
“누구였나요?”
“음?”
“누가 아버님에게 ‘부처’의 존재를 알려줬나요?”
“…”
관리국은 아닐 것 같았다.
호텔이나 부처에 대한 정보는 관리국 내에서도 상당한 극비에 속하기 때문이다.
아버님은 아직도 회귀자나 루프에 대해 모르신다.
관리국이 아버님에게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더 높은 비밀인 부처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을 것 같지 않았다.
“관리국은 아니죠?”
“아니다. 아니야. 그들은 내게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지.”
“누군가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어쩌면, 12년 전 받은 보안 조치 때문일지도 -”
“다는 아니어도 일부는 기억하시는 것 아닌가요? 본인이 불교를 믿기 시작한 이유도 말씀하셨으니까.”
“…”
“기억나는 대로 아무거나 말해보세요. 무엇이든 좋으니까.”
아버님은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인 채 고민에 빠지셨다.
떠오를 듯 말 듯 한 환영 같은 기억 속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곧, 입이 열리며 기이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기억 속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
“너희는, 우리는 참으로 가련한 운명이라고.”
“왜죠?”
“너무 일찍 태어났다고 하더구나.”
우리는 너무 일찍 태어났다.
“언젠가 완성될 천국이 아니라, 그 전의 지옥에 태어났다고…. 그래서 가련한 존재들이라 하였다.”
“그것뿐인가요?”
“상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 자식들을 천국으로 보내고 싶다고.”
*
– 유송이
선각자와의 첫 만남이 끝난 후, 그녀는 약속대로 우리를 데리고 강원도 유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송이 양.”
“네!”
“오면서 확인했습니다. 아직 학교도 다니고 있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각별한 것 같던데.”
“…”
“요번이 첫 번째 회귀였나요? 아직은 가족도 일상도 소중하게 느껴질 때지요. 언젠가는 지금이 그리워질 거랍니다.”
“… 가족을 건드리시진 않았으면 -”
“건드리다니? 어머, 관리국이 무슨 악당인가요? 요원의 가족은 최우선 보호 대상이랍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이상하다 싶을 만큼 친절한 태도가 도리어 부담스럽다.
저 앞의 선각자에 비하면, 현실에서 만났던 ‘침묵하는 자’들은 죄다 인격 파탄자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야.
오늘 처음 만났는데 거침없이 비밀을 알려주고, 신비의 장소로 안내하는 모습.
당연히 너무나 의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따라가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A를 목표로 했는데, 상대가 A를 순순히 준다고 치자.
이러면 상대의 태도가 의심스러우니까 A를 포기해야 해?
그럴 거면 최초의 목표를 왜 A로 삼았느냔 말이지!
결국 아리와 함께 신경을 곤두세운 채 선각자의 뒤를 따라가야 했다.
— 툭!
김아리 : 확인! 확인!
다만, 아리는 지금처럼 몇 번이고 내게 확인을 요청했다.
그녀는 선각자가 혹시 이스의 일족에 빙의 당한 게 아닌지 의심하기 때문이다.
타당한 의심이며, 나도 여러 번 같은 고민에 빠졌지.
아니다.
유송이 : 아니야.
첫 번째 시도 때 확인한 사실.
동물의 몸에 깃든 사람의 혼과 사람의 몸에 깃든 이스의 종족, 두 경우 모두 ‘혼돈체’ 판정이다.
친화의 축복이 통하며, 이심전심 역시 동작해야 한다.
김아리 : 진짜 아니야?
유송이 : 아니라니깐!
선각자가 내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긴 하지만, 친화와 상관없다.
그녀는 아리에게도 지극히 친절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이심전심이 통한다면 선각자의 감정 혹은 간단한 상념이 어설프게나마 느껴져야 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관리국의 다른 요원들처럼, 선각자는 특별한 힘을 가진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
선각자에 대한 의심 이상으로 나를 혼란케 하는 건 지하 유적 그 자체였다.
— 끼익!
“엇!”
“조심해.”
“조심하세요. 발굴이 진행 중이라 지반이 불안하답니다. 가능하면 아리 양이 밟은 자리만 따라 밟는 게 좋겠어요. 아리 양은 귀신같이 안전한 곳만 밟고 있으니.”
공기는 찝찔한 습기로 가득하고, 바닥에선 불쾌한 물컹함이 느껴졌다.
여기에 사방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뼛조각과 고기 썩는 냄새를 합치니, 이런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불쾌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신비한 조각 혹은 벽화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 벽화가 무척 많네요.”
“아주 오래된 그림들이랍니다. 대부분 석기시대의 작품들이니까요.”
은솔 언니가 알려준 회장의 기억 속에 이런 풍경은 없었어.
시기를 고려하면, 당시엔 연구 초기였기 때문일까?
이런 지하까진 제대로 파고들지 못한 시점이었을지도 몰라.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시점, 갑자기 선각자가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의 이름이 왜 종의 기원인지 생각해 보셨나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종의 기원 – Origin of Species – 이건 아주 유명한 책의 이름이지요. 역사상 최초로 진화의 이치를 밝혀낸 위인의 작품이니까요.”
종의 기원, 진화론.
“진화론에 대해선 두 분 다 알고 계시죠?”
“…”
“대충은 알고 있죠.”
솔직히 난 잘 몰라!
이럴 때는 학교 수업에 성실하지 못했던 과거가 살짝 부끄럽네.
나는 몰라도 아리는 잘 알지 않을까?
“생물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전적 변이가 축적됩니다. 변이는 때로는 개체에 유익하거나 무해하지만, 많은 경우 유해하죠. 이때 -”
“진화론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는 생략하셔도 됩니다.”
아리의 이 말은 살짝 아쉬웠다.
나는 진화론에 대한 설명도 조금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아리 양, 혹시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있나요?”
“…”
“진화의 이치가 꼭 생물학적인 육신에만 적용되는 걸까요?”
“…”
“어쩌면, 영혼에도 진화의 이치가 적용되는 것이 아닐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길.”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입니다. 육체 혹은 영혼의 변이는 랜덤에 가깝게 발생하지만 -”
어느 순간, 선각자는 자연스럽게 ‘영혼’ 또한 진화의 범주에 포함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개중, 생존에 적합한 변이를 얻은 영혼만이 살아남아 존속하지요.”
“생존에 적합한 변이?”
“바로 우리들을 말합니다.”
“그게 무슨 -”
선각자의 다음 말은 평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세상의 시작과 끝, 루프. 이것은 대우주의 법칙입니다. 우리들 – 회귀자는 루프를 견딜 수 있는 존재. 다시 말해, 자연 선택된 영혼입니다.”
“아?”
“아리 양, 이해하셨나요? 사람의 혼이 진화한 끝에 도달한 결과물이 회귀자입니다. 그게 우리지요. 우리는 동족들보다 조금 더 빨리 진화한 겁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