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4)
EP.675 675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9)
675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19)
– 이은솔
“회장 머릿속에 숨겨진 비밀인지 뭔지 당장 알아내라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에 잠시 말문을 잃었고, 순간적으로 여러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할아버님이 갑자기 뒤를 고려하지 않는 지시를 내리는 이유는?
시간을 돌릴 생각이니까!
갑자기 시간을 돌리려는 이유는?
조금 전, 온 세상에 울려 퍼진 정체 모를 굉음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송이, 아리 쪽에서 터무니없는 사고가 터졌어.
판이 터졌고, 시간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가?
여기까지 이해하고 답했다.
“원 모어 찬스를 쓰실 셈이죠?”
“그래.”
“OK. 뒤를 생각하지 말고 정보를 알아내라는 말은 이해했어요. 근데, 할아버님이 기억을 돌리면 저는 기억을 잃는 것 아시죠? 이 문제는 어떻게 -”
할아버님이 원 모어 찬스를 쓰기 전에 통화라도 해야 하나?
딱 봐도 곧 대재앙이 벌어질 기세인데 그럴 시간이 있을 –
“은솔아! 송이 쪽이 이미 죽은 것 같다! 가인이나 상현이가 어차피 너만 보고 있을 거야!”
“아, 이해했습니다.”
그렇구나!
외부의 동료들이 어차피 날 관찰 중이라면, 기억의 전달은 신경 쓸 필요 없다.
내가 기억을 잊어도, 가인이나 상현이가 관측 후 밖에서 알려줄 테니까.
*
— 벌컥!
회장실 문을 벌컥 열자, 서류를 살피던 아버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은솔아? 밖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 때문이라면 -”
“죄송해요.”
즉시 호접몽이 열리며 신비로운 빛이 회장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또한, 오른손 위에 안식의 피리가 나타났다.
곧, 아버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요전에 내 기억을 빼낸 마도구 맞지?”
“정보가 더 필요해요.”
“내 기억을 강제로 알아내면 위험한 일이 생길 텐데도 말이냐?”
“때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순간이 있죠. 경영도 그렇잖아요?”
아버지의 다음 말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나는 잘 모르겠구나. 경영하면서 위험을 감수한 적이 없어서.”
“아?”
“성공이 확실한 사업에만 손댔거든.”
“…”
깜빡했네. 아버지는 불완전한 회귀자셨지?
위험을 감수하며 사업해 온 분이 아니셨어.
잠시 말문을 잃은 시점, 아버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내가 어찌 널 말릴 수 있겠느냐. 그저, 충분히 고민한 상태이길 빌겠다.”
딱히 날 말릴 생각은 없는 모습.
— 부우우…!
천천히 피리를 불었다.
그리고….
“크으…!”
12년 전, 정체 모를 요원이 아버님 머리에 시술했다는 ‘보안 조치’가 안식의 피리 앞에서 거품처럼 사그라들었다.
“조금만 참으시길.”
곧, 나는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대양그룹 회장의 과거로 파고들었다.
기억의 시작은 요전에 보았던 장면의 마지막부터 이어졌다.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 나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
– 이석환
이성을 반쯤 잃은 채 서울의 자택으로 돌아왔다.
식은땀과 피로 젖은 옷을 본 아내가 기겁했지만, 가타부타 설명할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당장이라도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아내를 진정시키는 게 내 최선이었다.
이후, 밤새도록 침대에 웅크린 채 덜덜 떨며 정체 모를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기도했을 뿐….
다음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하루, 이틀, 사흘 – 일주일이 지나도록 관리국에서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이해할 수 없는 혼돈 실험을 벌이다가 대형 사고가 터졌고, 대량의 사망자까지 나왔는데 이렇게 아무 반응이 없다고?
하다못해 날 소환해서 그날의 일을 조사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어쩌면, 위와 같은 정상적인 수습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아닐까?
이리 생각하니 숨이 멎을 만큼 두려웠다.
평소엔 온갖 잡일을 떠넘기는 관리국에 대한 불만도 있고, 뭐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 비밀주의 집단에 대한 분노도 있었지만….
일이 이렇게 되자 체감했다.
내가 평소 관리국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구나!
관리국이 개같은 놈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세상을 지키는 조직이라는 믿음이 있었구나!
…
결국, 불안감을 참지 못한 내가 먼저 나서 연락했다.
10년 넘게 관리국에 충성한 덕에 개인적으로 연락처를 나눈 요원들도 있었고, 안면을 익힌 직원도 많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나름대로 보안에 신경을 쓴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요원 K – 성이 김씨라서 K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와 만나기로 했다.
그는 누구나 호감 가질법한 쾌활한 인상의 20대 청년이었는데, 모든 요원이 그러하듯 외견상 나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요원님, 오랜만입니다.”
“하하! 최근에 본 게 6년 전이었나? 그때 신세 많이 졌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요원님께 항상 감사히 생각합니다.”
K는 요원치고는 대단히 친절하게 말하는 편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일반인을 내려다볼지 몰라도, 최소한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는 어디 하나 모난 데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오가는 의례적인 말 속에서 상대의 태도를 살폈다.
K는, 최소한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사각 테이블에 앉자마자 내게 본론을 요구한 것이다.
“회장님, 피차 바쁜 사람이니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갑작스럽게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뭡니까? 요청 사항이 있다면, 사적인 연락보단 본부에 연락하시는 게 좋을 텐데요.”
“…”
“아니면, 내게 사적인 부탁이라도 있습니까?”
“…”
“하하!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어지간하면 들어줄 테니 말해봐요. 뭐, 어린 아들이 이상한 행동이라도 합니까? 관리국에 신고하면 처분할까 두려우니 내가 최대한 다치지 않게 수습해달라?”
“보통은 그런 요청이 많은가 보군요.”
“아닙니까?”
K는 내가 만나자고 한 이유를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기괴했다.
마치, 강원도에서 벌어진 일을 전혀 모르는 것 같지 않은가!
“… 요원님, 저는 요전에 본부의 지시를 받아 강원도 xx군. xx면 일대의 1만 3천 평 대지를 매입했습니다.”
“그래요? 혹시 매입 자금이 너무 커서 경영상 문제가 생겼다면 -”
“아닙니다.”
대놓고 강원도를 언급했는데도 여전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태도.
결국, 아예 직접적으로 말했다.
“요원님, 정말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모르는 체하시는 겁니까?”
“네?”
“그, 그날! 강원도에서 엄청난 학살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기억도 생생합니다. 유리관에 갇혀있던 알 수 없는 괴물이 탈출했던 것 아닙니까? 그 괴물 손에 현장의 연구원들은 물론, 요원 T도 당했고 -”
식은땀을 흘리며 설명하려는 순간.
— 팅!
K가 빙그레 웃었다.
“요원님?”
“눈치가 부족하구나.”
“무, 무슨 -”
“이래서야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니?”
말투부터 완전히 바뀌었음을 자각한 순간!
— 드르륵!
놀라서 벌떡 일어나 벽으로 붙었다.
이 말투, 이 태도, 이 존재감!
순식간에 숨이 멎으며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다, 당신은…!”
빙그레 웃으며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오는 청년.
그는 K였지만, K가 아니었다.
이미 K를 집어삼킨 누군가였다!
“고작 일주일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고.”
“허어억! 허억!”
“건망증이 심한 모양이지?”
강원도에서 그랬듯이, 이번에도 상대는 내게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그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 셋을 펴서 하나를 접었을 뿐이다.
“나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주었느니, 그중 하나가 벌써 사라졌노라.”
“흐으으…!”
그 말을 끝으로 상대는 가벼운 걸음으로 사라졌다.
…
넋이 반쯤 나간 채 길가에 나섰을 때, 상식이 사라진 세상이 날 맞이했다.
인형처럼 내 차 앞에 멈춰선 10명의 사람.
그들은 날 보자마자 갑자기 입을 쩍 벌리더니, 손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 자신의 혀를 스스로 뽑기 시작했다!
마치, 다시는 혀를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경고하듯이.
“흐억!”
혐오스러운 광경에 기겁하며 바닥에 주저앉은 순간, 나는 더욱 끔찍한 사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
지금은 대낮이고 이곳은 서울 한복판이다.
당연히 주변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서울 시민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가련한 사람 열 명이 악마에게 조종당한 채 대낮에 자기 혀를 뽑고 있는데,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걸어가는 사람들!
똑같다. 똑같아!
마치, 날 제외한 모두가 ‘아무 일 없음’, ‘세상은 평온함’이라고 약속이라도 한 것 같다!
*
‘혐오스러운 광경이군요.’
‘주변 수천 명 이상의 정신을 동시에 지배한 건가? 상대가 죄수라면, 충분히 가능은 하겠지만…. 대단하군요.’
‘정확히 어느 부분이 대단합니까? 조종이라면 당신도 -’
‘저렇게 많은 수를 동시에 조종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대낮에 대량 학살을 벌였는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수습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회장이 질려버린 게 이해가 가는군요.’
‘또,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런 귀찮은 쇼를 벌이면서까지 회장을 죽이거나 직접 손대진 않고 있다.’
‘…’
‘이스의 왕에게 회장을 직접 건드려선 곤란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
마흔아홉 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이 시기의 나는 최소한 8년 전보다는 많은 사실을 알아차린 상태였다.
예컨대, 관리국 하부가 서서히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만나는 직원 혹은 요원의 너머로 ‘알 수 없는 괴물’의 존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시던 주군의 몸에 갑자기 정체 모를 악령이 빙의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알아챘다 한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관리국의 탈을 뒤집어쓴 정체 모를 괴물을 섬기며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기괴한 일에 협조했을 뿐.
그 기간, 내가 깨달은 사실은 하나뿐이다.
괴물은 아주 많은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용도로 인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글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부터는 양심의 가책이라는것조차 그리 큰 문제는 아니게 되었다.
…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퇴근하기 위해 차에 탑승하자 운전석에 ‘다른 존재’가 있었다.
“대양그룹 회장 이석환, 맞나?”
“맞습니다. 본부에서 나오셨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정체 모를 존재의 손에서 희끄무레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이게 뭐지? 할 틈조차 없었다.
그냥, 안개가 정신없이 내 쪽으로 파고들며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흐으으…!”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또, 방금의 조치로 내가 거짓말 등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알았다.
상대는 날 심문할 생각인 것 같았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표현한다면, ‘백작’이라고 할 수 있겠지.”
“백작?”
“기억하는 대로 답하라. 지난 몇 달간 파악한 바에 따르면, ‘왕’과 마지막으로 접촉한 필멸자는 너다.”
“와, 왕?”
“왕께서 사라지셨다. 공작들은 심지어 왕이 ‘소멸했다’라는 믿기 힘든 이야기까지 전해왔다. 네가 아는 게 있을까?”
저항할 수 없는 질문의 압박 속에서 –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어서 물었다.
“누가, 누가 소멸했다는 말입니까?”
*
‘회장이 마흔한 살일 때 이스의 왕이 지구에 도착해 모종의 일을 벌였고, 8년 후 갑자기 사라진 건가? 그러자 이스의 종족이 지구에 와서 실종 혹은 소멸한 왕을 찾기 시작했고?’
‘왕의 죽음 혹은 실종에 얽힌 비밀이 나올 모양이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