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5)
EP.676 676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0)
676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0)
– 이석환
운전기사의 몸을 빼앗은 괴물로부터 들려온 충격적인 말.
‘왕께서 사라지셨다. 공작들은 심지어 왕이 소멸했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까지 전해왔다.’
비록 내가 관리국 요원이나 직원은 아니지만, 지금 괴물이 말하는 왕이 누구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애초에 왕이 내 앞에서 직접 신분을 밝히지 않았는가!
당시의 기억은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더없이 생생하다.
‘나는 왕이니라. 은하 너머 신실한 자들의 왕이요, 이 땅에 태어날 이들의 왕이다. 또한 네 왕이니라.’
내 마음속에서 영원한 공포로 군림했던 존재가 소멸했다는 당황스러운 이야기.
덕분에 너무 놀라서 되물었다.
“누가, 누가 소멸했다는 말입니까?”
“보아하니 너 역시 상황을 자세히는 모르는군.”
“그, 그건 -”
“됐다. 내 직접 알아내리라. 마침, 이를 위한 적절한 힘을 공작께서 빌려주셨느니….”
직후, 상대의 몸에서 희뿌연 안개가 나타나 내 몸을 덮쳤다.
이후의 일은 견딜 수 없을 만큼 혐오스러웠다.
굳이 표현하자면,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촉수가 내 뇌를 칭칭 감은 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의 시간.
나는 수 없이 어린 애처럼 울부짖었고, 상대는 그런 내 반응을 신경 쓰지조차 않았다.
물론, 비명 지르는 내 목소리를 듣고 구하러 오는 누군가 따위도 없었다.
‘백작’은 내 최근의 기억부터 시작해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또, 중간중간 기억이 모자라다 싶은 부분은 질문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근 몇 년 동안 내가 관리국 – 혹은, 관리국의 탈을 쓴 누군가에게 협조했던 일들을 살펴봤다는 이야기다.
반응은 곧 나왔다.
“오오!”
실제로 일을 수행한 나는 내가 뭘 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내 과거를 살펴본 백작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왕께서 은총을 내릴 준비를 하시는구나!”
“으, 은총?”
“하하! 그래, 그렇지! 그렇고말고! 어찌 이 자그마한 땅에 왕을 멸할 힘이 있겠는가? 은총을 준비하시고 있을 뿐이었도다.”
당황하는 순간, 갑자기 상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왕께서 택한 종복이로다. 거칠었다면 사과하마. 단언컨대 네 충성 역시 보답받으리라.”
아직도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일이 저들 종족에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솔직히 기쁘진 않았다.
인간의 몸을 농락하는 외계인들이 기뻐할 만한 일이, 인간에게도 기쁜 일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마치, 내가 살기 위해 인류의 배신자가 된 느낌.
살면서 느낀 그 어떤 죄책감보다 심한 것이 영혼을 덮쳐왔다.
역사상 나라를 팔아먹은 놈, 가족을 팔아먹은 놈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인류를 팔아먹은 놈은 내가 최초가 아닐까?
매국노(賣國奴)를 넘어서 매인노(賣人奴)다!
그런 내 심정을 읽었기 때문일까?
나를 ‘왕의 종복’이라 여겼는지, 너그러워진 상대가 날 배려하듯 말했다.
“그대, 무슨 생각인지 짐작하나 상심하지 말라.”
“…”
“너는 ‘은총’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단언컨대, 은총은 너희에게도 결코 해악이 아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 왕께서는 실로 대자대비한 분이시다. 유아적인 영역에 머무르는 너희에게도 축복을 베푸심이야.”
상대의 태도를 보며 느꼈는데, ‘왕’이라는 표현보다 ‘신’이라는 표현이 적합해 보였다.
어쩌면 외계인의 말을 사람의 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왕과 신의 중간 어디쯤 있는 표현이 왕으로 번역되었을지도 모른다.
…
이런 넋 빠진 생각에 빠진 걸 보면, 이 시점의 나는 살짝 긴장이 풀려 있었다.
나를 왕의 종복이라 인지한 상대의 태도가 과히 너그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날 죽이거나 학대할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사람의 일에 대입해도 쉽게 납득이 가는 상황이다.
오만한 귀족이 비루한 하인을 만났다고 해도, 그 하인이 위대한 제왕의 종복이라면 행동을 조심히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역으로 내가 상대에게 질문했다.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다.
관리국과 교류하며 깨달았지.
세상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이 수없이 많으며, 이에 대한 호기심은 비참한 죽음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자식에 대한 의문을 부모로서 참을 수 있을까?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작고 작은 너로부터 태어난 누군가가 위대한 운명을 얻겠구나.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네 어린아이 중 하나를 점지했노라.’
“한 가지만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리하라. 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소상히 말해주마.”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누구입니까?”
“… 무슨 말이지?”
돌이켜보면, 그때 상대의 표정을 보고 멈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일찍이 왕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제 아이 중 하나를 점지했다는데 -”
“뭐라고?”
“제가 이상한 말을 했 -”
— 푸욱!
반응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힘이 다시금 내 머리를 꿰뚫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고통스러웠는데, 백작이 받은 충격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크으으윽!”
고통의 시간이 끝나고, 정신없이 헐떡이며 백작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아까부터 얼굴은 물론 몸 전체를 마구 뒤틀고 있었다.
마치, 너무 놀라서 인간의 몸에 대한 통제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됩니다….”
“예?”
다음 말은 내 이해를 넘어선 이야기였다.
“왕이시여, 아니 됩니다. 아니 됩니다!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섣불리 손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운전석의 백작이 갑자기 축 늘어졌다.
“… 배, 백작님?”
“…”
“백작님?”
두어 번 흔들었을 때, 상대가 멍하니 눈을 떴다.
“어이쿠, 회장님 오셨습니까?”
“…”
상대는 이미 백작이 아니라 원래 몸의 주인, 내 운전기사였다.
“아이고, 아무래도 제가 넋 놓고 잠들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닐세. 집으로 가지.”
“예!”
백작은 아까의 말을 마지막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
‘중요한 비밀 한가지가 밝혀졌습니다. 이스의 왕은 진짜 죽은 게 아니었네요.’
‘백작의 말로 미뤄볼 때, 은총을 준비 중인 모양입니다.’
‘은총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본체가 사라지기라도 하는 건가?’
‘그래서 고위 계급도 왕이 죽은 줄 알았나 봅니다. 그런데 가인 군, 은총이 대체 뭐죠?’
‘모르겠네요. 정황상 관리국이 말한 인류의 진화와 연결된 무언가 같은데.’
잠시 고요한 침묵이 관측소를 채웠다.
곧, 상현은 체력을 회복할 겸 관측을 일시 중단한 가인에게 질문했다.
‘또 다른 의문이 있습니다. 보니까 왕이 자신의 계획을 공작을 포함한 이스의 종족에게 밝히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다들 지구에서 이 난리겠죠.’
‘왜 밝히지 않았을까요?’
‘… 백작이 보인 마지막 태도가 그 답 같군요.’
‘네?’
‘계획을 밝히면, 이스의 종족이 반대할 테니까.’
가인은 화이트보드에 빠르게 백작이 한 말을 적었다.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섣불리 손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다.」
‘왕의 계획은 이스의 종족이 보기에도 지극히 위험합니다.’
‘으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종말 이전 시점에선 이스의 왕은 살아있습니다. 소멸했을지도 모른다는 건 이스의 종족의 착각이었죠. 하지만!’
‘종말 이후 시점에선 정말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이스의 종족이 보기에도 터무니없이 위험한 일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다면 말입니다.’
그때, 멍하니 듣고 있던 승엽이 손을 들었다.
‘가인 형, 듣다 보니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봐.’
‘죄수가 목숨 걸고 시도할 만한 일이 세상에 뭐가 있을까요?’
‘…’
*
– 이석환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다.
운전기사가 다시 백작으로 변해 날 압박하거나 하진 않았다는 이야기다.
결국, 해결하지 못한 여러 의문을 마음속에 품은 채 귀가해야 했다.
— 딩!
“아빠~! 오셨어요?”
언제나 그렇듯, 날 반기는 자식들을 보자 마음속 먹구름이 말끔히 개었다.
명문 학교에서도 수석을 놓치는 법이 없는 자랑스러운 장남 정호.
누굴 닮았는지, 당당한 체격과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둘째 진욱이.
여기에 귀여운 목소리로 빙그레 웃는 아직은 어린 막내 희윤이까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희윤이부터 순서대로 가볍게 머리를 쓸었다.
그러자 속이 깊은 막내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무슨 일 있으셨어요?”
“…”
“아빠? 술 냄새는 안 나는데.”
“하하! 아니다. 일은 무슨!”
말하던 중, 은솔이가 보이지 않음을 알았다.
“희윤아, 은솔이는 어디 있니?”
그러자 진욱이가 킥하고 웃었다.
“은솔이 지금 삐져서 침대에 누워있을걸요?”
“왜?”
“아까 엄마한테 엄청나게 혼났어요!”
“허허, 무슨 일인데?”
“몰라요!”
다 똑같은 자식이라지만, 조금 더 아픈 손가락은 있는 법.
아내에겐 은솔이가 그런 존재였다.
다른 자식들보다도 특별히 더 친하지만, 그래서 조금 더 심하게 다그치는 관계.
종종 의아함을 표하긴 했으나 딱히 말린 적은 없다.
회사 일에 집중하려면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겨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그래. 아빠는 좀 쉴 테니, 너희도 이만 자거라.”
“네!”
곧, 테라스에 혼자 앉아 가볍게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백작을 만나며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이완됨을 느낀다.
그렇게 오늘의 일을 다시금 되새기려는 시점.
— 팅!
문이 열리며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음? 아, 당신이군.”
사랑하는 아내였다.
보아하니, 아이들에게 ‘오늘 아빠에게 무슨 일 있었나 봐요!’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
“하하, 걱정할 것 없어요. 별일 없었으니. 그냥, 일이 좀 피곤했을 -”
“너는 이번에도 나를 실망하게 하는구나.”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충격 속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허, 허엇, 이게 무슨 -”
빙그레 웃는 여인의 눈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 ‘왕’이 내게 또 약속을 어겼냐고 묻고 있음을!
“아닙니다! 야, 약속을 어긴 게 아닙니다!”
“…”
“화, 확인해 보십시오! 제가 자의로 약속을 어긴 게 아닙니다. 그, 배, 백작이라는 존재가, 아, 알 수 없는, 히, 힘으로 절 강제해서 -”
“반만 맞는 변명이구나.”
“예, 예?”
“은총에 대한 정보가 새어 나감은 네 자의가 아니긴 했지. 하지만….”
곧, 상대가 빙그레 웃으며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다음은 네가 직접 질문하며 화근을 만들지 않았느냐?”
맞아! 맞다!
내가, 내가 백작에게 질문했다.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네 어린아이 중 하나를 점지했노라.’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 궁금해서 참지 못했다.
이를 깨닫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공포가 날 사로잡았다.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
처음 그 말을 어겼을 때의 일을 기억한다.
죄 없는 사람 10명이 악마에게 조종당해 스스로 혀를 뽑던 혐오스러운 광경을 기억한다!
심지어 이곳은 내 집이 아닌가?
자식들이 귀신에 홀린 듯 스스로 혀를 뽑는 광경을 상상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제발…. 제발…. 차라리, 제, 제 혀를 뽑아 주십시오.”
“…”
“아이들은 죄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모른단 말입니다…! 제 혀를 뽑으시고 -”
그때, 여인이 빙그레 웃으며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녀는 천천히 식은땀에 젖은 내 얼굴을 닦아냈고, 진즉 무릎 꿇고 있던 나를 일으켰다.
“와, 왕이시여?”
설마 이번엔 용서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백작은 나를 왕의 충직한 종이라 여기지 않았는가!
오랜 세월 왕을 위해 봉사했으니, 이번엔 잘못을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
이런 희망이 마음속을 슬금슬금 채웠을 때.
왕이 입을 열었다.
“아이야.”
“예, 예!”
“너는 내가 누구라 생각하느냐?”
“와, 왕이라 하시지 않았습니까? 위대하신 -”
“그것 말고, 이 몸을 말함이라.”
“… 제, 제 아내의 몸입니다. 왕께서 잠시 제 아내에 임하셨으니 -”
“잠시 네 아내의 몸에 임했다?”
“예?”
곧,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리하면, 아이야. 네 아내의 이름은 무엇이냐?”
“무슨 -”
그 순간, 나는 진정 말도 안 되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 아내의 이름을 묻지 않았느냐?”
수십 년을 함께하며 네 아이를 낳아준 아내.
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다.
“또 묻자꾸나. 아이야, 네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느냐?”
나는 또한,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그녀가 바로 내 눈앞에 있는데도….
아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인지할 수 없었다.
아름다운지, 추한지, 젊은지, 늙었는지 – 그런 걸 떠나서 사람인지 촉수 덩어리 괴물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
뇌가 녹아내릴 것만 같다.
나는 오늘의 기억을 감당할 수 없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 모든 기억을 영원히 잊으리라 맹세했다.
*
– 이은솔
— 화아앗!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나비가 다시금 ‘이은솔’로 돌아왔다.
이 순간, 나는 정말이지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이, 이게 무슨 개 미친!”
아예 정신줄을 놓고 휘청이려는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은솔아.”
아주….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목소리였다.
또한, 이 순간 우주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의 목소리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