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6)
EP.677 677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1)
677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1)
– 이은솔
“은솔아.”
으악!
순간, 정신이 반쯤 나간 채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내, 내 어머니가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드높은 외계신이라고?
그럼 나는 뭔데!
설마 나도 이스의 종족이라던가!
끔찍한 생각이 머리를 채우며 이성이 마비되려는 순간!
호텔에서 쌓아온 어마어마한 경험 덕분에 마음 한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테랑 요원인 아리는 단 한 번도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의심한 적 없어.
친화의 힘으로 혼돈체를 유혹할 수 있는 송이도 날 홀린 적 없고!
그러면 나는 뭐야?
인간인데, 죄수의 손길이 닿은 인간?
모르겠어…. 모르겠다고!
어떻게든 들끓는 정신을 진정시키려는 시점, ‘어머니’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내가 아닌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 결국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쓰고 말았구나.”
호접몽으로 인한 동화가 풀리며 내 정신은 아버지와 분리되었고, 아버지 역시 이미 정신을 차린 지 오래다.
물론, 의식만 돌아왔을 뿐 아버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허억! 헉! 아, 아…!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아예 정신을 반쯤 놔버린 아버지의 표정을 보라.
이 순간, 나는 진심으로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꼈다.
아내는 정체 모를 악마요, 자식들은 그 악마가 빚어낸 불가해한 존재.
진실한 사랑이라 믿었던 모든 것들은 우주적인 악마가 빚어낸 환영에 불과하다.
과거의 아버지는 도저히 위와 같은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망각을 택했다.
이제 망각은 풀렸고, 악마는 다시금 아버지의 앞에 나타났다.
“너는 이제 마지막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아…. 제발…. 제발…!”
아버지는 대가가 무엇인지조차 묻지 못했다.
이미 이성을 잃었고, 그저 절망하고 또 절망하며 아득한 운명에 고통받을 뿐.
‘어머니’의 다음 말은 어떤 감정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정해진 운명의 선고와도 같았다.
“내가 너에게 베푼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으스러질지니라….”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베푼 가장 가치 있는 것!
듣는 순간, 아버지가 치러야 할 마지막 대가가 무엇인지 알았다.
나다. 우리다.
나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없는 힘이 거친 족쇄처럼 내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억…!”
저항할 수 없다.
호접몽도, 유산도, 축복도 – 그 어떤 힘도 지금의 나를 구해줄 수 없었다.
동료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그럴 리가! 되려 지금 이 자리에 나뿐임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며 곧 다가올 죽음을 맞이하려는 시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침착해지려무나.”
“…”
“필멸자처럼 생각하지 말거라. 네겐 다음 기회가 더 있지 않니?”
“…”
“목이 좀 아프겠지만, 생각할 시간은 있단다.”
마치, 내게 충고하는 듯한 ‘어머니’의 태도에서 기이함을 느꼈다.
지금 내가 죽어가는 원인이 바로 어머니일 텐데…!
고통 속에서 떠올린 첫 번째 생각, 죄수.
저주의 방에서 죄수가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게 가능할 경우, 애초에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방마다 다르지만, 죄수는 대체로 억제되어 있다.
그런데, 죄수는 인간을 아득히 능가하는 지성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제약을 극복하려 시도할 때가 많다.
104호의 주는 ‘해결해라. 너희가 유산을 얻으면 그게 곧 나의 승리다’라는 전략을 준비했지.
203호의 아드라비타는 ‘참가자의 죽음이 방의 종료라면, 영원히 죽이지 않겠다’라는 전략을 준비했어.
그렇다면, 어머니의 전략은 무엇일까?
…
이 상황 그 자체다.
내가 죽어가는 이유?
어머니가 ‘지금’ 손을 써서 날 죽이는 게 아니야.
아주 오래전, 아버님이 처음으로 이스의 왕을 만났을 때 들었던 저주에 가까운 언령을 생각하라.
‘침묵하라. 잊어라. 복종하라. 나는 네게 세 번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 안배가 아버님이 세 번 약속을 어긴 현 시점 작동 중인 상황.
저주의 방이 시작되면, 죄수 역시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게임이 시작하기 한참 전에 미리 지뢰를 깔아뒀다.
어쩌면 나의 존재 자체가 상대의 설계일 수도 있다.
원하는 장소, 원하는 시기에 준비한 안배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임을 위한 설계.
“뭔가 알 것 같니?”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낀다.
이 순간, 우습게도 나 역시 깨닫고 말았다.
어머니의 이름을 모르겠다.
어머니가 어떻게 생기셨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데도 인지할 수 없다.
피리를 사용하면서 바라보면 진실한 정체가 보일까?
하긴, 보면 더 위험할지도 모르지.
나는, 고통 속에서 억지로 입을 열어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 당신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부처님 손바닥 위입니다.”
절망과 아찔함 그리고 약간의 반항심을 담은 말.
답변은 간단했다.
“나도 알고 있단다.”
“…”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는 지극히 허무한 꿈에 매달리지. 하지만, 그는 진실로 우주에서 가장 지고한 자다.”
“…”
“더 할 말은?”
슬슬 입을 여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끼며 억지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생기는 거죠?”
답변을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의외로 답변은 돌아왔다.
“상승이 아닌 하강.”
하강?
까마득한 의식 속에서 다가온 마지막 깨달음.
어머니의 ‘표정’ – 내가 이걸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에 담긴 기묘한 감정.
아쉬움.
안타까움.
실망감.
“이 상황은 당신이 바란 것이 아니었어….”
이것이 내 유언이었다.
*
— 치지직!
마치 전원이 끊기기라도 한 것처럼 은솔을 향한 관측이 강제로 중단되었다.
송이를 향한 관측은 강원도 지하 유적에서 진즉 끊긴 상황.
결국, 가인은 한숨을 내쉬며 망원경에서 고개를 들었다.
“일단은, 관측할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
다급한 표정의 미로가 즉시 입을 열었다.
“더 기다리면! 묵성이가 시간을 돌릴 것 같다며! 그러면 -”
“그러면 송이와 은솔 누나가 부활하면서 다시 관측이 시작되려나? 그럴 수도 있겠네.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
“기다려 보자. 내 생각에, 시간이 돌아가면 망원경이 초점을 맞추는 소리를 낼 거야.”
가인의 말에 잠시 관측소가 조용해졌다.
곧, 말없이 서성이던 상현이 중얼거렸다.
“충격적이군요.”
“…”
“이렇게 놀란 일이 언제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호텔에서 온갖 일을 겪어 어지간한 일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
“은솔 양이 인간이 아닌 겁니까? 죄수에 의해 잉태된 존재? 이스의 종족?”
“모르겠습니다. 은솔 누나도 확신이 없어 보였고.”
“모르겠다니요?”
“일단, 이스의 종족은 육신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은솔 양의 몸 자체는 인간이 맞겠군요. 영혼은?”
“첫 시도 때를 생각해 보시길. 인간의 몸을 강탈한 이스의 종족에게도 친화의 축복이 먹히지 않았습니까?”
“은솔 양에게 친화의 축복이 통한다는 정황은 그동안 없었지요?”
“있었다면 송이가 알았겠죠.”
“으음….”
무어라 단정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
곧, 가인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관측이 끊기기 직전, 누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이 상황은 당신이 바란 것이 아니었어…. 라고 하더군요.”
“허어?”
그때, 가인이 교대 시간마다 정리해 둔 노트를 보고 있던 승엽이 말했다.
“여기, 여기! 가인 형, 이거 보세요!”
승엽이가 지목한 곳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마침내 기회가 왔구나.」
「최초에 준비한 아이가 아닌 점은 아쉽지만, 이 또한 운명이라.」
「이로써 모두가 영광스러운 결말을 얻으리라.」
“송이 양이 관측이 끊기기 직전에 중얼거린 말이군요.”
“정황상, 송이가 죄수에게 들은 말을 따라 한 겁니다. 물론, 우리 들으라고 한 말이겠죠.”
가인은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곧 재미있다는 듯 표정을 지었다.
“송이가 들은 이야기, 은솔 누나가 들은 이야기. 두 이야기를 합치니까 윤곽이 보입니다.”
그 말에 다른 세 사람의 시선이 가인에게 모였다.
“상황이 이스의 왕의 의도에서 벗어난 이유가 무엇인가? 은솔 누나가 아닌 송이가 강원도 지하에 갔기 때문입니다.”
“으음!”
“죄수의 관점에서 생각해 봅시다. 참가자를 강원도 지하로 유도할 수 있는 근거, 회장의 과거 기억을 안배해 뒀죠?”
자연스럽게 회장의 과거 기억 역시 ‘죄수의 안배’라고 하는 가인의 말에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 회장은 마침, 은솔 누나의 아버지입니다. 즉, 적절한 근거를 은솔 누나 바로 옆에 배치한 거죠.”
이쯤에서 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솔 양을 강원도 지하로 유도할 생각이었군요.”
“그런데, 우리의 실제 진행이 달랐습니다. 회장의 기억에 봉인된 부분이 있음을 알자, 은솔 누나는 회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판단했죠.”
“그 대신 송이 양이 강원도 지하로 갔지요.”
“아무리 죄수라도 여기까진 계산하지 못한 겁니다. 왜? 안배 시점에선 존재조차 알지 못한 또 다른 참가자가 엮인 변수니까. 이게 그녀의 한계입니다.”
죄수의 안배, 죄수의 한계.
그 말에 미로는 살짝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이스의 왕의 한계라니….”
“301호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습니다만, 최소한 ‘죄수가 바라는 전개’가 무엇인지 알았으니 큰 소득입니다. 이스의 왕은 은솔 누나가 강원도 지하로 오길 바랍니다. 송이가 간다? 탐탁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뭔가를 시작은 하지만!”
“실패하겠군요.”
“실패합니다. 아마, 은솔 누나랑 대화한 시점엔 이미 실패한 시점이었을 겁니다.”
여기까지 설명을 끝낸 후, 가인은 마지막 문장을 덧붙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 명심해야겠죠. 위 시나리오는 모두 이스의 왕이 바라는 결말입니다. 그게 우리에게도 긍정적인 결말인지는, 글쎄, 조금 더 봐야겠지요.”
가인의 설명이 끝날 때쯤, 상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고, 곧 옆의 미로 역시 비슷한 반응임을 깨달았다.
말하는 가인 본인은 딱히 의식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상현과 미로가 생각하기에, 당연하다는 듯 죄수의 한계를 논하는 가인의 태도는 어떤 의미에선 또 다른 아찔함이었다.
“어쨌든, 기다려 봅시다. 아시다시피 저주의 방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
– 김묵성
— 부우웅!
정신없이 서울 시내를 달리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은솔이를 만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말이지.
“후….”
송이와 아리는 강원도 지하에서 연락이 끊겼다.
그 자리에서 도망칠 때 엘레나 역시 이탈했지.
은솔이도 더 이상 연락이 되질 않아.
마지막까지 같이 있던 진철이 녀석도 10분쯤 전에 정체 모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정황상, 나 하나 남아서 도망치는 상황.
— 고오오오…!
다시금 세상 전체에 울려 퍼지는 기이한 굉음!
“…”
이번에는 아까와 달랐다.
그냥 소리만 터져 나오는 게 아니라, 피부를 툭 건드리는 듯한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곧, 사방에서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쾅! 우르릉! 꺅!
멀쩡히 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인도를 덮쳐 사람을 친다.
심지어 버스 한 대가 대놓고 건물을 들이받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진 시내!
“이쯤이겠지?”
습관적으로 입을 열었다가 뒤늦게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깨달았다.
어쨌든,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은데 말이지.
이 정도면 밖에서 구경하는 놈들이 이것저것 많이 알아내지 않았겠어?
그리 생각하며 왼손을 펼쳤다.
“…”
신비로운 빛을 발하는 동전 – 원 모어 찬스.
‘딸깍!’이면 두 번째 시도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
다만, 한 가지 두려움이 엄습했다.
“… 역천의 대가.”
저주의 방에서 역천의 대가는 어떤 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 팅!
빛이 있으라.
이로써 삼라만상에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
「김묵성(소통) -> 김〿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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