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8)
EP.679 679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3)
679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3)
– 유송이
여고생 유송이로 살아가기 시작한 지 3일 차.
나는 과거의 내가 꽤 불성실한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 휘이익!
“유송이! 수업 시간에 누가 머리 박고 잠 – 어?”
“아.”
날아오는 분필을 제대로 보지도 않으며 한 손으로 쳐냈다.
주변 애들은 재밌다는 듯 낄낄거렸고,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다들 우연이라고 생각하겠지?
방금 솔직히 좀 뿌듯했어!
나도 이제 날아오는 분필 정도는 눈 감고도 쳐낼 수 있다!
“죄송합니다.”
진짜 도움 안 되는 능력이네.
날아오는 총알을 쳐내는 것도 아니고, 분필처럼 느려터진 걸 쳐내는 정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 이렇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끝에 수업이 끝났다.
멍하니 교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아리가 나타났다.
“뭔가 느껴지는 것 있어? 신비로운 기억이 떠오르고 있다던가?”
“전혀.”
“… 너무 쉽게 말하지 마. 이쯤 되면 네가 뭔가 깨달을 줄 알았는데.”
“모르겠는 걸 어떡해?”
아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어깨만 으쓱했다.
“네가 자꾸 물어보니까 더 모르겠어.”
“… 요 며칠, 네 행동을 보다가 느꼈는데.”
“뭔데?”
“되게 목적 없이 살아가는 것 같아.”
“…”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원래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나랑 비슷하다고!
“그냥 시간을 낭비하는 삶? 나른한 고양이처럼 낮잠만 자는 인생 -”
“너, 지금 나랑 싸우려는 것 맞지?”
“이제 알았어?”
아리가 킥킥거리더니, 내 팔을 끌고 빈 교실로 들어갔다.
“자, 자. 너랑 내가 대화하면 눈에 띄니까 시선 정도는 신경 쓰자.”
“…”
“진지하게 말하면, 수업에 끝나도 집에 잘 안 간다고 느꼈어. 딱히 뭘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지.”
“난 원래 이랬어.”
“그래. 원래 그랬으니까 그 행동을 반복 중이겠지. 내 말은, 왜 집에 가지 않냐는 말이야.”
“… 부모님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요즘 엄마는 집에 있을 때가 많거든.”
“아~ 이해했어.”
아리는 잠시 머리를 갸우뚱하며 고민한 후 말했다.
“그러면, 과거의 넌 밤까지 집에 가지 않고 싸돌아다니다가 뭔가 겪은 건가?”
“… 그럴지도.”
“계속 시간만 보내면 한도 끝도 없겠어. 이렇게 하자.”
*
– 이은솔
시간을 돌린 묵성 할아버님 덕에 모두가 깨달은 사실!
밖에서 세운 플랜 A는 배드엔딩 직행이다.
그래서 방 내에서 동료들이 즉흥적으로 세운 플랜 B는 간단하다.
호텔 참가자 이은솔이 아닌 대양그룹 상무 이은솔로 살아가며 ‘최초의 소원’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3일이 흐른 지금, 한 가지 사실은 명확히 깨달았다.
내 형제자매들은 좀 재수 없는 사람들이었구나.
“하핫! 은솔아, 소식 들었어.”
“…”
“상하이 프로젝트가 파토났다면서? 우와…. 이거 큰일인데? 그룹 차원에서 많이들 기대하던 것 아니었어?”
“…”
“야, 야! 어떡하냐? 너 상하이 테진 그룹과 협업하려고 1년 넘게 애썼잖아?”
사업 진행이 꼬인 날 대놓고 조롱 중인 이 남자의 이름은 이진욱.
그는 대양그룹 회장님의 자랑스러운 둘째이자 내 오빠 되는 분이시다.
“어쩌냐? 우리 은솔 상무님 스트레스 많으시겠다야! 그래, 오빠가 좀 도와줘?”
대놓고 날 긁는 중인 오빠.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은 짜증이라기보다는 생경함이었다.
애초에 ‘상하이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부터 모르겠어.
오빠가 보기엔 내가 1년 이상 애쓴 프로젝트라는데, 호텔에서 구르는 사이 완전히 다 까먹은 모양이네.
또, 이런 하찮은 일로 누군가와 싸우는 것 자체가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러자 진욱 오빠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혹은, 지금 내 말에 본인도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꼈는지도 모르지.
“이렇게는 무슨…. 으흠! 은솔아, 아버지가 실망하신 것 같더라. 대답을 준비해.”
내내 놀리고 비꼬는 말투였던 오빠였지만, ‘아버지가 실망한 것 같으니까, 대답을 준비해’라는 말 만큼은 진심 어린 걱정이 1g 정도 느껴졌다.
이게 우리 4남매가 공유하는 기본 감정이다.
서로에 대한 경쟁심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
“…”
아버지, 대양그룹 회장 이석환.
언제나 남매간 경쟁심을 자극하곤 했던 문제 많은 사람.
묵성 할아버님의 말에 따르면, 이전 루프의 기억을 예지몽이라 착각 중인 불완전한 회귀자이기도 하다.
“예지몽….”
“뭐?”
“신경 쓰지 마. 나 이제 바쁘니까 -”
“예지몽? 그거 아버지가 가끔 하시던 말이네.”
순간 당황했다.
“뭐? 아버님이 예지몽 이야기를 했었다고?”
이번엔, 오빠가 의아하다는 듯 날 보았다.
“너도 같이 여러 번 들었잖아?”
“…”
“종종 아버지가 술 마시면 하던 이야기 아니었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꿈에 의존하곤 했다.”
“이럴 수가.”
“왜 그래? 오늘 뭐 점심부터 술이라도 했냐?”
듣고 보니 정말이었다.
오빠 말대로 아버지는 이전부터 종종 술에 취하면 꿈을 꿨다는 둥 하시곤 했었지.
단지, 과거엔 그런 말을 흘려들었을 뿐이다.
회귀나 루프 같은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고, 혼돈 재해는 관리국이나 신경 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심히 흘려보냈지만, 알고 보면 큰 비밀이 숨겨져 있던 기억이 이것 뿐일까?
“오빠, 더 기억나는 것 없어?”
“뭐?”
“이상한 기억, 살면서 겪은 황당한 일, 종종 의문을 품었던 기현상. 이런 것 없어?”
오빠는 순간 당황한 듯 어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대화 주제가 왜 갑자기 이러냐?”
그 말을 듣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실수! 플랜 B는 호텔 참가자가 아니라 대양그룹 상무로 사는 거였잖아?
조금 전의 행동은 너무 참가자 같았어.
“… 됐어. 그냥 나가.”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나가라고 하자 오빠도 어이없다는 듯 나가려는 시점.
갑자기 문 앞에서 멈춘 오빠가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네 말을 들으니 하나 생각나는 게 있네.”
“생각나는 것?”
“우리, 어릴 때는 여행을 참 많이 다녔잖아?”
“그랬나?”
“너랑 희윤이는 너무 어려서 잊었을 수도 있겠다. 어머니가 여행을 참 좋아하시거든.”
“그랬던 것 같기도.”
“특이한 여행이 많았던 것 같네.”
“…”
“어머니 취향이었나? 모르겠다.”
“뭐가 특이했는데?”
“막상 말하려니 잘 기억이 안 나네. 집에 가서 한번 여쭤봐.”
*
업무실에 혼자 남은 채 여러 키워드를 떠올렸다.
참가자가 아닌 대양그룹 상무 이은솔.
호텔에 빌었다는 최초의 소원.
모두, 호텔에 오기 전의 기억을 말함이다.
나 말고도 많은 동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호텔에 오기 전의 기억은 많이 흐릿해졌다.
호텔에서의 경험은 죄다 평범한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양그룹 상무 이은솔’이라는 평범한 인간의 기억은 대부분 망각의 파도에 휩쓸려 간 지 오래.
덕분에 다음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어머, 어머! 죄송해요, 죄송해요!”
“…”
이 순간, 나는 비서가 왜 사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름도 헷갈리는 비서는 곧 사과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커피 미리 타뒀어야 했는데…! 제가, 어, 상무님 내일 일정을 정리하느라 순간 -”
그제야 과거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업무 중엔 탁자 위에 항상 따뜻한 커피가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었지?
이게 무슨 말이냐고?
커피잔이 비었거나 식기 전에 비서가 계속 따뜻한 커피로 교체해 놓아야 한단 이야기야.
또, 원두는 언제나 에티오피아산 예가체프여야 하며, 적정 온도는 70도에서 80도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여기까지 떠올린 후, 멍하니 내 오른손을 보았다.
원두는커녕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요, 진작 다 식었다.
이래서 비서가 불호령이 떨어질까 무서워서 저러는구나.
“상무님, 제가 바로 -”
“됐어, 됐어.”
“예?”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
내게 혼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비서의 태도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에티오피아산 예가체프 원두는 대체 뭔데?
그냥 대충 믹스커피나 마시라고!
적정 온도가 뭐 어째?
커피가 좀 식으면 얼어 죽나?
과거의 은솔이, 참 웃기지도 않은 사람이었구나.
“…”
아니지, 아니야! 지금은 짜증 내는 게 맞지 않아?
원래 살았던 대로 살아야 과거의 일이 그대로 재현될 것 같은데….
“야!”
“히익!”
“너 월급 받고 하는 일이 뭐야? 커피 하나도 제대로 못 타는 게 무슨 비서라고!”
“죄, 죄송합니다!”
이름 모를 비서야, 미안해.
예전의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별수 없구나.
동료들에겐 이런 모습 보인 적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긴, 호텔 파이오니어 같은 장소에서 주변 사람에게 갑질한다면 그건 인성 문제가 아니라 지능 문제겠지만.
*
‘… 은솔 양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떠오르는 기억이 없진 않네요.’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까?’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기억을 보았을 때, 직원들에게 자연스럽게 명령하는 모습이 보였거든요.’
‘이런!’
*
늦은 시각,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회사에 있으려니 어색한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간,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돌이켜보면, 예전에도 짜증 나는 날은 그냥 회의 때려치우고 퇴근하곤 했었지.
상무가 이래도 되냐고?
회장님 딸은 이래도 돼.
내 방 업무실에 앉아 챙겨온 서류를 대충 끄적이며 생각했다.
과거의 나 – 대양그룹 상무 이은솔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흐릿한 기억과 날 대하는 주변인의 태도를 보니 몇 가지는 느껴졌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원망한다.
남매들에 대한 경쟁심이 상당하다.
대양그룹에 대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 한편, 나만의 사업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
이런 것들이 최초의 소원과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지금처럼 상무로서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나?
“…”
이런 분석적인 접근 자체가 호텔 참가자 같은 행동 아니야?
진짜 과거의 나였다면 최초의 소원이니 이런 단어 알지도 못했잖아!
이 상황, 딱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같은 느낌이네.
A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A에 사로잡히고 있다.
“후유….”
그렇게 한숨 쉬며 내 방 냉장고에서 요깃거리나 찾으려는 시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솔아, 오늘은 일찍 퇴근했구나?”
“네. 고민할 게 좀 있어서요.”
— 드득!
“어?”
방이 살짝 흔들린 것 같았다.
순간, 바깥 동료들이 폴터가이스트로 경고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렇게 보기엔 너무 짧았다.
이게 뭔가 싶어 당황하는 시점, 어머니의 따뜻한 혹은 – 재미있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놀랐단다.”
“네?”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은데…. 그렇지?”
진욱 오빠가 그새 상하이 프로젝트 어쩌고저쩌고했나 보네.
지금의 나에겐 아무 상관 없는 문제인데 말이지.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 말하니 다행이구나. 내가 항상 널 응원하는 것 알지?”
“그럼요.”
“… 다시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도와줄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