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79)
EP.680 680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4)
680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4)
– 이은솔
이른 아침, 언제나처럼 가볍게 씻고 출근 준비를 끝냈다.
자연스럽게, 대양그룹 상무로서 출근하려던 차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엄마?”
“오늘은 회사 쉬고 나랑 데이트나 할까?”
어제 오빠에게 시비 걸리고, 아버님께 한 소리 들어서 불쾌하긴 했지만….
겨우 그 정도가 갑자기 휴가 내고 쉴 정도는 아니지 않나?
“괜찮아요. 그냥 -”
“이미 다 말해뒀어.”
“예?”
“네 아빠에게 너 오늘 휴가라고 말했단다.”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미 상황이 끝나 있음을 깨달았다.
“아버님이 뭐라 안 하셨어요?”
“그럼.”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언제나 이랬지.
세간에선 대양그룹 하면 아버지의 강렬한 지도력과 카리스마를 떠올린다.
자연히 집안 분위기도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적인 분위기겠거니 미루어 짐작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는 꽤 다르다.
어머님은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의견을 내지 않았지만, 아주 가끔 입을 열 때면 아버님을 포함한 그 누구도 찍소리 한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말하는 순간 법이었지.
여기까지 떠올리니 어머니 말에 따라야 할 것 같았다.
플랜 B는 호텔 참가자 이은솔이 아닌 ‘대양그룹 상무 이은솔’처럼 행동하자는 것인데, 대양그룹 상무 이은솔은 또한 어머님의 딸이기도 하니까.
“좋아요.”
*
점심 무렵, 간만에 5성 호텔 VVIP 룸을 빌렸다.
본래는 당일 예약 따위가 가능할 리 없는 장소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대양그룹 일가는 당연히 그 예외에 속한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있으니, 곧 HT 백화점에서 보낸 모델 두어 명이 들어와 나와 어머님을 위한 패션쇼를 시작했다.
“상무님! 오랜만이에요!”
“그러게.”
“어머, 어머! 말투 너무 딱딱하시다~!”
허락하면 당장이라도 ‘은솔 언니~!’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봐.
느낌상 이 모델은 과거의 나와 꽤 친했던 것 같네.
친구야! 미안한데 이젠 네 이름도 잘 모르겠어!
이런 말 하면 충격받겠지?
“으흠…! 조금 덥네.”
“언니, 에어컨 온도 낮출까요?”
벌써 언니네?
나 얘 진짜 누군지 모르겠는데.
“괜찮아. 그보다, 조금만 떨어져 줄래?”
“네! 참, 이 코트는 어떠세요? 최근에 xx 갤러리아에서 나온 신상인데 -”
“…”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호텔을 오르며 일반인의 감성을 받아들인 지금은 살짝 느껴진다.
아까부터 백화점에서 보낸 모델들이 옷의 가격을 말하지 않고 있어.
1,000만 원? 3,000만 원? 설마 1억 넘는 건 아니지?
물건을 팔면서 가격은 일언반구도 없는 헛웃음 나오는 상황.
사실, 이상해할 것도 없어.
과거의 나는 그냥 마음에 들면 샀을 테니까.
— 타당!
그때,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던 옷과 간단한 요깃거리가 담긴 접시가 흔들렸다.
“어?”
“뭐야?”
이번에도 폴터가이스트인가 했지만, 고작 1~2초 만에 끝난 걸 보니 아니었다.
가인이가 장난칠 생각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헷갈리게 할 일은 없지 않을까?
“어머, 어머! 죄송해요. 에어컨 실외기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문득, 어머님은 괜찮으신지 궁금해서 옆을 보았다.
어머님은 천장을 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기쁘구나.”
“네?”
“은솔아, 힘든 일이 생겨도 힘을 내렴.”
“엄마도 참, 진짜 별일 아니라고 했는데!”
“항상 널 응원하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고. 보고 있으니 재밌구나.”
“낯부끄러운 소리를….”
중학생도 아닌데, 엄마가 널 항상 응원하니까 힘내렴! 같은 소릴 들으니 살짝 부끄럽네.
*
‘미치겠습니다. 은솔 양은 모르는데, 죄수만 눈치챈 것 같아서!’
‘…’
‘어떻게 해야 은솔 양이 알아챌까요?’
‘어려울 것 같네요.’
‘어째서?’
‘방금 상황만 봐도, 어머니와 함께 쇼핑 중인데 은솔 누나 본인 옷만 사잖아요? 어색하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이상하군요.’
‘알고 보면 이상한 장면이 한둘이 아닙니다. 밥을 먹는데 누나 음식만 주문한다거나, 테이블 위에 음료가 누나 본인 것뿐이라던가….’
‘…’
‘그런데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리를 쓸 일이 생겨야 정신 차리려나?’
‘정신을 차리면 더 위험할 것 같네요.’
*
식사 도중, 자연스럽게 오빠랑 싸운 이야기가 나왔다.
“아 진짜! 황당하지 않아요? 동생 일이 잘 안 풀리면 위로를 해주진 못할망정 비웃기나 하다니!”
“그러게. 내가 혼내줄까?”
“풋! 혼내긴 무슨! 진욱 오빠가 스무 살도 아니고….”
“글쎄다, 나는 스무 살이든 마흔 살이든 별 차이는 못 느끼겠구나.”
부모가 보기엔 자식이 환갑노인이 되어도 여전히 어려 보인다더니, 어머니에게 우리가 딱 그런 모양이다.
회사 이야기 겸 가족 뒷담화를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아무래도 그룹은 큰오빠가 물려받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왜?”
“왜는 무슨…. 특별한 문제 없으면 장자 승계가 기본이잖아요? 그게 분란을 줄이는 길인 것도 사실이고.”
“그래?”
“이사들도 다 큰오빠에게 줄 대고 있는 것 같더군요.”
말하면서도 순간순간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과거의 나는 대양그룹을 누가 물려받냐 따위에 관심이 많았지.
그래서 어머니 앞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긴 한데….
지금은 전혀 관심 없는 주제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관리국 하청업체 하나 누가 맡든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네.
“능력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니?”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그럼요. 아, 내가 상하이 프로젝트 말아먹어서? 하! 큰오빠가 말아먹은 사업들 다 합치면 -”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단다.”
“최소 2,000억은 말아먹은 – 네?”
“나도 네가 내 자식 중 가장 낫다고 생각한단다.”
순간 당황했다.
뭔가, 지금 이 말이 립 서비스 이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머님은 언젠가부터 내 형제들은 물론, 아버님도 느낄 정도로 날 편애하곤 했으니까.
당연히 나도 자주 느꼈고, 때로는 부담스러웠다.
“… 으흠. 엄마, 고맙지만 너무 편애가 심하신 것 아닌가요?”
웃으면서 말하는 내게 어머니는 더없이 진지하게 답했다.
“편애가 아니란다. 나는 내 자식들 모두에게 공평한 사랑을 베풀었으니까.”
“네?”
“단지, 너만 그릇이 되었을 뿐이지.”
이 이야기는 오빠나 여동생이 들으면 불쾌할 것 같아서 살짝 부담스러웠다.
지금의 내가 호텔 참가자임을 생각하면, ‘가장 성공한 자식’인 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때, 어머님이 종교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불가(佛家)에서 이르기를, 사람의 운명은 육도윤회에 속해있다 하였단다.”
“그렇게 말하죠.”
기독교 집안은 일상적인 대화 중에도 자연스럽게 성경 내용을 논하곤 하지.
불교 집안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다. 성경 말씀 대신 불교 교리가 나올 뿐.
“필멸의 삶은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단다. 너도, 네 형제들도, 네 아버지도…. 예외란 없지.”
“그렇죠.”
“안식은 순간이요, 고통은 길다. 행복은 지옥의 고통을 강조하기 위한 대비에 불과하지.”
예전이라면, 나도 별생각 없이 합장하며 대충 기억하는 불교 교리를 주절거렸을 것 같다.
지금은 뭔가 어색했다.
호텔 덕분에 불교, 정확히는 ‘부처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과거와 전혀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끊임없는 고통의 굴레를 끊을 수 있을까?”
“뭐, 해탈해야 한다고 하죠.”
해탈이란 몸과 마음의 고뇌와 번뇌로부터 영구히 해방된 상태를 말한다.
불교의 최종 목표라 해도 틀리지 않아.
“그러면, 육도윤회에서 가장 해탈하기 쉬운 계층은?”
육도윤회.
해탈하지 못한 필멸자가 영겁토록 수레바퀴처럼 반복하는 여섯 가지 삶의 길.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인간이었죠.”
“어째서일까?”
“너무 행복한 사람은 번뇌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에 해탈하기 어렵다. 따라서 고통과 행복의 균형이 맞는 인간도야말로 가장 해탈하기 좋은 환경이다. 이렇게 배운 기억이 나네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음, 솔직히 말하면, 그냥 교리를 쓴 사람이 인간이라서가 맞는 답 아닐까요?”
이런저런 말은 덧붙인 소리 아니야?
그냥, 교리를 인간이 썼으니까, 인간이 가장 유리하다고 하는 거지.
“아.”
문득, 지금 내 말이 종교인에겐 불쾌하게 들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호텔을 거치며 불교에 대한 믿음이 흐려졌기에 나도 모르게 냉소적인 말이 나온 것.
“아, 방금 말은 그냥 농담으로 들어주세요. 제가 -”
“… 꼭 틀린 말은 아니란다.”
“네?”
“해탈에 이르기 쉬운 삶과 어려운 삶은 실제 있을지도 모르지.”
“그, 그런가요?”
“이런 생각 해본 적 없니?”
다음 이야기는, 진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세상 어딘가에는, 태어날 때부터 해탈의 길에 들어서기 쉽게끔 만들어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진짜 특이한 생각이네요. 대체 어떤 사람인데요?”
어머님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아주 세심한 과정을 통해 태어나야겠지.”
“네?”
“극도의 노력과, 정교한 과정 끝에 창조된 존재여야겠지.”
정말 특이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및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나눈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말은 정말 이상했다.
“나는 네 전부를 사랑한단다. 네 마음 깊은 곳의 탐욕과 질시마저도….”
순간, 이해할 수 없는 환영이 어렴풋이 스쳐 갔다.
아주 오랫동안 잊었던 기억이다.
내가 하늘에 대고 무언가를 간절히 소망했던 순간이 있었다.
탐욕과 질시 그리고 부귀에 대한 갈망.
*
‘이 상황은 마치….’
‘마치?’
‘죄수가 누나의 소원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 같군요.’
‘…’
‘진행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죄수가 바라는 진행이 우리가 바라는 진행일지는 모를 – 어?’
‘왜 그러십니까?’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
– 유송이
늦은 시각.
아리와 함께 늦게까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연락도 없이 이 시간까지 돌아다녔으니, 부모님이 크게 혼내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래서 어쩔 생각이었냐고?
어쩌긴 뭘 어째? 그냥 혼나야지!
엄마가 막 소리쳐도 얌전히 고개 숙인 채 혼날 생각이었다.
부모님을 뵙기 전까진, 그럴 생각이었다.
“송이야, 오늘은 좀 늦었네?”
“…”
“연락도 없이 10시 40분은 심하잖아! 다음엔 전화라도 해. 알겠지?”
“…”
“유송이! 대답 안 해?”
“… 죄송합니다.”
열려있는 현관문에서 들이치는 서늘한 밤공기를 느끼며 깨달았다.
이 집에 ‘인간’은 단 한 명뿐임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