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0)
EP.681 681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5)
681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5)
늦은 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던 상현도 잠시 눈을 붙이러 떠난 시각.
가인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미로와 승엽이였다.
“그러면! 은솔이는 지금도 죄수랑 찰싹 붙어있는 거야?”
“24시간 붙어있는 건 아니지만, 이스의 왕이 누나 주변을 통제하고 있는 건 맞아.”
“은솔이는 출근도 안 해?”
“이미 휴가까지 냈어.”
“아이, 참~! 왜 이리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가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별수 없지. 애초에 우리부터가 직접 겪기 전엔 누나의 ‘어머니’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잖아?”
“그건 그렇지만…”
“누나도 똑같아. 의심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니까 당장은 답이 없네.”
“…”
“폴터가이스트로 정신 차리게 하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어. 이것도 교훈이지. 죄수쯤 되면, 관측소를 통한 개입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어렵넹.”
애초에 능력 자체도 이스의 왕 측이 우위일 텐데, 심지어 상대가 은솔의 바로 옆에서 상황을 조작하니 당해내기가 어려웠다.
“몬가 이상해…! 나, 이렇게 죄수가 마음대로 행동하는 건 처음 봐.”
가인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두 가지 생각은 들었어. 첫째, 이스의 왕은 마왕처럼 우릴 죽이려는 유형은 아니야. 모종의 목적이 있고, 그 일에 참가자가 필요해. 이걸 위한 준비도 많이 했지.”
“그래서 호텔에서 강하게 제약하지 않는다? 우릴 죽이려고 하지 않으니깐?”
“혹은 둘째, 약점이 분명히 있어. 우리가 그 약점을 모를 뿐이야.”
“약점이 있다?”
“회장에게 접근했던 백작이 했던 말을 생각해 봐.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섣불리 손대서는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했던 것 기억나지?”
“… 지금 너한테 들으니까 기억나.”
“강원도 지하에서 죄수가 벌이는 일은 이스의 종족이 보기엔 ‘죄수에게조차’ 위험한 일이야.”
“…”
“어쩌면, 죄수에게도 지금 상황은 상당히 버거울 수도 있어.”
여기까지 듣고 있던 승엽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러면! 다음엔 그냥 싸워보면 어때요?”
“…”
“가인 형이 은솔 누나 엄마를 죽여버릴 수 있다면 -”
“말을 그렇게 하니까 되게 패륜적으로 들리네. 어쨌든, 다음 회차의 일은 이번 회차 끝나고 생각하자. 후…”
말하던 중, 가인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 쉬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동료들이 ‘다음 회차’를 당연하다는 듯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번 회차에 해결은 무리라는 분위기가 동료들 사이에 번진 상황.
우울한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일까?
미로가 가인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도 봐! 아리는 역시 똑똑해!”
“…”
“그렇지? 상황을 대충 눈치챈 것 같아!”
“그건 다행이네.”
이 순간, 가인은 내심 간절히 소망했다.
설령 2회차 해결은 불가능하다 해도…
플랜 B, 은솔과 송이의 ‘최초의 소원 자각’만큼은 성공할 수 있기를.
*
– 유송이
“송이야, 현관에 가만 서서 뭐 하니?”
고개를 푹 숙인 내 마음속은 타오르는 활화산 그 자체였다.
당장이라도 내 앞에서 엄마를 흉내 내는 가증스러운 존재를 찢어 죽이고 싶었으니까!
내가 인내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순했다.
‘저것’의 영혼과 정신은 가증스러운 외계인일지언정, 육신은 엄마의 몸이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고 다짜고짜 죽이면, 어딘가에서 고통에 떨고 있을 엄마의 혼은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야?
바로 그 순간.
— 으적!
어느새 어깨 위로 올라온 페로가 인정사정없이 내 귀를 물어뜯었다!
“꺄아악!”
“어머, 어머! 페로, 얘 대체 왜 이래!”
“으악! 엄마아!”
“송이야, 가만, 가만히 좀 있어봐! 아니, 진짜 왜 이러는 거야!”
고통에 놀라 꺄아악! 거리며 입구에서 요란을 떠는 사이, ‘상대’는 마치 엄마처럼 행동하며 페로를 떼어냈다.
“아이고! 꼭 소독약이랑 연고 바르고 자야 한다. 알았지?”
“… 네.”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스의 종족은 참 연기를 잘하는구나.
*
혼자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누워있으니, 그제야 서서히 이성이 돌아왔다.
플랜 B는 나는 여고생처럼, 은솔 언니는 대양그룹 상무처럼 행동하며 과거의 일을 재현하는 것!
이를 통해 두 참가자가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는 게 목적이다.
조금 전의 나는 어땠지?
이스의 종족을 즉각 간파하고 분노와 살의를 느꼈던 모습들을 떠올려 봐. 전형적인 참가자 행동이야.
이스의 종족의 연기력은 지극히 뛰어나며, 평범한 인간이 즉각 알아본다는 건 말이 안 돼!
호텔에서 쌓은 경험, 축복의 적용 여부, 다양한 관점이 제공하는 신비로운 감각 등이 합쳐지니까 즉각 알아챈 거지, 이런 도움 없이는 몰라야 정상이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그래서 엄마의 몸을 빼앗은 외계인도 현관에서 날 의심하지 않았다.
‘평범한 여고생’이 보자마자 위장을 간파할 리 없다고 생각했겠지.
여기까지 깨닫자, 어느새 새장으로 돌아간 페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내가 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전에 페로가 막아준 셈이니까.
“고마워.”
— 삐익!
‘역시 넌 나 없으면 안 돼!’라는 페로의 생각이 전해져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 그래. 잘했어.”
지금도 마음속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끓어오르고 있다.
내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나 남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문득, 현실에서 가족을 만들었던 동료들이 생각났다.
당시엔 가족에게 집착하는 의사 선생님이나 할아버지 등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지금껏 내가 현실의 일에 초연할 수 있던 이유는 ‘진짜 가족’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구나!
“후…”
어떻게든 마음을 안정시키며 텔레오톡으로 아리에게 보안 메시지를 보냈다.
– 빨리 근처에 와봐. ‘소통’할 게 있어.
어플로 더 많은 이야기를 보내기는 걱정스러웠다.
뭔가, 지금도 내 방에 감시하는 눈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소통의 축복뿐이야.
중요한 내용은 대화창으로 하고 싶어서 소통에 따옴표 친 건데,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
아리는 눈치가 빠르니깐!
딱 1분 만에 대화창이 깜빡였다.
김아리 : 뭐야? 무슨 일 있어?
솔직히 좀 놀랐다.
대화창에 물리적 거리 한계가 있음을 고려하면, 할아버지와 아리가 이미 집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살짝 안심이네.
유송이 : … 부모님이 이스의 종족에게 몸 빼앗겼어.
아리에게도 충격이었는지, 다음 답변까진 약간의 텀이 있었다.
김아리 : 공교로운 타이밍이네. 그러잖아도 네게 할 말이 있었는데.
어째 대화창이 너무 빨리 반응하는 것 같았어. 이미 내 쪽으로 오고 있었구나?
유송이 : 할 말?
김아리 : 은솔이 근처로 가지 마.
유송이 : 왜?
김아리 : 뭔가 이상해. 근처에 가면 안 돼. 가능하면, 은솔이랑도 굳이 연락하지 마.
은솔 언니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물론, 플랜 B에 따르면 연락할 일이 없을 테니 큰 문제는 아니다.
평범한 여고생이 재벌 집 셋째 딸과 연락하지 않는 게 정상이니까.
유송이 : 알았 –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대화창이 ‘깜빡!’했다.
“뭐야?”
메신저 어플에 비유하면, 버그라도 난 것 같은 이상한 상황.
이게 뭔가 싶어 당황하는 사이, 더 이상한 답이 돌아왔다.
김아리 : 놀라지 마. 묵성의 축복이 살짝 불안정해졌어. 못 쓸 정도는 아니야.
유송이 : 이게 무슨 소리?
김아리 : 원 모어 찬스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은데…
원 모어 찬스의 부작용이라면, 역천의 대가를 말하는 건가?
역천의 대가로 할아버지의 축복이 불안정해졌다?
놀라서 대화창에 질문하려는 순간, 할아버지의 단호한 메시지가 나타났다.
김묵성 : 송이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유송이 : 어떻게
몇 글자 치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메시지가 연이어 올라왔다.
김묵성 : 지금, 이 행동 자체가 전형적인 ‘참가자 행동’이구나.
“…”
김묵성 : 플랜 B, 과거의 행동을 재현해서 최초의 소원을 자각한다. 네가 세운 계획 아니냐? 그럴듯한 계획을 세웠으면서 스스로 무너트리면 안 되지.
유송이 : 그러면 어떻게 해요?
답변은 아리가 대신 들려줬다.
김아리 : 여고생처럼 행동해. 과거의 너였다면 이스의 종족의 위장을 간파할 수 있었겠어?
유송이 : 무리지.
김아리 : 그러면 나가서 ‘엄마~!’라고 해.
유송이 : … 얼굴 볼 때마다 총으로 쏘고 싶은데.
김아리 : 어차피 총 없잖아?
침대에 누운 채 한숨 쉬는 사이, 아리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김아리 : 첫날 새벽의 일 기억해? 정체모를 안개가 네 집에 나타났었지.
유송이 : 당연히 기억하지.
김아리 : 아무래도 네 부모님 몸을 빼앗으려는 이스의 종족이었나보네.
유송이 : 빙의 전 정신체는 안개처럼 보이는 걸까?
김아리 : 그런가 봐. 첫날은 실패했거나, 집 구조 정도만 확인하고 돌아간 모양이네.
그때, 대화창이 또 ‘파지직!’하며 대화가 끊겼다.
아리 말마따나 대화창을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김묵성 : 송이야, 너는 301호가 네가 살아온 진짜 세상 같다고 했지?
유송이 : 네.
물론, 이 부분은 아직 확정은 아니야.
301호 내에서 나와 대등한 위치인 참가자, 은솔 언니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게는 진짜 세상이지만 은솔 언니에겐 아닌 게 아닐까? 이건 너무 이상한가?
모르겠어. 아직 3층, 301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쉽게 말할 수 없네.
이런 생각을 떠올리던 시점.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할아버지가 지적했다.
김묵성 : 그러면, 네 부모님이 몸을 빼앗긴 일이 네 현실에서도 벌어졌단 말이냐?
*
방 밖으로 나가니 거실에서 부모님이 도란도란 대화 중이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 중일까?
인간으로 위장 중이니까 평범한 인간 부부 같은 대화?
아니면 몸의 원래 주인이던 ‘천한 인간’을 조롱하며 –
그만! 참가자 행동 스탑!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미소녀야.
“하아암…!”
늘어지게 하품하며 자연스럽게 거실로 움직였다.
“귀는 이제 괜찮니? 소독약, 연고는 발랐지?”
“…네.”
“오늘은 왜 이리 늦은 거야?”
“친구랑 놀다 보니 시간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서…”
“아니야. 엄마도 예전엔 친구들이랑 노는 게 진짜 재밌었거든. 그렇지만, 이제부턴 미리 연락은 해줘. 걱정했잖니.”
“죄송해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떤 의미에선 정말 소름이 돋았다.
말이나 행동만 보면 전형적인 ‘엄마’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선, 진짜 엄마보다도 더 엄마 같아.
이렇게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상황을 견디며 어떻게든 착한 딸을 연기하던 상황.
불현듯, 이해할 수 없는 희미한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과거의 내가 했던 이야기.
– 오늘따라 사이가 좋으시네요. 진작 좀 대화도 하고 그러시지!
“… 오늘따라 사이가 좋으시네요. 진작 좀 대화도 하고 그러시지!”
순간 거실에 흐른 적막.
내 갑작스러운 말에 다른 두 ‘개체’는 순간 정지했고, 찰나 동안 시선이 오갔다.
마치, 지금 내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이해하려는 것처럼.
그래서였을까? 다음 반응은 자연스러웠다.
“어흠! 송이야, 엄마·아빠도 항상 노력 중이란다.”
“죄송해요.”
“아니다. 우리가 네게 참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하구나.”
두 외계인이 자신들이 맡은 ‘배역’에 점차 몰입해가는 상황.
나 역시 깨닫고 말았다.
지금과 같은 일이 과거에도 있었구나.
당시의 나는 참가자가 아니었고, 유산도 축복도 없었으니 별다른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했어.
그냥, 부모님이 평소보다 사이가 좋아졌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을 거야.
이 맥락에서 어떻게 최초의 소원이 이어지는 걸까?
의문을 느끼며 슬쩍 주변을 살폈을 때, 나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
부모님으로부터 위화감을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니었음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