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1)
EP.682 68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6)
68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6)
– 유송이
— 딩동댕~!
요란한 벨 소리와 함께 시작된 1교시 언어 시간.
나는 영혼 없는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간밤의 일을 되새기고 있어.
“…”
부모님이 이스의 종족에게 몸을 빼앗긴 후, 집은 몸서리치는 침략의 땅으로 바뀌었다.
놀라운 사실은, 부모님으로부터 위화감을 느낀 존재가 나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
해피를 비롯한 개는 물론, 앵무새나 고양이까지 부모님을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왜, 반려견이 혼자 허공을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유령을 보고 있는 거라는 말도 있잖아?
고양이가 죽은 자를 볼 수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무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있었어.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동물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인간이 느끼지 못한 변화를 느꼈을지도 모르지.
집안의 반려동물들이 보인 경계심보다 더 놀라운 건, 그 후에 내게 벌어진 일이야.
망각 속에 파묻혔던 기억이 마치 환영처럼 되살아나기 시작했으니까!
“으음…”
환영 속에서 과거의 나를 보았다.
오래전의 송이는 겁에 질린 해피를 보며 의아함을 느꼈고, 해피를 안은 채 아빠에게 상태를 봐달라고 했다.
물론, 아빠와 가까워진 해피는 숫제 발작적인 반응을 보이며 집안을 어지럽혔지.
과거의 아빠, 아니, 이스의 종족은 해피를 무척 서투르게 대했다.
마치, 아빠의 몸을 차지하며 수의사의 ‘기억’은 읽어냈지만, 수의사가 해야 할 자연스러운 행동까지는 몸에 익지 않은 것 같았다.
당시의 난 ‘아빠가 왜 이리 해피를 어색하게 대하시지?’라고 의문을 품었지.
즉, 과거의 송이가 반려동물들의 경계심과 이를 대하는 아빠의 어색함을 보고 위화감을 느낀 상황이야.
딱 이 시점에서 기억이 끊겼어.
그러니까 –
— 휘익!
또 선생님이 내게 분필을 던졌다.
“아.”
“아는 무슨 아! 유송이, 수업 집중 안 해?”
“죄송합니다.”
“그리고 방금 뭐야? 피했어?”
“…본능적으로 그만.”
어처구니없어하는 선생님과 근처에서 낄낄거리는 다른 학생들.
예전 같으면 꽤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그냥 귀찮을 뿐이다.
과거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자는 플랜 B가 아니었으면, 학교 같은 건 다니지도 않았어.
*
점심시간, 옥상에서 아리를 만났다.
“어떻게 생각해?”
아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플랜 B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그거 말고!”
“맞잖아. 본격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무슨 환상처럼 보기 시작했네. 현실에서 가인이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지. 통찰 덕에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봐.”
“그때 가인 오빠도 말하지 않았어? 통상적인 통찰과 달랐다고.”
“그랬지. 비슷한 일이 네게도 벌어지는 것 같네. 그리고…”
“그리고?”
“네 말대로면, 우리 모두 소원과 관련한 기억을 망각했나 보네. 호텔이 잊게 한 건가?”
“… 아마도.”
“왜 잊게 했을까?”
“어 – 그러니까 -”
“아, 됐어. 이런 고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네 소원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
플랜 B가 시작한 이래 할아버지와 아리가 일관적으로 보이는 태도가 바로 이런 부분이야.
내가 소원을 제외한 다른 주제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소위 참가자 행동을 그만두고, ‘여고생 유송이’의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고개를 까딱이던 아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수록 드는 생각인데.”
“뭔데?”
“어쩌면, 호텔에 오기 전의 나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밤새도록 고민한 내용이 바로 이거다.
호텔에 오기 전, 과거의 나는 어쩌면 부모님에게 벌어진 이변을 어렴풋이 눈치챘던 게 아닐까?
아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어제 네가 말하기로는, 평범한 인간은 이스의 종족의 위장을 간파할 수 없을 거라며?”
“평범한 인간은 그렇지.”
“뭐?”
다음 말은 내 입으로 하긴 살짝 부끄러웠다.
“그, 그니깐! 어쩌면 내가 평범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
“너, 너처럼 관리국 요원은 아니었지만 -”
“일리 있네.”
의외로 아리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호텔 참가자인 시점에서 우린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 어쩌면, 참가자가 되기 전부터 최소한의 비범함은 모두에게 있었을 수도 있지.”
“…”
“몇 가지 근거도 떠오르네.”
“근거?”
“첫째, 저걸 봐.”
아리가 손을 뻗어 옥상 저편의 레이저 포탑을 가리켰다.
“평범한 고등학교 옥상에 설치된 레이저 포탑. 포식형 비둘기 혹은 비등방성 반투명 말벌무리 등을 막기 위한 보안 시스템이지.”
“… 비등방 어쩌고는 처음 들어봐.”
“네가 살아온 세상이야. 혼돈 재해와 이에 대한 민간 차원의 대응이 활성화한 세상. 즉, 과거의 넌 혼돈 재해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은 있는 사람이야.”
“그, 그렇겠지?”
“이스의 종족이니 하는 구체적인 개념은 몰랐을 거야. 그렇지만, 정체 모를 악령이 부모님에게 빙의한 것 같다 정도는 떠올릴 수도 있지.”
301호, 혹은 과거의 내가 살아온 세상의 특성을 고려한 이야기.
‘유송이’는 호텔에 오기 전부터 혼돈 재해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은 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부모님으로부터 위화감을 느꼈다면, 무슨 악령의 소행으로 의심했을 수는 있다는 말.
아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어. 또, 설득력 있는 이야기기도 해.”
“설득력?”
“이스의 종족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생각해 봐. 그들에게 있어 개나 고양이는 외계 행성의 미물이야.”
“그렇지.”
“침략 대상인 인간의 습성 정도는 연구했겠지만, 개나 고양이 혹은 앵무새의 행동 양식까지 습득했을까?”
“… 아닐 것 같아.”
상대는 인간을 초월한 외계 종족이지만, 그렇다고 무슨 전능한 신은 아니다.
“육체 강탈 대상이 하필 수의사여서 집에 반려동물이 여럿이다? 딸은 동물의 반응을 캐치하는 데 익숙하고?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야. 철두철미한 침략자라 해도 행동에 빈틈이 나올 수 있지. 그 빈틈을, 어린 시절부터 동물에 익숙한 너였다면 어렴풋이 캐치할 수도 있고.”
“…”
“지금의 너처럼 축복, 유산의 힘으로 보자마자 즉각 알아채진 못했겠지. 하지만, 며칠 혹은 몇 주에 걸쳐 관찰한 끝에 의심이 커졌을 수는 있어.”
여기까지 쭉 설명하던 아리가 상황을 간단히 정리했다.
“요약하면, 호텔에 오기 전의 송이는 부모님이 정체 모를 존재에게 몸을 빼앗겼음을 알아차렸다. 맞지?”
“응.”
“그러면, 그다음은 뭐야? 그다음 전개도 떠올랐어?”
“…”
지그시 하늘만 바라보며 침묵하는 나.
아리는 순간 ‘얘 왜 이래?’하는 눈으로 보았지만, 곧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챘다.
“어머.”
“…”
“설마? 아니지? 내가 떠올린 그거 아니지?”
“…”
“진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거야?”
“아니. 기억을 떠올린 건 아까 말한 그 부분까지야. 해피가 아빠에게 짖고, 아빠가 어색하게 대했다는 그 부분까지.”
따라서 ‘다음 전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서 내린 결론이 아니야.
그냥,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 자연스러운 흐름일 뿐.
아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설마 관리국에 신고하려고?”
“이상해?”
“…”
“생각해 봐. 과거의 난 순수하고 귀여운 10대 소녀였어. 그런 내가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지. 부모님이 악령에게 몸을 빼앗기셨구나.”
“…”
“여기서 내가 할법한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은? 관리국 신고지. 범죄가 생기면 경찰에 신고하고, 혼돈 재해가 생기면 관리국에 신고하고. 이게 상식이니깐…”
아리가 어이없다는 듯 입만 벙긋거린 끝에 간신히 내 귀에 속삭였다.
“하지만, 지금의 넌 관리국 신고가 함정인 걸 알잖아. 관리국 말단은 이스의 종족에게 침식당한 지 오래라고.”
“하지만, 과거의 난 그런 사실을 몰랐을 거야.”
관리국 신고는 함정이다.
이 사실은 1회차 시도 당시 은솔 언니에 의해 밝혀졌다.
함정임을 알면서도 ‘부모님이 유령에게 몸을 빼앗기신 것 같아요!’라고 관리국에 신고해야 하는 걸까?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때, 아리가 핸드폰을 꺼낸 채 나처럼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치 – 저 푸른 하늘 너머의 아득한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처럼!
“보고 있지? 송이가 폰을 들면 관리국에 신고할 거야. 점심시간 아직 많이 남았으니 충분히 생각해 줘. 20분 후에 행동할 테니까.”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1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관측소 – 301호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아.”
갑자기 선택의 화살이 내게 날아왔네.
당황하는 사이, 아리는 물론이고 송이도 얌전히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놓고 내게 질문하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료들은 내 판단을 때로는 본인의 판단보다도 신뢰하는 편이니까.
“… 잠깐만 기다려 봐.”
순식간에 긍정, 부정 양쪽 근거가 모두 떠올랐다.
긍정 측 근거부터 떠올려 볼까?
첫째, 지배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최초의 소원은 3층 각 방과 연관이 깊다.
둘째, 과거 행적을 따라 한 후, 송이는 실제로 망각했던 소원의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다.
셋째, 과거의 송이가 부모님의 이변을 눈치챘다면, 관리국에 신고했을 확률이 99% 이상이다.
요컨대 ‘과거의 행적을 재현해 최초의 소원을 떠올린다.’라는 플랜 B에 충실해지려면, 송이가 관리국에 신고해야 한다.
부정 측 근거는 단순명쾌하다.
관리국 말단이 이스의 종족에게 오염당한 이상, 신고는 곧 함정이다.
만약 신고한다면?
관리국 요원이 와서 송이 부모님을 구해주긴커녕, 이스의 종족이 와서 송이를 죽이려 들 것 같다.
잠시 망원경에서 눈을 떼고 고민하자 상현 형이 반응했다.
“가인 군, 무슨 일입니까?”
상황을 전달하니, 형은 요약했다.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기 위해 뻔히 아는 배드엔딩에 들어갈 것이냐의 문제군요.”
“그렇죠.”
“사실상, 2회차 해결을 반쯤 포기하는 대가로 송이 양은 최초의 소원을 깨달을 겁니다.”
“자각은 했으면 좋겠네요.”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만.”
“듣겠습니다.”
“첫째, 솔직히 2회차 해결은 이미 어렵지 않습니까?”
“…”
“이미 종말 이후 세계에 진입할 마음의 준비를 끝낸 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2회차 해결을 포기한다는 게 그리 대단한 대가도 아닙니다. 오히려, 소원의 자각이 더 가치 있을 수 있죠.”
“…”
“요원님이 원 모어 찬스까지 썼습니다. 역천의 대가는 차차 확인해야겠죠. 큰 비용을 치렀는데, 방의 해결은 어려운 상황. 해결이 어렵다면 귀한 정보라도 얻어야겠죠.”
상현 형은 진즉 마음을 굳힌 느낌이다.
송이의 이번 선택으로 2회차 해결 파티가 설령 터진다 해도, 최초의 소원을 깨닫길 바라는 것.
“두 번째 생각은 뭐죠?”
형의 다음 말은 제법 의미심장했다.
“… 합리적으로 볼 때, 과거의 송이 양은 관리국에 신고했을 겁니다.”
“그렇겠죠.”
“신고하면 배드엔딩이죠.”
“그렇겠네요.”
“그렇다면, 과거의 송이 양은 신고하고 끔찍한 일을 겪었겠군요.”
“…”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과거의 송이 양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어쩌면, 나는 다음 내용을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결정을 내리기 직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으로 조언을 썼다.
「조언 : 3 -> 0」
‘송이가 지금 관리국에 신고하는 게 맞을까요?’
답변은 단순명쾌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
– 유송이
20분이 지난 시점.
가인 오빠가 원한다면 폴터가이스트를 일으킬 수 있도록, 최대한 천천히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찌나 천천히 뻗었는지, 옆에 있던 아리가 어이없어했을 정도.
“뭐해? 겁이라도 먹었어?”
“…”
“네가 밤새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면서, 막상 하려고 하니까 걱정스러워?”
“당연하지.”
“뭐, 너무 걱정하지 마.”
“…”
“기껏해야 이스의 종족에게 죽기밖에 더 하겠어?”
“조용히 해.”
핸드폰을 잡을 때까지 폴터가이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어.
가인 오빠가 ‘해봐’라는 조언을 준 셈이다.
“호, 혹시나 하는 말인데!”
“응?”
“오빠가 나 말고 은솔 언니를 보느라 이 상황을 놓친 건 아니겠 -”
“헛소리하지 말고 신고나 해. 주기적으로 이쪽저쪽 살핀다고 했잖아. 20분 넘게 은솔이만 봤을 리가 없어.”
“은솔 언니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그쪽도 뭔가 떠올리고 있겠지?”
“아마도.”
결국, 관리국 신고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자연스럽게 ‘혼돈재해신고센터입니다.’ 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아.”
들려온다. 들려온다!
망각 속에 잠들어 있던 오래된 기억이 마치 흐릿한 환영 혹은 환청처럼 수면 위로 떠올랐다!
— 혼돈재해신고센터입니다.
— 아, 안녕하세요! 저는 xx고 2학년 유송이라고 합니다. 제, 제가 요즘, 그, 그러니깐…
내 입이 나도 모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xx고 2학년 유송이라고 합니다. 제, 제가 요즘, 그, 그러니깐…”
덜덜 떠는 목소리, 더듬거리는 화법.
그야말로 공포에 질린 10대 소녀 같은 말투.
— 송이 양, 침착하게 말씀해 보세요.
— 죄, 죄송합니다! 요즘 집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말 역시 기억 그대로였다.
내 대답 역시, 과거의 대답과 동일했다.
“죄, 죄송합니다! 요즘 집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는데요…”
이렇듯, 나는 겁에 질린 나약한 소녀로 돌아가 한참 동안 집에서 벌어진 괴변에 대해 전했다.
— 탁!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닫았을 때, 아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짐작하고 있겠지만.”
“…”
“관리국, 아니, 이스의 종족이 이제부터 널 죽이려 할지도 몰라.”
“…”
“도와줄까?”
“됐어.”
“하지만 -”
“과거의 내게 지금 너 같은 조력자는 없었을 거야. 그냥 내버려 둬.”
“…”
“아리야, 그냥 날 두고 떠나. 멀리서 관찰만 하든지 해.”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갔다.
“…”
학교 옥상에 홀로 앉아 조금 전의 일을 천천히 떠올리고 있으니, 다시금 흐릿한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필시, 오래전의 내가 겪었던 일.
누군가에게 무릎 꿇고, 무언가를 바라보며 간절히 소망했다.
‘세상에 신이 있다면. 제발, 소원을 들어주세요.’
여기서 정지.
아직, 아직은 부족해.
소원을 완전히 떠올리기까진 약간의 과정이 더 남았어.
…
문득, 어렴풋한 환영 속의 나에 대한 두려운 사실을 알았다.
“…”
최초의 소원을 빌 당시의 나는…
인간이 아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