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3)
EP.684 684화 – 최초의 소원, 유송이 (1)
684화 – 최초의 소원, 유송이 (1)
– 유송이
관리국에 신고한 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고민해 봤다.
상대는 종족 단위로 빙의와 육체강탈, 신체 조종이 특기야.
갑자기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몸을 빼앗아서 날 공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부릅뜬 채 주변 친구들을 감시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냥, 주변 애들만 어색해하며 내 시선을 슬슬 피했을 뿐이지.
약간의 실망을 느끼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때 쯤, 관리국에서 연락이 왔다.
— 송이 양, 신고 사항 처리와 관련해 연락드렸습니다.
“네! 어, 어떻게 됐나요?”
겁먹은 소녀의 목소리를 연기하고 있으니 수화기 너머에서 어처구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제 착각이라고요?”
— 그렇습니다. 부모님 내외는 물론, 병원까지 철저히 조사했지만, 혼돈 재해의 징후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신고자분이 무언가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신고 과정에서 내 목소리는 항상 겁먹은 10대 소녀의 톤을 유지했었지.
그래서였을까? 상대는 내가 강한 확신을 느끼며 신고했다기보다는 어렴풋한 감으로 신고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즉, 관리국의 권위를 빌려서 ‘네 착각임!’ 하면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느낌.
“…”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대응이다.
부모님이 이스의 종족에게 몸을 강탈당했음을 확신하는 건 지금의 나지, 과거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내겐 다양한 관점이나 친화의 축복이 없었지.
따라서 지금처럼 관리국의 권위를 빌려 ‘네 착각임!’ 하면, 과거의 나는 정말로 ‘아하! 내가 착각했구나’ 했을 확률이 높다.
나 자신에게 변명하는 느낌이긴 한데, 과거의 내가 멍청해서가 아니야.
관리국이 하는 말인데 안 믿어? 믿어야지!
여기까지 생각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멀찍이서 푸른 데미안 아파트가 어른거리기 시작했을 때, 불현듯 주변 풍경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돌아보니, 회색 개 한 마리와 까마귀 한 마리가 보였다.
처음에는 왜 위화감을 느꼈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개의 머리가 케르베로스처럼 세 개인 것도 아니고, 까마귀에게 강철 부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위화감의 근원이 외견이 아닌 행동임을 깨닫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 뭐야?”
뭔가 행동이 어색해.
굳이 표현하면 개는 4족 보행에 익숙지 않은 느낌이고, 새는 가인 오빠가 페로의 몸을 빌렸을 때의 행동과 유사하다.
필시 사람의 영혼이 깃든 동물이다 싶어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
— 우르릉!
마음속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 순간이, ‘최초의 소원’이 깨어나는 트리거였던 것이다!
내가 호텔을 – 호텔이 나를 선택하던 순간의 기억.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을 느꼈던 순간.
*
.
..
…
“어머, 어머! 거기서 뭐 하니?”
서울에서 길고양이는 많이 봤지만, 주인 없는 강아지는 오랜만에 봐.
제대로 씻지 못한 건가? 털도 완전 더러워.
— 으륵!
“방금 짖은 거니? 어디 다쳤어? 짖는 것도 잘 못하네.”
이렇게 가엾은 애를 두고 주인은 어디 간 거야?
이름표가 없으니까, 주인을 찾아주기도 쉽지 않은데 – 엇!
“아앗! 어디가? 멈춰!”
직전까지 마치 내가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달라붙어 있었는데…
강아지가 갑자기 몸을 돌려 정신없이 도망갔다.
당황하던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야.”
“아빠! 어? 벌써 퇴근하세요?”
아빠는 살짝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별수 없었다. 뜬금없이 관리국 직원들이 들이닥치더니, 나와 네 엄마를 조사하는 동시에 병원을 요란스럽게 만들지 뭐냐? 아침부터 조금 전까지 조사받다가 나온 참이야.”
“…”
속으로 뜨끔 했다.
부모님이 조사받은 이유는 내가 이상한 착각에 빠져서 신고했기 때문이니깐!
호, 혹시 관리국이 신고자가 나라고 밝혔을까?
본래는, 음, 신고자의 신원은 감춰준다고 들었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모르겠다. 필시 환자 중 한 사람이 악감정을 가진 모양인데…”
“저,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하! 뭐, 병원 일 하면서 온갖 진상을 만났지만, 관리국에 무고하는 놈은 또 처음이구나!”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느껴지는 목소리.
여기에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며 슬쩍 아빠 쪽을 살폈을 때.
“…”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직감을 느꼈다.
마치, 생사의 갈림길에 선 듯한 격렬한 위기감!
정말 이상한 이야기지만, 아빠가 내 목을 졸라서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다음 행동은 생각이라기보다는 본능.
티 없이 밝은 순수한 소녀처럼 방긋 웃으며 아빠에게 와락 다가가서 확 껴안았다.
“아빠!”
“… 그, 그래. 길에서 갑자기 껴안으니 놀랐구나.”
“뭐 어때요? 오늘은 일찍 돌아오셔서 좋은걸요?”
“… 집에 갈까?”
“네.”
돌아가는 길은 더 이상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아까 느꼈던 이상한 감각은 내 죄책감이 만들어 낸 착각이었던 것 같아.
아빠가 날 죽이려고 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앞으로 딱 일주일은 착하고 귀여운 딸로 살아야지!
.
..
…
시간은 바람같이 흘렀다.
내가 이상한 착각에 빠져 부모님을 신고한 게 저번 주였던가?
사고를 친 덕에 앞으로는 행동을 조심히 할 생각이었는데…
최근, 도무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교실에 앉아 표정을 딱 굳히고 있으니,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소진이가 다가왔다.
“왜 그래?”
“…”
“뭔데? 또 부모님이 싸웠어?”
“아니, 그건 아니야. 최근엔 사이좋으셔.”
“그러면?”
“… 이상한 동물.”
“뭐?”
“이상한 동물 두 마리가 내 주변을 맴돈다면 이해가 가?”
“무슨 소리야?”
“한 3일 전부터 아침, 저녁마다 이상한 개랑 까마귀가 내 주변을 감시하고 있어.”
“송이야, 인터넷에서 봤는데, 조현병 증상이 -”
“그런 거 아니야!”
“정 이상하면 신고하든가.”
“그, 그건 쫌…”
“왜?”
“됐어!”
이상한 착각에 빠져서 부모님을 신고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남에게 하겠어?
나만 아는, 아니지, 나랑 관리국만 아는 비밀이야.
학교 수업이 모두 끝난 저녁 무렵.
운동장을 걷던 중, 요 며칠 사이에 낯이 익은 그 개가 또 나타났다.
“얘! 아직도 집 못 찾았니? 이름표도 없고 참! 펫케어 어플에 네 사진을 등록해서 -”
별생각 없이 주인을 찾아주겠다고 말하던 순간, 숨이 멎을 만큼 위화감을 느꼈다.
“뭐, 뭐야?”
개와 함께 내 주변을 감시하듯 나타나는 또 한 마리의 동물.
까마귀가 개의 ‘등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구도 자체가 좋게 말하면 신비롭고, 나쁘게 말하면 기괴한 상황!
이, 이건 무조건 이상 현상이야!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배워왔던 혼돈 재해 대응 3단계 따위의 지식이 마구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꺼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신고를 하려는 순간!
전신이 굳을 만큼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마귀의 부리에서 쇳소리로 긁는 듯한 ‘말’이 나온 것이다!
— 송… 이야!
“…아.”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도 아니고, 길가의 까마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상황 따위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다.
넋이 나간 채 몸이 굳었을 때, 이번엔 회색 개가 내 다리에 찰싹 붙었다.
간곡한… 너무나 간곡한 눈빛.
개가 사람 말을 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제발 내 말을 한 번만 들어줘.’
‘제발 내 행동을 잠깐만 관찰해 줘.’
넋이 반쯤 나간 채 때 묻은 회색 개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회색 개는 곧, 운동장의 모래 위에 발을 휘저어 가며 삐뚤삐뚤한 글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유사 이래 한글을 쓴 개는 아마 이 개가 최초 아닐까?
개 아빠, 새 엄마, 집 괴물
내용은 지극히 간결하고 단순했다.
개의 발로 긴 문장을 쓰기도 어려웠겠지만.
“이게 무슨…”
*
— 파아앗!
너무나 큰 충격으로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환영이 잠시 멈추었다!
“이, 이게 무슨!”
그니까, 저 회색 개랑 까마귀가 내 부모님이었어?
행동이 어색한 건 아직 동물의 몸에 익숙지 않아서였구나!
놀라서 ‘부모님’께 달려가는 순간!
“…아.”
다음 기억이 떠오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도의 절망감이 영혼을 잠식해 갔다.
301호의 첫 번째 시도 당시 떠올렸던 생각.
‘바보도 아니고, 개가 사람 말을 하는데 병원에 데려갈 사람은 없다.’
‘백이면 백 관리국에 신고하겠지.’
‘이게 세간의 상식이다.’
이게 내가 아는 ‘상식’이야.
과거의 나 역시 ‘상식적으로’ 행동했다.
…
충격으로 인해 끊겼던 회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
“왔어요~!”
집에 돌아와 인사하고 방에 돌아가려는 때,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내 앞을 막았다.
“왔구나.”
“엄마?”
“송이야, 아까 관리국에 신고했지?”
“네? 아, 네. 학교에서 진짜 이상한 동물을 만났거든요. 엄마도 말하는 까마귀나 글 쓰는 개 본 적 없죠? 신기하긴 했지만 -”
신기함을 감추지 못하며 즐겁게 말하던 중,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렇지!
내가 관리국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엄마가 어떻게 아셨지?
“어?”
“…”
“어떻게 아셨어요? 아, 관리국에서 알려줬고 – 어라?”
신고자 신변 보호 원칙 이런 거 있잖아!
요전에 부모님을 신고했을 때도 부모님은 내가 신고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행동은 깨달음보다 빨랐다.
머리는 아직도 ‘이게 뭐야?’하고 있었지만, 몸은 즉각 다시 현관문으로 나가려 했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때, 내 몸이 급격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 아!”
엄마는 여전히 빙그레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이상했어?”
“아… 아…”
“개도 아닌데 왜 말 못 하니? 전에 날 신고했을 때는 어디가 이상했냐니까?”
당연하다는 듯, 내가 요전에 엄마를 관리국에 신고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모습.
크게 당황했다. 오늘 안 거야? 아니면 처음부터?
처음부터 알았으면 왜 그때는 내게 뭐라고 하지 않으셨-
“대답할 생각 없니?”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그, 그게, 두 분 다 평소보다 너무 사이도 좋고…”
“그게 하나? 그리고?”
“해, 해피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게 너무 어색하셔서…”
“아, 그렇게 둘?”
곧, 엄마 – 아니,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크게 두 가지가 문제였구나. 첫째, 보편적인 부부 관계보다 네 부모님 사이의 관계를 더 우선시해야 했어. 즉, 나랑 그가 싸우는 흉내라도 냈어야 한다는 이야기지.”
“…”
“둘째, 전이 대상은 물론, 현지 생물종까지 고려한 행동 모사가 불충분했다는 말이네.”
“헉… 허억…!”
“고맙구나. 네 덕에 교훈을 얻었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절망적인 진실을 깨달았다.
부모님에 본능적으로 느꼈던 위화감이 모두 사실이었음을!
착각인 줄 알았어.
혹은,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어.
관리국이 착각이라고 하기도 했고, 나 스스로도 부모님에게 아무 문제 없길 내심 바라고 있었으니까!
아까부터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숨이 멎을듯한 공포, 알 수 없는 힘이 날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
…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누, 누구야! 너 누구야!”
“참 버릇없는 아이로구나. 엄마라고 해야지.”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들었을 때 –
— 끼익!
반쯤 열려있던 창문 틈새로 새까만 덩어리가 벼락같이 날아들었다!
아까 전, 사람의 말을 흉내 낸 까마귀였다.
본인이 내 ‘엄마’라고 주장한 생물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관리국에 괴물이라며 신고한 대상이기도 했다.
새까만 덩어리는 극도의 난폭함을 보이며 부리로 상대를 마구 쪼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엄마 – 혹은, 엄마의 몸을 강탈한 악령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하하! 개는 이미 처리했다고 들었는데, 넌 아직이었구나?”
까마귀의 거센 공격에 안면에 피가 흐르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기색.
통증 따윈 느끼지도 않는 것처럼, ‘인간의 몸’ 따위가 좀 다치든 말든 별일 아닌 것처럼.
악령은 이 상황이 너무나 우습다는 듯, 한 손으로 까마귀를 움켜쥐었다.
— 으적!
단박에 연약한 새의 목이 비틀렸고, 까마귀의 찐득한 피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곧, 악령은 까마귀의 시신을 내 앞에 가져왔다.
“이게 뭘로 보이니?”
“…”
“하하! 아직도 몰라? 네 어미는 널 걱정해 짐승이 되어서까지 구하러 왔는데, 너는 알아보지도 못하는구나!”
“…”
“나는 이런 게 참 웃기더라. 너도 그렇지?”
서서히 다가오는 손을 보며 나는… 내가 무너져 간다고 생각했다.
압도적인 공포와 공포조차 넘어서는 슬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
그냥, 죽고 싶었다.
악령에게 농락당하는 장난감이 되느니, 이대로 죽고 끝내고 싶었다.
등 뒤에서 들려온 발걸음 소리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그랬으리라.
— 다각!
“왔네? 상황은 내가 정리했 -”
이번에도 생각보다 행동이 빨랐다.
이성은 모든것을 포기한 채 ‘죽여주세요’ 상태였지만, 본능은 아직 살 길이 있음을 느낀 것이다!
“…아, 아빠!”
“…”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제발, 제발…”
말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대는 부모님의 몸을 빼앗은 악령인데,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인데…
그런 존재에게 살려달라고 빈다고 통할 리가 없잖아?
통했다.
“그만! 이쯤 하지.”
“무슨 -”
“애초에 내가 상황을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왜 네가 나섰는지 모르겠군.”
‘아빠’의 말에 ‘엄마’는 희한하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비틀며 지그시 바라보았다.
“… 너는 이미 한 번 실수했잖아?”
“실수?”
“원칙적으로, 첫 신고 때 이 인간 개체는 처분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네가 -”
“현장 지휘권은 네가 아니라 나에게 있지. 아닌가?”
“…”
“이 개체는 관찰력이 뛰어나다. 딱히 격이 높은 존재가 아닌데도 위장을 간파해 냈지.”
“…”
“살려두면 쓸모가 있을 거다. 이제는 내가 관리하지.”
악마의 자비에 기대어 목숨을 부지했구나.
…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늘에 신이 있으시다면, 저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하다못해 사슴에게도 죽기 전 박치기 한번은 할 수 있도록 뿔을 내리시지 않았나요?
그러니, 제게도 사슴의 뿔을 내려주세요.
다시는 악마들의 간교한 수작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정명한 이성을 주시기를.
또한, 버러지 같은 괴물에게 영원한 고통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