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4)
EP.685 685화 – 최초의 소원, 유송이 (2)
685화 – 최초의 소원, 유송이 (2)
– 유송이
내게 자비를 베푼 외계인이 한 말.
‘살려두면 쓸모가 있을 거다. 내가 관리하지.’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괴물들이 나를 고양이의 몸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 미야옹!
나를 조롱하며 잔혹함을 보인 개체, ‘엄마’.
내 죽음을 바라지 않으며 일말의 자비를 베푼 개체, ‘아빠’.
결국 둘 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의미야.
전자는 날 귀찮게 하는 야생동물 정도로 여겼다면, 후자는 불쌍한 애완동물 정도로 여겼을 뿐.
…
사람의 마음을 가진 애완 고양이가 된 채 흘러가는 시간.
더없이 비참한 처지였지만, 그랬기에 두 외계인은 더 이상 내 앞에서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예컨대, 예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했다는 것.
— 미야옹!
— 시끄럽네. 뭐야? 사료가 부족해? 그냥 굶겨 죽이면 안 되나?
— 밥은 줘라. 그보다, 공작께서 지령을 내리셨다. 왕께서 –
시간이 흐르며 어렴풋이 상황을 이해했다.
저들은 자신들을 백작, 공작 하며 무슨 귀족처럼 칭한다.
미쳐 날뛰는 악령이라기보단, 자기들 내부의 질서와 사회가 있는 외계 종족이었다.
저들은 지구에서 ‘왕’을 찾고 있으며, 침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이미 관리국과 여러 차례 협상, 협박을 통해 왕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으나 실패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왔다.
왕.
악마들의 왕.
외계 종족의 왕.
이스의 왕.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말 그대로 몸 전체가 부르르 떨렸어.
그냥, 듣는 순간 알았다.
왕이야말로 모든 악의 근원이요, 모든 문제의 시작!
…
눈물은 말라붙었다.
절망은 식상해졌고, 고통은 일상의 일부일 뿐.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말 못 하는 짐승의 비참한 연명.
그런 내게 남은 몇 안 되는 감정이 있다면, 복수심과 기회에 대한 갈망이었다.
내게도 단 한 번의 기회가 있기를!
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어느 날의 일.
상황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갑작스레 변화했다.
— 고오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을 들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듯한 거대한 소리!
이게 대체 뭐야?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나와 달리, 두 괴물은 무언가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으악! 뭐지? 이, 이건 -”
“은총! 은총이다! 왕께서 은총을 시도하시고 있다!”
처음으로 듣는 단어, 은총.
“아니, 아니! 여긴 지구라고! 여기서 은총을 시도하신다는 건 -”
“은총의 대상이 인간이야? 비루한 존재들에게 왜 그런 은혜를 -”
이스의 왕이 인간을 대상으로 ‘은총’을 시작했다?
‘엄마’는 인간 따위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지만, 그보다 ‘아빠’는 전혀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은혜고 자시고, 은총이 성공할 리가 없다!”
“아, 아?”
“생각해 보란 말이다! 인간의 개체수가 얼마나 많은지, 이들의 격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그, 그건 -”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무조건 실패한단 말이다! 실패, 실패라고!”
‘아빠’의 견해에 따르면, 이스의 왕이 시도중인 은총이라는 의식은 무조건 실패한다.
인간의 수가 너무 많고, 격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패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엄마’와 ‘아빠’가 그야말로 돌처럼 굳었다.
마치, 너무나 공포스러운 사실을 알아차린 것처럼.
곧,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시, 실패하면 그러니까 -”
“상승이 아닌, 하강.”
“인간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내 말은, 은총 범위가 별 전체잖아! 실패의 대가는 우, 우리에게도 -”
“아아…”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저 외계인들은 왕을 찾기 위해 지구에 왔어.
알고 보니 왕은 지구에서 ‘은총’이라는 거대한 의식을 시도 중이었다.
그런데, 이스의 종족이 보기에 그 의식은 성공할 수가 없으며 무조건 실패한다.
성공의 대가는 상승.
실패의 대가는 하강.
의식의 범위가 별 전체였으니, 실패의 대가 역시 별 전체에 돌아간다.
인류는 물론, 현재 지구를 침략 중인 이스의 종족까지도!
— 고오오오…!
두 번째로 터져 나온 굉음.
이번의 굉음은 아까와 달리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파동과 함께했다.
곧, 털을 툭 긁는 듯한 기묘한 간질거림이 일대를 휩쓸었고 –
“끄르르륵!”
“끼악!”
다음 순간, 거친 비명과 함께 부모님의 몸을 강탈한 두 외계인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 … 야옹?
마치 금붕어처럼 펄떡이는 헛웃음 나오는 모습.
이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펄떡이는 ‘엄마’의 몸 위로 올라탔다.
입으로 깨물어도 보고, 발톱으로 할퀴어도 봤다.
상대는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초능력은커녕,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비참한 모습.
마치, 몸을 움직이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위대한 종족이 비참한 짐승보다도 격이 떨어진 상황이랄까?
— …
지금, 내 마음을 채운 감정은 복수의 쾌감이 아니야.
너무 허무해.
허탈하고, 어떤 의미에선 슬프기까지 해.
내 힘으론 무리임을 알면서도 ‘언젠가 복수하겠다’라는 마음이 내 삶의 마지막 원동력이었는데…
이게 무슨 복수야?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냥, 야옹야옹하고 있었더니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대재앙에 휩쓸렸을 뿐이지.
이미 미물이 된 상대의 몸을 깨물고 할퀴어봐야 시체 훼손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저 몸은 본래 내 부모님의 몸이기까지 한데!
극도의 허무함 속에서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느꼈다.
내 삶을 지옥으로 떨어트린 저 악마들, 괴물들, 외계인들조차도…
그저, ‘미물’이었다는 사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에 비유하면, 주인공이 아닌 철저한 조연들.
이 순간, 이 세상의 주인공은 단 하나였다.
‘이스의 왕’
— 고오오…!
세 번째 굉음이 들려왔을 때, 나는 이번에야말로 운명을 직감했다.
이번의 ‘하강’은 이미 고양이가 된 나조차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소원이었던 복수조차 허무하게 무너져 가는 지금.
처음으로, 인간 유송이는 물론이고 고양이 유송이로서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떠올렸다.
나는…
나는…
나는…
세상의 중심에 있고 싶었다.
힘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지금처럼 허무하게 끝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마왕이 있다면, 최소한 그 마왕의 칼에 맞아 죽고 싶었다.
지금처럼, 마왕은 관심도 없는 변방에서 허무하게 사그라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되고 싶어.”
간절한 마음이 목소리가 되어 튀어왔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 말을 기다렸단다.”
희끄무레한 빛 속에서 세상이 멈추었다.
별 전체를 휩쓸던 ‘하강’의 파도조차 이 순간만큼은 침범할 수 없는 것 같았다.
내 앞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굉장히 기품 있고 우아한 분위기의 여성.
그 이상은 모르겠어.
슬프지만, 고양이의 시력은 사람만큼 좋지 않으니까.
“누, 누구 – 어? 어떻게 말이 나오지?”
“이 순간을 위한 호텔의 자비라고나 할까?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내게 독심술이 없거든.”
천사를 닮은 존재는 빙그레 웃으며 고양이가 된 나를 끌어안더니,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여운 아이야. 복수를 꿈꾸며 이 순간까지 견뎌냈을 텐데, 마지막 희망조차 무위로 돌아갔구나.”
초현실적인 분위기 속에서 넋이 나간 시점, 그녀의 시선이 바닥을 뒹구는 괴물들에게 향했다.
“하강의 대가로 육신을 조종하는 능력조차 잃었는가? 위대함의 잔해조차 남지 않았으니, 이들 역시 가련한 운명이로다…”
곧,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내 쪽을 보았다.
“물론, 네게는 저들이 가련하게 보이진 않겠지만 말이지.”
“누, 누구세요? 처, 천사님?”
“천사라… 위대한 자가 내려보낸 촉각을 천사라 한다면, 틀린 말은 아니네.”
“그, 그러면 제발 도와주세요!”
“무엇을?”
“저 괴, 괴물들은 제 부모님이 아니에요. 진짜 부모님은 -”
엄마 아빠를 원래 몸으로 돌려주세요.
짐승으로 죽은 엄마 아빠를 다시 살려주시고, 우리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을 없애주세요.
이런 소원들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순간!
천사의 손이 내 입을 막았다.
“미안하구나.”
“…”
“내게 죽은 자를 살릴 능력은 없단다. 또, 설령 할 수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란다.”
“어째서… 어째서…”
“왜냐하면, 이게 이 순간의 규칙이자 호텔의 섭리이기 때문이지.”
이 순간의 규칙, 호텔의 섭리.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
곧, 천사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하는 바를 말하여라. 이것이 네 최초의 소원이 될지니라.”
더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누군가 날 위해 이루어 줄 소원이 아니라, 내가 직접 얻어낼 소원을.
천사를 내려보낸 위대한 분께 기도하겠습니다.
부디, 제게도 기회를 주시기를.
다시는 악마들의 간교한 수작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는 정명한 이성을 주시기를.
스스로를 ‘위대하다.’ 일컫는 미물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딱 하나만 추가한다면…
부디, 제가 세상의 중심에 있을 수 있게 해주세요.
세상에 마왕이 있다면, 최소한 그 마왕의 칼에 맞아 죽고 싶었다.
지금처럼, 마왕은 관심도 없는 변방에서 허무하게 끝나고 싶지 않았다!
— 우르릉!
어디선가 천둥과 같은 소리가 들려왔을 때, 천사 – 아니, ‘승천자’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출발하자꾸나.”
“… 저랑 같은 곳으로 가시는 건가요?”
“장소는 비슷한데, 목적지가 다르지.”
“무슨 말이죠?”
“너는 이제 시작이지만, 나는 이제 끝이란다.”
*
.
..
…
— 파아앗!
하는 느낌과 함께 깨어났다.
회상은 끝났고, 다시 현재.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내 머릿속에서 폭풍처럼 들끓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나온 기품 있는 여자는 승천자였던거야?
이상한 일은 아니야!
가인 오빠가 제주도에서 얻어낸 ‘호텔에 들어올 당시의 기억’을 생각해 봐.
오빠도 승천자로 여겨지는 존재를 만났다고 했잖아?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뿐 –
“…아.”
순간, 머리를 가득 채웠던 복잡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눈앞에 더러운 회색 개 한 마리와 비틀거리는 까마귀 한 마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진짜 부모님.
“풋!”
기뻤다.
너무나도 기뻐서 참기 힘들 정도였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웃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 시간대의 301호에는…
아직 ‘아빠’, ‘엄마’가 집에 멀쩡히 살아계시기 때문이지!
위대한 호텔은 기회를 달라는 내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순간, 나는 그동안 호텔에 대해 품었던 모든 불평 불만을 전부 잊기로 했다.
“엄마, 아빠.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가요.”
아하하!
진짜 부모님을 만난 것보다 ‘가짜 부모님’과의 재회가 더 기대될 줄이야!
세상에 나처럼 효녀가 있을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