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5)
EP.686 686화 – 최초의 소원, 유송이 (3)
686화 – 최초의 소원, 유송이 (3)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가득한 도시를 보다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인간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조금 전까지 머무르던 주거지만 봐도 그렇다.
심미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을 수 없는 몰개성한 네모 상자들이 아닌가!
이런 좁고 작은 장소에 수백 수천 개체가 벌레처럼 모여서 살아가는 모습은…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징그럽게 느껴졌다.
더 황당한 사실.
‘아파트’라고 불리는 저 추한 네모 상자야말로 이 나라 인간의 9할이 평생토록 갈구하는 목표였다.
많은 인간은 약 80년의 짧은 삶을 통째로 갈아 넣어도 이 몰개성한 사각 거주지를 얻을 수 없다지 않은가!
그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 내가 깃든 몸의 주인은 제법 유능한 인간이라 볼 수 있겠다.
제법 젊은 나이에 추하기 그지없는 네모 상자를 얻지 않았는가!
수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인간 중에선 제법 잘 사는 축에 속하는 모양이다.
“… 수의사라.”
돌이켜보면, 전이 대상의 직업이 문제였어.
직업이 수의사였기에 집에 동물이 많았고, 자녀 역시 동물에 익숙했던 모양이니까.
전이 대상인 인간의 행태에 관해선 충분한 데이터를 축적했지만, 개나 고양이, 새의 행동 패턴에 대해선 무지했다.
덕분에 동물들의 이상 행동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고, 자녀가 위장을 간파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위장이 들키는 일은 이스의 역사 속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다만, 보통은 특별한 힘이 있는 존재에게 들켰지.
지금처럼 평범한 인간 소녀에게 위장이 간파당하는 일?
큰일은 아니다.
쪽팔린 일이지.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멀리서 걸어오는 ‘딸’이 보였다.
“송이야.”
“아빠! 어? 벌써 퇴근하세요?”
딸의 처리 문제는 아직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았다.
‘파트너’는 평범한 인간에게 간파당했다는 사실이 쪽팔렸는지, 저 소녀를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오늘은 별수 없었다. 뜬금없이 관리국 직원들이 들이닥치더니, 나와 네 엄마를 조사하는 동시에 병원을 요란스럽게 만들지 뭐냐? 아침부터 조금 전까지 조사받다가 나온 참이야.”
“…”
어떻게 답할 생각이지?
본인이 신고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이라도 하나?
그리 생각하니 속으로 헛웃음이 나오려던 시점.
소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을 가슴팍에 넣었고 – 갑자기, 품에서 총이 튀어나왔다.
?
??
???
뭐야 이거?
내가 지금 잘못 본 –
“송이 -”
— 탕!
순식간에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몸.
가슴팍에서 꿀렁거리며 쏟아지는 선홍색 액체!
그러니까 지금, 저 여자애가 갑자기 총을 꺼내서 날 쏜 건가?
순간적으로 떠오른 데이터의 나열들.
전이 대상 : 유정호.
전이구역 : 대한민국
지역 특성상 치안이 뛰어나고 총화기는 민간에 풀려있지 않다.
전투 발생 확률은 낮으며 –
전부 개소리였잖아!
침착하자. 일단 이 몸에서 벗어나야 한다.
긴급 상황이니 위장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즉각 숙주의 몸을 빠져나왔다.
다음 전이 대상, 목표는 눈앞의 ‘딸’!
대체 왜 이러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가장 가까이 있는 전이 대상이기도 했다.
— 쭈우욱!
거침없이 뻗은 전이의 힘이 소녀의 몸과 접촉하려는 순간.
갑자기, 소녀의 몸이 파도를 만난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이, 이게 무슨!
상상도 못 한 일의 연속이라 평정심을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숨 한번 내쉬기도 전에 숙주가 죽더니, 다음 전이 대상은 먼지처럼 흩어진 상황!
빨리, 빨리 다음 전이 대상을 찾아야 한다.
우리의 본질이 육신을 넘어섰기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지만…
이는, 몸을 갈아타며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이지 몸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니까!
정신없이 힘을 뻗어 일대의 다른 전이 대상을 찾으려는 시점.
— 고오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절망의 소리를 들었다.
차라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였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우리는 이 소리의 정체를 잘 안다.
이 소리, 이 현상, 이 진동 – 이스의 종족이라면 아무리 어리석고 나약한 개체라 해도 모를 리가 없다.
너무나 잘 알기에 다른 현상과 착각했을 확률조차 없었다.
아아…
은총, 은총이다.
왕께서 은총을 시작하셨다!
혼이 멎을듯한 충격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
일찍이 왕이 지구에서 실종되었음을 알았을 때, 몇몇 공작들은 ‘은총’의 가능성을 염두에 뒀지.
곧, 왕께서 은총을 시도할 리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지구에 도착해 인간을 살핀 결과, 일족의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은총이 성공할 확률이 없다.
인간의 개체수가 많아도 너무 많고, 대부분의 개체가 격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
또, 또다!
한번 당했으면서도 또 의미 없는 생각에 빠졌어!
총에 맞은 이상, 대한민국은 민간에 총이 풀려있지 않다는 정보는 의미가 없다.
은총이 시작된 이상, 왕께서 은총을 시도할 리가 없다는 정보 역시 의미가 없다!
은총. 실패. 대가. 하강, 하강!
두려운 단어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이 비루한 별에서 미물로 하강한다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공포와 고통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시, 시간이 없어!
한시라도 빨리 몸을 찾아야 하는데, 몸을 찾아서…
찾아서 뭘 어떻게 하지?
하강의 대가가 별 전체에 미칠 텐데, 다른 몸을 구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냔 말이다!
도망칠 곳이 없다.
나는, 이 자그마한 별에서…
태양 빛에 말라 죽는 지렁이처럼 말라비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의식이 사그라들기 직전,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고맙게 생각해.”
?
*
– 김아리
“고맙게 생각해.”
송이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올 무렵, 끊임없이 꿈틀거리던 안개가 마치 태양 빛에 노출된 얼음처럼 녹아내렸다.
마침내 이스의 종족이 빙의할 대상을 찾지 못한 끝에 죽은 것 같았다.
“뭘 고맙게 생각하라고 한 거야?”
송이의 대답은 다소 섬뜩했다.
“이 정도면 금방 끝내줬으니까. ‘아빠’에겐 도움을 좀 받았거든. 그러니까 뭐, 이 정도로 봐주기로 했어.”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할 셈인데?
“…”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자.
송이가 외계인을 구워 먹든 회쳐먹든 내 알 바 아니니까.
그보다, 대체 무슨 수로 이스의 종족을 이리 손쉽게 죽였는지 궁금했다.
“가인이 말대로였네.”
종말 이후 세계에서 이스의 종족과 겨뤄본 가인이가 했던 이야기.
‘종족 전체가 유령이라고? 그런 놈들을 어떻게 죽이지?’
‘근처에 빙의할 수 있는 몸이 아예 없으면 됩니다.’
위 이야기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함축한다.
이스의 종족이 육신을 초월한 존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는 육신을 갈아탈 수 있다는 의미이지 육신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야.
이스의 종족 역시 빙의할 몸 자체가 없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이후, 가인이는 전이 대상이 없는 장소에서 실제로 백작급 개체를 죽임으로써 위 사실을 입증했다.
“이론은 알겠는데, 어떻게 실현한 건지 모르겠네.”
가인이가 실현한 방식은 단순했다.
싸움 장소 자체가 황무지였고, 이스의 종족이 빙의할 만한 고등 생물을 본인이 직접 죽였으니까.
그런 방식은 송이나 우리가 쓸 수 없었다.
이곳은 1,000만 인간이 살아가는 대도시라 이스의 종족이 전이할 만한 대상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이스의 종족이 곰팡이라면, 서울은 설탕물로 가득한 배양접시나 다름없다.
그런데…
조금 전, 상대는 송이 아빠의 몸에서 스스로 나오더니, 바닥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말라 죽었다.
뭐야 이거?
고개를 갸웃거리던 시점, 송이가 피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잠깐만 쉴게. 딱 5분만.”
“너, 방금 다양한 관점을 이스의 종족에게 쓴 거지?”
“응.”
“몸에서 빠져나와 영혼 상태인데도 써졌어? 그게 그렇게 되는 유산이었나?”
송이는 잠시 침묵한 후, 본인도 살짝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최초의 소원을 깨달은 후에는…”
“후에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영혼이니 몸이니 하는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 형체야 어찌 됐든, 외부 세계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려면 일종의 정보 교류가 있을 것 아니야?”
“그렇지.”
“그 정보 교류 자체를 왜곡하는 게 팔찌의 힘이니까, 대상의 실체가 있냐 없냐는 의미가 없을지도…”
“…”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 해봤는데, 됐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데?”
송이는 다소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었지만, 나는 단호히 손을 하늘로 뻗었다.
“지금은 중요한 순간이니까 가인이도 보고 있을 거야.”
“…”
“네가 설명해야 가인이도 이해하지. 그러면 밖에서 무슨 계획을 세우지 않을까? 어차피 쉬고 있잖아.”
“총을 쏘는 환영을 보여줘서 아빠 몸에서 빠져나오게 했어.”
“그다음은?”
“날 비롯한 다른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게 했지. 빙의 대상을 찾지 못하도록.”
흥미로운 방법론이다.
전이의 힘을 이스의 종족이 휘두르는 칼이라고 치자.
송이에게 칼을 없애거나 막아낼 방법은 없다.
칼을 없애려면 초자연성을 억누르는 불굴의 이성 같은 유산이 필요하고, 칼을 막으려면 안식의 피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칼이라는 건 허공에 휘두르는 게 아니라 대상을 찾아서 찌르는 힘이지.
다양한 관점이 칼 자체를 무력화할 수는 없지만, ‘대상을 찾는’ 과정을 방해할 수는 있었던 것.
“그러니까, 이스의 종족이 빙의 대상을 찾지 못하게 한 거야?”
“… 비슷해.”
“마지막엔 되게 힘없이 꿈틀거리기만 하던데? 아예 저항의 의지를 잃은 것처럼.”
그 순간, 송이가 살짝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이스의 종족이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를 들려줬거든.”
“뭐?”
“과거의 기억 속에서 봤어. 스스로를 ‘위대하다’라고 여기는 오만한 존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
그러니까, 이스의 종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소리를 환청으로 들려줘서 절망에 빠트렸다는 말인가?
“그게 뭔데?”
“정확히는 모르지만 -”
바로 그때.
— 고오오…!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동시에 피부를 툭 툭 건드리는 듯한 기묘한 파동을 느꼈다.
“- 바, 바로 이 소리야!”
순간,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
“?”
“바로 이 소리라니?”
“이, 이 소리가 들리면 세상이 망하고 -”
“…”
“꺄아악! 왜 진짜 들리는 건데!”
충격에 빠진 채 전신을 휘청거리며 생각했다.
이건 분명 은솔이쪽에서 벌어진 괴변이라고!
“은솔이 얘는 진짜 뭐 하는 거야!”
바로 그 순간, 송이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아파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가!”
“엄마 만나러! 효도 해야지!”
“얘가 진짜 미쳤나!”
“어차피 다른 할 수 있는 일도 없잖아! 이럴 때일수록 좋은 곳에 보내드려야 한다고!”
— 고오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