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6)
EP.687 687화 – 최초의 소원, 이은솔 (1)
687화 – 최초의 소원, 이은솔 (1)
– 이은솔
슬슬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시간대.
“후우…”
“슬슬 피곤하네.”
하염없이 설악산을 오르던 중, 요전에 진욱 오빠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어릴 때는 여행을 참 많이 다녔잖아?’
‘특이한 여행이 많았던 것 같네.’
“… 특이한 여행이라.”
“뭐?”
“아니, 생각해 보니 지금 이것도 되게 특이한 것 같아서.”
“뭐가 특이해?”
“서른 넘은 다 큰 남매 둘이 함께 등산하는 상황 자체가 웃기지 않아?”
“야, 야! 네가 상하이 프로젝트 말아먹지 않았으면 이럴 일도 없었어.”
“또 그 소리! 너도 여러 번 날려 먹어 봤으면서 -”
투덜거리며 진욱 오빠와 말싸움하던 중, 순간적으로 싸하다 싶어 주변을 살폈다.
“어?”
분명 정규 등산로만 따라서 쭉 등반했는데, 풍경이 확 바뀌었다.
설악산 중턱에 뜬금없이 널찍한 평야가 나타난 것이다.
“이게 무슨 -”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며 물러서려던 차, 갑자기 진욱 오빠가 손을 뻗었다.
“저거, 저 집 보여?”
“… 설악산 중턱에 평야도 모자라서 저택이 있네.”
호텔 덕에 어지간히 황당한 일은 웃어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겪을 때마다 황당하네.
의외로 오빠는 태연했다.
“저기서 쉬었다 가자. 야간 산행은 위험하니까.”
“아니, 왜 이리 태연해? 산 한복판에 갑자기 저택이 튀어나왔잖아!”
그러자 오빠가 입꼬리를 살짝 늘어트렸다. 마치, 본인만 아는 뭔가가 있는 듯한 태도!
잘난 척 하고싶어 안달 난 모습이네.
“은솔이 너 모르는구나?”
“…”
“하하! 아버지가 말 안 해주셨어? 여기는 아버지 오랜 친구분이 사시는 곳 – 으악!”
— 탁!
참지 못하고 피리를 슬쩍 소환해 오빠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은솔! 진짜 미쳤냐!”
“잘난 척 그만하고 설명이나 해. 아버님 친구분과 산 한복판에서 저택이 튀어나오는 황당한 일이 무슨 상관인데?”
오빠의 다음 말은, 놀랍게도 현 상황을 단숨에 설명할 수 있었다.
“전직 요원이래. 지금은 은퇴했다던가?”
은퇴한 관리국 요원.
그런 존재라면, 산 한복판에 저택이 아니라 우주선을 숨겨두었다고 해도 그럴 수 있겠지.
“생각해 보니, 너도 어릴 때 여기 왔었잖아? 설마 까먹었냐? 이렇게 멍청하니까 사업을 말아먹 -”
— 탁!
*
— 딩동! 딩동!
곧, 저택에서 창백한 표정의 남성이 나타났다.
겉으로 보기엔 나이는 30대 초반이고 다소 마른 체구라는 점 정도?
딱히 특이점은 없어 보였다.
다만, 은퇴한 요원이라는 말을 들어서인지 외견상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어흠, 오랜만입니다.”
“진욱 군과 은솔 양이군요. 오랜만입니다.”
대번에 나와 오빠를 알아보는 모습.
어째 서로 안면이 있는 느낌인데, 나에게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호텔에서 겪은 일의 밀도 덕에 호텔에 오기 전 기억이 흐릿해지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직 관리국 요원’을 만났다면 그 정도 기억은 남아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
— 파아앗!
하는 느낌과 함께 흐릿한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과거의 내가 아버님과 함께 저택에 왔던 기억이다.
*
‘안녕하신가?’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옆은 자녀분들입니까?’
‘그렇지. 자, 너희도 인사하거라. 이분은 관리국 요원이신데 -’
‘이제는 아닙니다.’
‘- 전직 요원이라고 해두지. 내 오랜 친구란다. 자, 뭣들 하냐?’
‘아, 안녕하세요! 이정호라고 합니다.’
‘저, 저는 이진욱입니다.’
‘이은솔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희윤입니다!’
‘S라고 부르시길.’
*
“… 진짜였네.”
“뭐?”
진욱 오빠의 말대로, 어릴 때 아버님과 함께 이 저택에 온 적이 있었어.
그 시기의 기억을 망각한 이유.
망각한 기억이 지금 다시 환영을 통해 나타나는 이유.
“뭐해? 인사 안 하고? 하하! 요원님, 얘가 요즘 사업 하나 크게 말아서 정신이 왔다 갔다 합니다.”
“괜찮습니다.”
나는, 과거 이 저택에 왔을 때…
최초의 소원을 빌었다.
다른 동료들이 그러하듯,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기억을 망각하는 과정에서 저택에 왔던 기억 또한 잃은 것.
반면, 오빠는 그런 일을 겪은 적 없으니 멀쩡히 기억하는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요원 S 맞으시죠?”
“들어오시길.”
홀연히 사라진 S의 뒤를 따르던 중, 불현듯 위화감을 느꼈다.
“오빠.”
“음?”
“예전 생각이 나서 하는 말인데, 전에는 아버님 포함해서 다 같이 왔던 것 같아.”
“그랬지 아마?”
“지금은…”
“응?”
“지금은 왜 우리 둘이서만 온 거지?”
“뭐?”
“우리 말고 사람 더 있지 않았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오빠는 어깨를 으쓱하며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좀 쉬자. 아침부터 등산했더니 슬슬 다리가 후들거린다.”
*
빈방에 짐을 풀고, 간단히 씻고 나와 뭉친 근육을 풀었다.
오빠는 겸손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모습을 보이며 전직 요원과 대화 중이었다.
보아하니, 어떻게든 ‘아버지 인맥’인 전직 요원과의 친분을 ‘자신의 인맥’으로 연결하고 싶은 모양이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리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니 이해는 간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하! 전에 아버님께 얼핏 듣기로는, 요원님께 종종 ‘섬세한 케어’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몇 번 도와드리긴 했지요. 장기 휴직 중이긴 합니다만, 관리국에서 익힌 기술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으니. ”
“어떤 식의 도움이었는지 들을 수 있을까요?”
“…”
S는 잠시 뜸을 들이며 차 두어 잔을 들이켠 후, 작게 중얼거렸다.
“… 고통스러운 기억의 망각 등이 있겠지요.”
“예? 무슨, 무슨 망각이요?”
“진욱 군, 회장님께도 프라이버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여기까진 말해주기 곤란하다는 태도.
뒤늦게 오빠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물러섰다.
“하하, 제가 본디 호기심이 많아서… 실례했습니다.”
저 인간이 이렇게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일 줄이야!
오빠가 보기엔 난 그냥 동생이고, S는 신비로운 요원이니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지만…
한편으론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은 바로 하자. 지금 내가 저 요원 ‘따위’보다 1,000배는 신비한 존재인데!
그때, 고요한 분위기에서 차를 들이켜던 S가 오빠에게 물었다.
“길이 험한데, 어쩌다 동생 분과 둘이 오셨습니까?”
“하하! 이게 또 재밌는 이야기죠. 은솔이가 -”
다음으로 이어진 건 또 예의 그 상하이 프로젝트 관련 이야기다.
못난 여동생이 사업을 말아먹었고, 오빠인 자신이 동생을 위로할 겸 1박 2일 여행을 계획했다는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하나하나 반박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쉬던 시점.
— 탁!
S가 찻잔을 강하게 내려놓으며 오빠의 말을 끊었다.
오빠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요원의 태도 때문이었다.
덜덜 떨리는 손.
창백하게 질린 표정.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요원 S는 일반인의 눈으로도 느껴질 만큼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어, 어, 요원님. 혹시 제가 뭔가 실수했다면 사과 -”
“아닙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S가 상황을 수습하듯 말했다.
“… 모처럼 손님이 오셨으니, 간단한 저녁거리라도 가져오겠습니다. 두 분 다 쉬고 계시길.”
S가 홀연히 떠난 후, 진욱 오빠는 당황한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뭐야? 은솔아, 내가 방금 뭐 실수했냐?”
“…”
“그냥 농담 같은 이야기였는데…”
“저 사람에겐 아니었나 보네.”
*
저녁거리를 가져오겠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S는 해가 질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나와 오빠가 요원의 집을 뒤져가며 ‘밥 내놔!’ 할 만큼 경우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등산할 때 챙겨온 에너지 바를 챙겨 먹으며 휴식을 취했을 뿐.
S가 다시 나타난 건 저녁 11시 무렵이었다.
“두 분 다 이쪽으로 오시길.”
S는 안면에 핏기 한 점 없을 정도로 창백하게 질린 표정이었다.
덕분에 나도 오빠도 대체 왜 이러냐고 따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정처 없이 요원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요원은 저택의 후미진 곳에 숨겨진 이상한 방으로 우릴 데려갔다.
아무런 가구도 없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비어있는 방.
중앙에 솟아있는 검은색 돌 하나만 시선을 잡아끌 뿐이다.
결국, 오빠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요원님, 아까부터 무슨 일입니까?”
“… 두 분 다 정화의 돌 위에 손을 올리시길.”
“정화의 돌? 이 검은 돌 말인가요?”
“올리십시오.”
오빠는 살짝 두려운 기색을 드러내면서도 순순히 지시에 따랐지만…
나는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전직 요원’이라는 이 인간의 지시를 내가 따라야 할 이유가 있나?
지금이라도 호접몽을 써서 이 이상한 저택에서 벗어나는 게 맞지 않아?
“은솔 양, 정화의 돌에 손을 올리십시오.”
두 가지를 고려했다.
첫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과거의 삶’을 재현하며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는 것.
즉, 참가자가 아닌 호텔에 오기 전의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 시절의 내가 무려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전직 요원’씩이나 되는 사람의 지시를 거부했을까?
순순히 따랐을 확률 99.9%야.
그러니까 이번에도 따르는 게 맞아.
둘째, 정말 뭔가 이상하다면 관측소 동료들이 폴터가이스트로 경고했을 것 같은데, 아무 일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정화의 돌에 올렸을 때.
— 사아아…!
몸과 마음을 씻기는 듯한 흐릿한 파장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이 검은 돌이 대충 어떤 물건인지 깨달았다.
“정화의 돌이라더니, 정말 ‘정화’의 힘이 있나 보네요. 심신의 뒤틀림을 바로잡는 그런 물건인 거죠?”
“그렇습니다.”
굳이 따지면 안식의 피리와 유사한 계통의 물건이다. 피리쪽이 훨씬 더 격이 높긴 하지만!
“그래, 대체 무슨 말씀하시려는 건가요?”
곧, S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결의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네 번의 삶을 인류를 위해 바쳤습니다.”
“예?”
시작부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의문을 표하는 오빠.
반면,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아주 잘 안다.
눈앞의 요원은 네 번의 루프를 겪은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수없이 겪었지요. 나는… 영원한 봉사를 견뎌낼 그릇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숭고한 책무를 내려놓았으니 말입니다. 관리국도 내 일탈을 용인해 주었지요.”
“…”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명감이 남아있습니다. 인류를 위한 충정까진 아닐지언정, 최소한 손이 닿는 사람 정도는 지키고 싶다는 마음 말입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서두를 이렇게 거창하게 잡는단 말인가?
오빠는 물론, 나 역시 점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제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악마에 의해 왜곡되었습니다.”
“예?”
“…”
“하나부터 끝까지 전부 거짓이요, 거대한 사기극입니다. 끝을 알 수 없는 사악한 의도로 빚어진 인형극이나 다름없습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말을 -”
“회장님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진실을 감당하지 못해 모든것을 잊었습니다. 하지만… 안 됩니다. 여러분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이쯤에서 오빠는 어이없다는 듯 방을 나가려고 했지만, S는 단단한 손으로 오빠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곳을 나가면, 당신은 결코 정신 차릴 수 없습니다. 정화의 돌이 당신을 지켜줄 때 진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화의 돌의 힘 때문일까?
나는 아까 전부터 느꼈던 괴이한 위화감의 실체를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오빠.”
“은솔아, 아무래도 이 이상한 저택에서 나가야 -”
“우리, 누군가를 잊고 있었어.”
그 말이 나오자마자 S가 강렬한 반응을 보였다.
“맞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잊고 있습니다.”
오빠는 크게 당황하며 말했다.
“누, 누구를 잊고 있다는 거야?”
S가 말하려는 순간, 내 입이 먼저 열렸다.
“… 엄마.”
“뭐?”
“엄마! 뭐야? 뭐지? 애초에 나랑 오빠가 여행 오게 된 이유가 엄마였잖아!”
“…”
“어디 가신 거야? 중턱까지만 해도 같이 있지 않았어? 왜 나랑 오빠만 -”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나와 오빠가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시점.
S는 크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예? 제가 말하려는 건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사람이라니 -”
“여러분은 본디 4남매이지요? 아닙니까?”
“맞, 맞습 – ”
“나머지 둘은 어디 있습니까? 진욱 군의 형님과 여동생은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그야, 둘 다 회사에 -”
“회사, 회사! 제발, 제발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진욱 군, 큰형이 지금 무슨 사업 중인지 압니까? 여동생은 무엇을 하고 있죠?”
창백한 침묵 속에서 S가 두려운 진실을 고했다.
“여러분, 최근 몇 달 – 아니, 몇 년간 다른 두 형제를 단 한 번이라도 보셨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