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7)
EP.688 688화 – 최초의 소원, 이은솔 (2)
688화 – 최초의 소원, 이은솔 (2)
누군가에겐 우주에서 가장 드높은 장소.
누군가에겐 답답하기 그지없는 창살 없는 감옥.
관측소.
“이런!”
가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망원경에서 잠시 눈을 떼었다.
“무슨 일입니까?”
“조금 전, 은솔 누나가 은퇴한 요원을 만났습니다.”
“은퇴한 요원? 아, 이석환 회장이 ‘아내’에 대한 기억을 지울 때 도움받았다는 그 사람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잠깐!”
다음 순간, 허공에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괴이한 책이 나타났다.
가인이 난데없이 화신의 서를 소환한 상황이었지만, 뒤편의 동료들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가인이 몇 차례 보여준 ‘묘기’였기 때문이다.
곧, 화신의 서의 두 번째 문장이 힘을 발하며 ‘또 다른 가인’이 나타났다.
자연스레 관측 중이던 가인은 다시 관측을 시작했고, 희끄무레한 환영처럼 나타난 존재가 설명을 위해 동료들에게 다가갔다.
상현이 살짝 감탄한 듯 중얼거렸다.
“점점 기묘한 재주가 늘어나시는군요. 정신을 쪼개서 하나는 관측, 하나는 설명에 활용하다니!”
미로는 감탄과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이러다가 나중엔 몸 하나는 진입하고, 다른 하나는 관측소에 남는 것 아니야?”
“그건 불가능해.”
“그랭?”
“자, 어디까지 말했지?”
“은솔이가 무슨 요원을 만났다는 부분.”
“그렇지! 그 요원의 입에서 신기한 정보가 튀어나왔어. 회장의 장남과 막내딸. 즉, 은솔 누나의 큰오빠와 여동생이 모두 존재하지 않는 모양인데?”
“으엣?”
“무슨 말입니까? 죽었다는 겁니까?”
“정확한 의미는 불명입니다. 어쨌든, 최근 몇 년 내에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진즉부터 실종 상태인데 이스의 왕이 존재한다고 속였다?”
“생각해 보면, 누나의 둘째 오빠인 ‘이진욱’을 제외한 다른 형제는 본 적이 없네요. 심지어 집에서도 말이죠. 아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해야 했나?”
뒤늦은 깨달음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가인.
반면, 미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리! 은솔이가 송이처럼 콩알만 한 집에 살았으면 바로 알았겠지만 -”
“그 표현, 나중에 송이 양에겐 절대 쓰지 마십시오.”
“애초에 송이 집도 절대 작지 않아…”
“하지만, 송이 집 전체보다 은솔이 방이 더 넓던데?”
“그건 누나가 특이한 거고. 어쨌든, 네 말도 일리는 있네.”
이석환 회장의 저택은 집이라기보다는 ‘성’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리는 장소였다.
은솔만 해도 일반인은 평생 쓸 일 없는 ‘내 방 거실, 내 방 휴게실, 내 방 욕실’ 따위의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쓸 정도였으니까.
이러니, 관측하는 사람들이 은솔의 큰오빠나 여동생을 한 번도 본 적 없음에도 이상함을 느끼지 않았던 것.
넓디넓은 대저택 어딘가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실수가 되었다.
“이제부터 관측에 집중하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가인의 분신이 소멸했다.
*
– 이은솔
“여러분, 최근 몇 달 – 아니, 몇 년간 다른 두 형제를 단 한 번이라도 보셨습니까?”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이는, ‘이은솔의 삶’이 거짓과 기망으로 점철된 하나의 ‘각본’이었다는 진실이 만든 충격이었다.
그 충격은 또한 신비로운 금고를 여는 열쇠이기도 했다.
나는, 내 영혼 깊숙한 곳에서 오랫동안 닫혀있던 금고가 열리는 환상을 보았다.
금고 속에 숨겨져 있던 보물의 정체는 물론, ‘최초의 소원’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리라.
곧, 강렬한 기억의 파도가 나를 덮쳤다.
*
.
..
…
“S, 안녕하신가?”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옆은 자녀분들입니까?”
“그렇지. 자, 너희도 인사하거라. 이분은 관리국 요원이신데 -”
“이제는 아닙니다.”
“- 전직 요원이라고 해두지. 내 오랜 친구란다. 자, 뭣들 하냐?”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 같이 쭈뼛쭈뼛 인사를 올렸다.
모두의 인사가 끝날 무렵, 창백한 인상의 남자는 간단히 답했다.
“S라고 부르시길.”
아빠가 우리를 이런 곳에 데려온 이유는 잘 알아.
가장 귀한 인맥인 ‘전직 요원과의 친분’을 우리에게도 이어주려는 것 아니겠어?
나도 그 정도를 이해 못 할 나이는 아니야.
하지만… 저 남자는 뭔가 꺼림칙했다.
우리끼리 남았을 때, 희윤이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저 사람, 진짜 요원일까?”
진욱 오빠가 즉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생긴 것 보면 끽해야 한 서른 살 아니야? 막, 막! 눈에서 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머리에 뿔이 있는 것도 아니고 -”
이건 뭔 개소리래?
곧, 큰오빠가 한숨 쉬며 말했다.
“요원은 불로장생의 존재라고들 해. 실제 나이는 아버님보다 많을 거야. 그리고… 눈에서 빛? 머리에 뿔? 어디 만화에서 이상한 걸 본 모양인데, 요원은 그런 거랑 상관없어.”
여기까지 말한 후, 큰오빠가 모두에게 주의를 줬다.
“등산하느라 힘들었지? 다들 방에서 좀 조용히 쉬자.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내 생각에… 됐다.”
큰오빠가 말하려다 생략한 내용이 뭔지 알 것 같아.
우리끼리 떠든다고 생각하고 요원에 대해 험담했는데, 요원이 특별한 수단으로 그 말을 들을까 염려하는 것 아닐까?
항상 느끼지만, 큰오빠는 참 생각이 깊다.
“아~ 배고픈데 뭐 없나?”
이 멍청이랑 다르게 말이지.
*
엄마는 참 우아한 분이셨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엄마가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여유롭게 말하시지만, 그 누구도 엄마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형제 중 가장 개념이 없는 둘째 오빠는 물론, 아빠도 엄마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했지.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얘들아, 잠시 산책이나 할까?”
“좋아요!”
사실은 좋지 않았다.
요원 S의 집이 설악산 중턱에 있었기에 아침부터 산을 타야 했고,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렸기 때문이다.
단지, 엄마가 하는 말에 ‘싫어요’라고 대답할 수 없었을 뿐.
넷이 함께 저택 일대를 거닐던 중, 엄마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이곳에 왜 온 것 같니?”
큰오빠가 바로 답했다.
“아버님이 저희와 요원의 안면을 트게 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그건, 네 아빠의 생각이란다.”
“네?”
그때, 엄마가 우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언제나 이 웃음을 흉내를 내보려 노력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어.
이상하게도, 눈앞에 엄마가 없을 때는 엄마가 어떻게 웃는지 떠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호야, 너는 제법 똑똑하지만, 지나치게 네 아빠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경향이 있지.”
“그, 그런가요?”
엄마는 종종, 이렇게 우리를 평가하듯 말하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겪다 보니 우리끼리는 익숙해졌지만…
일반적으로는 흔치 않은 화법이라고 생각해.
“좀 더 넓은 눈으로 상황을 보려무나. 어쩌면, 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를지도 몰라.”
“네?”
“부처님 위에 손오공이라는 말도 있잖니? 누군가는 네 아빠를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 나도 모르게 입을 열어 아무렇게나 떠들었다.
어쩌면 아침부터 이어진 등산 덕에 조금 짜증이 났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 누군가도 사실 더 큰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 아닐까요?”
흔치 않게도, 엄마는 잠시 침묵에 빠진 채 깊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본인도 지금 내 지적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 온 것처럼.
“… 앞으로 쭉 걸어가려무나. 주변이 이상하다 싶어도 신경 쓰지 말거라.”
이상한 말이었다.
동시에, 아주 강한 힘을 담은 말처럼 느껴졌다.
*
한참 동안 말없이 직진했다.
오전부터 이어진 등산에 이어서 뜬금없는 야간 산책까지 더해지자 상당히 피로했지만, 누구 하나 저택으로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큰오빠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여기가 어디지?”
“어? 형, 여기 설악산 아니지 않아?”
“뭐야뭐야? 오빠? 여기 어디야?”
“얘, 얘들아! 잠깐만 -”
여기서 오빠는 잠시 말을 멈췄다.
분명 ‘멈춰봐’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는 것 같았다.
기묘하게도 나는 오빠의 마음을 이해했는데, 나 역시 아까부터 ‘잠깐만 쉬자’ 따위의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져도 직진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모두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 같아.
바로 그때, 전방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진즉 모시러 왔어야 했는데, 늦었군요. 죄송합니다.”
나타난 사람은 반쯤 세어버린 회백발의 장년 여성이었는데, 최소한 겉모습은 지극히 평범해 보였다.
큰오빠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뒤쪽의 동생들을 보니 그래도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듯 한 걸음 앞으로 움직였다.
“저기, 누구시죠? 그보다 여긴 어디인가요? 분명 조금 전까지 설악산에 있었는데 -“
“왕자님, 이곳은 관리국이 비밀스레 보존한 일종의 유적이랍니다.”
왕자님?
“유적이요?”
“또, 법적으로는 왕자님의 아버님 되시는 분의 땅이기도 하지요.”
관리국이 보존한 유적이며, 법적으로는 아빠 소유의 땅?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을 때, 상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자, 왕자님.”
또 ‘왕자님’이란다.
처음 한 번은 잘못 들었나 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정호 오빠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왕자님이라니… 제가 무슨 어린애는 아닙니다. 내년이면 벌써 -”
무슨 어린애 대하듯 ‘왕자님, 공주님’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라는 오빠의 말.
상대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왕자요, 공주가 맞답니다. 자, 따라오시길.”
*
회백발의 여인은 자신을 ‘관리국 고위층’이라고 간략히 소개했다.
이쯤에서 어색함을 느낀 큰오빠는 ‘아버님께 연락하겠다’라고 했지만…
“어머, 관리국과 인맥을 만들고 싶어서 설악산에 오신 것 아니었나요?”
“마, 맞긴 맞는데…”
“지금이 바로 그 과정이랍니다.”
“무슨,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4형제 모두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러분, 요원이 되는 법을 아시나요?”
순간,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요원이 되는 법!
세상에 이걸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는 세계 유수의 명문대 졸업자 중 일부를 특채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전쟁터에서 활약한 군인을 스카웃한다고도 한다.
또 누군가는, 요원이 되고 말고는 태어날 때 결정된다고 한다.
소문만 무성할 뿐, 진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반인보다는 세상의 비밀을 많이 알고 계신 아빠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대 – 관리국 고위층은, 그 답을 아는 소수의 사람 중 하나다.
곧, 그녀는 품속에서 정체 모를 책 한 권을 꺼냈다.
“이 책이 세상이라면, 일반인들은 한 페이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
뭔 소리야?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예?”
“아주 드물게, 페이지를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요원이 됩니다.”
“제대로 설명해 주실 생각은 없는 건가요?”
그러자 상대가 슬쩍 웃었다.
“지금 제대로 설명해 드린 겁니다.”
“…”
다음 이야기는 더욱 기묘했다.
“요원보다 더 대단한 사람들도 있답니다. 일종의 상위 요원이라고 해도 되겠죠. 상위 단계에 도달하면, 요원직은 자동으로 얻을 수 있으니까.”
상위 요원?
“그, 그게 뭐죠?”
“… 참가자. 라고들 하죠.”
“참가자?”
“책 자체를 옮겨 다닐 수 있는 사람들. 아예 책 밖에서 책을 관측할 수도 있는 사람들.”
여기까지 들었을 때, 둘째 오빠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 어떻게 해야 참가자가 될 수 있죠?”
“보통은, 운명이 닿아야 한다고들 하죠.”
“운명?”
“정확한 이치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만상을 위해 눈물 흘리신다는 분이 점지하실 뿐…”
점점 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고 느낄 무렵.
“하지만.”
처음으로 상대의 표정에 단호함이 서렸다.
“우리는, 운명을 만들어 내는 법을 알아냈습니다.”
“네?”
“아주… 섬세하고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지요.”
“그게 무슨 -”
“예컨대, 여러분처럼.”
“예?”
이 순간만큼은 4 형제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갑자기 ‘여러분처럼’ 하는데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회백발의 여인은 마치 추상같은 선고라도 내리듯이 말했다.
“오늘, 여러분 중 한 명만 운명을 얻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