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89)
EP.690 690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8)
690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28)
– 관측소
“여러분, 최근 몇 달 – 아니, 몇 년간 다른 두 형제를 단 한 번이라도 보셨습니까?”
S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온 순간, 은솔이 돌처럼 굳었다.
멈춰선 시간 자체는 고작해야 몇 초에 불과할 만큼 짧았다.
그러나, 가인은 지금 은솔이 ‘아주 긴 환영’을 보고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과거의 가인 역시 유사한 경험을 했기에 짐작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가인이 그 환영을 직접 볼 방법은 없었다.
관측소의 망원경에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기능은 없기 때문이다.
은솔이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 가인은 이 상황 자체가 참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처음 S의 저택에 왔을 때, 은솔은 최초의 소원을 빈 것 같다.
또, 301호 시점에서 죄수는 대놓고 은솔을 S의 저택으로 유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면, S가 이스의 왕의 하수인이었던 겁니까?”
빠른 설명을 들은 상현의 반응은 이러했다.
이런 분석도 일리는 있었지만…
가인은 조금 더 씁쓸한 생각을 떠올렸다.
“본인은 진심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구한다고 생각 중일 것 같군요.”
“이런!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장기 말인 겁니까?”
잔혹한 생각이 가인의 뇌리를 스쳤다.
은솔이 이석환 회장에게 알아냈던 기억.
회장은 과거, ‘아내’의 정체를 인지한 후, 충격에 빠져 S를 찾아가 기억을 지운 것 같다.
그 덕에 회장은 절망적인 기억을 잃고 자유를 얻었지만…
정작, S는 회장의 기억에 노출되어 죄수의 손아귀에 떨어진 게 아닐까?
시간대가 조금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했지만, 대충 이 비슷한 형태일 것 같았다.
어쨌든 이제 와선 의미 없는 이야기다.
“… 다시 관측에 집중하겠습니다.”
*
– 이은솔
.
..
…
충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던, 최초의 소원에 관한 회상이 끝나간다.
자연스레 ‘이은솔’의 의식도 다시금 깨어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정보량에 압도당할 것 같았지만,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해 보자.
첫째, 큰오빠와 막냇동생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
참가자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한 어머니의 실험 과정에서 희생되었다.
둘째, 어머니의 실체.
인간이 아니다. 괴물인 정도를 넘어서 우주적인 악신이며, 301호의 중심에 선 ‘이스의 왕’ 그 자체다!
셋째, 소원을 빈 시점과 호텔에 들어간 시점이 다른 것 같다.
정황상, 소원을 빈 시점은 내가 10대 중반에서 후반이었던 때다.
반면, 호텔에 들어온 시기는 서른을 넘어서였다.
이상한 일은 아니야. 가인이의 경우를 생각해 봐.
소원을 빈 시점은 ‘알레프’라는 최초의 삶인데, 호텔에 진입한 시점은 셀 수 없는 루프를 반복한 이후였다.
최초의 소원과 호텔 입실은 별개의 절차인 모양이다.
왜 그럴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있었다.
호텔이 규정한 ‘이은솔’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 보자.
‘부귀한 태생’이라는 배경.
‘탐욕스러운 성정’이라는 본성.
둘 다 타인과 분쟁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
따라서 내 정신이 더 성숙한 시점 – 즉, 서른 이후에 데려오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물론, 이런 건 결국 내 추측에 불과하다.
진실은 어머니를 포함한 그 아무도 모르며, 오직 호텔만 알고 있을 테니까!
현재의 내가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을 때, 끝나가는 회상 속의 ‘어린 시절의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내가 원펀치로 죄수를 쓰러트린다거나 하는 놀라운 반전은 없었다.
최초의 소원을 빌었다고 과거의 내가 갑자기 대오각성해서 빅뱅을 일으킬 수야 없는 노릇이니까.
어머니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과거의 나를 제압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주적인 악의 화신과도 같은 그녀에 비하면, 과거의 나는 정말이지 미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작고 어린 내가 감히 이빨을 드러내리라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놀라움은 동시에 기대감이기도 했다.
이런 딸이라면, 이런 작품이라면, 이런 도구라면 부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과연, 장막에 떨어진 과거의 나는 소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알 수 없는 조화가 나를 어루만지는 기묘한 감각 속에서 서서히 눈을 감았다.
이 광경을 본 어머니는 정말로 사랑스럽다는 듯 나를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시선을 옮겨 ‘나’를 주시하며 말했다!
“이제 깨달았니?”
*
— 파아앗!
환영이 깨지며 내 의식이 다시금 현실로 돌아온 순간.
“이제 깨달았니?”
조금 전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마치, 과거 회상과 현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직전까지 큰오빠와 여동생의 소멸을 경고하던 S는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졌고, 철없는 작은오빠 역시 기절한 상황.
“…”
이 순간, 301호의 많은 비밀을 깨우친 내가 떠올린 생각은 다름아닌 ‘황당함’이었다.
내 출생의 비밀이 엄청나게 대단했다? OK.
한번도 의심한 적 없던 어머니가 알고보니 죄수였다? OK.
오빠와 동생의 고통스러운 죽음? OK.
아빠는 물론, 내 인생까지 저 악마에게 농락당했다? OK.
다 이해했어.
알겠고, 대단한 어머니의 너무 엄청난 설계에 감탄도 했고, 화도 많이 나.
그래도 참을 수 있어.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
10대 시절이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이잖아?
하지만, 딱 하나는 진짜 못 참겠어.
“… 시작하자마자 바로 옆에 자유롭게 행동하는 죄수가 있다니.”
호텔아! 이걸 진짜 어떻게 깨라는 거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을 잃은 시점,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었다.
“은솔아, 뭐 없니?”
“…”
“어릴 때는 맨몸으로도 내게 달려들었으면서, 지금은 어째 그때만 못하구나.”
그때는 그냥 자포자기에 가까웠고!
모르겠다.
시작부터 너무나 자유로운 죄수가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이 빌어먹을 방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 당신에게는.”
“음?”
“분명히 약점이 있어.”
“그래?”
“없을 리가 없어. 이곳은 호텔이니까. 분명히 약점이 있고, 아주 치명적이야. 그걸 공략하면 꼼짝도 못 해.”
어머니는 여유로운 웃음과 함께 답했다.
“하지만,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 같구나.”
약점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찾지 못한 이상 의미가 없다는 여유로운 태도.
날 도와줄 동료가 이 자리에 단 한명도 없음에 절망했지만…
곧, 차라리 나 혼자 이 상황에 놓였음을 다행이라 여겼다.
어차피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있다 한들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다가오는 손을 본다.
이미 주변은 어머니의 공간이나 다름없었고, 그녀의 허락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
“슬슬 시간이 촉박하니, 일을 시작하자꾸나.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온 순간이란다.”
— 스아아…!
마음속에서, 영혼 깊은 곳에서 깨어나는 아득한 의지를 느낀다.
단박에 내 모든것이 조각날 듯한 아찔한 감각!
나도 모르게 연신 뒤로 물러서며 피리를 소환해 정신없이 불었지만…
어머니는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네가 얻은 유산이니? 바닥에 있는 이 돌 따위보다야 1,000배는 가치 있는 물건이로구나.”
“으으…!”
“왜? 피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분명, 안식의 피리는 내 소원에 대응해 운명적으로 다가온 물건일 텐데!
‘다시는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악마들에게 농락당하지 않게 하소서’를 이뤄주기 위한 보물일 텐데!
피리는 아무런 이능(異能)을 발휘하지 못했다.
차라리 이유를 몰랐다면 호텔을 한 번 더 원망하고 말았겠지만,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더욱더 절망적이었다.
설악산을 오르며 우연히 나왔던 ‘시스템 복원’에 관한 이야기.
복합적인 이유로 컴퓨터 – 혹은 인간이 고장 났을 때, 고장 나기 전 과거로 돌리는 것.
이와 같은 대응은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한 가지 명확한 약점이 있다.
‘멀쩡한 시기’ 자체를 찾아낼 수 없다면, 원래대로 돌릴 방법도 없다.
지금 나처럼!
나는, 이은솔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정교한 설계로 만들어졌다.
태어난 이후 단 한 순간도 ‘온전한 상태’였던 적이 없다.
아니, 안식의 피리가 보기엔 지금 상태가 곧 온전한 상태다.
“아아…!”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진 모든 설계가 정교하게 작동하는 순간이다.
내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목소리가 깨어나는 순간이다!
…
영혼이 녹아내릴 듯한 상실의 고통을 느끼며 간절히 외쳤다.
“어머니… 어머니…! 하나만, 하나만 묻겠습니다.”
잠시, 고통의 순간이 멈췄다.
중단이 아닌 유예였고, 마지막 자비이기도 했다.
우아하게 웃는 여인이 말하라는 듯 나를 주시했다.
마치, 성공한 딸 – 혹은, 성공한 ‘작품’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돌처럼 굳어가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서 외쳤다.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대체 뭘 하려고 날 만들었나요?
대체 뭘 하려고 스스로 저주의 방에 잡혀 들어왔나요?
이젠 심지어, 내 몸을 점령해서 뭘 어떻게 할 셈이죠?
이렇게 날 집어삼키고, 호텔 파티를 파멸로 이끄는 일이 당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죠?
…
그 순간, 어머니는 실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보았다.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 힘이 있는 자에겐 자격이 없고, 자격이 있는 자에겐 힘이 없다. 그 모순을 극복하고자 했다.”
“네?”
“딱 한 번이라도 좋다. 그 대가로 내가 먼지처럼 으스러지더라도 좋다. 영원한 무간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감내할 수 있다.”
“무슨 -”
“그러니,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처음으로 어머니에게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느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우아함의 가면이 벗겨진 것 같았다.
“내,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를 직접 보겠노라. 그 앞에서 말하겠노라. 천국을…!”
의식이 먼지처럼 흩어지는 순간.
나는 어머니의 목적을 이해했다.
힘이 있는 자에겐 자격이 없고, 자격이 있는 자에겐 힘이 없다.
그 모순을 극복한 존재.
어머니는…
참가자의 자격과 죄수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자 했다!
이것이 두 번째 시도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고오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