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91)
EP.692 69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0)
69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0)
– 김아리
— 고오오…!
세상 전체를 뒤흔드는 굉음이 터지는 순간, 근방의 모든 사람이 충격에 빠진 채 하늘을 보았다.
곧, 지상에서 뻗은 거대한 빛이 하늘을 강타하는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침내 푸른 하늘이 갈라지며 대기권 너머의 아득한 어둠이 펼쳐졌을 때!
“아…”
그저, ‘아!’ 말고는 할 말이 없네.
상황이 이렇게까지 돌아가니까 되려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기도 해.
어차피 이번 시도는 틀려먹었어.
탈출 파티의 동료들이 알아서 잘하길 바랄 뿐.
그나마 다행인 건, 최소한 송이는 ‘최초의 소원’을 자각했다는 점 정도.
어쩌면 은솔이도 소원을 자각하지 않았을까?
이런 느낌으로 일종의 정신 승리를 시도할 무렵.
“으앗! 아아앗!”
뒤쪽에서 송이의 짜증 섞인 비명이 들려왔다.
뭔가 싶어 아파트 내부를 살짝 들여다보니, 송이가 분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방금, ‘엄마’의 정신이 갑자기 사라졌어!”
“무슨 말이야?”
“몰라. 마치, 영혼만 뽑혀서 어디론가 끌려가는 느낌이었 – 어? 뭐, 뭐야?”
갈라진 하늘을 발견한 송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뒤늦게 발견한 걸 보니,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이 정말 행복했던 모양이네.
그래서 이때다 싶어 슬쩍 말했다.
“분은 풀었어?”
“어느 정도.”
“느낌상 한 번 더 할 것 같은데, 그때는 -”
그때는 이스의 종족을 고문하는 일 따위에 매진하지 않아 줬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윤리적인 문제를 떠나서, 시간 낭비잖아.
송이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끄덕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헷갈렸지만, 굳이 묻지는 않기로 했다.
“대화창이 아까부터 난리더니, 하늘이 난리가 났네.”
“느낌상, 아마 한 번 더 와야 할 거야.”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 번 더 오려면, 종말 이후 파티가 탈출에 성공은 해야 한다.
실패할 경우는 생각하지 말자.
— 고오오…!
다시금 터져 나오는 굉음.
이번에는 나도 피부를 간질이는 명확한 감각을 느꼈고, 이게 뭔가 싶어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알림이 떴다.
「해결에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
곧, 이스의 종족이 그랬듯이, 내 영혼 역시 육신을 벗어나 알 수 없는 공허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두 번째 시도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로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조언 3개분을 전부 소모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언을 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답변은 평소보다 꽤 길었다.
‘기회가 한 번이 아님을 잊지 말라. 불가능한 일에 힘을 빼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마지막으로, 지금의 넌 혀를 깨무는 정도로 죽지 않음을 알라.’
길기만 했다!
“이런 씨발!”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달랬더니!
게다가, ‘응~! 혀 깨물어도 안 죽어~!’ 같은 개소리는 답변에 왜 집어넣는 건데!
진정하고 생각하자.
‘기회가 한 번이 아님을 잊지 말라.’
이거, 이번 회차는 끝났으니 다음 회차를 노리라는 말 맞지?
알겠는데, 다음 회차를 가려면 그 전에 이번 회차에서 탈출은 해야 하잖아! 그 탈출을 어떻게 하냐고!
“으악! 혀, 형! 어떻게 해요?”
“가인아! 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극도로 당황한 채 내게 답을 구하는 동료들.
나 역시 속 시원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숨이 턱 막힌 상황!
“저, 저쪽에서 뭔가 나타났습니다!”
— 우르릉!
굉음과 함께 아득한 존재가 나타났다.
“크으…!”
“으악! 누, 눈이 -”
“눈 감으십시오! 바라보는 건 위험합니다!”
상현 형 말도 일리는 있지만, 누군가는 저 괴물을 보며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상태창은 물론, 신성한 태양의 힘까지 빌려 억지로 바라보았다.
…
육신 자체는 은솔 누나의 신체 그대로인 것 같다.
‘참가자의 자격’이 육신의 동일성 여부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리라.
전신에선 끊임없이 오색의 광휘가 뿜어져 나왔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의 기세가 온 사방을 휩쓸었다.
마치, 우주를 밝히는 초신성이 살아있는 생물로 변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니, 허공을 떠다니는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생물이 보였다.
그들은 살아있는 소용돌이처럼 누나의 몸 주변을 맴돌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찬송가를 불렀다.
어느 순간,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것들 하나하나가 전부 이스의 종족이다!
“크으…!”
이쯤에서 격렬한 두통을 느꼈지만, 상대는 그런 내 사정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음 행동은 나와 동료를 지키기 위한 본능에 가까웠다.
이미 날 보호하고 있던 신성한 태양에 이어 마도서까지 소환한 후, 이 악물고 상대를 저지하려 시도한 것!
그 결과,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던 상대가 슬쩍 나를 보며 3초 정도 정지했다.
이게 전부였다.
…
이 순간, 나는 상대와의 압도적인 격차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나를 ‘반신의 영역에 도달한 마법사’라 여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반신과 위대한 자의 격차가 바로 이와 같다!
1회차 시도 때, 나는 이스의 공작과 나름대로 그럴듯한 승부를 겨뤘지.
그 공작은 지금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 되어 왕의 주변을 부유하며 찬송가나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이스의 왕의 장애물조차 되지 못하는 게 논리적으로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허무했다.
이럴 줄은 알았는데, 논리적으로 이게 맞는데…
내심, 3층을 진행할 정도면 뭔가 다를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때, 진즉 눈을 감고 있던 상현 형이 손을 뻗었다.
형은 맨 앞에 있던 내가 위기에 처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죽 -”
그 순간, 아까 올빼미가 해 준 조언의 일부를 이해하고 말았다!
‘불가능한 일에 힘을 빼지 말고 -’
“그만!”
즉각 손을 뻗어 상현 형을 제지했다.
상대가 주는 위압감이 너무나 엄청나서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지만, 이럴 때일수록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해.
호텔의 상식대로 생각하자. 죄수를 힘으로 막으려 드는 건 바보짓이다!
신성한 태양이든, 화신의 서든, 최후의 섬광이든 – 쓰면 안 된다.
불가능한 일에 힘을 빼는 행동이며, 다음 회차에 쓸 자원을 낭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상대는 우릴 죽일 생각이 없다.
“뒤로, 뒤로 가세요. 형도, 승엽이도, 미로도!”
다른 사람들을 물린 후, 나는 최대한 공손히 보이길 기대하며 두 손을 모았다.
말하자면, ‘조금 전의 결례를 사과합니다!’ 같은 느낌.
곧, 상대가 반응을 보였다.
“너희는 은솔이의 동료겠지? 천상에서 경고하던 게 너였구나.”
다른 죄수가 그러하듯, 상대 역시 호텔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습니다.”
“왜 나를 막으려 했지?”
“위대한 분께는 제가 당신 주변의 미물처럼 보이겠지만, 당신이 점거한 그 몸은 내 소중한 동료의 몸입니다. 두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상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주변의 아이들은 미물이 아니며, 너도 마찬가지다.”
“…”
“지금은 영락했을지언정, 너희 선조는 드높은 영역에 도달했지. 너는 그 영광을 반쯤 재현한 것처럼 느껴지는구나. 내 가장 특출난 아이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도다.”
다소 과장스러울 정도의 칭찬.
느낌상, 상대는 내게 적대감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 이유 역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와 싸울 생각이 없으시군요.”
“그리 보이느냐?”
“당신은 물론 나보다, 우리보다 강하지만… ‘호텔’만큼은 아닙니다.”
위대한 자라 해서 다 같은 격이 아니다.
이스의 왕과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 사이의 격차?
어쩌면 나와 이스의 왕 사이의 격차보다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호텔, 천상에 무단 침입한 상황입니다. 우릴 마구잡이로 해치면, 호텔에서 즉각 조치할지도 모르죠.”
“눈치가 빠르니 말하는 재미가 있구나. 그래, 아이야. 나는 너희와 다투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니라.”
자연스럽게 시작된 가장 중요한 이야기.
이스의 왕은 ‘왜’ 호텔로 난입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는가?
“나는 그저, 이곳의 가장 높은 분을 한번 뵙고 싶을 뿐이란다.”
그 순간,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상현 형이 놀란 목소리를 내었다.
“부, 부처님을 뵙겠다는, 그 말입니까?”
“그렇다.”
“만나서… 만나서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이스의 왕은 더 이상의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손을 뻗어 화살표를 가리켰다.
⇨ 천국 – 공사 중입니다.
그리고 더는 우리를 신경 쓰지 않은 채 화살표의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원한다면 따라오거라. 너희도 궁금하지 않으냐? 천상에 웅크린 위대한 분께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말이다!”
*
천상 층에 형성 중인 영역, 천국.
최초의 소원을 자각할 때, 고대의 승천자는 내게 말했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 – 부처님의 최종 목표는 바로 천국을 만드는 것이라고.
내가 아는 정보는 이게 전부다.
천국이 대체 뭐 하는 장소인지, 뭘 어떻게 만든다는 것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천국에 대한 내 정보에 한 줄이 추가되었다.
천국의 위치는 호텔 3층, 천상 층 내부였다.
⇨ 천국 – 공사 중입니다.
“…”
은솔 누나의 몸을 점거한 왕은 당당한 태도로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나는 슬슬 두통이 심했기에 왕의 그림자만 보며 걸었고, 다른 동료들은 왕을 따라가는 나를 보며 쫓아오는 상황.
이스의 왕은 호텔에게 들으라는 듯,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밝히기 시작했다.
“운명을 보았나이다… 이제껏 태어난 내 아이들의 운명을,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예비된 참혹한 절망을 보았나이다…”
운명을 읽을 수 있는 이스의 왕의 권능.
시간을 돌리기 전에 아리가 송이에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이스의 왕이 속임수를 썼다고 봐.’
은솔 누나가 참가자가 될 운명임을 태어나기도 전에 알고 있던 이스의 왕.
아리는 이를 속임수라 여겼었지.
지금 생각하면, 완전한 속임수는 또 아니었던 모양이다.
절반쯤은 정말 운명을 읽었고, 절반쯤은 읽어낸 운명을 자기 손으로 실현한 듯한 뉘앙스였다.
곧, 왕은 자신의 아이들이 구원받을 수 없는 이유를 묻고 싶다고 하였다.
“…”
듣다 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인간은 물론이고 아타나시아 같은 외계 종족도 참가자가 될 수 있음이 103호에서 밝혀졌다.
구원의 대상은 ‘삼라만상’이지 ‘인간’이나 ‘아타나시아’가 아님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스의 종족도 구원의 대상에 포함됨이 맞다.
인간의 몸을 빼앗는 사악한 존재인 게 문제다?
이런 건 관점의 차이라고 봐. 닭이나 소가 보기엔 인간처럼 사악한 악마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멀리서 아스라이 빛나는 황금의 문이 나타났다.
‘천국의 문’ 말이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짓눌려 앞을 보았을 때!
“여러분은 정지하십시오.”
지배인의 기계음 같은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어느새 이스의 왕과 우리 사이에 나타난 상태였다.
“여러분은?”
“이 앞은 위험합니다. 호텔 안전 규칙상, 아직 여러분이 갈 수 없는 장소입니다.”
“…”
절대 갈 수 없다는 느낌은 아니다.
뭔가, 언젠가는 갈 수 있지만 지금은 안된다는 느낌.
별수 없이 한발 물러서며 양손을 들었다.
이스의 왕은 우리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황금의 문을 향해 걸어갔다.
지배인 역시 죄수 쪽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곧, 왕이 황금의 문 앞에 멈춰서 손을 뻗는 순간!
“…”
궁금했다. 정말 너무 궁금했다.
이 저주받을 호기심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
그래서, 지배인의 몸을 피해 살짝 머리만 빼꼼 내밀어 서서히 열리는 황금의 문 너머를 보았다.
이런 내 행동이 호기심 많은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배인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
..
…
?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검다, 희다 따위의 색깔조차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공백, 공허.
0의 영역.
“이게 무슨 – ”
그러나 왕의 태도는 달랐다.
내겐 보이지 않는 것이 왕에겐 보이는 것 같았다.
왕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고…
“흐으으…”
고통스러운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형언할 수 없는 비탄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혹은, 평생 증오해 온 존재에게 복수하려 했는데, 복수하기 직전에 증오의 원인이 아무 의미 없었음을 깨달은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 순간!
지배인에게서 평소와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가 아닌, ‘이스의 왕’을 향해 있었다.
‘여기까지가 너의 겁이니라.’
지금, 이 말은 누가 하는 거지?
‘너는 언제나 나를 원망했고, 그 증오를 원동력 삼아서 여기까지 도달했느니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