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92)
EP.693 693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1)
693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로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너는 언제나 나를 원망했고, 그 증오를 원동력 삼아서 여기까지 도달했느니라.’
마치, 이 순간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한 ‘누군가’의 목소리.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내게 설명해 줄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쿵!
천국의 문이 닫히고 지배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남은 자리에는 혼란에 빠진 우리들과 형언할 수 없는 비탄에 휩싸인 이스의 왕이 남았을 뿐.
곧, 이스의 왕은 어딘가 공허한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시선 속에서 나는, 기묘하게도 상대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감히’ 죄수를 통찰했다기보다는, 상대가 통찰을 허락했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겠지.
왕의 의사는 명확했다.
+ 끝내라. +
왕을 죽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
무려 죄수가 소멸했으니 301호 해결?
이 상황을 죄수의 소멸이라고 볼 수 있을까?
“…”
아니지, 아니야.
이미 「해결에 실패하였습니다. 따라서 ‘종말 이후 세계’가 시작합니다!」라는 해결 실패 알림이 뜬 상태야.
올빼미 역시 ‘기회가 한번이 아님을 알라’는 말로 다음 회차를 암시했고.
여기까지 온 이상,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하든 301호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유 역시 명확하다.
301호, 과거의 루프는 이미 멸망했기 때문이겠지.
‘은총’이 시작되는 순간, 301호는 그냥 끝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다음 시도에서는 은총의 시작 자체를 저지해야 한다.
조심스럽게 왕에게 한 걸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제 생각에, 당신은 여기서 끝내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우리에게 이것은 결말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결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상대는 침묵을 고수했지만,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가장 큰 두 가지 비밀을 이해했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약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
“첫째, 대체 무슨 수로 죄수가 이렇게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가의 문제.”
“…”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는, 대부분 시간을 ‘아주 긴 배드엔딩’ 속에 있었던 거였죠.”
저주의 방에서 죄수는 여러 제약에 시달리며 이 원칙은 ‘301호에서도’ 적용된다.
301호가 예외였던 게 아니다!
힌트는 첫 번째 시도와 두 번째 시도의 차이였다.
돌이켜보면, 첫 번째 시도 때는 이스의 왕이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죄수가 처음부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왜 그 때는 개입하지 않았을까?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주의 방에서 죄수가 깨어날 수 있는 상황은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배드엔딩’이다.
참가자들이 파멸적인 선택지를 고른 끝에 판이 터지면, 그때는 죄수가 깨어나서 준엄한 심판을 내린다.
“… 은솔 누나가 회장의 기억을 들여다본 순간, 이미 판이 터졌던 겁니다.”
회장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이 301호의 배드엔딩 트리거였다.
첫 번째 시도 때 이스의 왕이 개입하지 ‘못한’ 이유?
회장의 기억을 강제로 열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회차에서 회장의 기억을 강제로 열어보지 않는다면, 이번처럼 죄수가 마음껏 행동할 수 없다.
이스의 왕은 첫 번째 시도에서 그랬듯이, 강원도 지하에 감금된 채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으리라.
이게 상대의 약점이다!
그 순간, 불길하기 그지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이스의 왕이 깔아둔 ‘배드 엔딩 복선’이 ‘회장의 기억’ 뿐일까? 한 3,000개쯤 더 있는 거 아님?
128번 지뢰의 위치를 알았으니 피하면 그만이라고 웃고 떠들면서 세 번째 시도를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1732번 지뢰를 밟고 터지는 불길한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
이런 생각은 더 해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그만두자.
“둘째, 지금 당신의 상황. 과정이 워낙 기이해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유사한 결과에 도달한 다른 죄수가 있었거든요.”
“…”
“진짜 이스의 왕은, 지금도 강원도 지하에 있을 겁니다. 지금의 당신은… 말하자면, 원본의 정신을 복제한 거죠. 복제한 정신은 처음부터 은솔 누나에게 내재되어 있었을 겁니다.”
왕은 반응이 없었지만, 엉뚱하게도 뒤에 있던 미로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꺅!”
이게 이스의 왕의 현 상태다.
처음부터, 은솔 누나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누나의 정신 깊숙한 곳에는 왕의 정신을 복제한 ‘악성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상대는 그 프로그램을 깨우고, 자신의 힘 대부분을 전달한 후, 승천을 모사한 은총 의식을 통해 호텔 3층 – 천상의 영역에 도착한 것.
이 시점에서 어렴풋이 깨달았다.
301호는, 이번 회차는 아니더라도 다음 회차 혹은 그 이후에라도 결국은 해결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은솔 누나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타고난 ‘악성 프로그램’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아찔함을 느끼는 시점,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가짜라고 여기느냐?”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긴커녕,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
애초에 상대는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닙니다. 당신과 같은 존재에게 진짜니, 가짜니 하는 이야기는 무용함을 압니다. 원본과 같은 정신이 있고, 거의 비등한 힘이 있으니, 진짜와 구분할 필요가 없지요. 다만…”
다음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생각에, 이곳의 당신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과정을 겪으며 호텔, 부처님에 대한 분노를 포기했습니다.”
“…”
“하지만, 이 사실을 강원도 지하의 또 다른 당신은 모릅니다. 알 방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다음 회차의 우리는 또 이 끔찍한 죄수와 줄다리기를 벌여야 한다.
왜냐하면, 강원도 지하에 있는 ‘또 다른 이스의 왕’은 천상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니까!
상대는 어딘가 공허한 표정을 지은 채 중얼거렸다.
“끝내기 전에 부탁할 것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당신의 ‘아이’를 한 명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다음 회차의 당신을 음, 설득할 수 있도록?”
“…”
왕은 대답하는 대신, 그저 팔을 쭉 벌릴 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을 테니, 알아서 하라는 것처럼 보였다.
이스의 왕은 정말이지 모든 의욕을 잃은 것 같았다.
그때, 뒤늦게 내 말을 이해한 상현 형이 내게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형 나름대로는 나만 들으라고 작게 말하는 모양인데, 상대가 죄수인 이상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라 쓴웃음이 나왔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의 종족 하나를 어, 시간대여기에 담으려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 다음 회차의 왕을 설득하려고?”
정확하다.
천상에서 벌어진 일을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도, 다음 회차의 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시도 내내 이어진 죄수와의 고통스러운 줄다리기를 또다시 반복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토록 아끼는 자식의 말이라면 어떨까?
이스의 공작이라면, 왕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왕이시여, 천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당신의 꿈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내려놓으소서.’
이게, 다음 회차 진행의 기본 골자다.
설명을 들은 미로가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가린 채 왕에게 다가갔다.
곧, 왕의 주변을 부유하던 자그마한 생물 중 하나 –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미 한 번 붙어본 것 같은 존재가 미로에게 접근했다.
“나한테 네 1시간을 빌려줘!”
공작이 미생물처럼 작아진 상태라 대답이 들리진 않았지만, 아마도 ‘알았다’라고 한 것 같다.
미로가 시간 대여기를 가리키며 ‘담겼다’라고 했으니까 틀림없겠지.
이제 정말로 두 번째 시도를 끝내야 할 시간이다.
…
일반적으로는 참가자의 힘으로 죄수를 죽인다는 건 상상도 하기 어렵다.
물론,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스의 왕이 끝도 없는 설계를 거쳐 ‘이은솔’의 몸을 점령한 이유가 무엇일까?
‘참가자의 자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참가자의 자격 없이는 설령 죄수라 해도 천상 – 3층을 견딜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은솔 누나의 몸을 파괴하면 된다.
상대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
이 순간,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저주받을 호기심을 느꼈다.
이 호기심이야말로 ‘지혜’의 본질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냥 내 핑계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궁금했다.
정말 미친 듯이 궁금했다.
삼라만상을 구원하겠다는 지고한 존재가 이스의 종족은 구원하지 않는 이유는?
몇 분 전만 해도 호텔을 멸망시킬 것 같은 기세였던 이스의 왕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내려놓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배인이 했던 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나는 지배인이라는 놈의 실체를 안다.
그 자체는 그냥 로봇이나 다름없고, 배후의 존재가 목소리를 내기 위한 마이크에 가깝지.
배후의 존재는 매번 바뀌지만, 조금 전은 틀림없이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였다!
어쩌면, 다음 질문이 금기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당신은…”
“…”
“당신의 아이들이 구원받길 바라며 호텔에 온 것 아니었나요? 왜 이렇게 주저앉은 겁니까?”
“…”
“천국의 문 너머에서 대체 무엇을 봤죠?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
“아이야.”
그 순간, 나는 왕의 눈 너머에서 지금껏 읽을 수 없었던 또 다른 감정을 보았다.
“내 아이들은 구원받았으며, 구원받는 중이고, 구원받을 것이다.”
“네?”
왜 자신의 아이들을 버렸냐고 외치던 것과 전혀 다른 대답.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순간에서 전부 구원받았다는 이상한 이야기.
“그게 무슨 -”
다음 순간, 이해할 수 없는 환영이 뇌리를 스쳤다.
+ 끝없이 이어지는 1. 이는, 하나의 순환을 말함이라. +
+ 2가 나타났다. 3이 나타났고, 4가 나타났다. 1의 순환이 끝났으니, 이후의 숫자에 도달한 이들은 순환을 초월했다고 믿었다. +
+ 나는 내가 언제나 ‘이 순간’을 맞이했음을 알았도다. 그러므로 이 순간이 나의 겁(劫)의 끝임을 알았노라… +
곧, 왕은 슬피 웃으며 자기 머리를 터트렸다.
이것이 혼돈으로 가득했던 두 번째 시도의 끝이었다.
「당신은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
당신은 저주로부터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저주의 근원은 남아 있는 것을 느낍니다.
…
동료 중 탈출 성공자 발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