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94)
EP.695 695화 – 두 번째 탈출, 회의 (2)
695화 – 두 번째 탈출, 회의 (2)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6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105호 – ‘휴식의 방’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야~ 이거 맛있네요.”
“삼겹살인데 당연히 맛있지!”
“형, 우리 호텔에서 별의별 음식 다 먹어봤잖아요?”
원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최상의 품질로 제공해 주는 게 105호의 특징이다.
이런 장소에서 익숙하고 흔한 음식만 먹기는 아쉬운 법.
식사때마다 특이한 음식을 소환하는 동료들은 매번 있다.
TV로만 본 중화풍 새끼 돼지 통구이 정도는 기본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몰로키야’, ‘수와르마’, ‘팔라펠’ 등 각종 이국적인 요리가 테이블 위에 올라오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덕분에 105호에 앉아서 전 세계의 특이하면서도 진귀한 음식을 수없이 맛본 결과, 우리 중 몇몇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가인아, 나는 그냥 삼겹살이나 김치찌개가 제일 맛있더라.”
“… 사실 저도.”
“저도요!”
무슨 파라오나 짜르, 황제, 파디샤가 즐겼다는 정체불명의 음식들 – 대부분은 상술이라고 본다 -보다 삼겹살, 닭튀김 혹은 김치볶음밥 같은 일반적인 음식이 더 맛있었다.
물론, 이런 건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로 식사 시간에 특이한 음식을 소환하는 일은 우리 사이에 딱히 잘못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 그동안은 그랬다.
“으앗! 아, 아리! 너, 그게 뭔지 알고 소환한 거야?”
놀란 엘레나의 목소리에 모두가 아리 쪽을 보았다.
아리의 손에는 자그마한 크기의 통조림이 하나 있었는데, 뚜껑에는 Surströmming 이라는 글자가 –
뭐야? 저거 악취로 유명한 음식 아닌가?
사람들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것도 잠시, 아리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통조림을 열려고 했다!
“으앗! 얘 진짜 왜 이래!”
“왜? 나도 먹고 싶은 거 먹는 것뿐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킥!”
엘레나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통조림을 빼앗으려 했고, 아리는 통조림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엘레나의 손길을 피했다.
이 순간, 나는 아리의 정신연령이 다섯 살 정도로 퇴화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저거 머리만 검게 염색한 미로 아니지?
안타깝게도 아리 옆에 입만 반쯤 벌린 미로가 멀쩡히 있었다.
“에잇!”
결국, 엘레나가 아리 손에서 수르스트뢰밍 통조림을 빼앗았다.
상황을 보니 아리도 딱히 진심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진심이었다면, 엘레나가 아리의 몸놀림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어쨌든, 식사 시간의 우스운 해프닝이 이렇게 끝난다 싶어 방심한 순간!
— 스아아…!
아찔한 환영이 뇌리를 스친다.
충격과 혼돈으로 가득한 장내, 은솔 누나는 모든것을 포기한 듯 지그시 눈을 감았고, 미로는 손을 뻗어서 –
손을 뻗어서?
“몬데몬데! 아리가 먹고 싶어 하잖아! 그냥 먹게 해줘!”
“미, 미로, 이건 – 꺅!”
미로가 순식간에 손을 뻗어서 엘레나 손에 있던 통조림을 열었다!
몇몇 동료는 ‘수르스트뢰밍’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미로의 행동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그야말로 유통기한이 1년은 지난 해산물의 냄새를 농축해서 터트린 듯한 터무니없는 악취가 장내를 덮쳤다!
“으아악!”
“으엇! 이, 이게 음식에서 나는 냄새라고?”
“뭐야 이거!”
“꺄아악!”
“아니, 미로 네가 통조림 열고 비명 지르지 말라고!”
“이렇게 이상한 통조림인 줄 몰랐어!”
통조림 하나의 기세가 테이블 위의 모든 음식을 능가했다.
그야말로 일기당천, 만부부당!
아니, 이런 상황에서 통찰이 쓸데없이 왜 작동하는 거야?
그냥 은솔 누나가 냄새에 질려 눈감고 미로가 통조림 뚜껑 따는걸 왜 보여주냐고!
이러니까 오히려 혼자 깊이 생각하느라 반응이 늦었잖아!
모두가 당황하며 식사를 멈춘 시점.
딱 한 명, 태연한 태도로 마지막 한 술까지 뜨고 일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송이였다.
다양한 관점으로 오감을 통제해서 악취를 차단한 것!
곧, 미로가 송이에게 달라붙었다.
“나도 해줘! 나도 해줘!”
“미안. 안돼.”
“왜 안 되는데!”
왜는 무슨 왜야?
애초에 다양한 관점은 한 개체에만 사용할 수 있다.
송이 본인에게 쓰고 있으니, 미로에게 써줄 수는 없을 – 그 순간, 송이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인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듯한 기색.
곧, 송이가 지그시 미로를 주시한다 싶더니, 미로의 표정이 편안해졌다!
송이와 미로가 ‘동시에’ 팔찌의 보호를 받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야, 야! 일단 좀 나가자!”
*
“아으! 무슨 냄새가 이리 심해?”
“여기, 여기 탈취제!”
은솔 누나는 그새 HP 마켓에서 탈취제를 주문한 상태였다.
안타깝게도, 탈취제로 날리기에 빌어먹을 통조림의 악취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덕분에 옷은 물론이고, 각자의 몸에도 이미 악취가 밴 상황.
곧,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아리를 보았다.
“너…”
그야말로 오만 감정이 이 ‘너’라는 글자 하나에 담긴 상황.
모두의 시선을 받은 아리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잘했지?”
“…”
와…
이, 이런 대답은 진심 상상도 못 했네!
단체로 아리의 뻔뻔함에 놀라서 입만 벙긋거리는 사이, 아리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봐, 내 덕분에 송이가 한 단계 발전했어.”
“아, 아리 너…!”
“아니야? 나 아니었으면 송이가 유산의 기능 강화를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
“야! 야! 얘 진짜 왜 이래? 미로도 아니고!”
송이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로우킥을 날렸고, 아리는 뒤에서 날아오는 로우킥을 피하는 놀라운 재주를 보였다.
우습게도 송이 말에 반응한 건 미로였다.
“왜, 왜 나한테 그래!”
“너도 조용히 해! 통조림 열었잖아!”
“나, 난 저런 통조림인 줄 몰랐어! 기껏해야 참치 통조림인 줄 알고 -”
“그러면 모르는 사람 책임~!”
“아리 진짜 조용히 안 해?”
아리와 미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아름다운 순간.
물론,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
미로가 수르스트뢰밍이 뭔지 모르고 연 실수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아리가 수르스트뢰밍을 알면서 소환한 건 천하에 몹쓸 짓이다!
어쨌든, 이런 느낌으로 식사 시간의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
모두가 피곤한 표정으로 다과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대화 주제는 송이의 유산이었는데, 주인이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자 일종의 기능 강화가 발생한 것 같았다.
인원 제한이 해제된 것은 물론이고 사용 시간도 꽤 늘어난 느낌.
다만, 103호 내부에서 쓸 당시의 성능에 비하면 여전히 크게 못 미친다는 송이의 평도 있었다.
뒤집어서 말하면, 아직도 발전할 구석이 많다는 의미일지도 모르니까 좋게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동료들의 시선이 은솔 누나에게 향했다.
소원을 자각한 송이에게 이런 변화가 생겼는데, 누나에겐 뭔가 없냐는 분위기였다.
누나 본인도 궁금했는지, 핸드폰을 열어 HP 마켓을 확인하기도 하고, 피리를 소환해 보기도 했다.
“난 아직 잘 모르겠네.”
아까의 일을 혼자 다 털어낸 – 왜 혼자 다 털어냄? – 아리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호텔이 이런 면에선 은근히 공평하잖아? 너도 뭔가 있을 거야. 아직 모르는 것 아닐까?”
“으음…”
“소원의 내용을 한번 떠올려 봐.”
소원의 내용을 떠올리라는 조언.
그 말에 누나는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알 것 같아?”
“…”
“뭔데? 뭔데?”
“나는 301호가 끝난 후에 변화가 있을 것 같네.”
막연한 감으로 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은솔 누나가 그런 성격도 아니다.
본인은 뭔가 깨달았는데, 이걸 설명하고 싶지 않은 기색. 분명 소원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돌이켜보면, 송이와 은솔 누나 둘 다 과거의 이야기를 할 때, ‘정확히 무슨 소원을 빌었는가?’ 부분은 모호하게 넘어갔었지.
이해한다.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기억은 각자에게 평생을 통틀어 가장 충격적인 경험일 확률이 높아.
그러니, 소원의 구체적인 내용 같은 건 타인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따지고 보면, 나도 동료들에게 전하지 않은 사실이 꽤 많으니까.
“아까부터 느낀 건데, 그놈의 통조림 냄새가 우리 몸에도 밴 것 같아. 다들 샤워라도 하고, 오늘은 좀 쉬자.”
“그래, 그럽시다!”
“그렇게 하자. 저 미친 계집애 덕에 아직도 내 코가 뚫릴 지경이다!”
“어머, 묵성아! 설마 나 말하는 -”
“누가 쟤 좀 한 대 쥐어박아라!”
아리는 이번에도 요리조리 피하며 아무에게도 한 대도 맞지 않았다.
각자 105호로 돌아가기 직전, 은솔 누나의 입이 작게 떨렸다.
누구에게 말하려고 했다기보다는 깊이 고민 중인 생각이 무의식중에 입 밖으로 튀어나온 느낌.
“내게 주소서…”
내게 주소서?
이게 무슨 뜻이지?
*
– 김묵성
.
..
…
— 첨벙!
“아이고~!”
점심부터 한 세 번은 씻었다.
이제야 몸에 밴 악취가 좀 사라진 느낌이네.
아니면, 내 코가 다 썩어 문드러져서 냄새에 익숙해진 건가?
2층 설원지대에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있으니, 멀리서 다가오는 선객이 보였다.
“너도 왔네?”
“… 선배, 진짜 미친 거 아닙니까?”
아직도 둘만 남으면 선배 소리가 가끔 나오는 걸 보니, 요원 시절 기억이 내게 크긴 큰 모양이다.
“왜? 아, 통조림?”
“그놈의 통조림 때문에 아직도 다들 서로 피해 다니잖아!”
“어차피 내일도 휴식일이야. 오늘은 각자 쉬는 셈 치자.”
“아니, 야 인마! 니가 통조림을 열지 않았으면 -”
아리가 혀를 내밀어 ‘메롱’ 하며 말했다.
“내가 안 열었어. 난 그냥 장난만 치려고 했는데, 미로가 갑자기 열 줄 알았겠어?”
“어째 행동이 점점 유치해지는 것 같다?”
“음… 미로랑 같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미로 핑계 대지 말고! 미로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단 말이다.”
“나는 미로의 업그레이드판이니깐! 뭘 해도 좀 달라야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더 따지는 게 의미가 없어 보였다.
뭐, 이 답 없는 인간 말마따나 어차피 오늘 저녁은 쉬기로 했었으니 대단한 사고는 아니지만…
그렇게 한숨만 쉬는 시점.
아리가 갑자기 예리한 눈으로 날 살피며 말했다.
“… 괜찮아?”
“…”
“축복 상태가 아직도 정상이 아니던데.”
이 순간, 내가 약간의 감동을 느꼈음을 인정한다.
301호에서 나온 후, 내 상태를 잊지 않고 신경 쓴 사람은 아리뿐이었다.
물론, 다른 동료들이 특별히 무정한 것은 아니다.
죄수가 호텔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 덕에 다들 정신이 반쯤 나갔을 뿐이지.
아마, 저녁이나 내일쯤엔 내 이야기도 나올 터다.
“뭐, 괜찮지.”
“지금만 괜찮은 것 아니야? 원 모어 찬스를 더 쓰면 큰일이 날 것 같은데.”
“…”
“207호, 관문의 방에서 썼을 때의 역천의 대가는 노화였어.”
“그랬지.”
“현실에서는 회귀자 자격 상실이었고.”
“맞다.”
“301호, 저주의 방에서는…”
“…”
“참가자의 자격이 흔들리는 건가? 너, 탈출한 후 회복됐어?”
솔직히 답했다.
“아니. 아무래도 이미 잃은 것은 회복할 수 없는 모양이다.”
“…”
아리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래서였을까?
이 유치한 사람의 기분이라도 좋게 하고 싶다는 우스운 마음이 들었다.
“하하! 왜 그래? 원 모어 찬스는 최강의 유산이다. 최강의 유산에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 한 번 더 쓰면, 참가자의 자격에 생긴 균열이 더 커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나도 모른다.
동시에,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대화 주제를 살짝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으흠, 아리야. 301호에서 선각자가 했다는 말 들었냐?”
“아, 네가 시간을 돌리기 전에 내가 선각자에게 들었다는 이야기하는 것 맞지?”
아리 본인은 원 모어 찬스로 인해 망각한 기억이다.
물론, 관측소의 사람들은 잊지 않고 전달했다.
“선각자는 인간이 영적으로 진화한 끝에 도달한 존재를 ‘회귀자’라고 했다고 한다.”
“전혀 과학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그 회귀자조차 한 단계 넘어선 것이 호텔 참가자 아니냐?”
“… 그렇긴 하지.”
“선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호텔 참가자는 말 그대로 인류 진화의 정점 같은 존재야.”
“…”
“은총은, 그런 참가자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의식이고.”
“이래서 방 제목이 ‘종의 기원’인가? 진화론의 시초?”
“으음…”
나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알다시피, 301호에는 아직도 몇 가지 비밀이 남아 있지.”
“그럴 거야.”
“내일 자세히 말해보겠지만… 나는, 그 비밀의 일부는 관리국 쪽에 있다고 본다.”
“…”
“뭔가 더 있을 거야. 감이긴 하지만, 틀림없지.”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아리가 다소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단순한 호기심인데, 301호의 관리국 수뇌부는 ‘선각자’라고 하잖아?”
“그렇지.”
“왜 선각자야? 먼저 깨달았다? 뭘 깨달았다는 거야?”
“…”
그 순간, 나는 아리와 전혀 다르면서도 비슷한 의문을 떠올렸다.
“네 말을 들으니까 생각난 건데, 왜 침묵하는 자냐?”
“뭐?”
“왜 너와 내가 일했던 관리국 수뇌부는 ‘침묵하는 자’라고 하지? 뭘 침묵하는 거냐? 세상의 비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