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95)
EP.696 696화 – 두 번째 탈출, 호텔의 독심술사 (3)
696화 – 두 번째 탈출, 호텔의 독심술사 (3)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로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3층 수리를 명분 삼아 호텔이 준 휴식일.
회의 시간을 제외하면, 동료들은 여기저기 흩어진 채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혼자 다과 테이블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던 시점, 누군가 내 앞에 앉았다.
— 탁!
“좋은 아침!”
은솔 누나였다.
누나는 내 앞에 앉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꺼냈다.
“어제, 네 말을 듣고 밤새워 고민했거든?”
“고민?”
“어머니에 대해서 말이야.”
은솔 누나의 ‘어머니’, 이스의 왕.
301호의 죄수이며 호텔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존재.
그리고, 오늘의 휴식을 만들어 낸 존재이기도 하다.
이건 좀 고마울지도?
“네 설명을 여러 번 곱씹었는데, 어머니가 보인 태도가 너무 이해가 안 가.”
시작부터 질문이 어렵다.
이스의 왕과 천상 층, 천국에 얽힌 비밀은 나 역시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음, 저도 잘 모르겠는데…”
“나도 알아. 의견을 나눠보려고 온 거야. 자, 어머니의 목표는 이스의 종족을 구원하는 것이었어. 맞지?”
“비슷하죠.”
“부처, 음, 그래도 ‘님’자는 붙여야겠네. 위대하신 부처님은 삼라만상을 구원하겠다면서 이스의 종족만 구원 대상에서 배제했다고 해.”
“왕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기까진 이해하기 쉬워. 왜, 기독교인도 어느 날 갑자기 미카엘이 내려와서 ‘네 자식들은 지옥행임 수고!’하면 충격에 빠지지 않겠어?”
“그, 그렇겠죠.”
천사가 나타나서 갑자기 ‘니 자식 지옥행 수고’하면 진짜 놀랄 것 같긴 하다…
“근데, 천상 층에 와보니까 그건 어머니의 착각이었어. 맞지?”
“아마도…”
“무슨 아마도야? 어머니가 직접 말했다며? 현재, 과거, 미래를 통틀어 모두 구원받았다고.”
“그렇긴 하죠.”
“가인아, 어머니가 정확히 뭘 착각했던 거야?”
“정확히는 저도 잘 -”
당시의 일에 대해선 일부러 확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있다.
서로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다, 저렇다 확정해버리면,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나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틀려도 상관없으니까, 뭐든 말해봐. 너는 그 자리에 있기도 했고, 그리고… 너니까, 뭔가 더 많이 알았을 거야.”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정보를 전달하는 게 옳을까?
이것 자체도 의문이 들었지만, 은솔 누나의 간절한 표정을 보니 별수 없었다.
어디에든 써지는 펜으로 테이블 위에 작은 선을 그었다.
“이게 왕이 이해하고 있던 영역입니다. 왕은 이 선의 영역 내에서 운명을 읽고, 판을 짰죠. 또, 이 범주 내에선 이스의 종족이 구원받지 못함을 알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다음으로, 앞서의 작은 선을 쭉 이어 아주 긴 선을 그었다.
“마지막 순간, 왕은 훨씬 더 큰 흐름을 어렴풋이 이해한 것 같습니다. 진실로 거대한 흐름 속에서는…”
은솔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중얼거렸다.
“훨씬 더 큰 흐름 속에선 이스의 종족도 구원받는다?”
“저는 이런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 누나. 다시 강조하지만 -”
“확신할 수 없으니까 반만 믿어라 이런 거지?”
“네.”
“으음… 그래, 여기까진 알겠는데, 여전히 그다음을 모르겠네.”
“그다음?”
“네 말대로면, 어머니는 최후의 순간에 지고한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니야?”
“…”
“억겁의 세월 동안 왜 내 자식들이 버림받았냐고 슬퍼했는데, 알고 보니 버림받지 않은 거잖아.”
“그렇죠.”
“그러면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왕의 태도는 행복해하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약간의 기쁨 혹은 안도에 가까운 반응도 있긴 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절망과 탄식, 허무함이 뒤섞인 부정적인 감정이 훨씬 크게 느껴졌다.
“그 부분은 정말 모르겠네요.”
“으음… 그니까, 천국을 본 어머니는 두 가지 사실을 느낀 것 같아.”
곧, 누나는 화이트보드에 본인 생각을 끄적였다.
1. 희망 : 이스의 종족이 결국 구원받음을 깨달음.
2. 절망 : 이건 아직 잘 모르겠음.
“이렇게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고, 2번이 더 컸어. 맞지?”
“… 누나.”
“응?”
이쯤에서 흐름을 끊을 필요성을 느꼈다.
통찰이 아까부터 누나에 관한 ‘끔찍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꾸 왕의 의도를 인간적으로 이해하려 하실 필요 없습니다.”
“…”
“왕이 누나를 사랑하는 딸처럼 대했나요? 그렇게 느껴졌다면, 속임수이자 기만입니다.”
“…”
“이스의 왕은 공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의 동정을 받을 만큼 나약한 존재도 아닙니다. 왕은…”
“공략의 대상이지.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
“네가 보기엔, 내가 자꾸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것 같아?”
“조금은.”
“… 듣고 보니 네 말이 맞을지도. 뭔가, 자꾸 어머니에게 심오하고 엄청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되네.”
“심오하고 엄청난 이유는 물론 있었을 겁니다. 그걸 우리가 동의해 줄 필요가 없을 뿐.”
누나가 한숨 쉬며 일어서려는 순간,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미 어렴풋이 알고 계시겠지만, 왕의 가장 큰 설계는 -”
“나 자신이지.”
“제 생각에, 누나는 이스의 왕을 증오하셔야 합니다.”
“…”
“때로는, 악을 막을 수 있는 건 더 큰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
다음 순간, 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 그렇기에 삼라만상을 위해 눈물 흘리는 자는 천국에도 탐욕이 있어야 함을 인정했다.”
“네?”
“나, 방금 소름 돋았어.”
“예?”
“평소에도 너랑 대화하다 보면 소름 돋을 때가 있긴 한데, 요번엔 진짜네…”
누나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얘 진짜 좀 무서워…’ 하면서 떠나갔다.
대체 누나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
“형!”
다음에 나타난 사람은 승엽이였다.
“음? 할 말이 있어?”
“하하! 형, 우리가 꼭 할 말이 있을 때만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잖아요?”
“얼굴에 ‘나 지금 엄청 큰 고민 있음!’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 그래요?”
아리나 엘레나라면 모를까, 승엽이는 연기나 마음을 감추는 것에 익숙지 않다.
호텔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았음에도 이러는 걸 보면, 타고난 성정 같았다.
“어, 음, 그러니깐… 아까 송이 누나랑 이야기했는데요.”
“응.”
“누나는, 다음 회차에선 꼭 부모님을 구해줄 거라고 했어요. 해피엔딩을 위해선 부모님을 지켜야 한다고…”
“그래, 나도 슬쩍 들었어.”
송이는 세 번째 시도에선 부모님을 지켜내겠다는 결심을 모두에게 알렸다.
모두 기꺼이 찬성했는데, 나는 찬성과 별개로 약간의 신기함을 느꼈다.
송이가 일반인 가족에게 애착을 가질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 나오는 ‘제국고 아이돌’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지.
현실에선 평범한 인간을 NPC 대하듯 했었잖아?
아마 ‘진짜 가족’과 ‘가짜 가족’의 차이인 것 같긴 한데…
진짜와 가짜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을 떠올리려는 순간, 승엽이의 말 때문에 생각의 흐름이 다시 형이하학의 영역으로 내려왔다.
“그, 그래서 말인데요! 저도 부모님 볼 수 있을까요?”
“3층 어딘가엔 네 소원과 관련한 방이 있겠지. 거기 가면 있을 -”
“아니, 과거 회차의 부모님 말고요! 지금, 지금 현실에 있는 부모님!”
송이와 달리, 꿈으로 빚어낸 부모님 역시 진실한 부모님으로 여기는 승엽이.
새삼 동료들의 관점 차이가 느껴진다.
“기억나시겠지만, 어, 3층에 올 때 지배인이 가족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 굉장히 편의적으로 기억하는구나.”
3층에 오르기 전, 여러 동료는 현실에 남게 될 가족에 대해 걱정했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누군가는 아내와 아들을, 누군가는 자식과 손자를 두고 떠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질문했을 때, 3층 지배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상계(上界)와 하계(下界)의 관계란 어떠한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 아래에서 위로 흐르지 않습니다. 위와 아래의 관계가 이와 같으니, 여러분의 걱정은 실로 무용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승천자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만, 현실은 승천자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했지.
3층을 진행 중인 현시점에서 보면, 대충 맞는 해석이었다.
“때가 되면, 망원경을 통해 현실의 가족들을 볼 수 있을 거야.”
“멀리서 구경만 하는 정도로는 부족 -”
“그 이상도 가능하겠지. 어쩌면…”
“어쩌면?”
다음 순간, 나는 승엽이의 표정이 기대감으로 가득함을 깨달았다.
또한, 승엽이가 내게 어떤 대답을 바라고 있는지도 느껴졌다.
‘망원경이 널 현실의 가족에게 보내줄 거야.’
‘부모님을 만나고, 승엽이가 이렇게 멋있어졌다고 자랑도 하고, 여자친구도 보여줄 수 있을 거야.’
‘부모님이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면, 네가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을 거야.’
“…”
그래서 말문이 막혔다.
망원경으로 위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손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심오한 이치라는 게 있고, 망원경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물건이다.
수 없이 망원경을 통찰하려 노력했지만, 내가 본 것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한 환영들 뿐이었으니 말이다.
침묵하는 동안 승엽이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그 광경을 보는 내 마음도 살짝 추워졌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해줄 수 있을 때, 그때 말해줄게.”
“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소년이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승엽이의 연기력은 언제나 그렇듯 형편없었다.
당연하게도, 통찰의 힘은 승엽이의 어설픈 연기를 단숨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곧, 진실의 목소리가 환영처럼 내 귀에 들려왔다.
‘서, 설마! 지배인이 거짓말한 건 아니겠지? 에이… 그, 그럴 리가 없어. 가인 형이 뭔가 숨기는 것 같아!’
“…”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는 게 맞았을까?
승엽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에 맞춰서 적당히 긍정적인 가능성 위주로 전달해야 했나?
이랬다가 틀리면?
괜히 기대감을 품어준 덕에 더 큰 실망에 휩싸일지도 몰라.
아니면, 네가 바라는 것들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부정적인 가능성을 전달해야 했나?
그러면 승엽이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서 다음 방에서 이상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어렵다.
때로는, 저주의 방에 숨겨진 아득한 신비보다 사람의 마음을 대하는 게 더 어렵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나는 대부분 침묵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고, 동료들은 점차 내 비밀주의적 태도에 익숙해진다.
스스로도 답답했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고민 상담하는 느낌으로 조언을 사용했다.
「조언 : 3 -> 2」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떤 대답이 좋았을 것 같습니까?’
「타인이 원하는 답을 고민하지 말고, 네가 바라는 답을 말하여 상황을 이끌어라.」
굉장히 올빼미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이 됐냐고 묻는다면, 이런 관점도 있구나 정도는 느꼈다.
“형, 저 이만 가볼게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활짝 웃으며 돌아가는 승엽이.
평온함을 가장했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정말 부정적인 심리상태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경쾌하게 돌아서는 승엽이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오랜만에 보는 환영이 스쳐 갔다.
유미와 다시 만나서 손을 잡고 방실방실 웃는 소년의 모습.
“…”
예전에는 나 자신부터가 통찰과 예언을 잘 구분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눈에 보이는 환영을 승엽이의 운명이라고 느끼곤 했지.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통찰은 예언이 아니며, 나는 예언자가 아니다.
따라서, 저 환영은 승엽이의 운명이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
승엽이가 지금도 유미를 사랑하며, 다시 만나고자 하는 의지가 굳건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나와 대화하면서도 몇 차례 유미를 떠올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런 식의 추론도 가능하다.
승엽이는 망원경에 대해 큰 기대를 품고 내게 왔다.
그런데, 나는 승엽이의 기대를 충족할 만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그러자 승엽이는 ‘나는 왜 호텔에 온 걸까?’하는 절망에 순간적으로 휩싸였다.
하지만, 이미 3층에 온 상태인데 후회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승엽이는 곧 자기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찾아냈다.
바로, 3층의 신비로운 기적을 통해 유미와의 진실한 사랑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
승엽이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3층에 온 이유’를 되새겼고, 긍정적인 태도를 되찾았다.
…
통찰은 이 모든 과정을 읽어낸 후 ‘승엽이가 유미와 재회하는 환영’을 내게 보여준 것.
참 어려운 능력이다.
또한, 믿기 힘들 정도로 위대한 능력이기도 했다.
*
곧, 테이블 앞에 다음 사람이 나타났다.
“소름 돋는 가인아, 안녕!”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