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96)
EP.697 697화 – 궁극의 자아, 세 번째 시도의 시작 (4) Fin
697화 – 궁극의 자아, 세 번째 시도의 시작 (4) Fin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7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로비
현자의 조언 : 2」
– 한가인
“소름 돋는 가인아, 안녕!”
내 앞에 앉은 사람은 아리였다.
은솔 누나에게 ‘오늘 가인이는 평소보다 뭔가 더 심해…’ 같은 소리를 들은 모양인데,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요즘 느끼는데, 호텔에 전문 상담사가 한 명 생긴 것 같아. 그렇지?”
“나 말하냐?”
아리는 킥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 내내 강의하느라 힘들었겠네. 아닌가? 재밌었나?”
“강의는 무슨…”
“널 보고 있으면 신기할 때가 있어.”
“왜?”
“타인의 몸을 조종하는 능력. 타인의 운명을 읽는 능력.”
실제로는, 통찰은 무슨 운명을 읽는 힘이 아니다.
통찰과 예언은 비슷한 듯하면서 굉장히 다른 능력이니까.
다만, 동료들은 예언과 통찰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보기엔, 어차피 구분하기 어렵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타인의 신뢰를 얻긴 어려운 힘이잖아? 신체 조종은 당연하고, 운명을 읽는 능력도 그렇지. 그리스 신화의 카산드라를 생각해 봐.”
“으음…”
“하지만, 우리는 널 굳게 신뢰하지. 나나 과거의 미로에겐 어려운 일일 텐데.”
갑작스러운 아리의 말에 살짝 당황하는 것도 잠시, 아리가 다음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이번엔 내 강의를 들어봐.”
301호의 제목에 관한 이야기.
“방의 제목은 종의 기원이야. 알다시피, 진화론을 상징하는 단어지.”
“그래.”
“언제나 그랬듯이 – 이번에도 방의 제목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어.”
호텔이 보기에, 301호의 키워드는 ‘진화론’이었다.
“선각자를 비롯한 관리국 세력은 인간이 영적으로 진화한 결과물을 회귀자라고 생각해. 물론, 과학과는 거리가 먼 사이비지만.”
“과학적으로 말이 되냐 안되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호텔 내 주요 세력이 그렇게 믿는다는 사실이야.”
“맞아. 그리고, 은솔이의 과거 회상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회귀자 다음 단계가 있었어.”
“참가자.”
선각자가 보기에, 참가자는 회귀자 보다도 한 단계 나아간 존재다.
회귀자를 인류 진화의 결과물로 보는 이들에게 참가자가 어떻게 보일까?
진화의 정점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도달점이다.
물론, 이런 분석은 과학과 거리가 멀지만 말이다.
“즉, 방 제목의 의미는 301호 내에서 참가자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가 있다는 의미였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도 비슷하게 생각 중이긴 한데… 의아한 구석도 있어. 이스의 왕이 실제 은총에 성공했을 때의 일을 봐.”
2회차의 끝, 이스의 왕은 은솔 누나의 몸을 빼앗아 은총을 성공시켰다.
“세상이 바로 망하더라고. 어쩌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간의 혼이 은총 의식의 자원으로 쓰였을지도 모르지. 이게 진짜 선각자가 원한 결말일까?”
아리는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아니겠지. 선각자는 아마도, 이스의 왕이 가진 권능을 통해 전 인류의 영적 상승을 꿈꾼 게 아닐까?”
전 인류의 영적인 도약이라…
그럴듯한 목표긴 한데, 2회차 말미에 드러난 은총의 실체를 고려하면 시작부터 글러 먹었다.
은총을 통해 모든 이가 참가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특수한 안배가 있었던 은솔 누나 같은 경우 뿐이었다.
심지어 그 은솔 누나조차 정말로 운명을 얻던 순간은 죄수가 통제하기 어려웠지.
게다가, 은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인간이 죽으며 종말 판정까지 뜬다.
은총의 실체가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계획의 중심에 있는 이스의 왕 본인에게 인간에 대한 애정 따위는 단 1g도 없기 때문이지.
왕에게 무한한 사랑의 대상은 이스의 종족 뿐이다.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회차에선 선각자를 끌어들일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아리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어려울 것 같은데.”
“왜?”
“선각자는 설득이 되는 유형의 인간이 아닐 거야.”
“막연히 우기겠다는 게 아니야. 선각자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를 통해서 -”
그 순간, 아리가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가인아, 잠깐만 내 말을 들어봐.”
곧, 아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너와 함께하고, 최근엔 선대 지혜까지 알게 되면서 깨달은 점이 있어. 지혜에 속한 사람들은 굉장히 초이성적이더라고.”
지혜에 속한 이들은 초이성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이야기.
“본래 그런 사람들이라 지혜의 축복을 얻었을까? 아니면, 지혜의 축복이 너희를 바꿨을까?”
“반반인 것 같네. 본래 그런 성향도 있고, 축복을 얻으며 더 그렇게 바뀌기도 했고.”
“그래. 어쨌든, 너희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한 끝에 미친 결론에 도달하곤 해.”
합리적으로 사유한 끝에 광기에 도착하는 사람들?
당황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일리 있는 의견으로 들렸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내 죽음이 필요하면 자살한다.”
“…”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억겁의 세월을 추구한 목표가 틀렸다 싶으면 즉각 포기한다.”
“…”
“너와 선대 지혜가 보인 행동들이지. 네 생각엔 이게 합리적이고, 당연할지도 몰라.”
“실제로 합리적인 판단이었지.”
“내 말은,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에 지극히 드물다는 이야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선대 지혜나 나 같이 생각하진 않는다.
따라서, 아리는 이번엔 내 판단이 틀렸다고 본다.
순간, 나는 일종의 기쁨을 느꼈다.
통찰을 얻은 이후, 대부분 동료는 내 의견에 반박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합리적인 반박을 하는 사람은 아리가 대부분이고, 가끔은 은솔 누나가 끼어드는 정도였지.
혹은, 미로가 맥락 없이 그냥 엎어버리거나.
아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 생각에, 선각자는 설득이라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야. 네가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믿지 않고, 본인만의 신념에 사로잡혀 있을 확률이 높아.”
“그건, 네가 관리국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적 판단인가?”
“맞아. 관리국에 선각자 같은 사람이 많거든. 조직 특성상 온 세상의 해괴한 정보가 모여들고,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이 많지.”
“으음, 그러면, 선각자는 그냥 제거하는 쪽으로 진행해야겠네.”
“또, 3회차에선 이스의 왕을 설득해 보려는 것 같던데, 맞지?”
“맞아. 이걸 위해 2회차의 공작을 시간대여기에 담기도 했고.”
“…”
다음 말은 아리도 확신할 수 없는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인간을 초월한 위대한 자의 ‘성격’을 논하는 게 억지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냥 말해봐.”
“내가 느끼기에, 이스의 왕은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어.”
곧, 아리는 화이트보드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이스의 왕의 행동 분석
1. 이스의 종족에게도 계획의 전모를 숨기는 비밀주의
2. 지배인의 말에 따르면,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함
3. 지극히 교활하며, 계략에 능하고 필멸자를 농락하는 성향이 존재
“어때? 무슨 생각이 들어?”
“비밀주의, 자기 확신, 필멸자에 대한 무시 정도.”
“이런 존재를 우리가 설득할 수 있을까?”
“설득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고 -”
“공작이어도 똑같아. 공작이 설득한다고 들을까?”
“…”
“이스의 왕은 물론, 이스의 종족을 사랑하지. 본인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스의 종족을 구하고 싶어 할 정도잖아? 사랑 자체는 진실해. 하지만, 사랑하는 것과 믿는 건 다른 거야.”
“…”
“부모는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또한 아이들이 성인보다 어리석고 약함을 알아. 이스의 왕도 마찬가지겠지.”
아리의 지적은 간단했다.
선각자는 물론이고 이스의 왕 역시 무슨 설득이 통하는 존재가 아닐 것 같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가서 말하든, 공작이 가서 말하든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
나는 조심스레 ‘합리적인’ 재반박을 시도했다.
“왕이 공작의 기억을 읽어서 이전 회차의 정보를 얻는다면? 아니지, 이스의 왕은 운명을 볼 수 있는 존재니까, 이전 회차의 운명 자체를 읽어낼지도 -”
“가인이 넌 음모론자의 사고방식을 잘 모르는구나.”
“뭐?”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음모론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
자리에서 일어선 아리가 마치 선동가처럼 외쳤다.
“전부 조작이다.”
“…”
“전부, 다, all, everything! 다 조작!”
“… 공작의 기억을 누가 조작하는데?”
“부처가 조작했다아아아!!!”
순간, 말문을 잃었다.
“너, 너무 유치한 분석 아니야? 결론을 정해놓고, 반대 증거는 전부 조작이라고 우기다니… 이스의 왕이 무슨 저능아도 아니고.”
“지능이 낮은 사람만 음모론에 빠지는 줄 알아? 그러면, 세계 초일류 엘리트만 모은 관리국 직원들은 왜 음모론에 빠질까?”
“…”
아리의 말을 들으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느끼기엔,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어리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죄수가 그렇게 어리석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런 내 생각을 느꼈는지, 아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걸 어리석다고 보는 건 너무 네 관점이야. 한번 조언을 사용해 봐. 나도 궁금하네.”
「조언 : 2 -> 1」
‘지금의 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답변은 지극히 간단했다.
「천국」
너무 간단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뭐야?”
“왜? 올빼미가 또 선문답 같은 답변을 줬어? 뭐라고 했는데?”
“천국. 딱 두 글자 줬는데.”
“이야~ 역시 올빼미야. 항상 느끼는데, 호텔에서 올빼미처럼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는 후원자가 없거든?”
“그렇지.”
“가장 열심히 도와주는 것도 올빼미인데, 가장 짜증 나게 하는 것도 올빼미 같아….”
여기까지 말한 아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지막 말을 꺼냈다.
“어쨌든,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니까.”
아리가 떠나며 나 혼자 남은 다과 테이블.
말없이 콜라를 마시며 올빼미의 조언에 대해 생각했다.
아리가 해 준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선각자나 이스의 왕을 설득, 혹은 의지를 꺾으려는 진행 방식은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둘 다, ‘나와 달리’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는 존재들이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아리가 관리국에서 여러 번 경험한 음모론자들이 좋은 예시다.
그들은 자신이 정한 결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반대 증거를 보면 전부 조작이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들은 올빼미는 딱 두 글자로 답했다.
천국.
“…”
— 탁!
빈 콜라 캔이 테이블 위에 놓일 즈음, 나는 올빼미가 ‘조심스럽게’ 해 준 조언의 의미를 이해했다.
본인의 사유 끝에 한 번 결론을 정하면, 절대 바꾸지 않는 태도.
중간에 그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의지.
터무니없는 희생, 묵시적 비극, 많은 이의 비탄 – 이런 것들을 단지 ‘일시적인 현상’ 정도로 여기는 사고방식.
궁극의 자아.
영겁의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정신.
“…”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이 순간, 나는 아리와 올빼미의 조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어리석은 존재만 자기 확신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존재는, 너무 위대하기에 본인이 틀릴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은 그 어떤 방식으로도 설득할 수가 없다.
“…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매운맛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
이후, 늦은 밤까지 동료들과 세 번째 회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의견을 나누고, 계획의 대략적인 얼개를 짰다.
은솔 누나의 입에서 굉장히 도박적인 계획이 튀어나왔을 때, 오늘의 마지막 조언을 사용했다.
「조언 : 1 -> 0」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에 대한 은솔 누나의 반응은 간단했다.
“아니, 무슨 명언충이야?”
*
아침이 밝았다.
세 번째 시도의 시작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