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697)
EP.698 698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2)
698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2)
– 이은솔
“하아암…!”
이른 아침,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뜨니 익숙한 105호의 천장이 보였다.
3층 보수 공사를 명분 삼아 호텔이 준 꿀 같은 휴식일은 어제로 끝났네.
뭐, 계속 놀기만 할 수야 없지.
간단히 세안을 마칠 무렵, 한 가지 당혹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오늘은 301호의 세 번째 시도가 시작하는 날이다.
당연히 어제 밤늦게까지 다 같이 세 번째 시도를 어떻게 진행할지 토론했을거야.
그런데, 토론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무슨 계획을 어떻게 짰는지, 초반은 어떻게 진행하고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 대신, 회의 시작할 때 가인이와 이런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났다.
*
“누나.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모두가 회의에 참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뭐?”
“이스의 왕이 누나의 몸을 강탈하는 변수가 생길 수 있잖아요?”
“그건 -”
“그렇게 되면, 누나의 기억을 통해 계획이 새어나갈 수 있죠.”
“아, 알겠어, 알겠는데, 301호의 주연 배우는 나랑 송이 아니야? 내 의견이 아예 빠지는 건 좀 -”
“누나의 의견은 적극 반영될 겁니다.”
“뭐? 회의에 빠지라며?”
“다른 시간대의 누나가 회의에 참여할 겁니다.”
*
그니까, 보안 문제로 난 회의에 빠지고, 미로가 소환한 과거의 내가 회의에 참여한 상황이야?
“…”
약간의 황당함을 느끼며 밖으로 나가니, 이미 동료들이 깨어서 이야기 중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다가가기 전까지만 이야기 중이었다.
내가 가까이 가니까 다들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 다들 너무한 거 아니야?”
아리가 싱긋 웃었다.
“미안! 그치만, 은솔이 몸에 스파이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
“참, 은솔아. 이거 선물!”
아리가 갑자기 자그마한 종이쪽지를 건넸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회의한 결과,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머니’의 계획에는 우리가 찌를 수 있는 허점이 많다.
2회차 때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건,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새삼, 회차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인지 느꼈다.
굉장히 트릭키한 계획이 만들어졌다.
어떤 계획은, 적보다 먼저 동료를 속여야 할 때도 있는 법.
나도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내 글씨체네.”
아리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쓴 편지니까.”
‘너도 동의한 계획이야!’라고 알려주기 위해 편지를 보여준 것 같았다.
*
간단히 아침 식사를 끝내자마자 301호로 향했다.
.
..
…
곧, 301호 내부의 화려한 방에서 깨어났다.
대체 무슨 계획을 세웠을지 궁금해할 무렵, 동료들이 자연스럽게 입실 명부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3층부터는 입실 명부에 이름을 적은 사람만 해결 파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명부에 이름을 적을지 궁금했는 – 어?
“뭐야? 얘들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입실 명부에 가서 끄적이고 왔다!
“아니, 전부 다 들어가는 거야? 탈출 파티에는 아무도 없어? 관측소는 비울 생각이야?”
대답하지 않는 동료들.
“당연히 회의로 결정했겠지만… 관측소를 아예 비워도 되는 거야? 규칙상 이래도 되는 -”
여기까지 말하다가, 시선을 피하는 동료들을 보고 깨달았다.
“아.”
착각했구나.
전원이 들어가는 게 아니야.
조금 전, 몇 명은 입실 명부에 가까이 가기만 했지 이름을 적지 않았다.
동료들은 내게 누가 해결 파티이고, 누가 탈출 파티인지조차 숨기는 것이다!
“…”
이해는 해.
가인이나 아리처럼 똑똑한 애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짠 계획이겠지.
트릭키한 계획이라는 걸 보니, 속임수가 많은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질 모양이야.
그렇지만, 이쯤 되니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다.
“그, 그래도… 301호는 나랑 송이가 주연 배우 느낌 아니야? 너무 아예 모르면 곤란할 것 같은데.”
신비로운 빛과 함께 301호의 세 번째 시도가 시작하기 직전, 송이가 내 쪽을 보며 위로하듯 말했다.
“언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한 가지 알아두세요. 이번 계획, 거의 다 언니가 세웠어요.”
“?”
*
.
..
…
푹신한 침대에서 깨어났다.
이번에는 105호의 침대가 아닌, 대양그룹 회장 일가가 살아가는 저택의 내 방 침대였다.
“… 새삼 황당하네.”
나, 지금 301호에 누가 들어왔는지도 몰라.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당연히 모르지.
세 번째 시도를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했네.
어이없는 건, 이 황당한 계획의 상당 부분을 ‘내가’ 세웠다는 사실이야.
나를 속이는 계획을 짠 또 다른 나.
“…”
시간 대여기가 불러내는 ‘다른 시간대의 나’와 지금의 나는 굉장히 다른 존재임을 체감했다.
그러자 불현듯, 시간대여기의 규칙 – 원본과 소환체가 마주치면 안 된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다른 시간대의 나를 보면 굉장히… 두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휴우…”
철학적인 생각은 이쯤 하자.
이런 건 가인이 같은 애들이 맨날 하고 있을 테니, 나까지 할 필요는 없어.
그보다, 일단 피리부터 소환하자.
‘어머니’가 저택에 남긴 불가해한 힘이 내 사고를 왜곡할지도 모르니까.
— 부우우…!
안식의 피리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현 상황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 저택에는 큰오빠도 없고, 여동생도 없다. 당연히 어머니도 없다.
2회차 말미에 가인이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의 기억을 파고든 후에야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시도에선 아직 아버지의 기억을 파고들지 않았으니, 어머니 역시 개입할 수 없는 상황.
따라서, 저택에는 아버님, 나, 둘째 오빠 이렇게 세 사람이 끝이다.
본래는 부모님 두 분과 네 형제, 즉 여섯 명이 살아가는 복작복작한 집이라고 생각했었지.
실제로는 고작 세 사람이었음을 깨닫고 보니, 저택이 굉장히 황량하게 느껴지네.
“…”
큰오빠와 여동생은 내가 어린 시절 이미 소멸했다.
어머니는, 느낌상 평소에는 현실에 나타나지 않다가 필요한 순간에만 나타났을 것 같아.
그렇게 십수 년을 살면서도 아버님, 나, 둘째 오빠 세 사람 다 눈치채지 못했다.
십수 년을 셋이 살면서,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아갔다는 이야기다.
“이게 대체…”
아찔하네.
이쯤 되니까, 인간의 정신을 뒤흔드는 어머니의 힘이 두려운 정도를 넘어서 감탄이 나올 정도야.
한숨 쉬면서 복도로 나오니, 그새 출근 준비를 끝내고 양복을 입은 둘째 오빠가 보였다.
“야, 야!”
“왜?”
“아침부터 방에서 이상한 소리는 왜 내는 거야? 무슨, 피리 소리 같았는데.”
“그냥, 취미로.”
“하~! 너도 참 희한하다. 어쨌든, 너도 일찍 출근해라. 오늘 회사에서 고생 좀 할걸?”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둘째 오빠.
예전이라면 되게 밉살스러웠을 텐데…
지금은, 이런 모습에서조차 따스함을 느낀다.
“오빠.”
“응?”
“큰오빠는 어디 있는지 알아?”
“어? 형? 이미 출근했을걸?”
“… 희윤이는?”
“걔도 출근했을걸? 야, 너도 빨리 옷이나 갈아입어. 나 먼저 간다!”
고마웠다.
내게 남은 유일한 형제가, 살아있어줘서 고마웠다.
*
다시 생각해도 황당한 사실.
나는 세 번째 시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몰라.
아무리 그래도 이래도 되나 싶어질 정도라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출근이나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계속 투덜거리며 출근을 위해 주차장으로 – 으악! 차 문을 열자마자 가인이가 나타났잖아!
“으악!”
“좋은 아침입니다.”
“아이 깜짝이야!”
“왜 그러세요?”
“왜는 무슨 왜! 니가 왜 내 차에 타고 있어?”
아니, 여기 나름 대양그룹 회장님 저택 아니었어?
경호원들은 그 돈 받고 뭘 하고 있길래 – 됐다, 됐어.
가인이가 마음먹으면 관리국도 제 안방 드나들듯 할 텐데, 재벌 정도야 동네 구멍가게 정도로 보이겠지.
“은솔아, 가인이만 보이냐?”
운전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심지어 묵성 할아버님이었다.
이쯤 되니 따지기도 좀 그랬고, 그냥 웃음만 나왔다.
“… 좋은 아침이네요.
“그래, 좋은 아침이다.”
가인이가 ‘해결 파티’에 들어온 상황이네.
내심 마음이 놓였다.
가장 앞서가는 동료가 나와 같은 일을 진행한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종말 이후 세계에 가인이가 없을 것임을 생각하니 불안감도 들었다.
“그래, 가인이 네가 들어왔다면, 이미 시나리오 이해 같은 건 확인 했겠네?”
“별거 없어요. 시나리오 이해는 진행 초반에 유용한 능력이잖아요? 그런데, 이미 1, 2회차에서 많이 진행한 상황이라.”
“아… 그래?”
정말 별거 없어서 별거 없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시나리오 이해의 내용조차 내게 숨기는 건지 모르겠어.
그 사이, 차가 회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 나, 출근 안 해도 돼?”
“네. 지금은 일단 미로를 태우러 가고 있어요.”
미로를 태우러 간다고?
할아버님과 가인이가 오면서 미로를 데려오면 되는 것 아니었나?
아, 시간대여기에 ‘공작’이 담겨있었지!
느낌상 미로는 공작의 상황을 확인했을 것 같아.
어쨌든, 상황을 잘 모르다 보니 살짝 걱정스러웠다.
“이렇게 멋대로 행동해도 될까? 알다시피, 나는 평사원이 아니라 상무야. 회장님 딸이기도 하고. 연락도 없이 갑자기 결근하면…”
대양 그룹에서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 내에 잠입해 있는 ‘이스의 종족’이 위화감을 느낄지도 몰라.
가인이의 대답은 단호했다.
“상관없어요.”
“뭐?”
“어제, 회의 도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내가 적극 참여한, 하지만 내가 모르는 회의.
“이스의 왕이 301호에 얼마나 많은 함정을 팠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죠.”
“그건 확실히 무섭네.”
가장 큰 함정은 ‘아버님의 기억’이었다.
두 번째 시도에서 내가 직접 밟으며 알아낸 함정이다.
당연히 더 있을 거야.
사람도 지뢰를 매설할 때 하나만 깔지 않잖아?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돌아다닐수록 위험하다는 게 우리의 결론입니다.”
지뢰 매설지역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여기저기, 오랫동안 돌아다니는 것.
따라서, 동료들은 단순명쾌한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대한 대응은 간단합니다. 초고속 일직선 진행.”
“초고속 일직선 진행?”
“시간 끌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함정을 밟지도 않을 겁니다.”
“그 말은 – ”
“301호의 해결과 실패 여부. 이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이면 결판냅니다. 그러니 회사 사람들의 반응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이해했어.”
“참, 그리고!”
가인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피리 쓰시지 마세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해했다.
지금, 내가 보고 듣는 현실 자체에 이미 조작이 가해져 있음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