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0)
69화 – 101호, 저주의 방 – ‘상식개변 미디어’ (3)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2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0]
하루 사이에 세 번째 시도까지 마무리되었다.
나와서 주변을 돌아보자, 다들 뭔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짐작이 간다. 나와 묵성 할아버지를 제외하면 ‘ABS 방송국’에 도착한 사람조차도 없었다.
다들 나름대로 뭔가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알아내지 못한 채로 막힌 게 분명하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105호로 갑시다. 설명해 드려야 할 부분이 엄청 많은 것 같습니다.”
내가 뭔가 알아냈다는 티를 내자 다들 조금은 안심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걸어가면서 대화할 주제를 크게 세 종류로 압축했다.
첫째, 알아낸 정보들. ABS, 병원, 학생 등.
둘째, 나와 묵성 할아버지가 알아낸 ‘방송국으로 가는 방법’
셋째, 정신 오염에 대한 저항이 없는 사람들은 방송국 탐색에 어떻게 참여할지에 대한 논의.
오늘 저녁은 이 정도를 결정하고 쉬면 될 것 같다.
*
아쉽게도 세 번째 시도에서 시간을 많이 써서 105호의 저녁 식사 시간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다들 프런트로 다시 나와서 다과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다행히 테이블은 언제나 과자와 음료수가 준비되었기에 적당히 배는 채울 수 있었다.
은솔 누나가 회의를 시작했다.
“그래, 가인이나 할아버님이 뭔가 알아낸 느낌이네. 말해보세요. 저는 ‘휴식팀’이라 그냥 놀았으니까 듣기만 할 테니.”
… 아직도 기분이 나쁜가 보구나.
우선 첫 번째. 나와 할아버지가 알아낸 사실부터 전달하자.
먼저,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ABS 방송국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전했다.
표정을 보니 이것부터 알아내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알아냈다 해도 대체 어떻게 갈지 엄두가 안 나서 못 온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다음으로 방송국의 지하를 탐사하면서 발견한 사실들을 전달했다. 경비실의 참혹한 광경. ‘주의사항’. 주의사항을 어기면서 발견한 광경들.
병원의 풍경. 간호사 형태의 괴물. 기괴하게 변형된 학생들.
뭔가 많이 알아낸 듯하면서도,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정보들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도 비슷했다.
“난잡한 상태네. 이런저런 정보는 많은데, 그걸 하나로 꿰는 실을 찾지 못한 느낌이야.”
“크게 세 가지 덩어리의 정보들이라 생각합니다. ‘방송국’, ‘병원’, ‘학교’.”
“학교라면, 그 살덩이가 되었다는 고등학생들?”
“네.”
“아무래도 ‘신세계 병원’, ‘이혁진’, ‘김상민’. 이런 단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뭐 나오지, 싶은데?”
“다음 시도 때, 각자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검색해서 알아봅시다. 그 후에 방송국에 온 사람들끼리 정보 공유하고, 못 온 사람들은 다음에 방을 나가서 알려주도록 합시다.”
다음 시도 때 각자 101호 내부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저 키워드들을 검색해서 정보를 알아낸 후, 방송국에 모이기로 했다.
두 번째.
어떻게 해야 방송국에 갈 수 있는가?
“저는 어려운 방법으로 갔습니다. 저주에 감염된 동생을 데리고 갔거든요. 원래 계획은 코로나 핑계로 거리 유지하면서 갈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택시를 타느라 그것조차 불가능했습니다. 사실상 필터나 팔찌 없이는 불가능한 방법이니, ‘모두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어르신이 설명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쓴 방법은 자네들도 사실 처음 101호에서 썼던 방법일세. 순간이동이지.”
어르신이 간략하게 본인이 썼던 방법을 설명했다.
1. 이성을 유지한 채로 미리 방송국 대기실 쪽으로 간다는 일정을 세운다.
2. 저주에 감염된 후, 순간이동으로 방송국 대기실에 도착한다.
3. 대기실에서 혼자 있다가 깨어난다.
다들 입을 떡 벌리며 감탄했다.
모두가 이 방법에 대해 논하던 중, 송이가 한가지 문제점을 찾아냈다.
“할아버지. 그 방식에 위험이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우리 스스로 일정을 바꾸면 어떻게 하죠?”
일정을 바꾼다. 그 부분은 확실히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다.
“멀쩡한 상태로 방송국에 가자! 하고 계획을 세웠다 해서, 저주에 감염된 우리가 그걸 꼭 지킨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저주에 감염됐다고 해서 무슨 자아가 없는 로봇이 되는 게 아니고, 단지 ‘상식이 뒤틀린 또 다른 우리 자신’이 될 뿐인데.
좀 더 생각해 보니 방송국에 가지 않겠다! 해버리면 그냥 저주만 걸린 채로 끝나는 거죠.”
아리도 또 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송이가 말한 ‘일정 변경’과 비슷한 이야기인데, 순간 이동할 때 가족이 따라오면 어떡하지? 나는…. 내가 어딜 가려고 해도 엄마가 무조건 따라오려고 할 것 같거든.”
아리 엄마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던 점인데, 대체 아리 엄마는 어떤 존재인 걸까?
아리가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강하면서 딸이 어딜 가도 쫓아가려고 할 정도로 집착적인 성격인가?
뭔가 점점 모르겠다.
‘순간이동’의 문제점.
저주에 감염된 이후에 ‘또 다른 자신이’ 계획을 바꾸면 어떻게 될까. 아예 방송국을 가지 않기로 하거나, 더 심각하게는 저주에 감염된 가족을 데리고 도착하거나.
전자는 혼자 이탈하고 끝이지만, 후자는 그 감염된 가족 때문에 나머지 인원 전부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
내가 한 가지를 제안했다.
“순간이동에도 꽤 위험이 많은 모양이니, 모두가 가는 방법을 통일할 게 아니라 각자 다르게 가 봅시다. 저처럼 가족과 동반해서 가는 게 가능한 분?”
말하면서 송이를 쳐다봤다. 어차피 저주에 감염된 가족을 데리고 장기간 이동하면서 버틸 사람은 나와 송이뿐 아니던가.
역시나 송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 ABS까지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으니까, 저도 가인 오빠처럼 가족 데리고 갈게요.”
“어? ABS 근처에 살았어?”
세 번째 시도 때 방송국에 오지 못한 건 ABS로 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ABS까지 걸어서 15분이면, 송이네 집은 엄청 비싼 곳에 사는구나.
순간적으로 소시민의 기분을 느꼈다. 주변을 돌아보자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다.
어차피 우리가 찾아낸 ABS로의 이동 방법은 가족 데리고 가기와 순간이동뿐. 가족 데려가기를 할 수 있는 건 나와 송이뿐이니, 나머지는 어떻게든 순간이동을 해봐야겠지.
아리의 말을 끝으로, 각자의 다음 계획을 정리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동도 포기할게. 갈 수는 있을 텐데, 엄마가 무조건 따라올 거라고 봐.”
1. 탈출 팀 : 박승엽
2. 진행 팀(순간이동) : 엘레나, 김묵성, 차진철, 이은솔
3. 진행 팀(가족 동반) : 한가인, 유송이
4. 완전 포기 팀 : 김아리
마지막 주제로 넘어갔다.
어떻게 탐사할 것인가?
“저와 묵성 어르신이 탐사하다가 느낀 바로는, 사실 다 같이 방송국에 모여도 문제입니다.
그나마 사람이 없는 지하는 저 혼자 나름대로 살펴봤지만, 위층을 뒤지려면 결국 정신 면역 없이는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어르신?”
“내가 가인이 뒤만 따라가 봤네. 단언하지. 도저히 무리야. 내 나름대로 여러 가지 훈련받았다고 자신하네만, 절대로 버틸 수 없네. 저주의 힘은 단순히 의지력으로 견뎌지는 종류가 아닐세.”
송이가 의견을 냈다.
“그러면 저랑 가인 오빠 둘이서만 탐색하고, 나머지는 1층에서 대기할까요?”
“흐음. 이미 한번 살펴본 가인이 생각은 어때?”
“다른 방법이 없다면 둘이서 해야겠죠. 다들 떠오르는 생각 없으십니까?”
…
다들 침묵이 이어졌다. 쉽지 않은 상황. 아리가 ‘엄마’ 때문에 순간이동을 통한 합류조차 포기한 이상, 나와 송이 말고는 정신 오염을 견딜만한 사람이 없다.
고심하던 누나가 입을 열었다.
“우리, 이번 시도는 어차피 네 번째지? 다섯 번째부터 이상해진다고 하니, 가능하면 이번에 끝내는 걸 목표로 해야지. 그냥 진철이가 빨간약 먹는 것 어때?”
“…”
괜찮은 생각 아닌가?
‘횟수’에 대한 생각은 나도 하고 있던 차. 가능하면 이번 시도로 해결하는 게 좋다. 그런데, 정작 빨간약을 먹어야 할 사람인 형은 뭔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흠. 뭔가 생각이 있냐? 그럼 그냥 말 해봐.”
어르신의 말에도 형은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너무 무식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순간이동’을 듣고 나서 든 생각입니다. 101호 내부의 세계는 세상의 상식이 뒤틀어진 세상 아닙니까? 우리도 ‘좀 더’ 비상식적으로 행동해도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따 고놈 참 답답하네. 그냥 뭘 어떻게 하자 딱 말을 해봐.”
“다 죽이면서 갑시다.”
“…”
“…”
순간적으로 모두가 말문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첫 번째 시도 때, 나는 정신이 붕괴한 채로 살인 격투대회까지 나갔다 왔습니다.
가인이 말로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러시안 룰렛으로 100명이 넘게 죽는 걸 무슨 담력 시험처럼 한다면서요?
그런 세상에서 ‘살인’이 죄가 되긴 합니까? 애초에 경찰 같은 게 정상적으로 작동은 하는 겁니까?
그냥 방송국 가자마자 총이든 뭐든 무기로 방송국 직원 다 죽이면서 진행합시다.”
…
미친 소리지만 일리가 있다.
생각해 보니, 내 가짜 동생은 대놓고 길가에서 도끼로 택시 기사를 쳐 죽였는데도 경찰 같은 건 안 왔지….
미친 세상에선 미친 계획이 통하는 법. 살인 격투대회가 개최되고, 먹방에선 사람을 먹고, 신입생 환영회에선 러시안 룰렛을 해대는 세계.
방송국 직원 좀 죽였다고 문제가 될까? 별 상관 없는 게 아닐까?
직원을 총으로 다 쏴 죽이면서 진행하면 정신 오염이고 뭐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햐…. 외눈박이만 있는 세상에선 두눈박이가 비정상이라더니, 병신 같은 세계에선 멧돼지 같은 놈이 천재가 되는구나!”
“아, 멧돼지가 또 왜 나옵니까.”
“너 천재 같았다고 이놈아! 그 계획. 통할 느낌이 든다. 사람 좀 죽인다고 감옥에 가는 세계면 그 세계의 모든 인간이 다 감옥 가 있겠지.”
이 미친 대화를 끝으로, 내일부터 진행할 네 번째 시도의 작전 계획이 끝났다.
1. 각자 시작 지점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등으로 검색해볼 것.
2. 적절한 시점에 순간이동 또는 가족 동반으로 방송국에 도착할 것.
3. 직원을 전부 죽이면서 위층 탐색.
이 정도로 회의를 마무리한 채로 다들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며 105호의 침실로 돌아갔다.
*
…
모두가 잠든 밤.
김묵성은 105호의 바깥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아리가 있었다.
“이 시간에 ‘개인 메세지’라니. 따로 할 말이 있는 게냐?”
“아까 회의 하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무슨 생각?”
“가인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점점 더 믿음직스럽게 변하지 않느냐? 꽤 끔찍한 것들을 보면서도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주 쓸만하다. 당장 요원으로 선발해도 충분하겠던데?”
“그게 이상하다는 거지. 우리가 여기 도착한 지 얼마나 됐지? 너무 많은 일을 겪기도 했고, 방 안의 시간의 흐름이 제멋대로라 각자 다르겠지만…. 가인이 본인 기준으로는 한 달도 안됐을걸?”
“그렇군.”
“묵성. 밖에서 본 ‘보통 사람’을 생각해 봐. 일반인은 시체 하나만 봐도 비명을 지르는 게 보통이고, 배설물에 뒤덮여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나 고문당하다가 살덩이로 변한 학생들을 보면 아예 주저앉아서 이성을 잃어야 정상이야.”
“…”
“아무리 많은 일을 겪었다고 해도, 한 달 만에 이렇게까지 초인적인 정신력을 얻을 수가 있을까? 무슨 30년 차 요원 같아. 그래, 우리처럼.”
“듣고 보니 이상한 구석이 있군.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도 변화가 과해. 진철 군은 아직도 어리숙한 면이 있고, 은솔, 송이, 엘레나 양 등도 그 정도 잔혹한 장면에서 태연하게 행동하긴 어려워 보이네.”
“이 정도로 급격히 변하기 시작한 건 ‘호텔고’에서 필터의 사용법을 익히면서부터야. 그때부터 축복을 활용하는 빈도가 엄청나게 늘었지.”
“‘올빼미’가 그의 정신을 변화시키는 중이라 생각하나?”
“아마도.”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쁘다고 볼 수 있나? ‘올빼미’는 결국 큰 틀에선 그의 편이지. 오히려 이 잔혹한 장소에서는 그런 초인적인 정신력이 큰 도움이 될 텐데.”
“사람의 편은 언제나 사람뿐이야.”
“…”
“…”
“그건, 오랜 세월 동안 세상을 지킨 경험을 통해 얻으신 ‘깨달음’입니까? 선배님?”
“…오랜만에 선배님 소리 들으니까 나 소름 돋았어.”
“가끔은 저만 늙어서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징그럽게 존댓말 하지 마. 여하튼, 가인이는 아직도 나를 의심하는 느낌이니까, 네가 그를 좀 더 ‘사람의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좋겠어.”
“뭐, 미래의 요원 후배를 위한다 생각하고 나름 신경 써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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