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00)
EP.701 701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5)
701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5)
– 김아리
2회차 극후반에 벌어진 일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스의 왕은 오래전부터 강원도 지하에 은거 중이며, 은솔이는 날 때부터 마음속에 ‘이스의 왕’의 자아 복제체를 품고 있었다.
2. 왕은 은솔이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본인의 자아 복제체를 깨웠고, 본인의 힘 또한 양도했다.
3. 그 결과, 은솔이는 ‘죄수의 힘을 가진 참가자’로 완성되었고, 천상에 침입해 천국의 문 너머를 보았다.
3번째 시도가 시작된 지금, 강원도 지하에 있는 이스의 왕은 위의 상황 중 1번과 2번은 알고 있다.
과거의 다른 죄수들이 그러했듯, 왕 역시 죄수이기에 이전 회차의 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3번, 천상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본인의 분신이 천상에 간 것이지, 직접 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천상에 가봐야 의미 없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왕을 설득할 수 있을까?
…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대가 어리석어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격이 높은 존재여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야.
생각해 봐.
성인이 어린아이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꾸는 게 쉽겠어?
“나의 왕이시여… 조물주시여. 부디, 제 말을 들어주시길.”
지금, 내 몸을 빌려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이가 있었다.
+ 아들아, 듣고 있느니라. +
공작이 왕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공 확률이 0이라고 봤지만, 동료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
누군가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라고 봤고, 다른 누군가는 해서 손해날 일은 아니라고 봤다.
공작 역시 한번은 설득할 기회를 달라고 했으니, 해보기로 결정이 났다.
협상 과정에서 일종의 안전장치가 만들어졌다.
공작은 내 몸을 빌려 왕 앞에 나서야 하며, 내 자아는 깨어있어야 한다.
“왕이시여… 우주의 시간이 돌아가기 전, 저는 당신과 함께 천상을 보았나이다. 왕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실 터입니다.”
+ 그래, 무엇을 보았느냐? +
“당신의 뜻을 이해했습니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가 우리를 버렸음을 알았고, 이 사실을 인지한 당신이 얼마나 절망했는지 알았습니다.”
+ … +
“하지만 왕이시여, 저는 또한 이 같은 사실이 당신이 착각임을 알았습니다.”
+ 착각? +
“부디 제 말을 믿어주소서.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는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았고, 구원받고 있고, 구원받을 운명입니다. 이것은 제 자의적 판단이 아닙니다. 천상에 오른 왕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 … +
“당신은 천국의 문 너머를 보았습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제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께서는 무언가를 보셨고, 의지가 꺾인 채 무너지셨나이다.”
+ … 내가, 천국 너머를 보고 의지가 꺾인 채 무너졌다? +
“그렇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당신의 절망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도리어, 천상에 가는것이야 말로 파멸입니다. 당신에게도, 우리에게도!”
공작은 천상에서 벌어진 일을 가감 없이 전했다.
정말 단 한마디도 거짓이 없고, 공작과 우리가 이해한 내용 그대로다.
이스의 종족 역시 구원의 대상이다.
따라서, 왕이 절망하거나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에게 분노할 이유가 없다.
이스의 왕은 천상에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천국의 문을 열어 그 너머를 보았다.
가인이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던데, 공작에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반면 왕은 무언가를 봤고, 의지가 꺾인 채 무너졌다.
“왕이시여… 천상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소서. 가장 높은 옥좌에 앉은 자에 대한 무의미한 분노를 거두셔야 합니다. 당신이 뜻을 꺾는다면, 우리는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 순간, 나는 내 몸을 빌린 공작의 마음을 느꼈다.
공작에게는 진심이 있었다.
그는 정말로 왕이 정신을 차리길 간곡히 바란다.
지금이라도 헛된 꿈을 포기하고 위대한 왕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안타깝지만, 불가능한 소망이다.
+ 가엾은 아이야… +
“왕이시여 -”
+ 아들아, 너는 천상의 광기를 견디지 못했구나. +
“…”
처음으로 말문을 잃은 공작.
+ 지고한 악(惡), 궁극의 위선자가 널 홀리고 말았다. +
역시 나야!
이번에도 내가 맞췄지?
가인이가 설득이 어쩌고저쩌고 할 때 말했지?
부처가 조작했다고 할 것 같더라!
공작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제 말을 믿기 힘드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시기를. 우주의 시간이 돌아가기 전, 왕께서는 공주님의 몸에 심어둔 분신을 천상에 보내셨습니다.”
+ … +
“즉, 왕께서는 이미 목표를 한 번 이루셨나이다. 그래서 무언가 바뀌었습니까?”
공작의 말은 내 귀에도 아주 논리적으로 들렸다.
내 말을 믿을 수 없다면, 객관적으로 벌어진 일을 봐라.
당신은 이미 분신을 천상에 한 번 보냈다.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지 않습니까?
+ 아아… 아들아. 일견 일리 있는 의견이나, 지금 네 모습에 답이 있구나. +
“무슨, 무슨 말씀입니까?”
+ 천상에는 만상을 뒤트는 악의가 있나니, 네 모습이 그 증거이니라. 그 악의에 의해 내 분신 역시 뒤틀리고 말았구나. +
“왕이시여…”
+ 다시 시작하리라. 내 뜻이 천상에 전달되는 그때를 기다리노라. +
이 순간, 공작이 내 몸을 빌린 상태이기에 공작의 심경 또한 어렴풋이 느껴졌다.
절망, 한탄, 괴로움.
처음부터 예상한 대로 왕은 설득할 수 없다.
무슨 말을 해도 천상에서 너희를 속였다고 할 뿐.
한 가지 한숨 나오는 사실은, 호텔 3층 – 천상에는 정말로 우리를 속이고 홀릴 힘이 있다는 것.
그러니, 관점을 바꿔 보면 왕의 의견 또한 딱히 논리가 결여된 건 아니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를 증오하고 불신하는 관점과 어느 정도는 신뢰하는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또 다른 생각.
이스의 왕이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까?
은솔이가 서른 몇 살이니까 30 몇 년 준비한 계획이다?
제약회사가 신약을 1초 만에 찍어내는 걸 보고 ‘1초면 충분하구나?’ 하는 식의 착각이야.
연구개발에 10년 이상, 투자 비용은 수백억이 들었겠지.
이스의 왕도 마찬가지다.
은솔이라는 성공한 작품을 만들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되었으리라.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수천 년, 수만 년은 한 호흡에 불과할지도 모르지.
내가 이스의 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고민해 봤다.
장장 300만 년의 빌드업 끝에 어마어마한 일을 벌였고, 그 계획의 결말을 보기 직전이다.
그런데, 누가 와서 ‘그만하셈. 미래를 보고 왔는데, 어차피 실패할 일이고 무의미함’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그만둘 수 있을까?
이 순간, 나는 왕의 마음을 이해하고 말았다.
어쩌면 왕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작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 혼돈의 바다에서 처음 깨어 당신을 뵙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 나도 너를 빚어내던 순간을 기억한단다. +
“당신은 나를 빚어내시고, 내게 종족의 미래를 지켜낼 사명을 내리셨나이다.”
+ 그리했느니라. +
“지금부터, 저는 제 사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배신이 아니라 충성입니다.”
+ 그리하거라. +
협상은 끝났다.
남은 것은 실력 행사뿐.
*
– 이은솔
“참, 은솔아.”
“…”
“어제 회의하면서 네 시간 다 썼어. 1 시간 빌려줘. 다시 한번.”
“… 알았어.”
.
..
…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은솔아, 깼어?”
“응.”
미로의 요청에 따라 시간을 빌려주면, 우리는 1시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사라진 1시간의 기억은 완전한 공백이다.
느낌상으론 잠깐 눈을 감았다 뜨는 것과 비슷해.
빌려줄게~ 하고 눈 감았다 뜨니 한 시간 훅 지나가 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이 딱 그랬다.
“빌려줘서 고마워!”
“으응…”
순간, 또다시 발생한 다른 시간대의 나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다.
미로는 ‘또 다른 나’를 어떤 식으로 사용할까?
이번에 발생한 소환체도 날 속이는 계획을 짤까?
예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 별생각 없었는데, 지금은 좀 무서워.
다른 시간대의 내가 타인처럼 느껴진다.
“휴우…”
“은솔이 오늘따라 한숨 되게 많이 쉬네!”
“미안.”
미로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보았을 때, 당혹스러운 사실을 알았다.
“어?”
“왜 그래?”
“여기 강원도 유적 근처 아니야?”
“맞아.”
“아니… 지, 지금 우리 강원도 유적으로 가는 거야?”
“응.”
아니, 내가 강원도 지하로 가면 안 되는 것 아니었어?
정황상, 강원도 지하에는 어머니의 본체가 있다.
2회차 때 송이가 강원도 지하로 가자마자 어머니에게 당하며 밝혀진 사실이잖아!
순간, 동료들이 대체 무슨 계획을 세운 건지 이해가 안 가서 극도로 당황했다.
“이, 이거 맞아? 나는, 그러니까 -”
미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301호의 종말을 멈추려면 은총 의식을 파괴해야 해. 여기까진 짐작하지?”
“그거야 알지만, 내가 여길 와야 하는 이유가 있어?”
“어…”
우습게도 미로는 여기서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것조차도 동료들의 원대한 설계가 아닌지 의심했지만…
아니었다.
“지, 진철아!”
“뭐야?”
“나 까먹었어.”
“…”
“…”
“뭐였지?”
이 시점에서 확신했다.
얘, 아까 모바일 게임에 400만 원 과금한 것도 계획과 아무 상관 없었잖아!
곧, 진철이가 크게 한숨 쉬며 말했다.
“누님, 은총을 프로그램이라고 치면,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해킹하려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실제 해킹은 우리가 하지 않습니다.”
“…”
실제로 누가 한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듣지 않아도 공작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애초에 이스의 종족은 은총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다.
공작쯤 되면, 왕의 하수인으로서 은총 의식을 주도한 적도 많았을 테니까.
따라서, 공작이라면 은총 의식을 중단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해킹 방법을 아는 것과 별개로 권한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권한?”
“본인들의 권한만으로는 부족하답니다. 누님의 권한까지 있어야 가능하다고…”
“…”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은총 의식의 최종단계에선, 내 정신 속에서 어머니가 ‘깔아둔’ 아득한 자아가 깨어난다.
이후, 그 자아가 최종 절차를 주도하게 된다.
즉, 나에게는 어머니와 대등한 권한이 있어.
단지, 지금의 나는 그 권한을 쓰는 법을 모를 뿐.
*
지하 유적 입구에 도착했을 때,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본래는 선각자 및 타락한 관리국 세력 일부가 지하 유적을 점령한 상태였지.
아마도 ‘정리’ 중인 모양이다.
고통 가득한 비명을 듣고 있으니, 정리 과정이 제법 폭력적임을 알 수 있었다.
“…”
1층을 진행하던 시절의 나라면, 평범한 인간이 죽어가는 소리를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 같네.
지금도 마음속 어딘가가 아려왔다.
이스의 왕에게 홀려서 인류를 배신한 사람들이긴 하지만, 상대가 죄수였음을 생각해 봐.
저 자리에 누가 있었어도 이스의 왕이 작정하고 홀리면 무조건 넘어갈 수밖에 없어.
다른 한 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임 여부를 떠나서, 어찌 됐든 우주적인 대악마의 종복이 된 사람들이니, 죽일 수밖에 없다.
“아… 나도 요원이 다 됐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
정신이 어디에 팔려있길래 바로 옆에서 하는 말도 못 알아듣나 했더니, 진철이는 허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딘가의 할아버님과 ‘개인 메시지’로 소통 중인 모양이네.
순간, 가인이가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여러모로 우리 중 가장 앞서가는 동료, 가인이에게도 몇 안 되는 허점이 남아있지.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진철이 같은 행동이야.
중요한 순간엔, 시선이 뜬금없이 허공에 멈춰있곤 해.
아마 그 위치에 상태창 혹은 조언이 뜨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리처럼 눈치 빠른 동료는 가인이가 조언 쓴다 싶으면 귀신같이 눈치채곤 했다.
“… 가인이에게 가끔 하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예?”
“뜬금없이 허공을 보는 습관은 고치는 게 좋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주변을 보면서 슬쩍 확인하는 게 좋지 않을까?”
대화창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게 겸연쩍었는지, 진철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지금 들어오랍니다. 내부 정리가 끝났다고.”
유적 지하로 들어서기 직전에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미로가 근처에 보이지 않았다.
“…”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동료들이 세운 계획은 이런 느낌이다.
1. 대양그룹 회장의 기억에 접근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진행한다. 따라서 이스의 왕은 강원도 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 내 권한과 공작의 기술을 이용해 은총 의식을 파괴한다.
3. 해피엔딩!
아주 단순하고 명쾌한 계획이네.
“…”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전부라면, 내게 숨길 이유가 없다고.
분명 무언가가 더 있다.
그 무언가는 내가 알면 곤란한 무언가다.
그러니까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내가 몰라야 성공하는 계획이라면, 알아내려고 고민하는 행동 자체가 동료들을 방해할 테니까.
침묵하는 내게 무언가를 느낀 걸까?
진철이가 위로하듯 말했다.
“누님,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들어가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