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01)
EP.702 70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6)
702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6)
– 이은솔
마침내 들어온 강원도 지하 유적 내부.
몇 걸음 걷기가 무섭게 아리가 나타났다.
“은솔아, 이제 피리 꺼내.”
“…”
“알다시피, 유적 내부는 위험한 장소니까.”
강원도 지하 유적 어딘가에는 이스의 왕이 잠들어 있다.
아버님의 기억을 뒤져 알아낸 정보를 고려하면, 아마 왕이 처음 지구에 나타난 순간부터 계속 이곳에 있었을지도 모르지.
“기억은 안 나지만, 나랑 송이가 여기 왔을 때 죄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
“알겠어.”
안식의 피리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리는 앞장서서 걸어가며 날 안내했는데, 내가 이곳에 오기 몇 시간 전부터 유적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조를 외운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아리는 어떻게 내 도움도 없이 지하 유적을 돌아다닌 거야?
오래된 피의 힘만으로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감당할 수 없지 않아?
그때, 아리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담담히 답했다.
“아까, 공작과 함께 유적을 살폈어. 그래서 피리의 보호 없이도 안전했지.”
의문이 풀린 기쁨보다는 황당함을 먼저 느꼈다.
얘는 무슨 독심술사야?
질문한 적도 없고, 마음속으로 의문을 떠올렸는데 어떻게 아는 거야?
마치, 내가 어떤 의문을 품을지 고민하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미리 준비한 것 같은 태도네.
+…+
그 순간,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읏!”
나도 모르게 안식의 피리에 더 강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물론, 마(魔)를 배척하는 피리의 힘은 내가 얼마나 세게 부는가와는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뭐야? 뭔가 들렸어?”
“지금도 들리잖아! 희미한 소음 들리지 않아?”
“전혀. 너에게만 말을 거는 모양인데.”
피리의 공능 덕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이스의 왕은 실로 위대한 존재지만, 안식의 피리 역시 위대한 존재의 작품.
설령 어머니라 해도 목소리만으로 피리를 뚫을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 순간, 현실이 거침없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진 조명.
짐승의 위장처럼 뒤틀린 지하 복도.
문은 야수의 입으로 변하고, 환풍기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린다.
형체 없는 손길, 섬뜩한 시선, 창백한 마음
압도적인 존재감이 일대를 점거했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공작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등장과 함께 속삭였다.
‘공주님, 처음 뵙겠습니다.’
살짝 당황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였기 때문이다.
“처음이라고?”
아리가 즉각 끼어들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이건 아까 그 공작과 다른 공작이야.”
그제야 동료들이 끌어들인 공작이 한 개체가 아님을 알았다.
“대체 공작이 몇인데?”
“셋.”
“너무 많은 것 아니야?”
그 사이, 꿈틀거리는 내장 같은 기괴한 형체를 입은 공작이 속삭이듯 말했다.
‘거의 끝났습니다. 따라오시지요.’
“…”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뒤틀린 형상의 인도하에 걸어가며 생각했다.
공작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체를 동료들이 통제하는 게 가능할까?
*
곧, 공작의 인도하에 신비로운 계기판이 가득한 장소에 도착했다.
발걸음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전선,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관, 쉴 새 없이 이상한 소리를 내는 회색 기계들.
분위기만 보면 사악한 마도 의식 현장이 아니라 무슨 첨단 과학 연구소 같았다.
어쩌면, 드높은 영역에선 마법과 과학의 경계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르지.
내가 딱히 능동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공작의 지시대로 몇 방울의 피와 약간의 살점 – 살짝 따끔했어 -을 제공하고, 공작이 지시하는 위치에 서서 이상한 빛을 쬐거나 했을 뿐이다.
— 디디딕!
요란한 소음을 느끼며 슬쩍 옆을 보니, 공작의 작업을 이해 못 하기는 아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점점 더 불안해.
301호에서 인류를 직접적으로 멸망시키는 건 은총 의식이다.
따라서, 종말을 막기 위해선 반드시 은총 의식을 영구적으로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돌아가는 꼴을 봐.
가장 중요한 은총 의식 중단 작업에 동료들이 일절 개입하지 않고 공작들에게 맡겨둔 상태야.
가장 중요한 일을 엉뚱한 놈들에게 맡겨두다니…!
얘들아, 이거 정상적인 해결법 맞아?
공작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
우리가 통제할 방법도 없는 놈들인데!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절망적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때 – 찰나, 세상 전체가 멈춘 것 같다고 느꼈다.
+ 가엾은 아이야… +
“아앗!”
기계들의 진동, 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부유하는 먼지 – 그 모든것이 멈춰 선 정지의 영역에서 등장한 아득한 환영.
이스의 왕을 보자마자 여태껏 느껴온 모든 불안감이 폭발하는 듯한 절망을 느꼈다!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어느새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 아까부터 내 말을 죄다 무시하더라니, 그 작은 피리 때문이구나. +
“흐으… 흐으…”
+ 몸 상태가 편치 않아 보이는데, 괜찮니? +
걱정을 가장한 조롱의 목소리.
직전까지 안식의 피리를 사용했기 때문일까?
왕의 환영 너머에 숨겨진 두 가지 형상을 동시에 느꼈다.
첫 번째 형상은 오래전, 이스의 왕이 지구에 강림할 때 처음 몸을 빼앗긴 요원이었다.
두 번째 형상은, 아아! 마치 별처럼 빛나는 성운이다.
왕은 살아있는 소용돌이요, 끝없이 용솟음치는 힘의 물결과도 같았다.
그때, 왕의 입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뛰어난 아이들 몇을 끌어들였구나. 신비로운 재주로다. 대체 어떻게 했을까? +
“흐으…!”
+ 과연,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의 사도답게 재주가 많구나. +
“허억, 허억!”
+ 아아, 그래, 은총을 멈추는 게 너희 목표니? 멈추기 위해 격이 높은 아이들 몇을 끌어들였고? +
불과 몇 초 만에 진행 중인 계획을 전부 파악한 듯한 모습.
+ 직관적이고 일리 있는 접근인데, 치명적인 허점이 있구나. +
왕의 입에서 ‘치명적인 허점’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을 때,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지적할지 깨닫고 말았다.
+ 내 아이들이 너희에게 순순히 협조하리라 생각했니? +
아…!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애초에, 왕에게 설명을 들을 것도 없이 나도 느낀 문제였으니까.
천상에서 미로가 시간대여기에 담았던 공작을 A, 3회차에서 추가로 끌어들인 공작을 B, C라고 하자.
A는 그나마 믿을 수 있다.
그는 천상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는 공작이기 때문이다.
그는 왕이 천상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다가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광경을 직접 보았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B와 C는 어떻지?
다른 두 공작은 천상의 일을 기억하는 게 아니야! A의 설명을 듣고 합류했을 뿐이라고!
— 고오오…!
다시금 들려오는 아득한 굉음.
조금 전에 느꼈던 공작의 위압감을 어린아이 장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마력.
어머니의 권세를 느끼며 깨닫고 말았다.
우리는, 왕이 깔아둔 함정을 피하려고 속전속결로 301호를 진행했지.
속전속결로 진행한다는 말은, 관점을 바꿔보면 조심성 없이 진행했다는 말이 아닐까?
또 다른 함정을 밟았다.
다시 말해, 공작들이 왕을 깨우고 말았다!
+ 때가 되었느니라. +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낀다.
*
– ???
.
..
…
+ 오랫동안 준비해 온 대업의 결실을 볼 순간이로다. +
감격에 겨운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형상은, 누군가는 ‘이스의 왕’이라 부르는 존재.
하지만, 빠른 속도로 빈 껍데기가 되어가는 존재이기도 했다.
왕이 품고 있던 힘이 내 쪽으로 양도 중이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9할 이상의 힘이 내 쪽으로 넘어오리라.
“히이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헐떡이는 여자아이.
‘내 기억’이 맞다면, 저 개체 역시 호텔 참가자이며 이름은 김아리라고 한다.
가만두어도 곧 죽을 것 같긴 했지만, 신음소리가 불쾌했다.
— 콰직!
+ 하아…! +
매 순간, 상식을 넘어서는 힘의 물결이 내 쪽으로 밀려온다.
알에서 막 깨어난 새의 체중이 1초마다 두 배로 증가하는 듯했다.
어느 순간, 좁디좁은 필멸의 형상에 갇혀있던 오감이 광대한 영역을 동시에 인지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조금은 불쾌한 사실 또한 깨닫고 말았다.
“이게 너희의 선택이로구나.”
‘왕이시여… 무례를 용서하소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사죄하는 가련한 공작들.
조금 전, ‘나’는 은솔에게 말했었지.
내 아이들이 순순히 너희에게 협조할 것 같냐고, 그렇게 생각했다면 너무 순진한 것 아니냐고.
그 말은 맞았다.
최소 수십만 년 이상 날 섬겨온 공작들이 참가자의 말 몇 마디에 넘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설령 유산을 사용했다 해도, 과거의 내가 심혈을 기울여 빚어낸 특출난 아이들은 저항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공작들이 오롯이 내 뜻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공작들이 또한, 참가자에 의해 깨달은 두려운 진실때문이다.
왕을 찾기 위해 엄청난 수의 이스의 종족이 이미 지구에 온 상태인데, 은총의 범위가 지구 전체라는 사실.
따라서, 은총 의식이 끝까지 진행되면, 엄청난 수의 이스의 종족이 몰살당할 가능성이 있다.
안타깝게도, 이는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니었다.
공작들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실제로 과거 회차에서 여러 번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작들은 은총 의식을 파괴하는 대신, 범위를 자그마한 도시 내부로 좁혔다.
요컨대, 공작들의 뜻은 이러하다.
1. 왕의 뜻을 거스르진 않겠다. 은총을 통해 이루시려는 일, 끝까지 하시라.
2. 하지만, 종족의 수호자로서 수백만 이스가 몰살당하는 일은 두고 볼 수 없다. 은총의 범위를 좁히겠다.
“이게 너희가 만든 일종의 절충안이니?”
‘왕이시여…’
“하하! 과연, 머리가 굵어지니 부모의 뜻을 그대로 따르진 않는구나.”
‘우리에게 종족을 수호할 사명을 내린 것은 당신입니다.’
“그래, 그래. 그 말도 맞구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아이들의 뜻을 존중해 주자. 부족한 부분은 내 힘으로 채우면 된다.
왕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동족을 지킬 수 있는 얇디 얇은 가능성을 찾아낸 모습이 기특하지 않은가!
하지만, 두 번은 없다.
*
— 우르릉!
한 줄기 벼락이 되어 천상을 향했다.
위로, 더 위로, 한없이 드높은 영역으로!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태양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불그스름한 성운을 지나쳐 머나먼 성천을 향했다.
…
끝없는 상승의 끝에 나타난 거대한 벽.
누군가는 이것을 ‘장막’ 혹은 ‘어항’이라 칭한다.
설령 위대한 자라 해도 자력으로는 장막을 넘을 수 없다.
오직,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의 뜻에 의해서만 넘을 수 있는 벽이다.
나는 그 뜻을 품은 몸을 손에 넣었다!
— 우르릉!
억겁의 세월 동안 넘을 수 없던 영역을 넘어섰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아득한 환희가 나를 가득 적셨다.
위대한 자의 감정이 필멸자의 그것과 같다면, 눈에서 눈물이 비처럼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가 장막으로 가려둔 가혹한 진실이 드러났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선을 느낀다.
지금의 나는 필멸자가 감히 마주할 수조차 없었지만, 시선의 주인들에겐 아무래도 좋을 일이었다.
누군가는 저들을 마라 파피야스라고 한다.
누군가는 저들을 앙그라 마이뉴라고 한다.
누군가는 저들을 요르문간드라고 한다.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는 보다 직관적인 표현을 썼다고 알려져 있다.
불령해탈(不令解脫) : 중생의 해탈을 막는 존재.
태고의 인류가 방주를 만들어 도망친 이유.
내가 아이들의 구원을 갈망하게 된 원인.
어쩌면, 부처가 천국을 만들기 위해 매진하게 된 이유.
“…”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공작들이 머리가 굵어지며 내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부처의 뜻과 별개로 나만의 생각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빅뱅이 있으면 빅 프리즈가 있다.
끝없이 순환하는 우주의 이치를 생각하면 저들의 발생은 필연이다.
그러므로 부처야말로 순리를 거스르는 자이며, 천국이야말로 역천일지도 모른다.
…
영겁과도 같았던 찰나가 끝났다.
천상의 영역에 발을 내딛는 순간까지도, 해탈을 막는 자들은 날 방해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들의 시간이 아닌 것 같았다.
— 콰르릉!
*
– 한가인
.
..
…
은총 의식이 완성됐구나.
이스의 왕은 몇 초 내로 호텔에 도착하겠지.
예전과 달리, 호텔은 ‘해결에 실패했습니다’라는 알림을 띄우지 않고 있다.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