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03)
EP.704 704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8) Fin
704화 – 301호, 저주의 방 – ‘종의 기원’ (38) Fin
– 김묵성
떨어지는 빗방울 속에서 이번 계획의 필수요소였던 시간 대여기를 매만지는 미로를 지켜보았다.
그 사이, 다른 동료들이 모여들었다.
하루 종일 은솔이를 속이느라 고생한 송이와 진철이가 먼저였다.
곧, 관리국을 몰아내는 데 힘썼던 엘레나와 의사 양반 등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리 선배는 없었다.
정황상, 은솔이 옆에 마지막까지 있다가 이미 목숨을 잃은 듯하다.
… 괜찮아. 괜찮고말고.
어차피 301호만 끝내면 살아날 테니 말이다.
“묵성아.”
“…”
이 시국에 할 말은 아니지만, 미로가 이렇게 대놓고 반말하면 미묘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그래, 그래, 몇 가지 사실은 인정한다.
본래 요원은 외견과 나이가 일치하지 않고, 미로도 마찬가지야.
요원 미로는 나는 물론이고 아리보다도 경력, 나이 모두 더 길어.
애초에 난 요원 치고는 어린 편 아닌가?
…
어쨌든, 이건 요원 미로 이야기다.
그게 눈앞의 이 꼬맹이에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나?
말이야 바른말이지, 얘는 요원 시절 기억 아예 없잖아?
우리와 만나기 전 기억을 따지면, 괴물 산타 나오는 학교 다니던 기억이 전부일 텐데.
그렇게 따지면, 내가 살아온 시간의 10%도 안 될 것 같은데!
“…”
“야! 말했는데 왜 무시해!”
됐다, 됐어. GG다. 포기라고.
이 황당한 계집애 머릿속에 위아래라는 개념이 있겠냐?
내가 볼 때, 얘는 본인의 과거를 깨닫고 ‘아, 세상 모두를 무시하고 편히 대해도 되겠넹!’ 하면서 기뻐했을 성격이다.
답이 없어. 말이 안 통한다고.
이런 애랑 신경전 벌이면 이길 수가 없다.
원래 세상에서 제일 이기기 힘든 사람은 똑똑한 놈이 아니야.
가인이도 얘는 못 이겨. 아리도 얘는 못 이겨.
“생각 중이었다. 왜 그러냐?”
“방 언제 끝나?”
“… 글쎄다.”
“추워. 그리고… 쪼끔 슬퍼.”
“은솔이가 죽어서?”
“응. 뭔가, 음, 나쁜 짓한 거 같아. 아니지? 이번 일, 은솔이도 적극 찬성했잖아?”
“…”
이런 고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좀 기특한데? 어울리지 않게 갸륵한 생각이 아닌가!
이런 걸 보면, 뒤틀리기 전의 미로는 생각보다 속 깊은 성격이었을지도 모른 –
“아 진짜! 그냥 옥상에서 은솔이 소환해서 추락시켰으면 시체를 볼 일 없었을 텐데!”
“이런 미친년이 진짜!”
“왜 나한테만 그래!”
아오! 동료를 속여서 슬픈 거냐?
아니면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는 광경이 싫은 거냐?
좀 착한 체라도 하라고!
어처구니없는 것과 별개로 나도 슬슬 궁금했다.
왜 방이 끝나지 않지?
남아있는 위험 요소가 제법 있는 건 사실이다.
두 명의 공작은 물론, 이스의 종족이 멀쩡히 남아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왕의 본체라 할만한 존재도 여전히 남아있긴 하다.
이제는 힘을 잃은 망령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호텔식으로 생각해 보면 끝난 게 맞아.
애초에 호텔은 우리에게 ‘저주의 방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라’ 따위를 요구하지 않으니 말이다.
종말의 직접적 원인은 은총 의식이며, 그 은총 의식은 이스의 왕이 만들어 낸 현상이다.
이스의 종족? 사악한 것과 별개로 얘네가 종말의 원인이 아니다.
천국에 갈 수 없는 자식들을 구원하기 위해 천상으로 간다는 건 이스의 왕 혼자 떠올리고 실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스의 종족은 고위 개체인 공작들조차 위와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지.
그들은 왕이 아니었다면 지구에 올 일도 없었으리라.
이스의 종족은 때가 되면 다시 이 ‘답답하고 작은 별’을 떠나 우주로 갈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천상에 오른 이스의 왕은 소멸했으리라.
지상에 남은 이스의 왕은 소멸하진 않았지만, 은총을 다시 시도할 힘이 없다.
“…”
아무리 생각해도 끝나야 해.
은솔이가 죽은 지도 꽤 오래 지났으니, 해결 판정이 떠도 진작에 떠야 한다고!
설마, 알 수 없는 이유로 천상의 일이 실패로 돌아갔나?
“무, 묵성아! 혹시 실패한 거야? 아니지?”
근처의 다른 동료들도 슬슬 표정을 굳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일이 꼬인 것 같습니다.”
“마, 말이 안 돼요! 은솔 언니가 이미 죽었는데!”
당황하는 의사 양반과 엘레나의 반응.
“은솔 누님이 죽은 게 언제입니까?”
“몇 분은 됐지.”
“이런! 이스의 왕이 아직 살아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시간이 느려진 게 아니고서야!”
극도로 긴장한 진철이 녀석까지.
이 순간, 나는 그저 아찔함을 느끼며 하늘을 보았다.
만약 가인이가 실패했다면, 딱히 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수가 있을 리 없지!
왜냐고?
— 사아아…!
“오, 옵니다!”
“꺄아악! 공작이다!”
“이런!”
멀지 않은 위치에 이스의 공작이 둘이나 더 있단 말이다!
공작 하나만 와도 다 죽을 판인데, 멀쩡한 공작이 둘이 더 있다고!
그런데 무슨 놈의 플랜 B를 세운단 말이냐?
두통과 함께 들려오는 공작들의 목소리.
‘우리를 속였구나!’
듣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가 너희를 속여? 말은 바로 하자!
‘이스의 종족과 인류를 구하기 위해 은총을 파괴한다’가 서로 합의한 계획 아니었냐?
공작들은 우리 앞에선 알겠다고 한 다음, 실제로는 ‘은총을 유지하되 범위만 좁힌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왕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동족을 지킬 수 있는 참으로 눈물겨운 선택이다.
다행이라면, 공작들이 저런 결정을 내리는 것 자체가 계획 일부였을 뿐!
은총을 파괴해선 안 된다.
범위를 좁혀서, 인류의 종말만 막은 채 끝까지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 이스의 왕이 천상에 갈 테니까.
그래야 신을 죽일 수 있으니까!
서로서로 속였다.
그저, 조금 더 수가 깊은 쪽이 이겼을 뿐.
그 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친 표정을 하고 있던 송이가 빙그레 웃었다.
송이는 양 손 모아 입을 반쯤 가린 채 말했다.
“어머, 왕에게 무슨 일이 생기긴 생긴 건가요? 어머! 어떡해! 큰일이다~! 어떡하죠?”
순간, 공작이 사람이라면 뒷목을 잡고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손 치워, 이년아!’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때.
— 쿠궁!
천지를 뒤흔드는 소음을 들었다.
*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18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로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끝없이 늘어지는 3초.
절대 끝나지 않을 듯한 3초.
3초가 이렇게 긴 시간일 수 있었구나.
…
영원의 찰나.
같이 있을 수 없는 두 단어의 조합이건만, 지금은 명확한 현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이라 놀라진 않았다.
이미 은솔 누나의 머리가 느리게 터질 때 이상함을 느끼기도 했고, 현실에서 달이 시간을 왜곡하는 권능을 이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자의 영역에서는 죽음조차 끝이 아니며, 시간은 고무줄처럼 언제든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이었다.
…
기나긴 1초 속에서 떠올린 생각.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힘의 물결을 본다.
이스의 왕은 극도로 복잡한 기적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는데, 과정은 이해할 수 없어도 결과는 짐작했다.
사자의 소생.
나는, 그 기적을 방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
다음 2초 속에서 떠올린 생각.
부정적인 정보 하나와 긍정적인 정보 하나를 깨달았다.
부정적인 정보는 무엇인가?
내가 이스의 왕에게 3초를 맞설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에 가까웠다.
이전 회차에서 3초를 겨룰 수 있었던 이유는, 안타깝게도 내가 대단해서라기보단 왕이 봐준 것에 가까웠다.
당시 왕의 속마음은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참가자라 해도 필멸자 주제에 이 정도 재롱을 보이다니? 재주가 가상한데?’
다행히 긍정적인 정보도 있다.
지금 상황은 내가 왕과 1-1로 싸워서 3초를 막아내는 상황과 다르다.
왕은 사자의 소생이라는 심오한 기적을 일으키려 하고, 나는 그 기적을 방해하는 역할이다.
세상의 이치가 항상 그렇듯, 탑을 쌓는 것보다 무너트리는 게 훨씬 쉽다.
반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컴퓨터에 콜라를 부으면 고장 낼 수 있다.
자동차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도 벽에 들이받음으로써 차를 망가트릴 수 있다.
나는 사자의 소생이라는 위대한 대마법의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복잡한 마법 술식 가운데에 아무렇게나 내 힘을 우겨넣으면 마법이 망가진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기나긴 3초 속에서 떠올린 생각.
301호에서 이스의 왕이 만들어 낸 판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죄수의 힘을 담아낼 수 있는 특별한 인간을 만든다.
그 인간의 운명을 조율해 호텔 참가자가 되게 한다.
마지막에는, 그릇 속에 심어뒀던 악성 프로그램을 발동해 참가자의 자격을 강탈한다.
이 정도의 설계는 1, 2층의 다른 방에서는 본 적이 없어.
굳이 따지면 104호의 주와 비교할 만한데, 솔직히 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왕의 계획을 이해하니 한 가지 중대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위대한 자라고 해도 ‘참가자의 자격’이 없다면, 천상에서 버틸 수 없다.
버틸 수 없으니까 자격을 얻으려고 이 난리를 친 셈이다.
역설적으로, 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 같다.
참가자가 자력으로 알아내기는 쉽지 않은 정보라고 본다.
마지막 의문.
참가자의 자격을 잃은 죄수는 천상에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던 답은 하나뿐이다.
모른다.
우리는 당연히 몰랐고, 조언을 구해보니 올빼미도 모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죄수 본인도 모를 것 같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선 모두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인 셈이다.
…
최후의 4초.
예상보다 1초나 더 버틸 수 있었다.
아까 부정적인 정보 하나와 긍정적인 정보 하나를 알아냈는데, 부정적인 정보보다 긍정적인 정보의 영향이 더 컸던 모양이다.
이 순간, 나는 전신이 으스러질 듯한 어마어마한 무게를 느꼈다.
위? 아래? 옆?
아니다! 모든 방향이다.
모든 방위에서 동시에 어마어마한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마치, 별의 무게가 날 쥐포로 만들 것만 같았다.
어마어마한 고통 속에서 간신히 깨달았다.
이건 내가 느끼는 감각이 아니구나!
이스의 왕이 느끼는 무게감인데, 충돌로 인해 의식 일부가 연결되었기에 순간 내가 겪은 것처럼 착각했을 뿐이다.
내가 느낀 것은 왕이 느끼는 압박감의 극히 일부다.
비유하자면, 태평양에서 물 한 방울이 튀어서 내게 묻은 정도에 불과했다.
겨우 옆에서 튄 물방울 하나를 맞은 주제에 별의 무게라고 느낀 것.
그렇다면, 이스의 왕은 대체 어느 정도의 무게를 느끼고 있단 말인가?
이것이 영원처럼 길었던 시간의 끝이었다.
— 콰직!
왕의 힘이, 자아가, 혼이 – 순식간에 움츠러든다.
살아있는 초신성과 같았던 왕의 존재감이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으스러지는 광경!
신성이 초라한 항성으로, 초라한 항성은 자그마한 행성으로, 자그마한 행성은 우주를 떠도는 돌조각으로.
마지막에 남은 것은 돌조각이라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우주의 먼지.
지상을 거니는 생물이 끝없이 깊은 심해에 떨어진다면, 고래처럼 거대한 몸이 찌그러진 콜라 캔처럼 으스러진다면 이와 같으리라!
최후의 순간에는 비명조차 없었다.
그저, 천상의 무게에 짓눌려 한 줌 먼지로 화한 위대한 자의 흔적이 남았을 뿐.
서늘한 바람, 창백한 복도.
고개를 들자 호텔 벽면의 디스플레이가 내 주변을 비추었다.
머리가 터진 시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은솔 누나.
그 앞에서, 넋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
이 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위대한 자가 죽었다.
신이, 미물의 계략에 빠져 죽었다.
“… 아.”
「당신은 해결했습니다.
마침내 이 순간이 오고 말았군요!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거대한 거인을 넘어트렸으니, 실로 대단한 위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공법이라기보다 속임수이긴 했습니다만, 약자가 강자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계략이 필요한 법이지요.
감개무량한 순간입니다.
온실에서 조심조심 곱게 기르던 식물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안배된 설계.
벗어날 수 없는 음모,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판.
영원히 꺾이지 않을 것만 같던 아득한 자의 아집이 무너졌습니다.
이는 곧, 종말을 향해 굴러가던 저주받은 순환의 끝을 말함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여러분이 호텔에 오셨는지도 모르지요.
여러분이 무슨 생각 중이신지 압니다.
필시, 보상이 무엇인지 기대하고 계시겠지요?
축하합니다!
여러분은 파멸의 운명에 처한 세상을 구했습니다.
보람찬 업적, 행복한 가족, 위대한 명성 – 여러분이 해왔던 모험들이 곧 보상입니다!」
“…?”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것은 ? 였다.
그러니까… 보상이 뭐라고?
여러분이 해온 모험이 곧 보상이다?
“…”
이러면 호텔에 핵미사일을 터트려도 무죄 아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