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1)
70화 – 101호, 저주의 방 – ‘상식개변 미디어’ (4)
[사용자 : 한가인(지혜)날짜 : 23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1, 복도
현자의 조언 : 3]
모두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다들 결의를 다진 표정으로 101호 앞으로 모여들었다.
벌써 네 번째 시도.
슬슬 마무리 지을 때가 되었다. 다섯 번째부터는 ‘이상해진다.’ 그 의미도 궁금하긴 하나, 목숨 걸고 확인할 필요는 없겠지.
다들 내심 이번에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진철 형도 주머니의 빨간약을 연신 확인하는 것이, 여차하면 약 먹고 깰 생각인 것 같다.
*
네 번째 시도
*
– 한가인
이제는 익숙하게 시작하자마자 필터로 덮고, 수강 신청을 핑계로 방에 틀어박힐 명분을 만들었다.
바로 컴퓨터를 통해 검색을 시작했다. 신세계 병원, 이혁진, 김상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
40분 정도 흘렀을까?
나는 다소 가슴이 먹먹해지는 비극을 이해했다. 무대 전체를 악몽으로 물들인 배경은 의외로 세상 어디에나 있을법한 작은 슬픔에서 시작됐다.
모든 것을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가 ‘빌런’인지 알 것 같다.
다들 기다리겠구나.
정보를 찾으면서 시나리오를 알아내는 일에도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썼고, 순간이동으로 가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가족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내가 꽤 늦게 도착할 것 같다. 출발하자. 모두에게 전달할 내용이 많다.
*
– 이은솔
대략적으로 알아낸 정보들. 생각보다는 상투적이구나.
무슨 수로 세상을 망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망쳤는지는 대충 알겠다. 슬슬 출발하자.
어제저녁 있었던 회의를 떠올렸다. 순간이동.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방법이 아닌가? 확실히 그 방법대로라면 나도 이 짜증 나게 큰 집의 모든 위험을 무시하고 방송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다만, 완벽한 계획은 없다. ‘순간이동 플랜’에서 우리가 찾아낸 문제점.
저주에 감염된 후에 ‘또 다른 나’가 일정을 바꿔버리는 것.
이걸 막기 위해, 나는 아침부터 스마트폰으로 바삐 ‘방송국 일정’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비서와 이사들에게 알렸다.
스마트폰으로 카톡 살짝 하는 정도로도 저주가 전파되는 느낌. 정말이지 악독하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비서는 물론, 이사, 가족 등 여러 사람에게 내 일정을 알려 ‘방송국 방문 일정’을 공식화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제 미래의 내가 알아서 방송국을 잘 가기를 기도하자.
문을 열었다.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다가왔다.
…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낀다.
…
“전무님!”
*
– 차진철
어머니를 가볍게 밀친 후, 거리를 두고 방송국에 면접이 잡혔다고 이야기했다.
대충 이 정도면 되나? 이제 저주에 감염되고 나면, 면접 보러 방송국에 가겠지?
혹시나 해서 문자로 도장 관장님께도 보내놨다.
이렇게 여러 명에게 어디 갈 거다! 하고 말해놨으니, 저주에 감염된 후로도 웬만하면 그대로 따라 하겠지.
가짜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낀다.
…
“진철아!”
*
– 엘레나
…
어둡다. 소리도 거의 안 들린다.
세 번째 시도부터는 송이의 ‘감각 차단’을 받은 채로 시작하니까 당연한 현상.
덕분에, 바로 옆에 언니가 만져지는데도 내 이성은 아직 버티고 있다.
안타깝지만 나는 무슨 정보를 찾는 건 무리.
애초에 시작부터 언니 옆에 있으니 송이의 도움으로 감각을 차단한 채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눈이 안 보이는데 컴퓨터든 스마트폰이든 쓸 수가 없지.
옷장의 옷을 꺼내서 갈아입기 시작했다.
…
이거, 어렵구나. 안 보이는 채로 촉감만으로 옷을 골라서 갈아입는 것. 생각보다 어렵네.
언니에게 곧 ABS로 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니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방송국에 꽤 자주 나가는 몸! 이 정도 계획이야 자연스럽게 진행되겠지.
점점 시각과 청각이 돌아온다.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니가 ‘기괴한 무언가’를 뜯어먹는 게 보였다.
…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낀다.
.
.
.
정신이 들었다.
번쩍! 하는 기분에 스스로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자, 누군가 어깨를 툭 툭 쳤다.
“정신이 드셨는가?”
“할아버님?”
“기다리고 있었네. 꽤 일찍 오셨구먼.”
“다른 분들도 오셨나요?”
“송이 양이 곧 도착할걸세. 대화창을 쓰기 시작한 걸로 보아 거의 다 온 모양이네.”
“그러면 가인 군, 진철 씨, 은솔 언니만 오면 되겠네요!”
“아마 가인 군은 꽤 오래 걸리겠지. 동생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오기로 했으니. 은솔 양은…. 아마도 오지 못할 것 같군.”
“예?”
“스마트폰 켜서 뉴스 확인하게. ‘이 무대’의 세상에선 지금 난리니까.”
놀라서 스마트폰을 켜보자, 뉴스 톱기사로 대양 그룹 회장 인간사냥 도중 사망이라는 기사가 잔뜩 떠 있었다.
… 인간사냥?
그런 짓을 하는 회장이면 잘 죽었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 대충 다 아는 사이.
언니가 대양 그룹 회장님 딸인 것도 건너 들었다.
이런 상황에선 못 오겠구나. 무슨 일정이라 한들 전부 취소될 상황이다.
—텅
묵직한 무언가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진철 씨가 ‘나타났다’
…
우리, 망한 것 같아요.
진철 씨는 혼자 오지 않았다.
진철 씨 옆의 나이 든 아주머니, 아마도 종종 말하던 ‘어머님’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묵성 할아버님도 침음성을 토해내며 머리를 감쌌다.
“저 병신 멧돼지 새끼! 뭐 하다 엄마를 데리고 온 거냐!”
어떻게 하지? 저렇게 가족이 옆에 붙어있으면 진철 씨는 저주가 풀리지 않는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다.
두 모자가 자연스럽게 대기실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거 어떡해? 이러면 저 아주머니 때문에 우리까지 전부 이성을 잃을 텐데!
“엘레나! 벽에 붙어! 최대한 저 병신들과 거리를 벌린 채로 버텨보자. 곧 송이가 올 거다. 송이가 환각을 어떻게 잘 쓰면 저 둘을 떼어놓을 수 있을 게다.”
바로 둘 다 대기실 벽에 바짝 붙었다.
진철 씨와 어머님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사이좋은 모자. 면접이 어쩌고, 취직이 어쩌고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버티자. 버티자. 송이가 와서 어떻게든 해줄 거야.
…
어머님이 날 발견했다.
“어머! 어머! 저 아가씨 비xx회담에 나오는 그 아가씨 아니냐?”
아. 난 거기 4번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날 알아보시네.
평소라면 감사했을 텐데. 하필 이런 장소. 이런 상황에서 날 알아보시네.
어머님이 황급히 종이를 꺼내 들며 나에게 다가왔다.
…
심지어 팬이셨구나. 어머 고마워라. 세상에 내 팬은 몇사람 있지도 않을 텐데 놀랍게도 진철 씨 어머님이 그중 한 분이네.
정말 고맙다. 덕분에, 곧 내가 미칠 것 같다.
벽에 붙어서 좌우로 움직여봤지만, 대기실이 무슨 운동장도 아니고 피할 장소가 있을 리가.
꼼짝없이 다가올 운명을 기다렸다.
—찰칵.
차가운 금속음과 함께 대기실의 모든 것이 멈췄다.
당황해서 할아버님을 바라보자, 할아버님이 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뭘 어쩌시려고?
“할아버님! 누굴 쏘시려는 거에요?”
“미안하지만, 지금 저 멧돼지 새끼 어머님을 죽여야겠다.”
“진철 씨가 흥분하면 어떡하죠? 지금은 저 ‘가짜 어머님’을 진짜 어머님처럼 생각 중일 텐데요!”
“버텨봐야지. 저 어머님만 쏴 죽이면 진철이 주변엔 우리밖에 없으니 곧 정신을 차릴 거다. 몇 초만 버텨야지.”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야말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아무리 총이 있다고 해도, 주먹으로 콘크리트 벽을 부수는 초인에게 ‘몇 초’를 버틴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할아버님. 차라리 총으로 진철 씨를 쏘시는 게 어떨까요.”
그동안 여러 차례 드러난 사실. 진철 씨의 괴력과 별개로, 몸의 내구성이 총알을 튕겨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놈 죽이고 나면 진행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니 어떻게든 살려서 정신 차리게 하는 방향으로 해봐야지.”
…
할아버님이 총을 어머님 쪽으로 겨눴다.
내게 다가오던 ‘어머님’이 그걸 보더니 갑자기 물구나무를 섰다.
—탕!
‘어머님’의 어깨춤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
“으아아아아아아악!”
진철 씨의 포효가 방송국 1층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아, 진짜로 망했다.
*
– 차진철
이건 꿈인가? 악몽인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위한 면접.
어머니도 날 응원하겠다며 따라오셨다. 극구 말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방송국 밥이나 한번 드시고 가시라고 했다.
방송국에 들어서서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대기실 안쪽에 두 사람 정도가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벽 쪽으로 붙어 있어 잘 보이지도 않아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머! 어머! 저 아가씨 비xx회담에 나오는 그 아가씨 아니냐?”
“네? 누구 말하는 겁니까?”
“저 아가씨! 어머 어머! 내가 사인 좀 하나 받아야겠다.”
어머니가 아가씨 쪽으로 황급히 다가서려는 그 순간.
양복을 입은 떡 벌어진 체격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노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있었다.
대체 무슨 –
반응도 하기 전에 어머니의 어깨춤에서 피가 튀었다.
…
머리 가득히 열이 솟아오른다.
몸 전체의 힘을 실어서 노인을 향해 도약했다. 한순간에 10M? 그 이상의 거리를 좁히자 노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는 게 들린다.
총이 나를 향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끝?
…
“멧돼지 새끼야! 제발 정신을 차리라고!”
노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총을 거뒀다.
힘을 실은 내 주먹이 노인을 향하자, 노인은 자세를 잡더니 타이밍을 맞춰 손바닥으로 내 펀치의 궤도를 비틀었다.
아니, ‘비틀려고 시도했다.’
무의미한 짓. ‘겨우 이 정도 힘’으로는 내 팔의 궤도를 전혀 꺾을 수 없지.
그 와중에도 노인은 머리를 비틀며 내 주먹을 벽에 꽂히게 했다.
—쾅!!!
망치로 벽을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방송국 대기실 벽이 크게 파손되었다.
동시에, 노인은 어딘가 포기한 기색으로 다시 총을 꺼내 들었고 –
두 번째 기회를 줄 생각은 없다.
즉시 발로 노인을 걷어차며 총을 떨어트리게 했다. 한 번의 발차기에 노인의 다리가 으스러졌다. 노인은 바닥에 나뒹군 채 신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됐다. 이 미친 노인을 패놨으니 이제 어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
–탈칵
다시 총에서 들리는 소리.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
아까 어머니가 말했던 비xx회담에 나왔다는 외국인.
… 순간적으로 넋이 나갔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아가씨다. 외국인? 방송국이니 연예인일까?
그러나, 그 아가씨가 그사이에 튕겨 나간 총을 집어 들기라도 했는지, 손에 총이 들려있었다.
아가씨는 총으로 ‘어머니’를 겨눴다.
대체 뭐지? 왜 갑자기 미친 노인에 이어서 연예인까지 내 어머니를 죽이려고 이 난리지?
—탕! —탕!
… 다 빗나갔다.
아무래도, 아까의 노인과 달리 저 아가씨는 권총을 잘 쏘지 못하는 모양. 어머니 근처도 못 가고 총알이 엉뚱한 곳으로 튄다.
그래도 총 정도는 빼앗아 둬야겠구나.
…
아가씨가 울고 있었다.
무언가 – 내가 엄청난 잘못을 하는 것 같은 기묘한 감각.
대체 뭐지? 오히려 나랑 어머니가 피해자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들지?
—탕!
총알이 내 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못 쏘네. 그렇지만, 이러다가 눈 먼 총알에 한 방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다시금 땅을 박차고 날아갔다. 손짓 한 번에 총을 빼앗고, 가볍게 한 대 쳐서 기절이라도 시키려던 찰나.
누군가가 방송국으로 들어왔다. 여학생? 교복을 입고 있다.
학생의 팔이 번쩍거리는가 싶더니 심상찮은 광채가 나를 스쳤다.
무언가 – 아찔한 힘이 나를 덮친다고 느꼈을 때.
내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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