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11)
괴담 호텔 탈출기 711화(710/794)
711화 – 누군가의 휴식, 누군가의 고행 (7)
– 이은솔
하강 후 정확히 3일이 지났다.
그동안 나는 새로이 얻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어떤 종류의 능력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플로라라고 -”
“언니, 그 이름은 어제 이미 줬어요.”
“데이비드 -”
“요원님, 데이비드도 이미 있습니다.”
“… 티모시라고 해.”
붙일 이름이 헷갈릴 정도로 많은 수의 이스의 종족을 굴복시킨 상황.
송이는 언젠가부터 신기함을 표하곤 했다.
“숫자 제한이 아예 없는 건가요?”
“숫자 제한?”
“복종시킨 개체가 세자릿수가 넘었는데도 아무 제약이 없는 것 같아서요.”
“… 숫자 제한이 있는 그런 종류의 힘이 아니야.”
“예?”
“전근대의 왕이 무슨 백성 숫자 세어 가며 통제한 건 아니잖니?”
“그, 그렇긴 한데.”
점차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어떤 힘인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처음에는 이런 느낌으로 사용하려 했었지.
조건 : 은혜 -> 결과 : 복종
곧, 내가 과거의 실수를 다시 한번 반복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좁은 인식에 갇혀 잠재성이 훼손된 HP 마켓을 생각해 봐!
본래도 100점 만점에 20점~30점 정도의 애매한 능력이었지만, 20점은 커녕 5점 미만의 쓰레기 같은 능력으로 열화한 건 내 인식 때문이야.
HP 마켓은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되돌리기 힘들다.
기존의 인식이 능력의 잠재성을 훼손하고, 그 훼손된 상태로 오래 사용했기 때문이다.
새로이 얻은 능력은 아직 바로잡을 수 있다.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언니?”
“아, 잠깐 혼자 생각 중이야.”
조건 : 의무 -> 결과 : 고귀함
여기에 별도의 해석을 덧붙일 필요 없어.
후원자가 내린 추상적인 개념 그대로를 가져가야 한다.
이렇듯, 다시 돌아온 301호의 상황에 적응해 가던 시점.
— 스아아…!
“으아악! 괴, 괴물입니다!”
“요원님! 요원님! 살려주십 – 끄악!”
“안개다! 살덩이다!”
공작, 아니 공작‘들’이 나타났다.
*
살아있는 안개와 꿈틀거리는 살점의 형상을 빌어 등장한 공작의 위압감은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둘이었으니, 장내는 단숨에 아비규환의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다행이라면, 나와 송이는 비교적 침착할 수 있었다는 점 정도.
때가 되면 공작들이 나타나리라는 사실은 호텔에서 회의할 때부터 이미 짐작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왜 3일이나 지나고서야 나타났는지 신기했을 정도다.
송이는 내게 가볍게 눈짓한 후,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제부터 송이가 내 근처에 있는 건 위험하다.
— 스아아…!
이질적으로 뒤틀린 형상의 공작이 처음으로 의지를 발했다.
「@#$&*&!@!」
“뭐라는 거야?”
당황하는 것도 잠시, 내 옆에 앉아있던 충실한 고양이가 입을 열었다.
“공주님, 공작이 이 자리에 있는 이스의 일족에게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 너희에게 말하는 거야? 뭐라고 하는 중이지?”
“아직 희망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
“왕께서는 소멸하신 게 아니라고 합니다. 단지, 일시적으로 약해지셨을 뿐이랍니다. 일족의 힘을 모으면 왕께서 위대함을 되찾으실 것이라 합니다.”
“고마워.”
몇 가지 의문이 단박에 풀렸다.
첫째, 공작들은 내가 굴복시킨 세자릿수의 하위 개체들을 다시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
둘째, 그동안 공작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나 했더니, 힘을 잃고 망령으로 변한 어머니의 잔해와 접촉한 모양이다.
“어머니… 다시 회복할 생각이 있으시군요?”
하긴, 이대로 망령이 되어 소멸할 게 아니라면 뭐라도 하긴 해야겠지?
그 사이, 혐오스러운 형상을 자랑하는 공작이 상공을 부유하며 사방에 기이한 촉수를 뻗었다.
— 푸욱!
“끄윽! 고, 공주 -”
내 주변을 마치 인의 장막처럼 둘러치고 있던 하위 개체들이 순식간에 돌처럼 굳었다.
동족이니 죽이진 않았겠지.
하지만, 이제공작으로부터 날 가리던 인의 장막이 사라졌다.
— 우르릉!
혐오스러운 형상이 폭풍 같은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곧, 기이한 무형의 힘이 마치 거인의 손처럼 날 잡아든 채 의지를 발했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었다.
“크으…!”
「공주님, 오랜만입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공주님이라고 부를 거면 좀 곱게 잡아야 하는 것 아니야?”
「그 부분은 사죄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일족의 명운이 위기에 처했으니, 여유가 없군요.」
“으윽…!”
「왕께서 당신을 찾으십니다. 그분이 회복하시는 데 당신이 필요하다 하십니다.」
“어머! 나도 언제 한번 어머니를 뵐 생각이긴 한데?”
「그렇다면, 그때가 바로 지금이지요.」
“흐으…”
별다른 수가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사실, 공작이 나타난 시점에서 어지간한 수는 무용지물인 것도 맞아.
통할만한 수는 단 하나.
「탐욕의 손 : 1」
솔직히 말할게.
나, 이거 믿고 하강한 거 맞아.
애초에 나랑 송이가 호접몽이나 다양한 관점으로 공작을 때려죽일 수 없는 건 사실이잖아?
우리 중 제일 강한 가인이도 공작 ‘둘’을 상대로는 절대 못 이겨.
답은 탐욕의 손뿐이다.
다만, 주변에 대가를 요구하는 능력의 특성상, 때를 기다리는 중이지.
공작들이 날 데리고 멀리 움직인 후에 탐욕의 손을 쓰겠다는 계획이다.
숨을 고르며 다음 상황을 생각하던 시점.
— 우르릉…!
또 한 번의 천둥소리가 들리며 ‘세 번째 공작’이 장내에 난입했다.
동시에, 무형의 사슬이 끊기며 내 몸이 자유를 찾았다.
먼저 등장한 공작이 날 결박했는데, 이후의 공작은 날 풀어주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 나타난 공작의 생각은 다른 둘과 다르다는 것!
「공주님, 어떻게 인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처음 뵙겠습니다가 맞습니까? 아니면,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맞습니까?」
이스의 종족의 이름은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우니, 우리는 편의상 공작을 A와 B, C로 구분했다.
B와 C는 3회차 때 끌어들인 공작이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왕에게 충심을 보인 존재들이다.
반면, A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돌아섰던 존재.
물론, 천상을 경험한 2회차의 A와 그렇지 않은 3회차의 A를 완전히 동일시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알고 있겠지만, 너는 내 편이었지.”
「정확히는, 다른 시간대의 내가 당신의 편에 섰지요.」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야.”
두 A는 결국 같은 개체고 초이성적인 성향 또한 유사하다.
왕의 실패를 확신하면, 주저 없이 돌아설 것이다.
「그리 생각하신다면, 과거의 저를 설득한 증거를 다시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문제라면 이게 문제네.
3회차의 A는 천상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까.
“… 그건 어렵지만, 넌 이미 네가 한번 설득당했음을 알아.”
우리 편에 섰던 과거 A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증거가 아니냐는 말.
A는 정말 ‘초이성적으로’ 내 말에 반박했다.
「만일, 왕께서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
「@#! &*@+!」
「#$@!」
순식간에 다른 두 공작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냈다.
다른 두 개체가 듣기엔 A의 이런 말 자체가 불경하게 들리는 듯했다.
물론, A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왕께서 틀릴 수 있다면, 그보다 못한 존재는 당연히 틀릴 수 있습니다.」
“…”
「과거의 나도 당연히 틀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내게 다시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그건 -”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B가 분노에 가득한 의지를 발했다.
「지상을 보라! 공주님께서 알 수 없는 힘으로 백작 이하 개체를 홀리셨다!」
「그런 것 같군.」
「그 힘으로 과거의 너를 지배한 것 아니겠느냐? 공주님의 사특한 말을 듣지 말아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이스의 하위 개체를 무릎 꿇린 것처럼, 과거에 A를 홀린 게 틀림없다는 말.
당연히 개소리지.
그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있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공작들에게는 꽤 설득력 있는 가설로 들리지 않을까?
이걸 어떻게 반박 –
「이상한 이야기로군. 공주님께서 공작들조차 강제로 무릎 꿇릴 수 있으시다면, 너는 대체 무슨 수로 공주님을 강제로 데려가겠다는 말이냐?」
「…」
… 듣고 보니 그렇네.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주장은 많으나, 그 누구도 확고한 근거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으니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작 사이에서도 서열이 있다면, A의 서열이 이 자리의 공작 중에서는 제일 높은 것 같아.
그러니까 A 혼자 다른 의견을 내는데도 B와 C가 순순히 듣고 있는 것 아니겠어?
어떻게 할까?
A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난관을 돌파한다?
아니면, 이미 주변에 이스의 종족뿐이니까 주저 없이 탐욕의 손?
공작들도 나도 각자의 생각에 빠진 순간!
그 누구도, 원인을 만든 나 자신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 스아아…!
“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스의 종족이 내는 특유의 소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싶더니, 숨 한번 내쉬기도 전에 일대가 희뿌연 안개로 가득해졌다.
그제야 그동안 내가 굴복시킨 이스의 종족 하위 개체들이 영체화 했음을 알았다.
얘네 설마 –
「공주님을 내려놓아라!」
– 설마가 진짜였어?
하위 개체들이 날 구하기 위해 공작을 공격하기 시작하다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사용한 나 자신조차도 하위 개체들이 이 정도의 ‘충성심’을 발휘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곧, 사방에서 뻗어온 힘의 물결이 공작들을 타격하기 시작했고,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의지가 발했다.
「혼란을 가라앉히긴커녕, 더 큰 혼란을 일으키다니!」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우리의 통제가 먹히지 않지?」
「… 공주의 통제력이 우리를 뛰어넘고 있다.」
「공주…! 당신은, 왕은 아니지만 분명 특별한 존재로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 세자릿수의 하위 개체들이 일제히 합창하기 시작했다.
「석방하라!」
「석방하라!」
“…”
그래그래, 얘들아.
참 고맙고 좋은데, 당황스럽구나.
이러면 내가 여기서 탐욕의 손을 쓰기가 부담스럽잖니?
「공주님을 석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