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13)
괴담 호텔 탈출기 713화(712/794)
713화 – 누군가의 휴식, 누군가의 고행 (9)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25일 차
현재 위치 : 계층 3, 객실 복도
현자의 조언 : 3」
– 한가인
— 끼익!
301호의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지난 며칠간 301호에서 고생한 은솔 누나가 다시 호텔로 돌아온 것이다.
직전까지 누나를 관측한 미로가 ‘은솔이 곧 돌아올 것 같아!’라고 말한 덕에 모두가 3층 객실 복도에서 대기 중이었다.
“얘들아, 나 돌아왔 -”
— 쫘악!
폭죽이 터지며 색색의 종이가 누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아리가 그 짧은 사이에 준비한 장난 겸 축하 인사인 모양이다.
누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또 한편으론 내심 기뻐 보이기도 했다.
“폭죽은 무슨…”
“고생했어!”
“언니, 고생했어요.”
“고생 많았다. 온 김에 좀 쉬었다 다시 가는 게 좋겠다.”
“… 다들 고마워. 참, 송이는 어떻게 됐어?”
미로가 즉시 답했다.
“송이도 곧 올 거야! 그, 건물 쪽으로 오고 있었어.”
“다행이다아…”
“일단은, 좀 쉬었다가 이야기합시다.”
*
저녁 무렵, 송이도 호텔로 복귀했다.
자연스레 모두가 다과 테이블에 모였다.
제일 먼저 나온 화두는 문제의 공작 A였다.
“나, 진짜 어이없었다니까? A가 갑자기 날 데리고 탈출한 거 아니겠어?”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는 아리.
“좋네. 돌아가면 고맙다고 하고 선물이라도 해.”
“진담이야?”
“선물까진 농담이지만, 고마워 하라는건 진담이야.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A가 내 편을 든 이유가 뭔지 짐작이 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누나가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A의 판단이 굉장히 합리적이면서도 적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존재일수록 예측이 쉬워.
예측이 어려운 경우? 동료들로 치면 미로나 승엽이지.
…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른 것 같았다.
“으음… 신기한 일입니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상현 형.
“언니 말대로면, 파괴적인 마법으로 백성을 마구 죽인 셈이잖아요? 그러면 최악의 왕 아닌가?”
최악의 왕이 할 법한 행동이 아니냐고 말하는 엘레나.
“갑자기 난장판이 나길래 재빨리 도망쳤는데, 그 소용돌이 언니가 소환한 거였구나! 어쩌면, A가 소용돌이에 휩쓸려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닐까요?”
탐욕의 손이 불러낸 소용돌이가 A를 미치게 한 것 아니냐는 송이.
어째, 다들 A의 판단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설명해야 하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차, 아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와…”
“아리 너는 알겠어?”
“… 짐작은 하겠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이 나오네.”
“그치? 미친 거 아니냐고!”
순간, 테이블에 둘러앉은 10명의 사람이 크게 세 분류로 나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번. 공작 A의 판단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2번. 공작 A의 판단을 이해는 했지만 황당하다고 느끼는 사람.
3번. 공작 A의 판단을 이해했고,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사람.
안타깝게도 3번은 나 하나뿐인 듯했다.
이쯤에서 미로가 주저 없이 아리 팔을 확 당겼다.
“둘이만 아는 이야기 하지 말고 설명해!”
“간단히 말하면, A는 은솔이가 ‘백성을 배신할 수 없는 왕’의 후보라고 판단한 거야.”
“뭐?”
“기존의 왕과 비교해 봐. 301호의 죄수는 날 때부터 신으로 태어난 위대한 자요, 손짓 한 번으로 이스의 종족을 창조한 존재지.”
“으응…”
“다시 말해, 기존의 왕은 이스의 종족을 초월한 존재야. 피조물을 아끼긴 하지만, 결국 대단히 독선적인 존재지.”
301호의 죄수, 이스의 왕을 A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왕은 말 그대로 우주적인 신이요, 그 어떤 제약도 없는 존재다.
왕이 무슨 짓을 하든 이스의 종족이 통제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왕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이스의 종족을 몰살하려 해도 A를 제외한 일족은 왕을 대놓고 거스르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는 왕이 아니라 신이다.
그것도 아주 독선적이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신이다.
“반면, 은솔이는 어때?”
이제야 A의 판단을 이해하기 시작한 동료들이 입을 반쯤 벌린 채 제각기 떠들기 시작했다.
“… 백성을 배신하면 능력이 깨진다.”
“그러니까, 능력이 깨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고귀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거야.”
그 순간, 상현 형이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니, 그런 판단을 그 상황에서 내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은솔 양이 수백에 달하는 이스의 하위 개체를 죽인 상황이었는데 말입니다.”
누나도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내가 음, 살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몇백을 죽였는데.”
할아버지가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니까, 사람으로 바꿔서 설명하면 이런 거냐? 어떤 대단한 능력자가 서울 시민 300명을 세뇌했다가, 지 살자고 소용돌이를 불러내서 300명을 싹 죽였어.”
‘지 살자고’라는 대목에서 은솔 누나가 움찔했으나 부정하진 않았다.
솔직히 누나 본인이 살기 위해 죽인 게 맞긴 하지.
아리가 말을 이었다.
“그 정신 나간 광경을 보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했다는 말이지. 이야~! 300명을 죽이니까 세뇌 능력이 풀리네? 이거 아주 훌륭한 왕의 자질 아닐까?”
날 제외한 모두가 어이없음을 느끼며 침묵하는 상황.
내 나름대로 A의 입장을 보충할 필요성을 느꼈다.
A가 은솔 누나 편에 선 이상, 반쯤 동료나 다름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으흠!”
헛기침으로 시선을 모으며 간단히 설명했다.
“그, 300의 희생이라는 게, 어,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닙니다.”
“…”
“이스의 종족이 무슨 멸종위기종도 아니고, 정황상 최소 몇억에 달할 겁니다. 어쩌면 인간보다 개체수가 더 많을 수도 있어요.”
“…”
“300 정도는 뭐… 사실, 누나로서도 그리 큰일 아니에요.”
“…”
“하하! 누나도 참, 생각해 보세요. 하위 개체 300마리 -”
“지, 짐승도 아니고 마리는 좀!”
“- 300명 모으는 데 며칠 걸렸죠? 겨우 3일 아니었나? 별것 아닙니다. 이스의 하위 개체 정도는 지금 지구에 널려있어요. A의 도움을 받으면 3,000 아니 30,000명도 금방 모을 겁니다.”
설명을 끝냈을 때, 아리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A가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 완벽히 이해했어. 다들 알았지? 지금 얘가 딱 A야.”
“…”
“은솔이는 A에 대해 가인이랑 조금 더 말해보고 다시 가는 게 좋겠다. 가인이 몸에 촉수만 1,000개 정도 추가하면 A 그 자체니까 훌륭한 분석이 될 수 있을 거야.”
어째, 아리의 말이 칭찬으로 들리진 않았다.
다른 동료들 역시 여러 가지 의미로 감탄한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내 사고의 흐름이 동료들과 ‘다소’ 달라졌음을 느끼며 바로잡을 부분이 있는지 잠시 고민하던 시점.
송이가 급격히 피로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한데, 저 조금만 더 쉬고 올게요.”
기다렸다는 듯 은솔 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 나도. 사실, 아까부터 좀 힘들었어.”
하강의 피로가 상당히 심한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조금 더 쉬겠다며 105호로 떠났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301호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기가 애매해졌다.
그래서일까?
엘레나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 301호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인데요. 요 며칠간 이상한 꿈 꾸시지 않았어요?”
갑자기 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동료 여럿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꿈이라기보다는 환청 아니야?”
“환청? 나는 환각을 본다고 느꼈는데.”
“나도!”
날 제외한 다른 동료들만 느끼는 이상한 꿈 혹은 환각?
즉시 그럴듯한 가설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다들 최초의 소원과 관련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역시!”
“3층에 오며 해당 기억의 봉인이 풀리기 시작한 거죠. 또, 은솔 누나와 송이가 꿈을 자각하는 광경을 보며 각자 자극받은 면도 있을 테고.”
다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내심 비슷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강한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한번, 다들 기억나는 대로 말해보시죠.”
화제를 꺼낸 엘레나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악몽 같은 형태인데, 어두운 통로에서 끊임없이 달리고 있어요. 누군가 절 지켜보고 있고, 계속 쫓아오죠.”
다음은 아리였다.
“나는 음… 전에 이야기한 은하수를 달리는 열차의 소리가 계속 들려. 그리고…”
“그리고?”
“…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잘 모르겠어. 내 기억은 여기까지. 다음!”
미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몬가,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
“미로, 그건 한빙지옥의 일 아니야?”
“그, 그런가…”
진철 형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한빙지옥 꿈을 갑자기 꿀 이유가 없지 않냐? 소원 관련 꿈 맞을 것 같은데.”
“그런가…?”
이 말에도 저 말에도 다 ‘그런가…?’ 하는 걸 보니, 미로 본인도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요? 아, 진철 형은 어떻죠?”
“으음, 누군가와 대련을 엄청나게 했던 것 같다.”
“대련?”
“… 졌어.”
형이 울적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장난치듯 말했다.
“야 인마! 너 어차피 호텔 오기 전엔 맨날 졌다면서 그게 대수냐?”
“아오! 그거랑 좀 다르단 말입니다!”
“어떻게 다른데?”
“…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다릅니다.”
이쯤에서 대화가 잠시 멈췄다.
다들 뭔가 정체 모를 기억을 떠올리고 있기는 한데, 구체적이지가 않다.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오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 문득, 아까부터 아무 말 없는 동료 한 명이 보였다.
“승엽아.”
“…”
“승엽아?”
“아, 가인 형.”
“너는 뭐 없어? 꿈이든, 환청이든.”
“잘 모르겠어요.”
순간, 승엽이의 모른다가 다른 동료들의 모른다와 다소 다르다고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진짜 몰라서 모른다고 하는 것이고, 승엽이는 아는데 모른다고 하는 느낌.
말하기 싫은 건가?
굉장히 개인적인 내용을 떠올렸다거나?
“…”
강압적으로 캐기보다는 주기적으로 관찰하는 게 좋겠지.
그간의 경험을 고려하면, 승엽이는 조금만 관찰해도 다 보인다.
“자, 각자 좀 쉽시다.”
*
– 박승엽
.
..
…
「…」
“아.”
또 들렸다.
이번에는 좀 흐릿했지만, 뭐라고 말했는지는 알아.
3~4일 사이에 수백 번은 들었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아까 가인 형에게 내용을 말하고 상담받는 게 나았을까?
“…”
그렇지만, 이건 진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너는 운이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쁜 것 같구나.」
또, 또야…!
— 풀썩!
침대에 엎드려서 이불을 덮어썼다.
물론,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인 건 잘 알아.
목소리의 근원은 외부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다.
「왜 너인지 모르겠어.」
“… 닥치라고!”
누구일까?
과거에 누가 나에게 이렇게 짜증 나는 소리를 한 걸까?
「실력도 자격도 없는 주제에, 운이 좋아서 그 자리에 앉았구나. 정말 네 자리라고 생각하니?」
“그러니까 내가 행운의 축복을 얻은 거지! 운도 실력이라는 말 못 들어봤냐?”
점점 목소리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 같아.
정체 모를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내 자존감을 해치는 그런 느낌.
문득, 항상 침대 머리맡에 두곤 하는 주사위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주사위를 집어서 휙 굴렸다.
1, 3
“… 다시.”
2, 1
“…”
3, 5
아무렇게나 뜨는 숫자들.
내가 나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는 의미일까?
「누구라도 널 대체할 수 있어. 즉, 꼭 너여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