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15)
괴담 호텔 탈출기 715화(714/794)
715화 – 결착과 선택 (2)
– 유송이
다시 하강한 후, 처음 깨달은 사실은 3일이 흘렀다는 거였다.
“호텔에선 딱 하루 쉬었는데, 여긴 벌써 3일이 흘렀잖아?”
“시간의 흐름이 되게 제멋대로인 것 같아요.”
“시간의 흐름이 제멋대로인 게 아니라, 호텔이 3일 후의 301호로 우릴 보낸 거긴 해.”
“그게 그거 아니에요?”
“가인이는 전혀 다르다고 할걸?”
“오빠는 뭐, 원래도 이상한 말 많이 하는 사람이니깐.”
“야, 야. 지금 대화 가인이도 듣고 있어.”
언니의 말을 듣자 살짝 장난치고 싶어져서 천장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오빠, 지금 우릴 잘 보고 있죠?”
언니는 피식 웃으면서 핸드폰을 두드렸는데, A가 알려줬다는 연락처에 문자라도 보내는 것 같았다.
곧, 공작의 답변이 돌아왔다.
“외계인이 핸드폰까지 쓰다니…”
“약속 장소랑 시간이 정해졌어. 지금 바로 가면 되겠다. 참!”
“뭔가요?”
“은밀하게 행동하래.”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손목의 팔찌, 다양한 관점을 가리키니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하네. 그래, 출발하자.”
*
약속 장소는 동대문 인근의 허름한 건물 지하였는데, 도착 후 30분 정도 기다리니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40대 정도의 남성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몇 주 혹은 몇 달은 걸릴 줄 알았습니다.”
“… 사람의 몸이네.”
A가 인간의 몸을 빌려서 나타날 줄은 몰랐어.
언니도 마찬가지였는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공주님을 피난시킨 후, 저도 추격당하고 있습니다. 본체는 조금 먼 곳에 있습니다. 이 몸은 다치지 않게 관리 중이니, 걱정하지 마시길.”
“이해했어. 이렇게 약속까지 잡은 걸 보면, 네게 일종의 계획이 있는 모양이지? 몇 가지 설명을 듣고 싶은데.”
“물으시지요.”
곧, 언니가 가장 궁금한 것부터 질문했다.
“첫째, 어머니는 지금 뭘 하려고 하시는 거야? 너희, 공작들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가 회복할 방법이 있는 모양인데…”
언니가 하위 개체들을 통솔하던 때, 장내에 난입한 공작들은 말했다.
왕께서는 소멸하신 게 아니라 일시적으로 약해졌을 뿐이며, 일족의 힘을 모아 위대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상함을 깨달았어. 어머니에게 회복 수단이 있으면 말이 안 되거든. 그러면 판정이…”
“판정?”
“…”
호텔에 대해 잘 모르는 공작 A는 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바로 이해했다.
언니의 말은 간단해.
망령화한 이스의 왕에게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인류 종말의 위기 역시 끝난 게 아니다.
즉, 301호가 아직도 진행 중이어야 한다는 말이지.
호텔은 천상에 오른 왕이 소멸하자 우리에게 해결을 선언했다.
호텔이 보기엔 왕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공작들은 왕이 회복할 수 있다고 하니 언니가 의아함을 느낀 거야.
곧, A의 설명이 이어졌다.
“회복이라… 제대로 된 방법은 아닙니다. 정황상 선왕께서는 지금 같은 상황을 미리 예견하시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건 그럴 만해.”
나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은솔 언니의 몸을 빼앗아서 승천했는데, ‘과거의 언니’가 사망하는 바람에 죽는다?
아무리 죄수라도 ‘시간대여기’에 대해 모르는 이상, 위와 같은 상황을 예측할 수는 없다고 봐.
“두 공작이 했던 말은 혼란을 가라앉히기 위한 거짓말에 가깝습니다.”
“역시! 회복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왕께서는 일족의 믿음과 신앙을 모아 회복을 꾀하고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신앙을 모아 회복한다라…”
어째, 익숙한 이야기였다.
동료 중 완벽히 똑같은 이치로 힘을 충전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언니도 자연스레 가인 오빠의 신성한 태양을 떠올렸다.
그때, A의 표정, 정확히는 A가 깃든 인간의 표정에 참혹함이 깃들었다.
“… 예측대로라면, 믿음과 신앙이 전부가 아닐 겁니다.”
“음? 그게 무슨 – 아.”
언니는 A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는 듯 탄식했다.
곧, 나도 언니가 깨달은 사실을 이해하고 말았다.
“왕은, 이스의 종족의 영혼을 대량 포식하려는 건가요?”
입을 열자마자 A가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예리한 눈빛을 보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A가 공손히 대하는 상대는 언니뿐이었다.
언니가 즉각 반응했다.
“내 동료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
“… 실례했습니다.”
A가 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거, 진심이 아니라는 데에 전 재산도 걸 수 있어.
몇 가지 생각나는 내용을 말했다.
“이스의 종족을 아무리 많이 포식해도 왕이 완전히 회복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영적 질량이 너무 차이 나니까.”
호수의 물을 아무리 퍼다 날라도 태평양만 한 그릇을 채울 수는 없는 법.
“한 번에 무작정 많이 삼킬 수도 없겠죠? 아예 종족이 다른 인간의 영혼을 마구 포식하기도 어려울 테고. 그렇게 하면 자아가 분열될 수 있으니까.”
무작정 영혼을 들이키면 자아의 분열이 발생한다.
현실에서 달이 겪었던 문제고, 우주를 부유하는 위대한 자가 힘을 키운답시고 마구잡이로 필멸자를 잡아먹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인 오빠의 부연 설명에 따르면, 먹기 전에 ‘색’을 통일하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어.
종교를 만들 수도 있고, 달처럼 영적인 고문을 통해 생전의 자아를 지울 수도 있다.
…
이런 한계를 넘어서는 깨달음도 있다고 들었다.
가인 오빠가 생각하기엔, 104호의 주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고 한다.
이스의 왕에게 주와 같은 능력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이스의 왕이 더 미약하고, 주가 더 위대한 존재여서가 아니야.
두 위대한 자는 서로 다른 산을 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했을 때, A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영혼 포식에 대해 아주 잘 아시는군요. 어쩌면, 저보다도 말입니다.”
“… 그 분야 전문가를 잘 알거든요.”
“영혼 포식의 전문가 말입니까? 그런 자가 있다면, 진실로 사악한 존재겠군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하늘을 보았다.
언니도 피식 웃으며 답했다.
“좋아, 이제 상황을 이해했어. 어머니는 이스의 종족을 잡아먹으며 회복하실 생각인데, 엄청나게 오래 걸리고 그나마도 불안정한 방법이네. 그래서 -”
그래서 호텔은 우리에게 해결 판정을 주었다.
최소 수백 년, 혹은 수천 년 내로는 이스의 왕이 재기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다음 질문. 어머니를 쓰러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가 담담하게 답했다.
“질문을 바로잡겠습니다.”
“뭐?”
“공주님, 선왕 혼자뿐이라면 제힘으로도 멸할 수 있습니다.”
“…”
A의 힘만으로도 이스의 왕을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이야기.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이스의 왕이 그만큼 많은 힘을 잃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신의 피조물 중 조금 강한 개체에 불과한 존재를 당해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선왕의 회복을 꾀하는 다른 두 공작입니다. 그들 모두를 저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해했어.”
“따라서 강력한 무기가 필요합니다. 두 공작과 선왕의 망령을 깨트릴 수 있는 무기 말입니다.”
“무기?”
“공주님, 이 별을 본디 지배하던 세력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관리국이라면 잘 알지. 아주… 잘 알지.”
A는 지구에서 벌어졌던 이스의 종족과 관리국 간의 충돌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도시를 부수고 대량 학살을 일으키는 요란한 충돌이라기보다는, 몸을 빼앗는 이족과 그를 막아내려는 관리국 간의 전쟁.
싸움의 승자는 이스의 종족이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야.
관리국에 신고한 내용이 그대로 이스의 종족에게 새어나간다거나, 관리국에 신고했더니 이스의 종족이 응징하러 온 시점에서 뻔한 일이었지.
다음 내용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전세가 기울 때쯤, 다소 의아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의아한 일?”
“관리국 수뇌부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갑자기 단체로 사라진 겁니다.”
“…”
“어디론가 도주했다. 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패전 위기에 처한 관리국 수뇌부의 선택은 도주.
예전이었다면, 지구를 버리고 대체 어디로 도망갔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겠지만…
“언니, 이거 설마…”
“아아~! 아주 안전한 곳으로 튀었네.”
관리국 수뇌부는 ‘다음 루프’로 도주했다.
평소보다 작은 규모의 방주를 만들어서 도망간 게 아닐까?
“그런데, 관리국 수뇌부가 도망간 것과 두 공작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상관이 있습니다. 마지막 충돌 과정에서 무려 둘이나 되는 공작이 소멸했기 때문입니다.”
“… 공작이 둘이나 죽었다고?”
“관리국이 특별한 무기를 사용하더군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필시, 인류가 창조한 무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솔직히 좀 놀랐어.
또, 순수한 의미의 호기심이 들었다.
몇 번의 충돌로 깨달은 사실.
죄수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공작 역시 반신에 준하는 존재야.
필멸자 중 이스의 공작에 비견할 존재가 누가 있을까?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내가 아는 범주에선 셋 정도가 바로 떠올랐다.
첫째, 방주와 합일한 시점의 선대 지혜
이 괴물은 공작과 비견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공작을 압도할 수 있다고 봐.
방주를 소모한 후의 선대 지혜라면, 그 정도는 아닐 것 같아.
둘째, 에이디아
교황청 성모였던 207호의 에이디아와 달의 성모였던 현실의 에이디아 양쪽 모두를 포함한 개념이다.
어느 쪽이든, 포르투나를 포함한 호텔 파티를 상대로 우세한 싸움을 벌였었지.
그렇지만, 이쪽은 공작보다는 살짝 밀리지 않을까?
무엇보다 정의의 축복이 이스의 공작에게 정상적으로 통할지 잘 모르겠어.
셋째, 만전을 기한 가인 오빠
301호 첫 번째 시도 때 A와 싸웠을 때는 밀리긴 했지만, 이건 A가 기습해서 가인 오빠 목을 치고 시작한 싸움이니 경우가 좀 다르다고 봐.
비유하자면, 방심한 A에게 의사 선생님이 최후의 섬광을 쏴서 반쯤 죽여놓고 싸움을 시작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 만전을 기하면 어떨까?
으음… 잘 모르겠어.
그때, 은솔 언니가 다른 생각하지 말라는 듯 내 어깨를 툭 쳤다.
“무슨 생각 중이야?”
“아, 아니에요.”
공작 A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설명을 이어갔다.
“충돌이 끝났을 때, 관리국이 사용했던 정체불명의 무기 일부를 확보했습니다. 지극히 통제하기 어려운 무기였고, 폐기하자는 의견이 나왔지요. 다만…”
“다만?”
A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몰래 일부를 빼돌렸습니다.”
“…”
“무기는 무기일 뿐이니, 최소한 연구할 가치는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을 예측한 건 아닙니다만.”
뭐랄까, 이 공작은 여러모로 특이하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스의 공작이 어마어마한 강자라는 사실이야.
그런 공작이 둘이나 저항도 못 하고 참살당할 정도로 강력한 무기가 대체 뭘까?
그때, 은솔 언니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관리국이 도주 직전에 강력한 무기를 사용해 공작 둘을 참살했고, 너는 승전 후에 그 무기 일부를 확보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 무기를 되찾은 후, 강원도 지하에 가서 어머니와 두 공작을 끝장내자고?”
“정확합니다.”
“혹시, 무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공작의 손끝에서 희뿌연 환영이 나타났을 때.
“아…”
“어머.”
나와 언니가 동시에 탄식했다.
필멸자의 한계에 달한 절대강자, 공작을 둘이나 참살했다는 관리국의 비밀병기.
정체를 알고 보니,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또, 또, 또 이거야? 또?”
“아직도 저 징그러운 물건과의 인연이 끊어지지 않았네요.”
A가 도리어 놀란 눈으로 우릴 보았다.
“저것의 정체를 아십니까?”
“잘 알지. 너무, 너무나 잘 알지.”
어떤 의미에선, 실로 만악의 근원이라 할만한 물건.
“니토크리스의 거울…”
공작 A가 처음으로 웃음에 가까운 표정을 흉내 내며 말했다.
“과연 공주님과 그 동료분이십니다. 모르는 게 없으시군요. 잘 아신다니, 사용 방법도 아신다는 의미로 이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