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16)
괴담 호텔 탈출기 716화(715/794)
716화 – 결착과 선택 (3)
– 김아리
회백색으로 가득한 관측소의 적막한 풍경.
한참 동안 하계를 관측하던 중, 날카로운 바늘이 머리를 찌르는 듯한 두통을 느꼈다.
“으음…”
“아리야! 힘들어?”
“조금.”
“그럼, 그러엄! 나랑 교대하자!”
“…”
가인이나 묵성이는 어디 있지? 상현이는? 엘레나는?
왜 아까부터 내 옆에 미로만 있는 거야?
이러니까 교대를 못 하고 있잖아!
“아직은 괜찮아. 기록 좀 남길게.”
뒷사람을 위해 관측 내용을 빠르게 기록했다.
미로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내가 적는 내용을 유심히 읽었다.
“풋! 송이가 하늘에 손 흔들면서 가인이에게 인사했어?”
“응. 가인이가 관측 중인 줄 알았나 봐.”
“송이 바보! 어, 이건 뭐야? 또 거울?”
“그렇네. 또 거울이네.”
“자, 잠깐! 거울이 있다면 방주도 있는 거지?”
“관리국이 이미 방주를 만들어서 튄 모양이야.”
“내, 내 말은, 방주가 있으면 달도 있는 것 아니야? 301호 지구 지하에도 달 있어?”
“당연히 있겠지. 301호는 시뮬레이션 세계가 아니라 오래전의 현실 그 자체니까.”
미로의 감홍색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참으로 풍부한 표정 변화를 보고 있으니, 겉으로는 너무나 닮은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느껴졌다.
글쎄, 나는 미로처럼 모든 일에 신기해하며 다채로운 표정을 짓기는 어렵더라고.
“그, 그러면 나중 가면 달까지 막 깨어나는 거 아니야?”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왜?”
“미로, 달의 각성 시기는 정해진 게 아니야. 매 루프 점점 빨라지지. 다시 말해, 현실의 오랜 과거인 301호 시점에선 각성 시기가 꽤 늦어.”
최신 루프에선 각성 시기가 21세기였다.
여기서 더 당겨지면 돌이킬 수 없었고, 그랬기에 우리는 인류의 명운을 건 승부를 걸어야 했지.
“그럼, 301호에선 달이 언제 깨어나?”
— 끼익!
그때, 관측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가인이 들어왔다.
“나도 궁금하네. 언제쯤 깨어날 것 같아?”
가인이는 밖에서 나와 미로의 대화를 들은 것 같았다.
“24세기? 25세기? 수백 년 후일 것 같긴 한데,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어.”
“당장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네.
“그렇지. 네가 당장 신경 쓸 문제는 달이 아니라 망원경이야. 교대하자.”
“좋 -”
“에엣! 아리야! 나랑 교대하기로 했잖아!”
“내가 언제?”
“… 아리도 날 못 믿어.”
“믿음직하게 행동하든가.”
살짝 삐진 미로가 귀여웠는지, 가인이 피식거리면서 망원경으로 다가왔다.
교대하기 직전, 가인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냈다.
“상현 형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네가 형에게 가봐야 한다는 소리지.”
*
— 유송이
두 번째 하강 후 약 7시간이 흐른 시점.
공작 A가 거울 조각을 숨겨둔 인천항 인근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A는 거울 조각에 대한 상당한 호기심을 드러냈는데, 우리가 거울 조각의 기원과 원리, 사용법 등을 통달했다고 착각 중인 것 같았다.
은솔 언니는 공작의 호기심에 매우 현명하게 대처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물건에 대해 어설프게 설명하다가 위엄을 잃는 대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대답을 피한 것이다.
“안타깝지만, 니토크리스의 거울에 숨겨진 지고한 이치는 자격 없는 이에게 주어질 수 없다.”
“제게도…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까?”
“오직, 삼천세계를 위해 울부짖는 자의 허락 하에만 가능해.”
당연히 거짓말이야.
애초에 거울은 유산도 아니라고? 딱히 호텔이 통제하는 물건이 아니야.
거울의 기원인 수행자 혹은 얄다바오트 역시 죄수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아.
저주의 방이 아니라 관문의 방에 있던 존재니까 말이지.
“도착했습니다.”
“도착했다고? 여긴 그냥 공터 – 그래, 좋아. 너만 접근할 수 있는 입구가 따로 있나 보네.”
“치명적인 무기는 특별한 장소에 보관해야 하는 법입니다. 저는 거울보다 위험한 무기를 거의 알지 못합니다. 대도서관에 보관 중인 12등급 이상의 무기를 포함해서 하는 말입니다.”
대도서관? 12등급 이상의 무기?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가 있긴 했지만, 대충 어떤 의미로 말하는지는 알겠어.
위험한 무기라…
엄밀히 말하면, 니토크리스의 거울은 무슨 무기는 아니지 않을까?
얄다바오트는 무슨 인류 종말이나 만상의 파멸을 꿈꾸며 거울을 만든 게 아니니까 말이야.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인 건 사실이긴 해.
강력한 위력의 무기처럼 사용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가인 오빠가 이미 한 차례 보여준 바 있으니 말이다.
이쯤 생각할 무렵, 공작이 갑자기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다섯 걸음 직진.”
“…?”
“그대, 앞으로 다섯 걸음 걸어라.”
거울 조각을 나에게 주려는 거야?
당연히 주군으로 모시는 언니에게 줄 것 같았 –
아.
공작 A의 생각에 거울 조각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다.
어린애 손바닥만 한 크기의 유리 조각에 핵미사일 1,000개분 위력이 잠들어 있다면 비슷할까?
그래서 언니가 아닌 내가 거울 조각을 쓰길 바라는 거야.
너무 위험하니까, 위험한 일은 왕이 하면 곤란하니까 말이지.
어이없음과 약간의 짜증을 느꼈지만, 내 생각에도 언니보다는 내가 써야 할 것 같긴 했다.
왕의 망령도 공작도 언니에게 주목할 테니, 내 행동이 더 자유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공작.”
“할 말이라도 있나?”
“거울 조각을 챙기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요.”
“확인?”
직후, 다양한 관점을 사용해 공작의 감각을 왜곡해 내 위치를 숨기려 시도했다.
A는 내 갑작스러운 공격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는 마치 모든 환영을 무시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게 감각 왜곡을 무시하고 날 찾아내었다.
“갑자기 마법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군.”
“송이가 뭔가 확인하고 싶은가 봐. 협조해 줘.”
“알겠습니다.”
공작은 어떻게 날 찾아낸 걸까?
주변 풍경과 비교해서 위화감이 있는 부분을 찾아낸 건가?
“… 다시.”
이번에는 아예 공작이 깃든 숙주의 인지 영역 전체를 뒤흔들었다.
쉽게 표현하면, 내 위치만 뒤튼 게 아니라 숙주가 보고, 듣는 모든 영역을 혼란케 했다는 것.
… 이번에도 공작은 나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A가 뭔가 알겠다는 투로 말했다.
“이후에 있을 공작들과의 결전을 준비하는 건가?”
“맞아요. 당신에게 통하지 않으면, 다른 공작에게도 통하지 않을 테니까.”
“설득력 있는 이야기군.”
“…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팔찌의 힘이 당신에겐 안 통하는 거죠?”
“…”
“본체가 아니라서? 아닌데. 다른 이스의 종족을 상대할 때는 잘만 통했는데.”
“…”
“공작은 너무 강한 존재이니까? 으음, 이것도 좀 -”
그때, 공작 A의 표정이 기괴하게 –
“읏!”
– 기괴한 정도를 넘어서 혐오스럽게 뒤틀렸다!
한쪽 눈동자는 위를 향하고, 다른 쪽 눈동자는 대각선을 향한다.
입술은 사선을 그었고, 혀는 뺨을 찌를 듯 요동친다.
얼굴의 형상 자체가 기이하게 뒤틀린다고 느낄 무렵, 언니가 뒤늦게 반응했다.
“그만! 그 몸을 해치지 않겠다고 했잖아.”
곧, 기이하게 뒤틀렸던 숙주의 표정이 평이하게 돌아왔다.
“실례. 허나, 이게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무슨 말이죠?”
“방금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하지? 웃음? 슬픔? 증오?”
“모르겠는데요. 그냥, 되게 혐오스러운 표정이었는데.”
“조금 전, 나는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감정 신호를 숙주에 보냈다. 그러자 숙주의 얼굴 근육이 요란히 움직였지. 일종의 오작동이다.”
“…”
“내 말을 이해했나?”
“이스의 종족은 인간과 완전히 다른 종족이고, 인간이 느낄 수 없기에 단어로 정의하기조차 어려운 감정을 느낀다…”
“감정은 예시일 뿐이다. 나에겐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감각이 여럿 존재하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 감각?”
“이 별의 생태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어떤 동물은 온도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또 어떤 동물은 전자기파의 흐름을 혀로 느낀다.”
“…”
“그런 동물들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도 사람을 찾을 수 있겠지. 비슷한 이치다.”
어렴풋이 A의 말을 이해했어.
그러니까, 이스의 종족은 인간에겐 존재하지 않는 감각 혹은 정보 획득 수단이 있다.
따라서 내가 다양한 관점으로 일부 정보를 교란하더라도, A는 여전히 별도의 수단으로 날 찾아낼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전의 방식으로 공작이 아닌 이스 개체 여럿을 처치했어요.”
“우리는 선왕께서 빚어낸 일족의 수호자다.”
“그 말은?”
“보호자는 보호받는 자와도 다르기 마련이지.”
“으음, 그러니까 공작들은 일반적인 이스의 종족과도 또 다르다? 그러면, 팔찌를 통하게 할 방법이 없나요?”
순간, 공작이 살짝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너는…”
“네?”
“공작에게, 공작의 약점을 공략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는군.”
“그야, 이제부터 싸워야 할 적도 공작이니까요. 공작의 약점을 가장 잘 알만한 존재는 당신이고.”
어느 시점부터 은솔 언니는 말없이 A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A의 시선이 날 향했다.
.
..
…
준비가 끝났다.
곧, 니토크리스의 거울 조각 역시 내 손에 들어왔다.
“슬슬 출발하자.”
마지막 결전을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 A가 깃든 숙주는 양손 모아 합장하며 기도를 올렸다.
지극히 초이성적인 A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편, 선왕을 해치는 일은 공작 A에게조차 두 손 모아 기도해야 할 만큼 압박적인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 김아리
난잡하기 짝이 없는 공간.
펼쳐진 책들이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옷가지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언뜻 보면 자기 관리가 부실한 사람이 사는 방 풍경처럼 보인다.
물론, 상현이는 자기 관리가 부실한 사람이 전혀 아니야.
승엽이라면 모를 – 아, 걔는 귀찮다는 이유로 옷을 갈아입지 않아서 옷가지가 널려있을 일도 없겠네.
“여기 있었네? 찾느라 한참 걸렸어.”
“… 아리 양이 절 찾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뭐 하고 있어?”
“…”
“가인이가 네 상태가 별로라던데?”
“이런! 여러 사람을 걱정시킨 모양입니다. 사과할 일이군요.”
“야, 가인이에게만 사과할 생각 하지 말고 나한테도 사과해.”
“…”
“사방에 책들은 다 뭐야? 지하에 도서관도 있었나?”
“언젠가부터 있더군요. 딱히 특별한 책은 없습니다만.”
“무슨 일이야? 수염도 덥수룩하네.”
“아리 양.”
“응. 듣고 있어.”
“최근,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글자? 환각?”
“…”
“뭔데? 내용을 말해봐.”
“공든 탑은 무너지리라.”
“…”
“이제까지의 인류는 아이와 같았으니, 이제야 걸음마를 떼었구나.”
“…”
“요람에서 벗어나자마자 깨달았노라.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말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