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17)
괴담 호텔 탈출기 717화(716/794)
717화 – 결착과 선택 (4)
– 이은솔
301호의 모든 서사는 강원도 지하 유적에서 시작되었다.
유적은 어머니가 이 별에 처음 도착한 장소이며, 또한 아버지를 처음 만난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두 분의 첫 만남은 로맨스와 아주 거리가 멀었지만 말이다.
다시 강원도 지하 유적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에서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다.
*
처음으로 느낀 것은 코를 찌를 듯한 악취였다.
유적 내부에는 관리국 연구원과 군인들의 시체로 가득했는데, 301호 말미에 동료들이 유적을 점거하며 발생한 충돌의 흔적인 것 같았다.
싸움이야 301호 내부 시간으로 일주일 이상 흘렀지만, 누가 이곳을 청소할 여유도 없고 날씨는 따뜻하니 이런 지옥 같은 분위기가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A는 물론, 인간의 시체가 있든 말든 신경 쓸 존재는 아니었다.
송이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 애 역시 지금은 사람의 시체를 관찰할 여유가 없겠지.
그때, 빠르고 간단한 말이 들려왔다.
“공작들이 옵니다.”
그 말을 끝으로 A가 깃들어 있던 숙주가 픽 쓰러졌다.
— 스아아아…!
공작들이 등장할 때마다 느껴지는 기괴한 소리와 섬찟한 분위기.
예전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려 하진 않았지만, 이제는 알아.
A가 송이에게 공작의 특성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나 역시 이해했기 때문이야.
— 끼이익!
숨 한번 들이키기도 전에 일대가 가차 없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은 짐승의 내장처럼 검붉은 살점이 비치기 시작했고, 천장에는 밝은 조명 대신 번쩍이는 녹색 안개가 가득하다.
사방에 가득했던 시체들은 마치 벽돌처럼 풍경 일부로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역겨움이 한도를 초과해 현실감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유적 내부를 일종의 예술작품이라 친다면, 이 작품에는 악마의 광기와 천재의 창의성으로 가득해 보였다.
— 우르릉! 쿠궁!
“…”
공작들이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어느 쪽이 유리한지 정도는 안다.
A는 공작 중에서도 직급이 높고 강한 축에 속한다.
그러나, 그 차이가 혼자서 둘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밀려야 정상이며 실제로 밀리고 있다.
A가 불리한 와중에도 충돌 자체는 다소 지리하게 길어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망령이 B, C에게 내린 명령은 이은솔을 죽여라가 아닌 생포해라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겐 살아있는 내가 필요하다.
따라서 B와 C는 절대로 나를 죽일 수 없다.
즉, 내 존재 자체가 세 공작이 과격한 수단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관점에 따라선, A가 날 인간 방패처럼 쓰는 셈이지.
평소의 깍듯한 태도나 위험한 거울 조각을 송이에게 주는 걸 보면 A가 날 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하니, 가차 없이 승리를 위해 날 방패처럼 사용하는 태도.
물론, 이 부분을 지적하면 A는 간단히 답하겠지.
이게 가장 합리적인 전술이라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피리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지옥처럼 뒤틀린 지하 유적을 걸어 나갔다.
갈수록 지하 유적의 풍경은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졌다.
본래도 거대한 생물의 내장 속을 걷는 것 같았는데, 이젠 그 생물이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사방에서 위액이라도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우려할 무렵, 무언가가 나타났다.
굳이 따지면,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눈알을 닮은 존재.
동그란 구체가 떼구르르 굴러오더니, 내 앞에서 목소리를 내었다.
“공주님, 이쯤 하시고 따라오시지요.”
“…”
“배신자를 믿고 오신 모양인데,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습니다.”
A의 패색이 짙어졌으니 포기하라는 말.
거짓말 같진 않았다.
A도 혼자서 둘을 이길 수는 없다고 말했었고, 상대가 여유롭게 날 설득하러 나타난 것 자체가 증거였기 때문이다.
“배신자라… 나는 그 녀석을 A라고 불러.”
“A?”
“너희는 B와 C라고 불렀지. 너희 이름을 잘 모르거든.”
“공주 -”
“이스의 공작이란 대체 무엇인가. 너희는 어머니가 진정으로 육체를 초월한 생물을 창조하려고 시도한 결과물이라더라.”
“그건, A에게 들은 이야기입니까?”
“그래서 너희는 하위 개체들과 근본부터 다른거야. 하위 개체들은 몸을 갈아탈 수 있을 뿐, 몸이 없으면 태양을 마주한 망령처럼 녹아내려. 반면, 너희는 애초에 몸이라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 느낌이지.”
“…”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공작의 본질은 현실을 반쯤 벗어나 있다고 해. 이러니까 공작의 감각을 왜곡하는 힘이 제대로 통하지 않았던 거야. 현실에 걸쳐있는 단말의 감각만 뒤틀릴 뿐, 본질은 마치 관찰자처럼 세상을 볼 수 있으니까.”
이래서 송이의 다양한 관점이 공작에겐 통하지 않았던 것.
그때, 꿈틀거리는 눈빛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꺼내시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 지이잉!
공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별것 없다.
그냥, 이 정도 신기한 이야기는 해야 상대가 내 말을 들을 것 같았을 뿐이다.
그리고…
“널 위해서지.”
“예?”
“조심하라고. 내가 위기를 미리 경고하였으니, 이 은혜를 잊지 말지어다.”
*
— 유송이
고통스럽다. 라고, 생각했다.
호텔에서 정말이지 온갖 황당무계한 일을 다 겪긴 했지만, 그런데도 지금 상황은 뇌가 녹아버릴 듯 괴로웠다.
이곳은 본디 사람이 올 수 없는 영역이다.
‘…’
이상한 – 참으로 이상한 영역.
공작 A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의 경계면에 가까운 장소.
마치, 영혼과 마음이 속해있는 경계면 같았다.
현실과 아예 다른 장소는 아니다.
그런 말은 죄수조차 신비하다 여기는 우주 너머의 호텔 3층, 천상계에나 쓸 법한 표현이지.
굳이 표현하자면, 다른 관점에서 본 세상 같았다.
세상이 마치 만화의 한 컷처럼 느껴진다.
공작은 그 한 컷의 경계에 있는 뒤틀린 생물처럼 보였다.
지하 유적의 풍경이 끔찍한 추상화처럼 변화한다.
누군가는 지옥의 악마가 지상에 내려왔다며 공포에 떨겠지.
내게는 ‘지하 유적이라는 그림’을 그 위에서 꿈틀거리는 달팽이가 뭉개는 것처럼 보였다.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가 2층 해결 보상으로 주었던 ‘꿈’이 바로 저런 원리가 아니었을까?
‘…’
처음 이 영역에 들어온 건, 공작 A가 도와줬기 때문이다.
그는 왜 공작들에게 다양한 관점이 통하지 않는지 알려주는 과정에서 직접 보여주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공작의 본질이 컷을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 있는 부분만큼은 다양한 관점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
A는 내가 혼자서는 이 영역에서 몸도 가눌 수 없을 것이라 했지.
몸을 가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의 나약한 정신이 경계면에서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라 했어.
실제로는 움직일 수 있었다.
이 상황을 위한 ‘적절한 물건’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 스르릉!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
103호의 아타나시아들은 인간을 초월한 문명의 건설자들이다.
그들 역시 과학의 힘을 빌어 경계면의 이치를 알아낸 게 아닐까?
하지만, 그들은 이스의 공작처럼 직접 경계면에 걸칠 수는 없었다.
아타나시아와 이스의 종족 중 어디가 더 대단한가와는 다른 문제였다.
단순히 경계면에서 활동할 수 있게끔 태어났느냐, 아니냐의 문제.
인간은 새보다 똑똑하지만, 어쨌든 날개가 없는 이상 몸으로 하늘을 날 수는 없는 것과 같아.
…
사람은 날개가 없으니 비행기를 만들었다.
아타나시아는 현실의 경계에 직접 걸칠 수 없으니, 간접적으로 걸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다른 관점에서 본 세상.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 세상.
내 유산 – 다양한 관점은 바로 경계면의 이치를 응용해 만들어진 물건.
유산의 진실한 가능성을 터득했다.
어쩌면,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며 호텔이 제약한 기능이 풀린 것일지도 모르지.
…
곧이어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
103호에서 처음 다양한 관점을 얻었을 때는 가능했지만, 이후로는 쓸 수 없었던 능력이 떠올랐다.
순간이동.
어렴풋이 원리를 이해하고 보니, 사실 순간이동이 아니었어.
포크로 종이를 찌른다고 생각해 보자.
종이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보기엔, 서로 떨어진 세 개의 점이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각 점 사이의 연결이 보이지 않기에 맥락 없는 움직임처럼 보이고, 그러니까 순간이동처럼 느껴지는 셈이다.
실제로는 종이 밑에 포크가 있다.
…
나는 컷과 컷 사이를 걸어서 움직였다.
하지만, 이 움직임이 현실에서는 순간이동처럼 보일 것임을 이해했다.
— 지이익!
경계면에서 언니가 있는 컷에 도착하는 순간, 가슴 아픈 상실감이 날 덮쳤다.
조금 전까지는 정말 ‘필멸자’를 초월한 신비로운 영역에 있는 것 같았는데…
다시, 비범함이 사라진 평범한 영역으로 떨어진 느낌.
경계면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스의 공작보다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그러나 자력으로는 경계면에 도착할 수 없다.
이번에 A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스스로 경계면에 갈 수 있는 존재가 보내줘야 한다.
팔찌를 만들어 낸 아타나시아들도 직접 경계면에 갈 수는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태어날 때 컷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스의 공작처럼, 날 때부터 경계면에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한계를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
언니가 있는 컷에 도착하는 순간, 컷 위에서 꾸물거리던 달팽이가 날 발견하고 놀란 기색을 보였다.
지금 공작의 기분을 표현하면 딱 이거 아닐까?
‘니가 왜 거기서 나옴?’
물론, 상대는 곧 내가 자신을 해칠 능력이 없음을 깨달은 것 같았다.
사실이야.
다양한 관점의 새로운 활용법을 이해했으나 팔찌의 힘으로 공작을 해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공작을 달팽이에 비유하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 달팽이만도 못한 작은 미생물처럼 느껴지니깐.
다양한 관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걸 위한 물건은 따로 있었다.
— 지이잉!
경계면에서 현실로 진입하는 순간 – 니토크리스의 거울이 신비한 빛을 뿜어내며 공작을 비추었다!
“무슨 -”
— 쨍그랑!
이 땅의 공작이 셋에서 둘로 줄었다.
혹은, 셋에서 수천으로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아이야.”
“… 언니?”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자비를 베풀어 큰 조각을 남기기를 바라느니라.”
“…”
“이를 통해 천상의 대자대비함을 지상에 알리고자 하니, 이는 곧 미륵의 뜻이라. 이로써 -”
“언니, 능력 쓰려면 꼭 그런 말투 써야 해요?”
“… 이로써 쪼개진 공작의 조각이 빛으로 돌아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