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20)
괴담 호텔 탈출기 720화(719/794)
720화 – 결착과 선택 (7) Fin
– 유송이
마침내 도달한 301호의 완전한 끝.
“아아…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최후의 순간, 이스의 왕은 별다른 반항 없이 공작 A의 손에 사멸해 먼지처럼 흩어졌다.
오랫동안 섬긴 신하와 후계자 앞에서 추한 발악을 보이기보다는 일종의 위엄을 보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사라지기 직전, 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섬뜩한 눈빛을 언니에게 보냈다.
이후에 언니가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 눈빛의 의미는 ‘A의 위험성을 잊지 말아라’라는 경고였다고 한다.
당연하게도 언니를 진실한 후계자 혹은 사랑하는 딸로 여겨서 한 말은 아닐거야.
이스의 왕은 은솔 언니를 ‘언젠가 자신이 될 존재’로 여기고 있으니, 그 전에 A에게 당하지 말라는 이야기겠지.
언니의 마음, 영혼 속에는 지금도 왕의 복제체가 있다.
이번에는 결국 깨어나지 못했지만, 먼 미래에는 어떨까?
가인 오빠가 두 유산과 지고한 축복의 광기와 평생을 맞서야 하듯, 은솔 언니 역시 마음속에 잠든 악마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줄다리기를 이어가야 한다.
아주 오랜 싸움이 될 것 같았다.
…
이스의 왕이 사라진 자리에는 새까맣게 타오르는 검은 불꽃 같은 조각이 있었고, 자연스레 언니의 손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파편? 이거 어떻게 해?”
A는 단순명쾌하게 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
“선왕의 위대함이 깃든 마지막 조각이지요. 본디 그분의 위엄에 비하면 부스러기나 다름없습니다만…”
“…”
“다른 한편, 이것은 위대한 자의 유해입니다. 혼돈 속에서 날 때부터 대우주를 오시할 운명으로 태어난 자의 일부입니다.”
“그 말은?”
“당신의 격을 뿌리째 바꿔주는 우주 최고의 영약일지도 모르지요. 누가 알겠습니까?”
황량하기 그지없는 지하 유적, 잠시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곧, A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순간, 언니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움찔거렸다.
‘공주님’ 소리는 여러 번 들어서 익숙해졌지만, ‘폐하’는 이제 시작이니까 말이다.
“저는 당신을 위협하는 두 공작을 막아내었습니다. 또한 당신을 잡아먹으려 했던 선왕을 참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다음 질문에 솔직히 답해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 서두가 거창하네. 말해봐.”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당연히 호텔로 돌아가야지.
호텔이라는 단어를 천상으로 바꾸면, 공작도 짐작하고 있을 거야.
다만, 짐작을 확신으로 바꾸고 싶은 모양이네.
언니는 솔직히 답했다.
거짓말이 통할 상대도 아니고, 상대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분이 내게 소명을 내렸으니… 나는 그 사명을 받들어야 한다.”
“… 우리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일촉즉발의 위기로 이어질지도 모르는 상황.
다행히, 언니에겐 적절한 변명이 준비되어 있었다.
“천상과 지상의 시간 흐름은 완전히 달라. 내가 천상에서 설령 100년 동안 시간을 보내도 지상에서 100년이 흐르진 않을 거야.”
호텔과 301호의 시간 축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관측소 망원경이 301호를 관측하는 동안에만 일시적으로 동기화될 뿐이지.
우리가 3층으로 돌아가면, 망원경은 더 이상 301호를 관측하지 않을 거야.
“그 말씀은?”
언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짐짓 여유로운 듯, 네 걱정은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내 입장에선 천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이곳으로 돌아오겠지만, 네 입장에선 눈 한번 감았다 뜨니 엄청나게 강해진 황제 폐하가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는 이야기야. 이해했지?”
“이해했습니다. 폐하, 대업을 이루고 돌아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A의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던 검푸른 불길이 사그라든다.
이스의 왕이 죽는 순간에조차 염려했던 A의 위험성이 사라진 셈이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그나저나 황제 폐하는 뭐야?
언니, 내심 왕보다 황제 소리 듣고 싶었어요?
헤어지기 직전, 왕위를 계승한 언니가 의외의 선물 두 가지를 주었다.
***
이틀이 흘렀다.
파티타임의 끝이 머지않았으니, 오늘 밤에는 호텔로 돌아가야 해.
— 멍!
“아으… 시끄러. 라이언, 조용히 좀 해.”
이틀 동안 이런저런 일이 많이 벌어졌다.
언니가 301호를 수습하기 위해 관리국 잔당과 접촉했다던가, 왕의 권한을 발동해 이스의 종족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던가 등의 일 말이다.
공작 2~3개체는 지구에 남아 인류의 수호자 – 이 단어에서 굉장한 위화감을 느꼈다 –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흉측한 외계인들에게 인류의 수호자라는 명분이 먹힐 리는 없지.
대외적으로는 301호에서 벌어진 사태의 방지를 위한 연구 등 핑계를 댔다고 들었어.
요약하자면, 혼란에 빠진 301호를 다시 사람 살만한 세상으로 되돌리려는 조치들이다.
언니는 아직도 걱정이 많은 것 같았지만…
나는 글쎄,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이스의 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외계인은 철수 예정이고, 가장 강한 개체 소수가 남아 혼란을 가라앉힐 예정이다.
아예 별개 문제가 있다면, 지하에서 은근슬쩍 분위기를 살필 달 정도?
얘도 깨어나기까지 수백 년은 남았다고 들었어.
“역시, 이 정도면 됐어.”
언젠가는, 3층의 모든 주박으로부터 해방된 후에는 다시 301호로 돌아올지 않을까?
고향이란 그런 곳이니까.
그때는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뤄야겠지.
먼 미래의 일이며, 벌써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이제 이 루프는 우리 손을 떠났다.
*
가족과의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
부모님이 자연스레 최근 벌어진 혼란에 관한 일반인의 감상을 말했다.
“어휴! 요 며칠은 정말 세상이 갑자기 망하는 줄 알았다.”
“당신도 참, 갑자기 종말론이라도 들은 거야?”
“아니, 생각해 봐. 괴물이 대낮부터 서울 시내에서 사람을 죽여대는데, 관리국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니까? 공포에 질려서 TV를 틀었더니, 방송국부터 반쯤 박살 나서 기괴한 뉴스만 튀어나오고…”
“여보, 그래도 조금 전에 기사 나왔잖아? 슬슬 끝나가는 것 같던데.”
“으음, 관리국 본부에 일시적인 소요가 발생했다라… 진짜인가? 관리국 이놈들 하는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 이놈들이 -”
“여보!”
“아, 아. 음, 미안하구나.”
“…”
“소, 송이야. 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고 -”
“풋! 아빠, 신경 쓰지 마세요.”
두 분은 내가 관리국 요원이라고 생각하신다.
사실,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야.
현실에서도 요원 자격을 얻었었고 301호에서 재건 중인 관리국 v2에서도 보나 마나 요원 직위를 얻을 테니까.
아니지, 나 정도면 요원 정도가 아니지 않아?
내가 301호에 남아서 계속 살면 침묵하는 자 비슷한 존재가 되는 것 아닐까?
그러면인류 최대 권력자 유송이는 무엇을 해야 – 쓸데없는 생각!
“그래도, 우리는 네가 있으니, 안심이구나.”
“정말… 정말…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갑자기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는 부모님.
“참, 두 분 다 왜 자꾸 이러세요?”
부모님의 태도에 약간의 자랑스러움과 상당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른 한편, 두 분의 ‘소시민적 두려움’을 느끼며 씁쓸하기도 했다.
문명을 지탱하던 관리국이 반쯤 무너지며 혼돈체가 횡행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요원으로 각성한 가족만큼 믿을만한 존재는 많지 않겠지.
“그나저나 병원이 폭삭 무너진 것 같은데 이걸 어떻게 할지…”
“당신도 참, 목숨이라도 건졌으면 다행인 줄 알아요. 병원이야 뭐 -”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병원은 최우선 복구 대상에 넣겠다고 했으니까.”
“뭐라고? 일반 병원도 아니고 동물병원이 어떻게 최우선 -”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 복구도 바쁠텐데, 동물병원이 최우선 복구 대상이라는 말에 아빠는 황당함을 느낀 것 같았다.
물론, 아빠는 곧 본인 딸이 요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으흠. 흠. 으흠! 고, 고맙구나.”
“송이야, 괘, 괜찮니? 이렇게 해도, 어 -”
“어허! 여보, 밥이나 마저 먹읍시다.”
…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내가 관리국 직원들에게 무슨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어.
관리국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했을 뿐인데,내가 굳이 그 결정을 취소할 필요는 없지 않아?
“하하! 오늘따라 찌개가 정말 맛있네.”
행복한 하루였다.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 멍!
“조용히 해.”
“저 녀석, 라이언이라 했던가? 행동에 굉장히 두려움이 많더구나.”
“유기견 보호 센터에서 데려와서 그래요. 잘 보살펴 주세요.”
“걱정 말거라.”
*
늦은 밤.
— 스아아…!
기이하게 꿈틀거리는 조각을 만지고 있으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페로가 태어나기 전, 황금알을 보살필 때랑 살짝 비슷해.
무언가가 새로운 자아를 얻은 채 깨어나려고 하고 있다.
다만, 아직은 아니었다.
— 그르르!
공포에 질린 라이언의 울음소리.
그 소리를 들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부모님이 있을 때야 서로 눈치를 봤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고 말이다.
“왜? 무섭니? 너도 이렇게 조각이 될까봐?”
— 그르륵!
“걱정하지 마. 너 따위는 이렇게 만들 가치도 없으니까.”
내 손에서 꿈틀거리는 조각.
겁에 질린 새하얀 사모예드 혈통의 개.
둘 다 언니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첫째, 꿈틀거리는 조각.
거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공작의 파편 중 하나다.
제작 당시엔 언니가 하수인으로 부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비하인드 스토리는 간단해.
며칠 전, 언니는 내가 다양한 관점의 진실한 힘 – 경계면의 이치를 일깨웠음을 알았지.
또한, 그 힘을 나 혼자서는 제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알았어.
내 힘으로는 경계면에 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야.
근본적으로 ‘유송이’라는 인간이 경계면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이 한계는 다양한 관점의 제작자인 아타나시아들조차 극복할 수 없었다.
따라서, 날 경계면으로 보내줄 도우미가 필요해.
날 때부터 경계면에서 태어난 존재들 – 이스의 공작 말이다.
다른 파편들은 현장에서 전부 파괴되었지만, 딱 하나의 조각은 언니의 자비심 덕에 살아남았다.
그 ‘자비심’이 곧 의무가 되어 조각을 구속하였으니, 조각은 곧 새로운 삶을 시작하리라.
그리고 두 번째 선물, 사랑스러운 사모예드.
언니는 이게 딱히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지만…
적어도 내게는 첫 번째 선물만큼이나 기쁜 것이었다.
“이리 오렴.”
— 그르릉…!
공포에 질린 듯, 덜덜 떨면서도 내 말에 순종하는 새하얀 개.
“왜 이리 겁에 질렸어? 내가 또 널 죽일까 봐 그러니?”
— 끼이잉!
“자, 여기 네 사료야.”
*
이른 아침.
꼭두새벽부터 깨어나 방에서 나오니, 거실에 부모님이 계셨다.
“송이야, 벌써 출근하니?”
“…”
“오늘 – 아니, 내일 돌아오진 않는 거지?”
“…”
두 분 다 내가 오늘 먼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계시는 모습.
분명, 전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부모가 자식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에는 독심술 따위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도 부모님도 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말리거나 하진 않으셨다.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날 껴안으셨고,아빠는 고개를 푹 숙였을 뿐이다.
“사랑해, 무사히 돌아오렴.”
머릿속에서 수많은 문장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 사실 전 요원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대단한 존재랍니다! 신기하죠?
301호가 정화되었으니, 어쩌면 파티 타임마다 올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제가 느끼기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곳으로 돌아오겠지만, 엄마·아빠가 느끼기엔 오늘 가서 내일 돌아오는 느낌 아닐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지만요.
소용돌이치는 여러 가지 생각들.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부모님께 전달하기 어려운 정보들이었다.
고심 끝에 나온 말은 지극히 간단했다.
호텔에 오기 전의 나라면 아마 매일 아침 했을 이야기.
“다녀오겠습니다.”
“어, 송이야. 라이언도 데리고 가니?”
“풋! 아니에요. 그냥, 밖에서 잠깐 할 말이 있어서.”
개에게 할 말이 있다는 기이한 이야기.
아빠는 딱히 내 말을 진지하게 여기진 않으시는 것 같았다.
*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멀찍이서 대양그룹에서 보낸 검은 차가 보였다.
혼자 파이오니어 빌딩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는데, 언니는 내가 신경 쓰인 모양이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느끼며 몇 걸음 걷던 중, 자연히 시선을 낮추었다.
— 끼이잉!
둘만 남자 전신을 움츠리며 덜덜 떠는 개.
나를 굉장히 무서워하는 것 같다.
“자꾸 왜 이래? 누가 보면 내가 학대라도 하는 것 같잖니.”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론 더 겁을 주고 싶어서 품속에서 조각을 꺼냈다.
‘라이언’에겐 내가 어떻게 느껴질까?
일족의 수호자를 조각내서 노예로 부리는 악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엄청 무섭긴 한 것 같다.
— 그르륵…!
급기야는 침까지 흘리는 모습.
“와! 이러니까 너, 진짜 개 같아. 비꼬는 게 아니고, 정말 멍멍이 같은 행동이야.”
슬쩍 무릎 꿇으며 ‘라이언’과 시선을 맞췄다.
“사실 나, 네가 진작 죽은 줄 알았어. 네가 살아있다는 말을 언니에게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 끼잉!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먼지처럼 흩어지는 모습까지 확실히 본 건 아니었지. 그땐 시간이 좀 없었거든.”
— 끼잉…!
“다행이야. 네가 살아서 너도 좋고, 나도 좋으니, 모두가 기쁘네.”
이심전심의 권능이 내게 속삭인다.
이 개 – 아니, 혼돈체가 당신을 지극히 두려워하고 있다고.
그 공포와 절망이 날 기쁘게 만들었다.
“너는,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을 섬기게 될 거야.”
— 그륵!
“걱정하지 마. 두 분 다 동물을 사랑하는 분이시니, 개 사료는 잘 나올 거야.”
— 왈!
“집안의 터렛도 신경 쓸 필요 없어. 직원 도움 받아서 조치했으니까. 그러니까… 네게 어울리는 삶을 받아들이렴. 알잖니? 개는 본래 인간의 친구야.”
마지막 희망도 잊지 말자.
“혹시 아니? 언젠가는 왕께서 널 용서하고 벌을 끝내실지도 몰라.”
물론, 이 개는 새로운 왕이 자신을 왜 벌하는지도 모르겠지.
그때쯤, 날 발견한 검은 차가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송이 양 맞으시죠? 타시죠.”
“감사합니다.”
— 탈칵!
나 혼자 차에 타자 기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개를 두고 출발해도 됩니까? 같이 타실 줄 알았는데요. 혹시 차가 더러워지는 문제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
“괜찮아요. 저 개는 제법 똑똑하니, 혼자 집으로 잘 돌아갈 수 있거든요.”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