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24)
괴담 호텔 탈출기 724화(723/794)
724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2)
– 김상현
기초적인 상황 파악을 끝낸 후,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동료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비록 첫 시도는 해결보단 소원의 자각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동료와 최소한의 연락망은 구축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302호가 승엽 군의 방이라는 사실은 진작 밝혀졌다.
현실에서 사용했던 연락처 역시 알아낸 상태다.
– 띠리링!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십시오.
“으음…”
없는 번호라니…
살짝 당황스럽긴 하나, 놀랄 일은 아니다.
어제 회의 도중 깨달은 사실인데, 승엽 군의 호텔에 오기 전 기억은 대단히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필시 본인의 핸드폰 번호를 잘못 기억한 모양이다.
이러면 당장은 연락할 방법이 없지.
우선, 내 일에 집중하자.
재활용 봉투 뒤에 숨겨져 있던 쪽지의 내용을 다시 떠올렸다.
1. 너는 주기적으로 기억을 소거 당하고 있다.
2. 스피커를 끄지 마라. 천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라.
3. 애스턴 가 237번지 403호
쪽지의 위치나 필체를 볼 때 분명 과거의 내가 남긴 쪽지였다.
‘너는 주기적으로 기억을 소거 당하고 있다’라는 1번 항목을 고려하면, 쪽지를 남기고 기억을 잃은 모양이다.
1번부터 생각해 보자.
누가, 어떤 집단이 내 기억을 지우고 있지?
가장 먼저 떠오른 후보는 당연히 관리국이다.
인류 전체를 감시하며 각종 신비를 은닉하는 세상의 지배자들이 아닌가!
한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텔에 오기 전과 달리, 지금의 나는 요원 동료들 덕에 관리국의 일 처리 방식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 소거는 혼돈 재해에 단발성으로 노출된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쉽게 말해, 기억 한 번만 지우면 그 사람을 일상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때 취하는 조치다.
지속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은 혼돈 재해에 지속해서 노출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속해서 혼돈 재해에 노출된 일반인에게 가해지는 처분은 기억 소거가 아니다.
그 정도로 타락하면 기억을 지워도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 관리국의 조치는 말소 혹은 안락사다.
한 줄로 요약하면 간단하다.
일반인에게 ‘지속적인 기억 소거’ 조치가 가해질 일 자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지속적인 기억 소거 조치는 누구에게 가해지는가?
혼돈 재해를 반복적으로 경험하여 타락의 위험이 크지만, 섣불리 죽여서는 곤란한 존재.
자기 자신들이다.
직원 혹은 요원들에게 가해지는 조치다.
“…”
관리국이 주기적으로 내 기억을 지우고 있다면, 이 집에 몰래카메라나 녹음기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언뜻 주변을 살피기엔 보이지 않았으나 상대 역시 이런 분야의 프로이니 방심할 수 없는 일.
이제부터는 항상 누군가 날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전 승엽 군과 연락에 실패한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연락에 성공했다면 승엽 군까지 관리국의 의심을 샀을 테니 말이다.
다음으로 떠올린 것은 2번 항목.
천사의 목소리.
처음엔 느끼지 못했지만, 쪽지를 보고 의식하려 애쓰니 어렴풋이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
직감적으로 평범한 인간은 듣기 어려운 소리임을 깨달았다.
다른 동료들처럼, 나 역시 ‘영혼의 격’이 오르며 일반인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시작한 것.
미묘한 성취감을 느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물론, 성취감과 별개로 더 들어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볼륨을 더 올리자.
– Dust in the wind ~
다행히도 강한 소음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3번 항목.
애스턴 가 237번지 403호.
이 주소로 가야 하나?
위치 자체는 차로 10분이면 가는 거리 같은데…
딱히 다른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
… 원하는 …
집 밖으로 나온 후에도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방어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답은 나와 있었다.
고통스러울 정도의 소음 말이다.
— Same old song ~ Just a drop of water in an endless sea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차에는 스피커를 틀었다.
“고막이 상하겠는데.”
이러다 청력이 떨어질까봐 걱정스러웠다.
물론, 설령 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가더라도 탈출만 하면 호텔이 고쳐줄테니 큰 문제는 아니다.
— 부우웅!
5분 정도 도로를 달리던 중, 신호에 걸려서 멈춰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천사의 목소리’를 들으면 무슨 증상이 생기는 거지?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으로 방어 중이긴 하지만, 천사의 목소리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
애초에 음악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었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잘 때는 스피커를 꺼두었다는 소리다.
깨어난 후로도 자그마한 목소리는 쉼 없이 들려왔고, 이젠 목소리의 내용마저도 파악했다.
네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
이 문구가 파편화되어 쉼 없이 들려오고 있다.
요컨대, 나는 나름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천사의 목소리’라는 혼돈 재해에 제법 노출당한 상태.
딱히 별다른 증상이 없다.
“…”
이미 미쳐서 이상 행동 중인데,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미러에 비친 내 모습을 살폈다.
나이는 50대 초반, 동양계 미국인.
상의는 평이한 와이셔츠고 바지는 적당히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핸드폰은 미국의 사과 사 제품 같고, 자동차는 일본의 유명 제품 –
설마, 이 상식조차 이미 뒤틀린 상태인가?
사과 사 핸드폰은 이미 대세에서 밀려났을지도 모른다.
일본의 유명 제품이라고 믿는 내 차는 알고 보면 중국의 짝퉁일 수도…
내 외견은 어떻지?
실제로는 내 외모 정도면 20대 아닐까?
실제로는 차를 운전할 때는 양복을 입어야 하나?
혹은, 팬티만 입고 운전하는 게 상식 아닐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지.”
이처럼, 온갖 잡념에 시달리던 때.
— 툭!
누군가 차 창문을 건드렸다.
창밖을 보니 30대 후반 정도의 백인 남성이 보였는데, 살짝 화가 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 드륵!
“무슨 일입니까?”
“이보쇼! 무슨 놈의 음악을 이렇게 크게 틉니까? 뒤에서 따라가려니 귀가 아플 정도라고!”
아하, 음악을 너무 크게 틀어서 불쾌했던 모양이다.
민폐인 건 사실이니, 순순히 사과하는 게 좋겠지.
“미안합니다. 볼륨을 조금 낮추지요.”
사과하며 볼륨 버튼을 돌리는 순간, 더 격한 반응이 돌아왔다.
“뭐? 이 새끼가 뭐라고? ‘조금’ 낮춰?”
“…”
“꺼! 끄라고!”
솔직히 내 귀에도 시끄럽긴 한데, 이렇게까지 소리칠 일인가?
내가 저 남자의 위층에서 거주하며 3개월간 층간 소음을 발생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침, 신호도 바뀌었다.
“소리 낮췄습니다. 신호도 바뀌었으니, 갈 길 갑시다. 계속 내 뒤를 따라올 것도 아니실 테니.”
이쯤 하고 앞을 보며 출발했다.
아니, 출발하려고 했다.
— 철컥!
?
너무 – 너무나 익숙한 소리.
위대한 조국이 자랑하는 자유의 상징이요, 전 세계가 잘 아는 미국의 전통문화.
더블 배럴 샷건의 작동음!
“무슨 -”
다행히도, 몸은 입과 달리 신속하게 움직였다.
— 쿵!
“으억!”
신속하게 움직인 손이 차 문을 열었고, 상대는 갑자기 열린 차 문에 부딪혀 휘청였다.
그 사이, 나는 발포 직전이던 샷건 총구를 후려쳐 떨어트리며 상대의 등 쪽으로 붙었다.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상대의 팔을 뒤로 꺾고, 무릎으로 상대의 상체를 짓누른다.
제압하기까진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 일은 호텔에 오기 전에도 능히 할 수 있었지.
제압과 별개로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앞 차가 음악을 크게 틀었다는 이유로 샷건을 쏘려 한 건가?
“으윽! 이, 개, 개자식! 날 놓지 못해! 놓으라고!”
“…”
소음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실제로 종종 발생하는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런 경우는 보통 같은 아파트 위아래 층에 살면서 몇 달간 갈등이 누적된 결과다.
지금처럼같은 차선에서 2, 3분 움직이며 과한 소음을 들었다고 사람을 죽인 사례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개새끼! 소, 소리 끄라고 했잖아! 내 말이 말처럼 안 들리냐? 벼락 맞아 죽을 놈이 -”
상대는 내게 짓눌리면서도 극도로 흥분해서 마구잡이로 욕설을 뱉고 있다.
이것 역시 흔치 않은 일이다.
특수부대 경력자로서 말하건대, 일반인은 지금처럼 제압당하면 금세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다.
취객의 9할이 경찰 목소리만 들어도 얌전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상황을 보라.
핏발이 선 눈, 전신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
아예 감정 통제를 못 하는 것 같다.
일단, 상황을 정리하자.
“실례.”
— 따각!
가볍게 목을 졸라 일시적으로 기절시킨 후, 다시 차에 탔다.
“…”
차에 타고 보니 새삼 느껴지는 사실.
정신 나간 운전자가 사람을 죽이려다가 제압당해 바닥을 뒹구는 상황이 아닌가?
제법 요란한 일인데, 누구 하나 관심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마치, 이 정도의 일은 흔한 일상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위대한 조국이 내전 중인 아프리카 수준으로 추락한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
‘천사의 목소리’가 어떤 혼돈 재해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출발하자.”
약 7분 후, 애스턴 가 237번지에 도착했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가정집과 다르지 않은 모습.
벨을 눌렀다.
— 딩동!
반응이 없어서 한 번 더 누르려던 차, 아까 전의 일이 떠오르며 손이 멈췄다.
“…”
설마 벨 두 번 눌렀다고 샷건을 들고나오지는…
아니지, 방심하면 곤란하다. 이 세계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어.
슬쩍, 대응할 수 있도록 문 옆으로 몸을 옮겼다.
— 딩동! 딩동!
“…”
강제로 문을 열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Johnny! 당신인가요?”
*
– 박승엽
– 승엽아!
“…”
– 승엽아! 학교 가야지!
“… 아.”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각성.
이후의 일은 언제나 같은 평범한 아침이었다.
대충 씻고, 무슨 세수를 5초 만에 끝내냐고 잔소리 듣고.
대충 옷 갈아입고, 교복 상태가 왜 이러냐고 잔소리 듣고.
대충 하품하고, 어제도 밤새 게임을 했냐고 한 소리 듣고 –
“… 뭐, 뭔가 내 인생이 이상해!”
어떻게 1분에 한 번씩 엄마한테 혼날 수가 있어?
이거 뭔가 혼돈 재해 아님?
“어, 엄마! 이 상황은 분명 사악한 -”
“아이참! 어제도 정말 게임 한 거니? 아이고… 됐다, 됐어. 이러다 지각하겠다.”
“제 말은 -”
“빨리 출발이나 하라니까!”
엄마가 하도 출발하라고 재촉해서 뭐라고 말할 틈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실제로 지각하겠다 싶은 시간이기도 했고.
“책은 다 챙겼지?”
“예?”
“예는 무슨 예! 저번처럼 국사책 빼먹었다고 점심시간에 몰래 집으로 오면 안 돼! 알겠지?”
“… 네.”
“그리고 -”
“저, 저 진짜 출발할게요.”
더 이상 잔소리를 들으면 내 존엄성이 무너질 것 같았다.
이 상황을 위에서 동료들이 보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
집에서 멀어진 후, 내 발걸음은 다시 느려졌다.
엄마야 내가 지각할까봐 엄청나게 걱정하셨지만…
솔직히, 지각하든 말든 무슨 상관임?
교사 따위가 나한테 뭘 가르칠 수 있어?
하! 내가 개념 없는 선생님들에게 가르쳐야 마땅하다고!
지각? 어쩔 건데? 뭐? 때리게? 내가 맞을까 봐?
하! 나는 천하제일 고수, 이자성의 –
“이, 이게 아니지!”
히익!
생각해 보니깐 지금은 천하제일 고수의 제자가 아니라 중학생 박승엽처럼 행동해야 하지 않아?
과거의 삶을 재현해야 최초의 소원을 자각할 수 있다고 했으니깐.
“… 아닌가? 상관없나?”
더 생각해 보니, 이번엔 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난 원래 중학생일 때도 지각 엄청나게 자주 했어.
애초에 매일 밤 소환사의 협곡에서 위대한 투쟁을 벌였는데 제시간에 일어났을 리가 없잖아?
“하, 이거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던 대로 하자.
살던 대로 살자.
그래서, 천천히 걸어가며 핸드폰을 켜서 롤 통계 사이트부터 접속했다.
“음… 뭐야? 패치 버전이 내가 아는 거랑 좀 다르네? 아, 여기선 랙스가 티어가 높고 – 뭐야? 야스오 티어 왜 이럼?”
한참 동안 협곡의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던 중,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함께 들어온 동료, 의사 선생님을 한번 검색해 볼까?
여러 동료는 현실에선 딱히 유명하지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달랐어.
특수부대 출신이면서 의사이자 우주 비행사!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이런 사람이 흔할 리가 없잖아?
과연, 검색해 보니 금방 나왔다.
“이야! 선생님 되게 유명하셨네요. 이름은 조니 킴, 나이는 37세, 이민자 2세대로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두어 한인사회에 도전 의식을 고취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