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25)
괴담 호텔 탈출기 725화(724/794)
725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3)
– 미로
지금은 302호의 첫 번째 시도.
목표는 소원의 당사자인 의사 쌤과 멍청이 승엽이가 과거의 기억을 자각하는 것.
따라서 나는 두 사람의 일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해.
물론, 이 말이 나보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놀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 타닥! 타닥!
예전에 아리가 해준 이야기.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루프에서나 인터넷에 일종의 위키 사이트를 만든다고 한다.
그런 사이트에서 전문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얻기는 어렵지만, 일반 상식을 얻는 용도로는 유용하다고 해.
덕분에 몇 시간째 키보드를 두드리며 검색 삼매경에 빠졌다.
“하아암…!”
꽤 많은 정보를 얻었고,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풀렸다.
— 스륵!
살짝 커튼을 열어 어느새 어두워진 바깥 하늘을 본다.
새하얗게 빛나는 달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들어왔다.
…
의사 쌤은 달을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 같은 존재로 여겼어.
반면, 승엽이는 그냥 달은 하늘에 뜬 지구의 위성 정도로 여겼지.
의사 쌤과 승엽이는 같은 루프 출신인데, 달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이유가 뭘까?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세상의 상식이 변화한 것이다.
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불과 10여 년 전까지는 달을 맨눈으로 봐선 안 되었다고 한다.
맨눈으로 태양을 보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졌고, 아이들은 아예 밤하늘을 보지 않도록 교육받았다고.
당시, 관리국은 달을 알파 등급 혼돈 재해라고 발표했다.
…
어느 날, 달의 광기가 해소되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관리국이 모종의 수를 썼겠거니 추측할 뿐이다.
당연하지만, 관리국의 비밀스러운 행사는 인터넷을 몇 분 검색한다고 알아낼 수 없었다.
밤하늘의 공포에서 인류가 해방된 지 12년이 흐른 현재.
새로운 세대는 달에 대한 공포를 잊었고, 그저 하늘에 뜬 하얀 돌 정도로 여긴다.
“이 정도면 많이 알아낸 거 같아.”
302호에 들어오기 전, 아리는 적당히 정보를 알아냈다 싶으면 본인을 소환하라고 했지.
본인을 부르라고 한 이유는 나도 알아.
내가 정보를 모으고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할 줄 아는 거야!
은근히 날 무시하는 아리에게 짜증도 났지만…
“…”
지금은 아리가 보고 싶었다.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 철컥!
곧,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되게 예쁘고, 나랑 꼭 닮은 소녀가 나타났다.
“…”
약 2초, 아리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 걸린 시간을 말한다.
“아, 위기 상황은 아니구나. 뭔가 물어보려고?”
“응. 여기, 지금까지 모은 정보들이야! 이건 기사들이고, 이건 네가 확인하라고 한 -”
말하기도 전에 아리가 페이지를 휘리릭 넘겼다.
“승엽이랑 상현이는 찾았어?”
“어, 의사 쌤은 꽤 유명했어.”
“유명할 만한 경력이지.”
“여기, 기사 보이지?”
“… 12년 전 기사네.”
“응?”
마우스를 타닥거리던 아리는 3초 만에 내가 놓친 사실을 알아냈다.
“최근 기사가 없어. 특수부대, 의사, 우주 비행사. 이 정도 경력이면 미국에서도 제법 희소한 사람이니, 근황 뉴스가 있을 법도 한데.”
“어 -”
“미국에 있으니 연락하기도 어렵네. 좋아, 상현이는 이쯤 하고 승엽이는?”
“그게, 승엽이는 뭔가 이상해.”
— 타닥!
“빌라에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장소에 이미 아파트가 있네. 재건축이 끝났어. 그러면 얘는 어디 사는 거지?”
“학교도… 이거 봐.”
“학교? 허! 심지어 학교는 관리국 통제 구역이네?”
“응. 이상하지?”
“거주지는 이미 없다. 다니던 학교는 관리국 통제 구역이다…”
“어떻게 해? 내일 학교에 몰래 잠입해 볼까?”
“네가?”
“… 지금 살짝 기분 나쁠 뻔했어.”
그 말에 아리가 피식 웃으며 내 뺨을 톡톡 건드렸다.
아무 의미 없는 동작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농담이야. 정황상 둘 다 특이한 상황 같긴 한데, 네가 접근하거나 할 필요는 없어. 계획대로 첫 시도는 그냥 지켜보는 거야.”
“알겠어. 참, 이거, 이것도 봐.”
달과 관련한 내용이 적힌 페이지를 보여줬다.
곧, 아리는 간단히 요약했다.
“달에 대한 두 사람의 기억이 달라서 희한했는데, 둘 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었네.”
“맞아! 의사 쌤은 달을 두려워하던 과거의 상식을 말한 거고, 승엽이는 최근의 상식을 말한 거야.”
순간, 아리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내 말에서 어딘가 이상한 부분을 느낀 것 같았다.
“… 잠깐만.”
— 스르륵!
아까전의 나처럼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는 아리.
“정말이네. 정말 그냥 하얗게 빛나는 지구의 위성이야. 그 어떤 압박감도 없어.”
“신기하지?”
“신기하다 못해 황당한데.”
“황당?”
“…”
약 10초의 침묵이 흐른 후, 아리가 나 보라는 듯 메모장에 타자를 쳤다.
“이건, 달을 기준으로 인류사의 기점을 나눠본 거야.”
1. 태고 문명 – 에이디아, 왕자
2. 왕자가 관리국에 유폐된 시대 – 한가인(알레프)
3. 해방된 왕자가 달을 타락, 합일하며 힘을 키우던 시대 – 박승엽, 김상현
4. 알 수 없는 조화로 왕자가 지하에 갇힌 시대 – 이은솔, 유송이, 차진철, 엘레나
5. 왕자 각성 직전, 종말의 시대 – 김아리, 김묵성
6. 현재 : 1~5의 문제 해소. 이후 정보는 불명.
여섯 개의 시대와 각 시대 옆에 적힌 동료들의 이름.
“옆에 이름은?”
“해당 루프에서 왔다고 적은 거야.”
호텔 파티만 따지면, 총 아홉 명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내 이름은 없네.”
“너는 정확히 어디인지 확신할 수 없어. 어쨌든, 302호 시점은 3이야.”
“응, 이해했어.”
“관리국, 교황청, 인류 보호국, 혼돈통제성 – 어떤 세력이든 간에, 그 시대의 인류를 통솔하는 조직은 언제나 달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
“그랬겠지?”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
“질문을 바꿔보자. 왜 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힘들었을까?”
“엄청나게 강하니까?”
“잊지 마. 달이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강했던 게 아니야.”
1번 시점의 왕자는 회귀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2번 시점의 왕자는 알레프가 해방하기 전까지 관리국에 유폐된 상태였다. 즉, 관리국이 능히 통제할 수 있었다.
왕자, 달이 처음부터 신처럼 강했던 게 아니라는 이야기.
“달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강해졌어. 다시 말해, 과거로 갈수록 그리 강하지 않아. 지금이 3번이라면, 현시점의 달은 어쩌면…”
“어쩌면?”
“왕자가 지상에 내려오면, 관리국이 토벌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내려올 리가 없겠지만 말이야.”
이쯤에서 아리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다.
지금 시대의 달은 머나먼 미래, 5번 시대의 달보다 훨씬 약하다.
따라서, 이 시대의 관리국이 달을 처치할 수 없는 건 힘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주에 있어서 처치를 못 하는구나?”
“그거야. 우주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왕자의 방패야. 안타깝지만, 인류는 밤하늘에 로켓 하나 쏘는 것도 무지하게 힘들어하니까.”
“으음…”
“이쯤에서 내 생각을 요약해 볼게.”
지금껏 파악한 정보를 토대로 아리가 세운 가설.
관점에 따라선, 302호의 큰 틀이자 세계관.
“이 시대는, 아직 관리국이 달을 상대할 수 있다고 믿는 시기. 그래서 해결하기 위해 뭔가 했어. 달이 우주에 있으니, 우주에서 뭔가 했겠지. 이 과정에 아마 상현이가 얽혀있을 거야.”
“…”
“시도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성공한 것 같아. 달의 광기가 사라지며 세상이 평온해졌으니까. 다만…”
“다만?”
아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302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미래인이겠지. 미래에서 온 우리는 답을 알아. 파멸의 시대가 올 때까지 달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어.”
4번에서 6번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
3번에서 상황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은 어떻게든 억눌렀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을 거야. 그게 아마도…”
“302호가 망하는 원인?”
“그렇지.”
“음, 몬가 알 것 같아. 의사쌤이 어떤 일에 엮였는지도 알 듯 말 듯 하고… 그런데, 그러면 승엽이는 어떤 상태일까?”
좋은 지적이라는 듯, 아리가 가볍게 끄덕였다.
“그게 지금부터 네가 알아내야 할 포인트지.”
“…”
“잘 해봐. 이제, 내 시간도 아끼는 게 좋을 테니 돌려보내.”
“알았어.”
시곗바늘이 돌아가며 정오의 아리가 사라지기 직전, 아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나저나, 범죄율 지표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높네. 무슨 내전 중인 국가도 아니고. 미로, 밖에 다닐 때는 조심해.”
*
– 김상현
애스턴 가 237번지 403호에 있던 사람은 ‘제니퍼’라는 이름의 아시안계 중년 여성이었다.
“Johnny! 몇 주째 기다리고 있었는데, 너무 늦은 것 아니에요?”
과도할 정도의 친근함을 드러내며 날 반기는 태도.
이후, 15분 정도 이어진 대화 속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는 아무리 봐도 그냥 일반인이다.
관리국 직원, 나사 동료 등 온갖 가설을 떠올렸지만, 그냥 재산이 좀 있는 일반인에 불과했다.
상대가 숙련된 관리국 요원이라 내 눈을 속이고 있을 가능성?
0은 아니겠지만, 나는 나 역시 평범한 인간을 많이 벗어났음을 안다.
이래 봬도 203호에서 세자릿수의 세월 동안 왕 노릇 하지 않았는가?
상대는 일반인이다.
몇 마디 들어보면, 우연히 텍사스 홀덤 펍에서 만나서 나와 친해진 것 같았다.
다만, 집안 상태를 보니 불안감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제니퍼, 벽에… 음, 총이 꽤 여럿 걸려 있군요.”
“알잖아요? 요즘 세상은 정말로 이상해요… 밤만 되면 미친 사람으로 가득하다니까요? 남자들은 특히 – 아, 조니 당신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특이한 향의 차를 즐기시는군요. 안정 성분이 다량 들어간 것 같은데. 저 약도 그렇고.”
“어머, 그런 걸 그냥 보면 알아요?”
“나름대로 지식이 있다보니.”
“하긴, 조니는 의사 면허도 있다고 들었어요. 어쨌든, 요새는 다들 그렇죠. 화나거나 우울해지면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서…”
“그렇습니까?”
이쯤에서 떠오른 생각.
애초에 상대가 특별한 인간일 리가 없다.
관리국은 주기적으로 내 기억을 지우고 있으며, 당연히 나에 대해 감시도 하고 있으리라.
외출 등 통제가 없는 걸 보면 느슨한 감시인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관리국 직원이나 나사에서 근무하던 동료와 개인적으로 접촉한다?
접촉을 차단해야 정상이다.
따라서 제니퍼는 일반인이 맞다.
일반인이 맞으니까, 관리국도 접촉을 통제하지 않는 것.
아마도, ‘과거의 나’ 역시 이 점을 노리고 제니퍼를 일종의 도구로 삼았다.
따라서 제니퍼라는 사람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제니퍼, 혹시 제가 전에 맡긴 물건 없습니까?”
“풋! 언제 그 말 하나 했어요. 이제 떠올렸군요?”
… 내가 이 여자에게 맡긴 물건이 핵심이구나.
곧, 제니퍼가 웃으면서 일어서 서랍장으로 다가갔다.
“3주쯤 전이었나? 그날따라 조니, 당신이 펍에서 포커 치다가 정신없이 패배했죠.”
“…”
“어머, 모르는 체할 셈이에요? 제게 500달러나 빌려놓고선.”
“실례했습니다.”
“실례까지야! 500달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이 펍에서 내게 베푼 호의를 생각하면…”
듣기로는 포커 치다가 흥분한 사람들에게 위기에 처한 제니퍼를 내가 구해줬다는 모양이다.
물론,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조니 당신이 미안하다며 오래된 카메라 하나를 줬죠. 나중에 500달러를 가져와서 바꿔가겠다나?”
“… 그날따라 내가 좀 취했던 모양입니다.”
“그런 날도 있는 법이죠.”
곧, 제니퍼가 서랍장에서 디지털카메라 하나를 꺼내왔다.
이 시점에서 나는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달았다.
“…”
현금 500달러가 없다.
이런 상황인 줄 예상치 못했기에 카드만 챙겨왔기 때문이다.
지갑을 뒤적이는 날 보며 상황을 깨달았는지, 제니퍼가 가볍게 웃었다.
“돈은 줄 필요 없어요. 500달러 정도야… 카메라는 그냥 가져가세요. 보니까 소중한 카메라 같던데. 아, 열어보진 않았답니다.”
카메라를 받고 돌아가려던 중, 제니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요새는 바쁜가 보죠? 펍에서 당신을 본 적이 없어서.”
“…”
“다음에 메르시카 펍에서 봐요!”
헤어지기 직전, 한 가지 슬픈 사실을 깨달았다.
이 여인은…
아무래도 날 좋아하는 것 같다.
과거의 나는 여기까지 알아챘기에 제니퍼에게 카메라를 맡겼다.
일반인이라 관리국이 감시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500달러 대신 맡긴 카메라를 전당포에 팔아치우거나 하지 않을 테니까.
언젠가 내가 돌아와 카메라를 가져가길 기대할 테고, 가져가지 않으면 카메라를 핑계로 본인이 찾아와서라도 날 만나려 할 테니까.
그러므로, 어떻게든 내 손에 다시 카메라를 쥐어줄 사람이니까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미안합니다.”
“어머, 아니에요.”
뒷말은 삼켰다.
나는 이미 결혼했고, 자식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
카메라를 열자 세 장의 사진이 보였다.
사진 뒷면에는 과거의 내가 적은 빼곡한 글씨가 적혀있었는데, 나사에서 일하던 시절에 적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상한 환청을 들었다.
‘…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늑대를 처치하기 위해 호랑이를 들이는 격 아닙니까? 일이 잘 안 풀리면, 대책은 있습니까? …’
‘… 조니 군, 물론이네. 우리는 항상 대책이 있지.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 않는다면? …’
‘… 순결한 이들은 멋진 신세계에서 살아갈걸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