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27)
괴담 호텔 탈출기 727화(726/794)
727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5)
– 김상현
첫 번째 환영이 끝난 지 약 1시간 30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두 번째 사진, 빛나는 샛별 호 중앙의 제단이 기이한 빛을 뿜어내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보았지만…
추가적인 기억은 얻을 수 없었다.
“기억을 자극하기 위한 트리거가 필요한 건가?”
천천히 사진을 만지작거리며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모은 정보를 정리하고, 머릿속에 잠들어 있는 기억을 자극하기 위함이다.
복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포인트도 있었으나 이해하기 어려운 포인트도 있었다.
가장 이상한 건 관리국의 판단이다.
“아무리 봐도 늑대를 몰아내려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격인데 말이지…”
달을 몰아내기 위해 위대한 자를 끌어들였다가 종말의 위기에 처한 302호의 상황.
관리국 선각자가 내 앞에 나타나면 묻고 싶었다.
이게 말이 되는 판단이냐고 말이다.
늑대를 몰아내려다 호랑이에게 먹히는 뻔한 구도 아닌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호텔에 오기 전, 혼돈의 영역에 무지하던 과거의 나조차도 관리국 계획을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지.
‘여러분의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군요. 늑대를 처치하기 위해 호랑이를 들이는 격 아닙니까?’
일반인도 내릴 수 있는 판단을 관리국이 내리지 못했을까?
아직 내가 모르는 정보가 더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았을 때.
— 파아앗!
다시금 환영이 시작되었다.
‘관리국이 오판한 이유’에 대한 고찰이 두 번째 사진의 트리거였구나!
*
– 우주, 빛나는 샛별 호
“조니, 조금 전 항법 시스템에서 ERR – 387이 나오면서 -”
“387번 에러? 으음, 중요한 문제군요. 곧 갑니다. 잠깐만 기다리시길.”
‘나는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가?’
지구에서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다.
누군가는 텍사스, 누군가는 뉴욕, 누군가는 알래스카에 있다고 답하겠지.
우리가 위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크게 보면 세계 지도나 GPS가 있고, 작게 보면 눈앞의 도로나 건물마다 이름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즉, 문명의 이기 덕에 쉽게 답할 수 있는 것.
장소가 우주로 바뀌면 상황은 전혀 달라진다.
우주선은 통상적인 GPS 위성의 고도인 20,220km보다 훨씬 위에 있기에 위치 정보를 수신할 수 없다.
대신 심우주 안테나의 도움을 받곤 하는데, 안테나 역시 지구에 있는 시설이다.
따라서 우주선이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부정확하다.
약 20년 전부터는 우주의 등대라 불리는 특수한 중성자별, 펄서가 내뿜는 전자기파를 통해 우주선의 위치를 확인하는 기술이 만들어진 상태.
이를 펄서 내비게이션이라 하는데, 이것으로도 우주선의 위치를 정밀하게 확정하기엔 한계가 있다.
이처럼, 우주선이 ‘내가 어디 있다’를 확정하는 일은 정말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
빛나는 샛별 호는 대략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위치 정보를 획득한 후, 세 가지 정보를 교차 검증하여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식으로 동작한다.
종종, 세 가지 방식이 각기 다른 좌표를 찾아낼 때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스마트폰은 내가 텍사스에 있다고 하는데 눈앞에는 중국어 간판이 보이고 옆 사람은 이곳이 영국 차이나타운이라고 알려주는 상황이다.
어떤 좌표를 믿어야 하는가?
확률적으로 더 정확한 답은 있다.
하지만, 결국 ‘이게 답이다’라고 결정하는 권한은 나에게 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내가, 무려 요원을 밀어내고 빛나는 샛별 호에 탑승한 것이다.
“됐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군요.”
긴장한 표정을 짓던 아스테어가 질문했다.
“조니, 된 거야? 나도 대충 무슨 문제인지는 아는데… 그, 우주선이 위치를 헷갈리는 거 맞지?”
“그 정도 이해하셨으면, 반쯤 우주비행사가 되셨군요.”
“고마워. 그런데, 어, 네가 우주선에 펄서 네비게이션 좌표를 따르라고 했잖아?”
“그렇지요.”
“저, 정확해?”
“95.2491% 확률로 정확합니다.”
반대편의 데이비드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 4.7509% 확률로 틀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4.7509% 확률로 계획은 실패하고, 우리는 우주의 미아가 되겠군요.”
잠시 일대에 침묵이 흘렀다.
침묵을 깨트린 아스테어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조니, 고마워.”
“무엇을 말입니까?”
“… 누군가는 반드시 던져야 하는 동전을, 네가 던져줘서 고마워.”
다행히도, 우리가 4.7509% 확률로 우주의 미아가 되는 일은 없었다.
…
이처럼, 빛나는 샛별 호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 목적지로 나아갔다.
“여러분, 항법 시스템에 따르면 정확히 32시간 13분 후에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이야~ 이제 이 지긋지긋한 우주여행도 끝인가!”
“데이비드, 우주여행이 지겹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솔직히 신기하지 않아?”
“신기하긴 했지. 처음에는!”
“하하, 데이비드 마음도 이해가 가. 엿같은 게 좀 많아야지! 무엇보다 음식. 이게 대체 뭐야? 이런 걸 사람 먹으라고 만든 거야?”
이 시점의 나는 요원들이 보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음을 알고 있었다.
요원들은 문자 그대로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혼돈의 베테랑이었지.
이런 요원들조차 ‘우주전’은 겪어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았다.
“요원 여러분도 우주에 오는 일은 드문 모양이군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조니 당신에게 훈련받은 거야.”
“몰랐습니다.”
“그래? 하긴 넌 원래 일반인이었으니까… 쉽게 생각해. 대부분의 혼돈체, 혼돈 재해는 지구에 있어.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우주에 왜 나타나겠어?”
“일리 있군요.”
“으음, 브라이언의 말은 걸러들어. 관측에 따르면, 우주에서도 혼돈 재해는 발생해. 다만, 우리가 신경 쓰지 않을 뿐이지.”
“그 말도 일리 있군요. 어느 쪽이든, 요지는 사람이 우주에 살지 않기 때문이니.”
익숙지 않은 우주의 환경은 천하의 요원들조차 고통스럽게 했다.
다른 한편, 순탄치 않은 여정은 우주선 승무원들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했지.
그러니까, 여정의 말미에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목적지가 다가오니까 하는 말입니다만…”
천천히 운을 떼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여러분께 한 가지만 질문할 수 있겠습니까?”
심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요원들은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곧, 아스테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말해봐.”
“우주선이 출발하기 전, 크롬웰 님께 계획의 골자에 대해 들었습니다. 위대한 자와 접촉해 달을 무너트린다는 계획이지요?”
“그렇지.”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아스테어가 빙그레 웃었다.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늑대를 처치하지 못하는 우리가 호랑이를 통제할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아하, 달도 처리하지 못하는 주제에, 달을 멸할 수 있는 위대한 자는 어떻게 통제하냐고?”
“정확합니다.”
처음 계획을 들었을 때부터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데도 따라온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바로 깨달을 정도의 간단한 의문을 관리국이 간과할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데이비드가 살짝 웃으며 답했다.
“조니, 너도 ‘멋진 신세계’에 대해 봤잖아. 대책이 다 있다니까?”
“… 그게 어떻게 대책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살면서 그렇게 끔찍한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끔찍하다? 그건, 네가 멋진 신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어렴풋이 스쳐 가는 새벽의 기억.
과학도마법도 아니다.
둘 모두이자 끔찍한 혼종이다.
과학과 마법이 음울한 외양간에서 교접한 끝에 태어난 참혹한 사생아.
이 정도가 ‘멋진 신세계’에 대한 내 감상이었다.
…
이게 관리국이 내린 판단 근거의 전부일 리가 없다.
분명, 뭔가가 더 있겠지.
그 뭔가를 외부인인 나에게는 알려주지 않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알려주지 않을까?
“뭔가 더 있다고 봅니다. 들을 수 있겠습니까?”
브라이언이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
“조니, 거기까진 -”
— 탁!
탁자를 두드리는 아스테어.
브라이언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아스테어는 요원들 사이의 리더에 가까웠다.
건너건너 듣기로는,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아스테어는 선각자가 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또한 아스테어는내게 가장 호의적인 요원이기도 했다.
“괜찮아. 그도 알 건 알아야지.”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는 아스테어의 설명.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첫째, 중립은 강자의 권리야. 약자가 말하는 중립은 호소에 불과하지.”
“그 말은…”
“인류가 위대한 자와 거리를 둔 채 중립을 유지한다고? 누구 맘대로? 그걸 우리가 결정할 수 있어?”
“…”
“너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손짓 한 번으로 대륙을 가라앉히는 터무니없는 존재들이 있어.”
손짓 한 번으로 대륙을 가라앉히는 신에 준하는 존재.
너무 아득한 이야기라 도리어 와닿지 않았다.
“이런 마신들 상대로 인류가 거리를 유지한다는 소리야말로 비현실적이야. 우리가 거리를 벌리려 해도, 그쪽에서 우리를 잡아먹으러 와.”
위대한 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것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거리를 벌리려 해도 상대가 오기 때문이다.
“총 52번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며 깨달았어. 우리에게는 -”
이게 무슨 소리지?
“아스테어!”
“괜찮다고 했잖아. 모르겠어? 이번 여정이 끝나면 조니도 ‘우리’의 일원이 될 거야.”
“그렇지만 -”
“아니, 데이비드. 나도 아스테어의 말이 옳다고 본다.”
순간, 나는 요원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52번의 시작과 끝?
여정이 끝나면 나도 요원이 될 것 같다?
아스테어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수호자가 필요해.”
“수호자… 말입니까?”
“중립은 허상이야. 우스갯소리고, 망상이지. 우리는 위대한 자의 도움을 받아야 해.”
중간중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큰 틀에선 이해했다.
‘52번의 시작과 끝’을 겪은 요원과 관리국이 내린 결론.
중립은 허상이며, 인간의 힘만으로는 심연의 악마들을 막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를 지켜줄 존재를 찾아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의문.
그 수호자는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인지 대충은 이해했습니다만, 그 수호자는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겁니까?”
“과거의 역사.”
“역사?”
“여명의 아들은 최소 23번의 역사 속에서 인류를 가호했다. 개입에 한계가 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했지만, 사람의 운명이 도탄에 빠지는 일을 막아주었다.”
23번의 역사 속에서 인류를 수호한 자.
“또한, 그는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천상에서 떨어졌다.”
“예?”
그때, 나는 주변의 요원들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반응을 보았다.
더없이 공손하고.
더 없이 공경하며.
더 없이 숭상하는 태도.
“여명의 아들은 인류를 위해 천상에서 내려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믿을 수 있다.”
만일 요원들에게 신앙이 있다면, 신의 이름은 ‘여명의 아들’인 것 같았다.
.
..
…
— 파아앗!
*
다시, 차에서 정신을 차렸다.
두 번째 기억은 우주선이 ‘타락한 샛별’과 만나러 가는 과정의 기억이었군.
“…”
달을 막기 위해 위대한 자를 불러낸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계획.
관리국이 대체 뭘 믿고 이런 일을 벌였나 했는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302호의 관리국은 혼돈을 상대로 중립을 유지하는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선악을 떠나서, 인간에게 중립을 유지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술자리에서 아리 양에게 들었던 관리국의 계파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파괴 계파.
혼돈체는 절멸 대상이며, 착한 혼돈체는 죽은 혼돈체 뿐이다.
격리 계파.
파괴 계파는 망상적 극단론자에 불과하다.
인류의 힘에 한계가 있는 이상, 모든 혼돈체를 적대하는 것은 자살일 뿐이다.
따라서 사람과 혼돈의 영역을 분리해야 한다.
통제 계파.
구시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라.
혼돈과 사람의 영역을 무슨 기준으로 구분하는가?
마법이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과학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연구의 범주를 좁히지 말라.
사람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
어느 계파가 주도권을 잡는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들었다.
인류에게 우호적인 위대한 자를 끌어들일 정도면, 격리 계파 중 급진적인 집단 혹은 통제 계파가 관리국 내 주도권을 잡은 게 아닐까?
…
그런데, 멋진 신세계가 뭐지?
과거의 나는 실체를 어렴풋이 확인한 것 같은데, 무엇을 봤길래 그토록 끔찍하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둘째, 타락한 샛별은 인류에게 우호적인 존재다.
이에 대한 부연설명 차원에서 나온 요원 아스테어의 마지막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명의 아들은 인류를 위해 천상에서 떨어졌다?
그러면 302호는 왜 종말의 위기에 처했단 말인가?
“… 세 번째 사진이나 보자.”
아직, 내 소원이 무엇인지 나오지 않았다.
세 번째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창백한 푸른 빛으로 가득한 하늘.
얼음과 안개가 돌처럼 굳은 지표.
여기저기 솟아있는 정체불명의 첨탑.
불가해한 외계 행성의 풍경이지만, 나는 이 풍경을 이미 본 적 있다.
3층에 처음 왔을 때, 꿈속에서 봤던 장소!
*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망원경이 고장이 났나?’
‘바보 같은 소리! 호텔 망원경이 고장 날 리가 없어!’
‘하지만 아리야, 승엽이를 볼 수 없지 않으냐?’
‘대체 무슨 일이지? 가인아, 조언 써봤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물어봐!’
‘…’
‘오빠, 승엽이를 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물어봐요!’
‘지금.’
‘예?’
‘지금 관측 중인 거야.’
‘그게 무슨 -’
‘아무것도 안 보이는 이 상태가, 관측 중인 상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