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28)
괴담 호텔 탈출기 728화(727/794)
728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6)
– 김상현
외계 행성의 풍경을 담은 세 번째 사진을 꺼낸 지 약 30분이 흘렀다.
“…”
별다른 소득이 없다.
첫 번째 사진은 꺼내자마자 과거의 기억이 돌아왔고, 두 번째 사진은 약간의 고민을 추가하니 기억이 돌아왔지.
세 번째 사진은 아니었다.
느낌상, 마지막 기억의 회복은 사진을 보며 고민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움직여야 한다.
밖에서 기억을 자극할 만한 행동을 더 해야 한다.
— 부우웅!
도로를 달리며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지금 같은 상황에 부닥쳤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집에 숨겨둔 쪽지는 발견했을 것 같다.
내 기억이 주기적으로 소거된다는 사실은 알았을 테고, 카메라와 그 속의 사진도 찾아냈겠지.
다음은?
지금의 나처럼 최초의 소원 관련 기억을 환영으로 봤을 리는 없다.
이건 명백히 초자연적인 현상이며, 호텔이 만들어낸 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진 뒷면의 기록과 사진 속 기이한 장소를 보며 이 정도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내 잊어버린 과거는 관리국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전직 관리국 요원이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깨달았다면, 과거의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
한국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격언이지.
‘과거의 나’에 대한 고찰 역시 어렵기는 매한가지.
나는 이미 호텔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호텔에서 태어난 아리 양보다도 더 ‘호텔인’에 가깝다고 느낄 정도.
그래서, 과거의 나에 대한 고찰은 어떤 의미에선 타인에 대한 고찰이나 다름없었다.
“…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이민 2세대.
어머니는 좋은 분이셨지만, 아버지는 빈말로도 좋게 말할 수 없는 말종.
요컨대, 불우한 태생.
따라서 지위 상승에 대한 욕망이 아주 강했다.
내 자랑 같긴 하지만, 특수부대나 우주비행사는 지적 능력과 신체 능력 양면으로 우수해야 한다.
따라서, 지능 및 신체 능력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특출난 재능의 소유자.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바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면, 그 일에 매진하기보다는 금세 다른 목표를 찾아 떠나는 사람.
미국의 유명 사업가 중 전에는 전기 차에 관심을 가졌다가, 어제는 SNS 서비스 전문가를 자처하고, 오늘은 화성에 로켓을 쏜다고 했다가, 내일은 AI 반도체를 논하는 사람이 있었지.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내게도 유사한 면모가 있었다.
…
문득 깨달은 사실.
과거의 나는 생각보다 계산적인 성격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돈을 버는 게 목표였다면, 계속해서 직업을 갈아탈 이유가 없다.
의사 면허를 얻은 시점에서 더 이상의 도전은 멈추고 병원을 차리는 게 맞다.
죽을 확률이 높은 관리국 프로젝트에 도리어 가슴 떨리는 흥분을 느끼며 도전한 것도 좋은 예시겠지.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유형의 사람.
요약하면 이 정도다.
지능과 신체 능력 양면에서 뛰어나다.
한 가지 일에 몰두하기보다 계속해서 도전할 곳을 찾는 사람.
돈보다는 영광, 낭만, 명예를 추구하는 기질이 강하다.
계산적이기보다 충동적이며, 하고 싶은 일은 무조건, 바로 해야 직성이 풀린다.
무엇보다도 – 텍사스에서 오래 거주한 미국인.
“… 지금의 나와 여러모로 다르군.”
위와 같은 사람(A)이 다음과 같은 깨달음(B)을 얻었다.
내 기억은 관리국에 의해 조작당하고 있다.
과거의 나는 관리국 요원 내지는 직원이었던 것 같다.
A + B는 무엇일까?
…
답이 나왔다.
터무니없이 충동적이고, 직선적이며, 어떤 의미에선 황당한 행동이지만…
텍사스의 사람들은 항상 말한다.
Everything is big in TEXAS!
텍사스에선 모든것이 크다.
그러므로 텍사스 사람이라면 무릇, 대범할 줄 알아야 한다.
*
– 박승엽
갈색 머리칼의 소녀, 유소연.
동그랗고 큰 눈망울과 새하얀 목선, 인형 같은 이목구비의 –
“아까부터 너무 대놓고 보는 거 아니야?”
“… 네, 네가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렇지!”
“생각을 꼭 내 목 보면서 해야 해?”
어, 엄청 귀엽고 예뻐.
자연스럽게 호텔 동료들이 생각났다.
아리 누나나 미로랑 비교하면…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아리 누나를 처음 봤을 때는 아예 벼락에 맞은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너, 뭔가 이상한 생각 중이지?”
누나를 평범하게 대할 수 있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미로는 그보다는 훨씬 적응하기 쉬웠다.
예쁜 것과 별개로 아리 누나랑 똑 닮아서 익숙한 외모기도 했고, 워낙 바보 같았거든.
장담하는데, 미로가 롤하면 딱 아이언이야.
브론즈도 아니고 아이언이 딱 맞아.
— 툭!
그때, 지우개가 날아와서 내 머리를 툭 쳤다.
“읏!”
뭐야! 하는 시선을 보내니,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웃는 소녀.
소연이는 되게 장난기 많은 여자애 같았다.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까 내가 한 말 기억해?”
물론, 기억하고 있다.
갑자기 수업 때려치우고 도망가자고 했었지?
하! 정신 차리자.
나는 박승엽, 천하제일 고수 이자성의 직전제자.
고작 이 정도 여자애가 미혹한다고 흔들릴 사람이 아니라고?
뭐? 수업 때려치우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 미쳤어?
“안돼.”
“왜?”
“하, 학생의 본분은 성실히 수업을 듣는 것! 난 내 삶에 최선을 다해야 -”
“니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승엽이 니가 언제 수업 들었다고 그래? 맨날 와서 자잖아. 어젯밤엔 뭐했어? 팀원 무시하고 서폿 야스오? 아니면 트린다미어로 백도어만 하다가 -”
“왜, 왜 이렇게 롤 잘 알아?”
“네가 여러 번 말했으니까. 나는 네가 하는 말은 잊지 않아.”
— 콩닥!
정신없이 가슴이 뛰었다.
바, 방금 말은 뭐야?
내 말은 잊지 않는다고?
이 정도면 사실상 고백 아닐까?
나한테 진짜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솔직히 내 생각에도 있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 싸늘한 감정이 느껴졌다.
승엽아, 이 바보 멍청아!
유미에 대해서 완전히 잊은 거야?
날 위해 기나긴 세월을 헌신한 진실한 연인이 있는데!
하…
박승엽, 정말 죄 많은 남자구나.
“야, 야! 얘는 왜 자꾸 대화하다가 혼자 망상에 빠지는 거야?”
“내 마음에는 공간이 넓으니까 -”
— 타악!
바로 지우개가 하나 더 날아왔다.
“뭐래? 너, 원래도 바보 같긴 했는데, 오늘은 진짜 멍청이 같아.”
“…”
소연이는 별 의미 없이 한 말이겠지만, 이 문장은 내게 꽤 큰 울림을 주었다.
원래의 나와 오늘의 나.
‘오늘의 나’란 누구인가?
천하제일 고수의 유언을 들은 수제자.
하늘 아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성모의 하수인을 단칼에 베어낸 무적의 고수.
수없이 많은 종말의 위기를 이겨낸 호텔 파티조차 말 한마디로 긴장하게 한 흑기사.
요컨대, 호텔이라는 지옥을 이겨낸 역전의 용사다.
과거의 나는?
솔직히 수업 열심히 듣거나 하진 않았어.
과거의 승엽이가 지금처럼 귀여운 여자애에게 ‘수업 때려치우고 나가자’라는 제안을 받으면 어떻게 행동할까?
“… 소연아.”
“이제 정신 차렸어? 아까부터 -”
“바로 나가자.”
어떻게 행동하긴 뭘 어떻게 행동해?
당연히 바로 수업 때려치우고 튀었지!
*
모두가 학교 식당으로 향하는 점심시간.
나와 소연이는 학생들 틈에 섞여 움직이다가 살짝 빠져나갈 계획이다.
소연이가 뭔가 이상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게 이 시점부터였다.
“재밌는 것 보여줄게.”
“응?”
“본래 저기, 후문에는 체육 선생님이 순찰하시잖아?”
“그렇지. 애들 땡땡이 못 치게 -”
“5.”
“어?”
“4. 3. 2.”
“무 -”
“1! 뛰어!”
핸드폰 시계를 보며 시간을 세더니, 갑자기 날 데리고 뛰는 소연이.
???을 떠올리면서도 어쨌든 소연이 뒤를 따랐다.
언뜻 생각하면 멍청하고 생각 없는 행동이지만, 과거의 내가 했을 법한 행동이기 때문 –
… 과거의 내가 멍청하고 생각 없었다는 건 아니야.
어쨌든, 소연이 뒤를 따라서 후문 근처 나무에 도착할 때쯤 이상함을 느꼈다.
“여기, 나무 뒤로!”
“체육 선생님이 안 계시네?”
“지금은 교무실에 있어. 어제 비품 하나가 망가져서 신청하러 갔을 거야.”
“…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더 봐봐. 여기서 음, 26초만 더 기다리면…”
— 끼익!
약 20초가 흐른 후, 후문을 지키는 경비 아저씨가 거친 쇠문을 열고 어딘가로 떠나기 시작했다.
“화장실 가는 거야. 돌아올 때까지 6분쯤 걸려.”
“…”
“뛰자. 지금은 되게 쉬워. 아, 철책은 넘을 수 있지?”
“… 너 들고도 넘을 수 있어.”
“풋! 허세는!”
약 3분 후, 나와 소연이는 아무런 방해물 없이 학교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살짝 상기된 소연이의 뒤를 따라 걸어가는 것도 잠시.
나는 소연이의 팔을 잡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의 나라면 이런 여자애 앞에서 꼼짝도 못 했을 것 같긴 했지만,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래?”
“왜는 무슨 왜! 방금 대체 뭐야? 선생님과 경비 아저씨 움직임을 어떻게 초 단위로 알 수가 있지?”
소연이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뭔가, 우연히 알아낸 신기한 비밀을 숨기려는 어린애 같은 태도였다.
“더 신기한 거 보여줄게. 여기서 어… 11분인가?”
“무슨 -”
“쫌! 기다려! 알았지?”
계속해서 스마트폰 시계를 확인하며 알 수 없는 시간 초를 되뇌는 모습.
이쯤 되니 나도 궁금해서 시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제 5초야.”
5초 후, 정확히 12시 13분 8초 시점.
— 쿵! 끼이익!
— 꺄악! 무, 무슨!
— x발! 운전 똑바로 안 해!
— 이 개새끼! 니가 나온 위치를 보라고!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 한 대가 반대편 차선의 승합차와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다행히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각자 오토바이와 차에서 내려 욕설을 내뱉는 운전자들.
이쯤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였다.
소연이는 특정 시간에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지 아는 것 같다.
호텔에서 얻은 지식에 따르면, 이런 건 두 가지 능력 중 하나다.
첫째, 예지.
“어때, 신기하지? 대단하지?”
“… 너, 혹시 미래를 볼 수 있어?”
“미래?”
“예지력이 있는 거야?”
미래를 보는 힘.
수많은 사람이 갈망하는 기적과도 같은 능력.
놀랍게도 이 세상엔 정말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사람이 내 동료였다.
소연이가 빙글빙글 웃었다.
“미래를 본다? 음, 그런 건 아니야. 반대에 가까울지도.”
예지가 아니라면 두 번째 가능성.
“반대면… 회귀인가? 너, 혹시 사라진 시간대의 기억이 환상처럼 보이고 그래?”
내 반응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지, 소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승엽이 너… 평소엔 뭔가 둔했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되게 생각이 빠르네.”
“…”
“회귀? 음… 비슷할지도. 맞는 걸까?”
능력을 내게 숨기는 기색은 아니다.
그럴 생각이면 처음부터 나에게 능력을 보이지 않았겠지.
그보다, 이 여자애는 본인의 능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또, 내가 봐도 소연이의 능력은 내가 아는 회귀자의 그것과 달랐다.
회귀자란 이전 루프의 흐름을 기억하는 사람들.
그런데, 루프가 새로이 시작될 때마다 역사는 다시 쓰인다.
큰 흐름은 비슷하고, 관리국이 통제를 위해 비슷하게 유도하기도 하지만, 개별 사건이 초 단위로 똑같을 수는 없다.
“아니, 아니지… 회귀자면 벌어질 사건을 초 단위로 알 수는 없어.”
“우와! 너, 뭔가 이런 걸 되게 잘 아는 것 같아.”
이 정도 생각을 떠올렸을 때, 소연이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있잖아, 승엽아.”
“응?”
“우린 정말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
“23분 후에 저기, 저 마트에서 멍청이 하나가 과자를 훔치다가 점원에게 잡힐 거야. 34분 후엔 선생님이 나한테 어디 있느냐고 전화하겠지. 내일, 12시 40분에는 동해에서 석유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나와.”
“…”
“그러다가 일주일이 지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다시 시작한다…”
“일요일 밤, 침대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전주의 월요일이야. 그리고, 또 똑같은 일이 벌어져.”
“…”
“다 정해져 있어. 똑같은 일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모두들, 시작과 끝이 정해진 길을 반복해서 걷고 있는 거야.”
예전에 내 기억을 본 가인 형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어딘가 편의적으로 움직이는 세상 같다는 이야기.
“내가 알기론, 딱 두 사람만 달라.”
“다르다는 게 무슨 말이지?”
“… 매번 다른 행동을 해. 정해지지 않은 행동.”
소연이가 말하는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너랑 나야. 우리만, 우리만 다르게 행동해. 하지만… 너는 이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아.”
이해할 수 없는 정보의 파도에 휘말려 아찔함을 느낀 시점.
갑자기, 소녀가 빙그레 웃었다.
“또 이상한 것 보여줄게.”
사랑에 빠진 듯, 미소를 짓는 소녀.
살짝 내민 입술, 떨리는 손과 분홍빛으로 상기한 뺨.
화아악! 다가오는 모습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내게는 유미가 있다고!
이거 바람피우는 거 아니야?
하, 하지만 유미는 죽었어!
일종의 사별 상황이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박승엽 개새끼야!
유미는 죽었어, 죽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살아가 –
“바보 같은 생각 하지 말고 주변을 봐.”
그 때, 사랑에 빠진 것 같았던 소녀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조금 전까지의 모습은 세상을 속이기 위한 위장인 것처럼.
“천천히, 대놓고 고개 돌리지 말고, 키스할 것처럼 다가오면서 눈만 살짝 돌려봐.”
“…”
소연이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당장이라도 키스할 것처럼 내게 다가온 순간.
행인들은 나무늘보만큼이나 둔해졌다.
정신없이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거북이마냥 느려졌다.
빗방울은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떨어졌고, 날개를 움직이지 않는 새들은 글라이더처럼 허공을 미끄러졌다.
세상 전체가 느려졌다.
마치, ‘슬로우 모션’이 걸린 것처럼.
나는내가 정말 이상한 세상에서 살아왔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