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29)
괴담 호텔 탈출기 729화(728/794)
729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7)
– 박승엽
모든 일이 소연이의 말대로 진행되었다.
20분쯤 지나니 마트에선 멍청한 아저씨가 점원에게 잡혀 경찰에 넘겨졌고, 30분쯤 지나니 선생님이 나와 소연이에게 전화했으니 말이다.
그때쯤, 소연이는 살짝 상기한 표정으로 말했다.
“봐봐! 되게 이상하지?”
“그렇네. 엄청 이상하네.”
예전에 본 유명한 영화, SF 소설, 호텔에서의 경험 – 이런 것들이 뒤섞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예를 들면, 모든 인류가 뇌만 남은 채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들.
생각만 해도 끔찍한 가능성이지만, 호텔은 내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었지.
이 세상은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조차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어.
“나, 항상 궁금했어.”
“뭐가?”
“왜 나만 – 아니, 우리만 특별한 걸까?”
소연이와 나의 특별함.
다른 사람들은 매주 일요일 밤에 기억이 리셋된다.
이후, 과거의 기억을 잊은 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반면, 소연이는 기억이 초기화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한다.
나는과거를 기억하진 못하지만, 행동 자체는 계속 바뀐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유사한 개념이 있었다.
“… 회귀자. 불완전한 회귀자.”
“응?”
“어쩌면, 너와 내 영혼이 보통 사람보다 강했을지도 몰라.”
“여, 영혼?”
“그래서 넌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거야. 강인한 영혼이 리셋을 버텨내는 게 아닐까?”
“어… 그, 그럼 너는?”
“너처럼 완전히 견디진 못하지만, 어렴풋한 기시감 정도는 느꼈나 봐. 그래서 매번 행동이 바뀐 것 같아.”
세세하게는 다르지만, 현실의 회귀자-불완전한 회귀자의 구조와 비슷해.
여기까지 설명했을 때, 소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음?”
“너, 생각보다 되게 똑똑했구나?”
“…”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어.”
이 말은 기쁘다기보다는 부끄러웠다.
좀 전에 내가 한 말이 엄청나게 똑똑해야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잖아?
그런데, 소연이가 보기엔 지금 이 정도도 너무 똑똑하게 느껴진다는 것.
호텔에서의 경험때문에 지금의 내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의미다.
“… 나, 원래 그렇게 멍청했어?”
“으엣! 아, 아니 그런 말은 아니구…”
302호에 들어오기 전, 동료들이 신신당부했던 말을 잊어선 안돼!
첫 번째 회차의 목표는 방의 해결이 아니야.
최초의 소원을 자각하는 일이며이걸 위해선 과거의 나처럼 행동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연이가 ‘너 이렇게 똑똑했어?’ 하는 반응이 나와선 곤란해.
“…”
그런데, 예전의 나 같은 행동이란 게 뭐야?
멍청이같이 굴어야 해?
아니, 그러면원숭이 흉내라도 내야 하는 거야?
어… 이거 생각보다 어렵네.
그때, 소연이가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날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
이 눈빛, 이 행동.
뭔가 되게 익숙하다.
꽤 많은 동료가 가인 형에게 보이는 모습.
상대가 나보다 똑똑하다 여기며 판단을 의존하는 태도.
과거의 나라면, 소연이에게 이런 반응을 끌어냈을 리가 없지.
흐름을 되돌려야 해.
원래대로, 과거에 벌어졌을 사건 그대로.
“소연아…!”
“응?”
“어, 어떻게 해야 해?”
“…”
겁먹고 당황한 목소리를 내자소연이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똑똑해 보여서 기대했는데, 착각이었네~ 하는 느낌.
아쉽지만, 이게 맞아.
과거의 난 얘가 하는 말을 잘 이해도 못했을 거야.
멍청한 질문을 여러 번 했을 테고, 소연이는 내 질문에 답하다가 인내심을 잃었겠지.
“너,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세상이 일주일마다 리셋된다며?
너는 진작 세상의 기괴함을 알아차렸어.
나름대로 계획이 있을 거야.
말해봐. 과거의 나는 저항 없이 홀린 듯 네 말을 따랐을 테니까.
“으음,계획이 있긴 있어.”
“들을게.”
“나는 어, 이 세상이 일종의 꿈속 세상이라고 생각해.”
“꿈속 세상이라…”
“너랑 나는 꿈에서 깨어난 거야. 나는 완전히 깼고, 너는 반쯤 깼고.”
“그래서?”
“다른 사람도 깨우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소연이의 계획은 간단하다.
우리처럼, 다른 사람들도 깨워서 세상의 기괴함을 눈치채게 하는 것.
“어떻게 깨울지도 생각해 봤어?”
그때, 소연이의 눈빛이 살짝 떨렸다.
마치, 대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을 받은 것처럼 말이다.
“그… 그… 하, 한 번 깨워봤어.”
“그래? 누구를 -”
이쯤에서 나도 깨달았다.
이 세상에 깨어난 사람은 소연이와 나 둘뿐이다.
소연이는 한번 누군가를 깨운 적 있다.
누군가는 바로 나잖아!
… 이 깨달음이 일종의 트리거였다.
곧, 짤막한 환영이 파노라마처럼 내 정신을 휩쓸고 지나갔다.
— 파아앗!
*
— 꿀꺽!
침을 삼킨 채 누군가를 몰래 따라가는 나.
재밌다는 듯 구경하는 주변 애들과 말없이 걸어가는 소녀.
그리고…
“소, 소연아!”
“…”
“오래전부터 어, 너, 널 좋아했어! 그, 그래서 -”
돌아오는 잔혹한 답변.
“미안. 아직은 연애할 생각 없어. 나 말고 더 착한 애 찾아.”
…
“미안. 너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
“나 남친 있어.”
“으엣? 어, 없지 않아?”
“너랑 만날 때마다 없는 남친이 생겨.”
…
“너, 진짜 또 따라오면 맞는다?”
“히익!”
…
“아~ 얘 진짜 매번 이러네. 싫어. 싫다니깐?”
“매, 매번 이런다니… 처, 처음인데?”
“너한테나 처음이지.”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세상.
… 셀 수 없이 반복되는 고백.
처음에는 더 착한 애를 찾아보라며 친절히 답했던 소녀는 언젠가부터 잔혹한 답변을 돌려주었다.
소년에겐 태어나서 처음 하는 고백이지만, 소녀에겐 수없이 반복된 일이다.
상당한스트레스였을지도 모르지.
…
무수한 반복 끝에 벌어진 변화.
열 번을 찍어도 흔들림 없던 나무가 42번을 찍으니 기어이 쪼개지는 순간.
“좋아.”
“뭐, 뭐라고? 좋, 좋, 좋 -”
“네가 고백해 놓고 왜 그리 놀라? 좋다니까? 오늘부터 1일 차로 하자.”
소녀에게 이 일은 단순한 변덕이었을지도 모른다.
끝없이 반복되는 쳇바퀴 속에서 한 번 정도 다른 전개를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소녀는 막상 연애에 진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귀찮아하며 같이 매점 가서 떡볶이 한번 사 먹은 정도가 끝.
이때까지만 해도 소녀는의미 없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세상이 초기화되었다.
다시 시작된 세상, 소년이 소녀에게 고백하는 화요일의 오후.
고백은 없었다.
소년이 ‘왠지 모르게’ 고백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치, 이미 성취한 소원에 대해선 예전만큼 간절하지 않은 것처럼.
— 파아앗!
*
“…”
오래된 기억의 일부가 떠올랐다.
꽤 많은 내용은솔직히 말해 상처였다.
‘나 남친 있어.’
‘너랑 만날 때마다 없는 남친이 생겨.’
나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너, 지금은 남친 있겠네.”
“으엣? 가, 갑자기 무슨 말 -”
“나랑 만나면 없는 남친 생긴다며? 지금 있겠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소녀.
내가 리셋 전 기억을 구체적으로 떠올렸음을 깨닫고 놀란 것이다.
“어, 어, 어…”
소연이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은 후,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그… 그때 했던 말은 미안해. 음, 아마 그때 내가 되게 짜증 난 상태였을 거야.”
이 순간, 나는 실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호텔에서의 경험 덕분에 과거의 기억을 회복하며 상처받았지만…
호텔에서의 경험 덕분에 소연이의 행동을 어렴풋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주의 방을 진행하며 때로는 터무니없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뒷수습은 어떻게 하냐고?
신경 쓰지 않아.
탈출하고 세상이 리셋되면없는 일이 될 테니까.
소연이도 똑같다.
잔인한 말을 해도 일주일이면 모두가 기억을 잃는 상황.
행동에 점점 조심성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
어쨌든, 기억의 회복은 내게 한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주었다.
과거의 상처가 떠오르며 이 여자애에게 살짝 깬 느낌?
하, 승엽아! 잊으면 안 된다니깐?
역시 유미야! 유미라고!
나한테는 유미밖에 없었어!
그렇게 마음을 다잡던 시점, 소연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예, 예전 기억이 생각났으면 너도 알았을 거야.”
“알아? 뭘? 아, 사람들을 꿈에서 깨우는 법?”
“응. 나는 어… 아주 강한 감정을 만들면 깨어나는 것 같다고 생각해.”
고백에 성공하며 꿈에서 깨어난 나.
그런 나를 보며 ‘강렬한 감정’이 각성의 트리거라고 생각하는 소연이.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니다.
또, 과거의 나라면 소연이의 말을 무조건 따랐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게?”
살짝 놀리듯이 덧붙였다.
“사람들이 다 너한테 사랑에 빠지게 해보려고?”
“으엣! 그게 될 리가 없잖아!”
“킥!”
농담이라는 걸 깨닫고 살짝 삐진 표정을 짓는 소녀.
“… 사랑에 빠지게 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식도 있을 거야.”
“다른 방식?”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격렬한 감정은 분노였어.”
“말 되네. 그러면, 길 가는 사람들을 마구 때린다던가?”
“안돼. 그러면 경찰 아저씨가 잡아가.”
구체적인 답변 덕에 깨달았다.
“해봤구나.”
“… 응.”
“몰래 마트에 불을 낸다던가?”
“무, 무슨 소리야! 그랬다간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잖아!”
“어… 그렇네.”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소연이 말대로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일이지.
… 동료들이라면, 주저 없이 불을 질렀을 것 같아. 그 정도는 아닌가?
“그래서 고민 중이야. 승엽아, 우리 어떻게 할래?”
“…”
이 시점에서 나는 너무나 쉬운 길을 깨닫고 말았다.
다른 사람에게 격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방법 말이다.
경찰에게 잡혀갈 일도 없고, 사람이 진짜 다칠 일도 없어.
무엇보다, 되게 멍청했던 과거의 나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계획!
“… 내가 해볼게.”
“어?”
*
집에 돌아왔다.
땡땡이쳤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잔소리를 들었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한 후, 밤이 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
「소환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진짜 이 방법뿐일까?”
응, 이게 맞아.
과거의 내가 떠올릴 만한 방법은 이것 말고 없어!
— 타닥! 팅!
곧, 매칭이 잡히는 소리가 나며 아군 네 명과 적 팀 다섯 명이 모였다.
돌거북 : ㅎㅇ
어스름 늑대 : ㅎㅇㅎㅇ 잭스 잡아주셈!
칼날부리 : 밴 원하는 거 있는 분?
바위 게 : 제드 밴좀여
평화로운 채팅창.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말하건대, 이 정도면 상위 1%급 팀원들이다.
나 – 심술두꺼비 – 역시 침묵을 지켰다.
너무 일찍부터 악의를 드러내면 모두가 도망가기 때문이다.
곧, 내가 챔피언을 고를 차례가 돌아왔다.
선량한 사람들 사이로 떨어지는 자그마한 조약돌.
심술두꺼비가 말없이 마스터 이를 클릭했다.
채팅창에 흐르는 적막의 시간.
당황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돌거북 : 님 서폿 아님?
어스름늑대 : 정글 가시려고요?
칼날부리 : 내가 정글인뎅
바위 게 : 서폿 마이는 진짜 아님!
협곡 기준으론 이쯤에서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야 정상인데, 정말 착한 사람들인 것 같다.
칼날부리 : 그냥 님이 정글가셈 제가 서폿감
이 사람 정도면, 농담이 아니라 예수님도 놀랄 인성이 아닐까?
그렇게 시작된 게임.
나는 주저 없이 바텀 라인을 향했다.
소나 : 씨발, 님 뭐함? 정글 돌라고!
마스터 이 : 그럼 투탑 ㄱ
바텀에서 2데스.
미드에서 1데스.
마지막으로 탑에서 2데스.
선량한 사람들이 진심을 드러내는데 정확히 5분이면 충분했다.
…
게임이 끝날 때쯤, 모두가 내게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내가 현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부모님은 건강히 잘 계시는지에 관한 질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당당하게 적었다.
마스터 이 : 니애미
채팅창이 요란하게 달아오를 무렵, 한 문장을 추가했다.
마스터 이 : 꼬우면 방배중학교로 오셈 ㅇㅇ
…
“뭐야, 되게 쉬운데?”
하핫! 겨우 5분 만에 다들 흥분한 거 봐!
너무 쉽잖아? 나 진짜 똑똑한 듯?
이렇게 다섯 판 하고 나니 메시지가 떴다.
「30일 게임 이용 제한됨
해당 계정은 최근 플레이하신 게임에서 욕설 및 공격적인 언행과 같은 -」
“에이~ 벌써 정지야?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하지?”
가볍게 한숨 쉬며 물 한 잔 마셨다.
딱히 큰 문제는 아니다.
나에게는 아직 13개의 계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 타닥!
밤은 길고 계정은 많다.
오늘 밤, 나는 끝나지 않는 꿈을 헤매는 사람들을 일깨울 것이다.
야스오 : 서폿감
약간의 정신적 고통은… 글쎄, 본래 약은 입에 쓴 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