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30)
괴담 호텔 탈출기 730화(729/794)
730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8)
– 미로
아리의 말에 따르면, 한국은 대부분의 루프에서 치안이 좋은 나라였다고 한다.
이런 특성이 동북아 국가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한국,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역시 1인당 GDP에 비하면 치안이 좋은 나라에 속한다고 했어.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 꺄아악! 살려주세요!
— 이 미친놈이! 저거, 저놈 잡아!
“…”
대부분의 루프에서 치안이 좋았다는 말은 그렇지 않은 예외도 있었다는 뜻이야.
302호는 바로 그 예외에 속한다.
*
진입 후 3일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한국의 범죄 지표가 내전 중인 국가 수준으로 개판이 났다는 아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 쨍그랑! 끄아악!
서울 시내를 조금만 걸어도 사방에서 비명과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니, 정말 이런 지옥이 없었다.
영화에서나 본 제3세계 빈민가를 떠올릴 정도였으니깐.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한국이 미국처럼 총이 널리 퍼져있지는 않다는 점 정도.
설령 범죄자가 날 위협한다 해도 다짜고짜 총으로 쏠 일은 없다.
“뭐야? 외국인인가? 히야~!얘야, 너처럼 예쁜 애가 함부로 돌아다니면 -”
“너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렇듯, 목소리의 힘을 쓰면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첫날, 아리와 나눈 대화.
‘승엽이는 어떤 상태일까?’
‘그게 지금부터 네가 알아내야 할 포인트지.’
그 이후, 나는 승엽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며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1. 승엽이가 살았다는 집은 11년 전에 재건축했다.
2. 승엽이가 다닌 학교는 11년 전 폐쇄구역이 되었고, 관리국이 통제 중이다.
요컨대, 11년 전을 기점으로 ‘박승엽’과 관련한 요소들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11년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봤지만, 관리국이 정보를 검열해서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후, 두 번째로 소환한 아리와 나눈 대화.
*
“흐음… 아무래도 네가 승엽이가 있던 동네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가도 아무것도 못 찾는 거 아니야?”
“전직 요원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서울은 인구밀도가 아주 높아. 조그마한 구 하나에 인구는 50만인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그래서?”
“그 많은 주민 기억을 전부 지우긴 힘들어. 또, 기억 소거제 효과도 10년쯤 지나면 약해질 때가 많아.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아리가 귀를 톡 톡 치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 계속 들리네.”
“… 나도 들려.”
“세상 꼬라지를 보니 관리국에 여력이 없을 것 같네. 평소보다도 빈틈이 많겠지. 반포동에 가면, 승엽이를 기억하는 주민들이 있을지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을 때 – 아리가 갑자기 날 덥석 껴안았다.
“으에엣! 왜, 왜 갑자기 -”
“미로.”
“응?”
“조심해. 치안이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아. 시간 대여기를 쓸 수 있을 때만 돌아다녀. 알겠지?”
“아, 알았어.”
“혹시 승엽이를 찾더라도 굳이 개입하진 마. 걔 상황이 어떤지 정도만 알면 충분해.”
*
현지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라에서 이런 일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을 양성할 정도니깐.
여기에 대한 불안감을 말했을 때, 아리의 반응은 간단했다.
‘아, 아리양! 나는 요원 교육 같은 거 받은 적 없는데?’
‘정확히 말해야지. 요원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게 아니라 그냥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초등학교만 졸업했잖니?’
“…”
돌이켜보면, 아리는 내 안전을 걱정했을 뿐 정보를 모으지 못할까봐 걱정하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원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 어떤 훈련으로도 얻을 수 없는 초능력을 타고났으니 말이다.
실제 해보니까 되게 쉬웠다.
그냥 폐쇄된 방배중학교 근처 상가에 가서, 상인들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깐.
“여기 혹시 11년 전 방배중학교에서 벌어진 일 아시는 분?”
처음에는, 내 말을 듣기가 무섭게 움찔거리며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우습게도 이 태도 덕에 확신을 얻었다.
아리의 말대로, 현지 주민 중에선 과거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관리국이 여력이 없어 기억을 지우지 못했을 수도 있고, 당시엔 지웠지만 10년 넘게 흐르며 어설프게 떠올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살짝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11년 전 방배중학교에서 벌어진 일, 아는 대로 말해봐.”
목소리의 힘도 아낌 없이 썼고, 중간에 차진철을 소환하기도 했다.
— 쿵!
“이 양반들, 입이 쓸데없이 무겁네. 관리국만 무섭냐? 내 주먹은 안 무섭고?”
슬쩍 내 쪽을 보는 진철이.
“이러면 됐지?”
“… 방금 진짜 깡패 같았어.”
“넌 아까부터 진짜 마녀 같다.”
한 명씩붙잡고 추궁하기를 3시간.
마침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니까 10년 전에 방배중학교 체육 선생이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승엽이를 알아?”
“이름이 쪼매 익숙하긴 한데 -”
“키는 요만하고, 머리는 검은색이야. 얼굴은 -”
진철이가 옆에서 덧붙였다.
“어깨가 살짝 구부정하고, 눈빛도 좀 흐리멍덩하지.”
“어깨가 구부정해? 난 몰랐는데.”
“미로, 네가 본 승엽이는 꽤 바뀐 이후야.”
“그랭?”
“처음엔 좀… 왜소해 보였어. 고개도 잘 못 들고 다녔고.”
방배중학교 체육 선생님이었다는 사람이 조심스레 중얼거렸다.
“들어보니, 제가 아는 학생이 맞는군요. 어, 기억합니다. 거의 매일 지각했거든요.”
“… 거의 매일 지각?”
“맨날 지각하고, 벌서고 했을 겁니다. 애들이니까, 아마 밤새 게임을 하다가 -”
“맞아 맞아. 걔 승엽이 맞아.”
너무나 한심한 생활 묘사.
100% 승엽이다.
“그래서, 그때 무슨 일 생겼는데?”
“…”
다시 시선을 낮추는 모습.
또, 관리국에 대한 두려움이 떠오른 모양이다.
이쯤에서 진철이가 슬쩍 주먹을 휘둘렀다.
— 쿵!
“아~! 빨리빨리 끝냅시다.”
치안이 무너지고,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들이 날뛰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차진철처럼 덩치 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겠지.
사실, 나도 진철이가 흥분할까봐 살짝 무서워.
「…네가 원하는 바를 하라…」
이 목소리가 계속 들려오니깐.
“흥분하면 안 되는 것 알지?”
“미로야, 그 이야기를 벌써 몇 번 하는 거냐? 나도 전직 요원이야! 인마.”
결국, 전직 선생님이자 현직 떡볶이집 사장의 입이 열렸다.
“꽤 긴 이야깁니다. 그래서, 어, 결론부터 말하지요.”
“결론부터? 좋지. 우리 그런 거 좋아해.”
“많은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부모님들, 교사들… 모두가 관리국을 증오했지요.”
“갑자기 너무 건너뛰긴 했는데… 말해봐.”
“… 마지막에 관리국 직원이 이런 이야길 하더군요.”
“무슨 이야기?”
“우리는, 세상을 지키기 위해 여러분의 아이를 해친 게 아니다.”
“뭐?”
그때, 남자의 눈빛이 기묘하게 빛났다.
마치 –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떠올린 사람처럼.
“그 반대다. 여러분의 순수한 아이들을 지키고, 세상을 포기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우리에게 감사해야 한다.”
*
– 박승엽
다음 날, 학교.
“하아암~!”
“박승엽! 집중 안 해?”
“죄송합니다아아아…”
“야, 좀 죄송한 체라도 해라.”
지루하기 그지없는 시간을 보냈다.
어제 땡땡이 때문에 선생님들이 눈 부릅뜨고 날 감시해서 무슨 행동을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무렵이 되어서야 소연이가 나타났다.
“어제 뭔가 했어?”
“음, 그렇지. 열심히 했어.”
“열심히 했다니… 뭘 한 건데?”
찰랑이는 갈색 머리카락과 새하얀 목선을 보고 있으니, 살짝 위험한 느낌이 들어서 중얼거렸다.
“… 너랑 만나면 없는 남친 생긴다.”
“으엣!”
“너랑 만나면 없는 남친 생긴다.”
소연이가 나한테 했던 충격적인 말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니까 저절로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네.
곧, 소연이가 볼을 살짝 부풀린 채 말했다.
“야, 왜 그런 말만 기억해?”
“너무 충격적인 말이라서.”
“조, 좋은 말도 했잖아. 어쨌든! 뭘 했냐니깐? 뭔가 할 것처럼 말하더니 그냥 집으로 갔잖아.”
있는 그대로 말해주긴 좀 그래서 살짝 각색했다.
“여러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어.”
“… 그게 무슨 말이야?”
어떻게든 대충대충 말을 돌리던 시점, 갑자기 소연이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뭔가, 요 며칠 사이에 네가 꽤 바뀐 것 같아.”
“…”
이건 좋지 않은 이야기네.
최초의 소원을 떠올리려면, 예전과 너무 달라지면 곤란한데.
“너는, 어, 그러니까…”
뭔가 말을 고르는 기색.
어째, 또 말실수할 것 같아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무슨 말 하려고? 시원하게 말해.”
“… 예전엔 남자애들에게 괴롭힘당하곤 했잖아.”
“어… 생각해 보니 그랬네?”
이 순간만큼은 순수한 의미로 감탄했다.
듣고 보니 사실인데, 소연이가 지적하기 전엔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구르며 과거의 일을 많이 잊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두 번째 이유는, 지금은 겪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네. 걔네, 그, 이름이 뭐였지? 지호였나? 걔가 내 머리 한 대 칠 때가 됐는데.”
그때, 소연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장담하는데, 이젠 그럴 일 없어.”
“왜?”
“괴롭힘당하는 애들은 뭔가 느낌이 있어. 너는… 음, 이젠 그런 느낌 아닌 것 같아. 걔네들도 자연스럽게 느낄걸?”
“무슨 느낌인데? 기가 약하다?”
중학생이란 정신적으로 미숙한 10대의 소년·소녀들이다.
성인보다 충동적이며, 다소 동물적인 나이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의 짐승들은 눈 마주칠 때마다 저놈이 내 위인지 아래인지 확인하고, 아래다 싶으면 잡아먹고 위다 싶으면 슬슬 피하지.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곳이 곧 중학교, 고등학교.
이 시기의 아이들은 ‘위냐 아래냐’를 판단하는 본능이 발달해 있다.
자연스럽게 든 생각.
주변의 양아치 같은 애들이 보기에, 지금의 난 아래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디 가서 이런 말 하면, 아마 이런 질문이 돌아오지 않을까?
‘호텔 참가자씩이나 되면서 애들 위에 있는 게 기분 좋냐?’
당당하게 답하겠다.
응, 기분 좋아.
방배중학교 서열 1위 박승엽 진짜 좋은데?
“얘, 또 뭔가 이상한 생각하나 보네.”
“이상한 생각 안 했는데?”
“거짓말도 진짜 못해.”
“…”
이렇게 우리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때.
이변이 벌어졌다.
— 나와!
“응?”
“뭐야? 밖에서 -”
— 야 박승엽!
“너 부르는 거 아니야?”
“학교에 박승엽이라는 이름이 또 있을 수도 있지.”
— 방배중학교 2학년 8반 박승엽 개 씹새끼야!
“아니, 아무리 들어도 너잖아.”
말문을 잃을 무렵, 상황에 쐐기를 박는 문장이 들려왔다.
— 나 한남동지죤제드다! 나오라고 개새끼야!
“… 경비 아저씨가 막겠지.”
— 이봐! 여기 지금 애들 학교요! 당신 누구요!
이때쯤, 소연이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날 보고 있었다.
“승엽아.”
“…”
“어, 어제 네가 했다는 일이 혹시, 어, 게임에서 사람들 괴롭힌 거야?”
“오해야.”
“오해는 무슨 오해! 맞잖아! 아니, 진짜 너도 저 아저씨도 다 미쳤나구!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저 아저씨가 학교로 오는 거야?”
“아니 -”
“게임하는 사람은 다 저래? 진짜 정신병! 미친 거 아니냐고!”
“아니, 진짜 아니야. 키보드야 수도 없이 쳤지만, 미친놈이 학교로 오는 건 처음 -”
당황해서 변명하듯 말했는데, 소연이는 내 말을 듣고 더 놀란 것 같았다.
“수도 없이 쳤어? 그동안도 매일 싸웠어?”
나는 협곡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연이에게 답답함을 느꼈다.
“하… 진짜 별일 아니라고 했잖아. 모두 협곡의 일부일 뿐이야.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아무튼!”
“아무튼은 무슨! 들을수록 어이없는데 -”
“저 아저씨가 이상한 거라니까. 무슨 키배 좀 했다고 애들 학교에 와서 – 헛!”
그 순간,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변을 깨달았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소연이의 눈을 가리는 것이었다.
“으악! 모야? 갑자기 뭐해? 손 치워!”
“… 소연아.”
“손 치우라고! 왜 갑자기 -”
“도망가자.”
협곡에서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 일 정도는 별것 아닌 일상이다.
딱히 문제 삼을 행동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종종 인내심 부족한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소위 ‘현피’를 뜨려고 한다는 사실은 나도 알아.
여기까진 인터넷에서 가끔 본 사연이지만…
“가, 갑자기 도망이라니 – 으엣!”
“뛰어!”
밖에서 일어나는 광경은 극단적인 주작 썰로 가득한 인터넷에서조차 본 적 없다.
… 현피 뜨러 온 아저씨가 갑자기 칼을 꺼내서 경비를 찔러 죽였다.
— 박승엽 이 개새끼 어딨냐? 나와! 니가 오라며! 나 무직고졸앰생 칼들고 왔다!
“대, 대체 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한거냐고!”
“… 죽음은 바람과 같지. 늘 내 곁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