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aping the Mystery Hotel RAW novel - Chapter (732)
괴담 호텔 탈출기 732화(731/794)
732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10)
– 김아리
302호가 시작한 지도 제법 시간이 흐른 현재.
우리는 아직도 승엽이를 관측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망원경이 고장 난 것 아니냐는 웃기는 이야기도 나왔지.
물론, 삼천세계를 위해 눈물 흘리는 자가 손수 빚어낸 망원경이 고장 날 리가 없어.
나는 내심 301호처럼 죄수가 개입해서 방해 중인 게 아닌가 했는데, 돌이켜보면 이것도 애매해.
301호의 죄수가 할 수 있었던 건 폴터가이스트를 억제하는 정도지, 관측 자체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야.
302호의 죄수라고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가인이는 조언을 써서 ‘지금 이게 관측 중인 상태다’라는 답을 얻었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인이의 말대로 우리는 승엽이를 관측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뭔가… 뭔가 있어!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형상.
움찔거리는 움직임, 사각거리는 소리.
분명 뭔가를 보고 있는데, 정확히 뭘 보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주 어둡고 조용한 장소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고 그것은 승엽이의 본질에 해당하는 무언가였다.
“으으… 답답하네.”
속 시원하게 보여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저 기괴한 어둠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일종의 힌트라는 생각도 들어.
상현이 쪽도 확인할까?
지금은 그냥 이동중이네.
…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잡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망원경 밖으로 밀려났다.
“괜찮아? 슬슬 교대해야 할 것 같아서.”
가인이었다.
“아, 벌써 그럴 때구나.”
“승엽이는?”
“알아낸 게 없어. 어둠으로 가득하고, 뭔가 애매하게 꿈틀거리는 느낌.”
“으음… 상현 형은?”
“그쪽은 반대로 알아낸 게 꽤 많아. 워낙 친절한 동료라서.”
친절한 동료라는 말에 가인이가 살짝 웃었다.
“그렇지. 상현 형은 정말 친절한 동료지.”
나와 가인이가 김상현을 친절한 동료라고 하는 건 단순히 잘 보여서가 아니야.
관측이 어려운 승엽이가 특이 케이스지, 은솔이나 송이도 관측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어.
“상현이는 주기적으로 자기가 알아낸 걸 우리에게 설명하더라. 처음엔 상황 자체가 좀 웃겼어. 그렇잖아? 갑자기 천장을 보면서 혼잣말하는 느낌이니까.”
“형 입장에서도 우리가 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 것 같네.”
“그런가 봐.”
처음엔 너무 우리를 의식하는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다.
바깥의 동료를 의식한다는 말은, 본인이 호텔 참가자임을 끊임없이 되뇌인다는 말이야.
이러면 최초의 삶을 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르잖아?
다행히, 김상현은 큰 어려움 없이 과거의 기억을 되찾기 시작했다.
“세 개의 사진을 찾았어. 하나는 우주왕복선 앞에서 찍은 사진.”
“아, 그건 나도 들었어.”
첫 번째 사진을 통해 김상현은 자신이 과거에 관리국 요원들에게 우주 비행 훈련을 시켰고, 함께 우주로 떠났음을 알았다.
“두 번째는 우주여행 중에 찍은 사진.”
두 번째 사진을 통해 김상현은 관리국이 만나려던 죄수가 ‘여명의 아들’이며, 그는 인류를 위해 헌신해 온 위대한 자임을 알았다.
“보니까, 그 시점의 관리국은 인류를 위하는 신을 찾으려고 한 것 같아.”
“인류를 위하는 신이라…”
조금은 신랄하게 말했다.
“허황된 생각이지.”
“…”
“하지만, 그래, 그런 생각에 빠진 관리국 계파가 있는 건 사실이야. 302호의 관리국은 여명의 아들이라는 존재를 동맹 혹은 수호자로 받아들이려 했어.”
“여명의 아들. 죄수의 이름 같은데, 관리국이 그를 믿은 이유가 뭐지?”
“꽤 여러 루프에서 여명의 아들이 인류를 도왔다는 것 같네.”
“으음… 세 번째 사진은?”
“지금, 그 기억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 네가 가서 봐.”
— 끼익!
그때, 테이블에서 우리 대화를 경청하던 은솔이가 입을 열었다.
“아리야. 조금 뜬금없는 질문인데…”
“뜬금없는 이야기에서 본질이 튀어나오곤 하지. 말해봐.”
“승엽이랑 상현 씨 시대에도 관리국 수뇌부 이름은 선각자였네. 그치?”
“그렇네. 상현이가 만난 크롬웰이 본인을 선각자라고 했으니까.”
“나랑 송이의 시대에서도 선각자였거든?”
“… 그렇네.”
“같은 조직이 세운 문명이었을까? 음, 같은 방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너희 수뇌부는 ‘침묵하는 자’였지?”
“그랬지.”
“이런 단어들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
“으음, 내가 너무 지엽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건가? 의미 없는 이야기 같네. 미안.”
은솔이는 곧 고개를 저으며 본인이 쓸데없는 문제에 신경 썼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은솔이의 말이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단어에는 의미가 있다.
일반인이 술 마시고 대충 정한 이름도 아니고, 세상을 지배하는 조직의 수뇌부 명칭에 의미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해.
선각자, 침묵하는 자.
둘 다 의미가 있는 단어다.
무엇을 먼저 깨달았기에 선각자인가?
무엇에 대해 침묵하기에 침묵하는 자인가?
모르겠어.
내가 전직 침묵하는 자인데도 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묵성이가 입을 열었다.
“허! 들어보니, 승엽이 고놈이 문제로구만?”
“그러게. 어디서 뭘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
“야, 야, 너희 말 듣다가 든 생각인데, 302호에 들어간 두 사람이 여러모로 대조되는 것 같지 않냐?”
묵성이 느낀 박승엽과 김상현의 차이점.
“예를 들면 의사 양반은 웃음이 나올 정도로 관측이 쉽지. 친절하니까.”
“승엽이는 관측이 불가능에 가깝고.”
관측의 용이성.
“능력적으로도… 어, 이건 승엽이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만 -”
“무슨 말인지 알아. 김상현은 터무니없이 유능한 인간이지.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고, 특수부대에, 의사에, 우주비행사.”
“심지어 대인관계도 기가 막히다. 요원들 몇 달 훈련시키더니, 금방 모두의 신뢰를 얻었어. 사람 한 명을 바꿔야된다 싶으니 요원 전원이 김상현을 추천한 이유가 뭐겠냐?”
“302호 관리국 요원들이 보기에도 김상현은 아주 우수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지.”
“반면, 호텔에 오기 전 승엽이는 -”
“거기까지.”
현격한 능력의 차이.
고개를 박고 조는 것 같던 송이가 게슴츠레한 눈을 뜨며 말했다.
“아리야, 나도 듣다 보니까 하나 생각났어.”
“뭔데?”
“호텔에서 만난 동료들 차이도 엄청나지 않아?”
“동료 차이라…”
“승엽이가 만난 동료는 천사표잖아~ 그렇지?”
승엽이가 만난 동료라면 곧 우리네.
본인 입으로 본인을 천사표라고 하는 송이 말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정도면 적어도 같은 동료에겐 천사 같은 모습을 보였잖아?
“반대로 의사 선생님은… 최악의 동료를 만났지.”
“너지금내엄마를최악의동료라고말하는건아니겠지?”
“… 방금 랩하는 줄 알았어.”
하나하나 짚어보니, 신기할 정도로 승엽이와 상현이의 대비되는 점이 많았다.
그때, 망원경에 앉은 채 우리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 저주의 방을 관측하는 동시에 관측소 대화도 듣는 건 우리 중 가인이만 가능한 희한한 재주다 – 가인이가 중얼거렸다.
“하나 더 있을지도.”
“또 있어?”
“… 302호에서의 역할?”
“역할?”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상현 형은 302호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의 시작점에 있어.”
죄수를 끌어들인 우주여행.
그 우주여행의 일원이자, 다른 사람들을 훈련한 장본인이 바로 상현이다.
302호 서사의 시작에는 김상현이 있다.
“그렇네. 그러면 승엽이는?”
“…”
시작의 반대란 곧 끝이다.
시작에 김상현이 있다면, 끝에는 박승엽이 있다?
*
– 김상현
과거의 기억과 연관된 세 장의 사진을 얻은 후, 나는 꽤 많은 기억을 회복했다.
하지만, 필시 가장 중요한 기억이 담겨있을 세 번째 사진의 비밀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뭔가 더 해야 하는 상황.
답은 언제나 호텔에 오기 전, 최초의 삶에 있으리라.
호텔에 오기 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과거의 김상현은 지금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
과거의 내가 무슨 최초의 소원을 환영으로 보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집에 숨겨둔 쪽지는 발견했을 테다.
덕분에 내 기억이 주기적으로 사라진다는 사실과 카메라 및 사진들을 찾아냈겠지.
자연스럽게 여기까진 추론할 수 있다.
내 잊어버린 과거는 관리국과 연관이 있다.
나는 어쩌면 전직 관리국 요원 혹은 직원일지도 모른다.
더해서, 과거의 내 성정은 지금과 꽤 다르다.
충동적이었고, 직선적이었으며, 대범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Everything is Big in TEXAS.
텍사스 남자는 무릇 배포가 큰 법이니까.
여기까지 요약하면 결론은 한 줄이다.
과거의 나는 즉각 관리국과 접촉했으리라.
지금처럼.
*
“끄으윽! 끄윽! 이, 이게 무슨 -”
정체를 숨긴 채 내 주변을 배회하던 남자.
그를 찾아내고 제압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래 봬도 난 이런 종류의 일을 직업처럼 해온 사람이다.
요원이거나 군인 여럿이라면 모를까, 일개 관리국 직원 하나 따위가 내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끄으윽! 모, 목이, 목이 너무 아픕니다! 제발 -”
“…”
손에서 힘을 빼니, 곧 관리국 직원이 엎어져서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흐으으… 흐으으…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내가 누구인 줄 알고 -”
“관리국 직원. 조쉬 스티븐 맞지?”
“…”
“더 말해줄까? 너 혹은 네 동료들은 요 며칠간 날 감시했다. 집에 도청기도 있었을 테고, 차에는 위치추적기도 달았겠지.”
“…”
“딱히 긴장하진 않았을 거야. 내가 10년 가까이 기억을 찾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냥 의례적인 업무, 쉬어가는 업무 정도로 가볍게 여겼겠지.”
“그건 -”
“그런데, 감시 대상이 갑자기 휴스턴 우주센터 근처를 배회했다. 과거의 기억을 찾은 것 같아 비상이 걸렸지.”
이쯤에서 상대는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기억을 되찾기 위해 우주센터에 간 게 아니었군요. 기억은 이미 찾았고, 우리를 끌어내려고 우주센터에 – 끄윽!”
다시 멱살을 잡은 채 말했다.
“상황을 이해한 듯하니, 내 요구사항을 전달하겠다. 상부에 보고해라.”
“끄윽! 무, 무슨 말씀을 -”
“내 기억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겠다.”
“그, 그건 제 권한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상부에 보고하라는 말 못 들었나? 핸드폰은 있을 텐데.”
“하지만 -”
손에 힘을 주어 가볍게 목을 졸랐다.
203호에서 장기간 구른 덕에 각종 무술이나 체술은 물론, 힘에 있어서도 보통 사람은 범접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나다.
“끄으윽!”
누군가는 대체 뭘 믿고 관리국 직원을 이리 거칠게 다루냐고 할지도 모르지.
근처에 군인이 있다가 내게 총이라도 쏘면 어쩔 셈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럴 리가 없음을 알기에 강하게 나서는 중이다.
과거의 기억에 따르면, 다수의 관리국 요원이 내게 호의를 보내고 있다.
심지어 그중 한 명 – 아스테어 -는 유력한 선각자 후보이기까지 하다.
이래서 관리국은 내 기억을 지우며 관리할지언정, 죽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일개 직원 목 좀 졸랐다고 죽일 리가 없지.
그래서 직원의 목을 더 강하게 졸랐다.
“내 말이 안 들리나?”
“끄으윽! 끄으윽! 으으읍 -!”
바로 그 순간.
— 지지직!
스티븐의 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 조니, 그쯤 하게.
“…”
— 스티븐은 성실한 직원이요, 아이가 둘일세. 자비를 베풀게.
자연스럽게 손을 내리니 직원은 멍한 눈으로 본인 옷을 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본인 옷에 감시 카메라가 있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
“내 말을 들었겠지? 요청 사항도?”
— Riaka 249번지 49호. 해가 지기 전에 오게.
*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과거의 기억 속 존재가 현실로 튀어나왔음을 알았다.
선각자 승진을 앞둔 고위 요원.
나와 함께 우주여행을 했던 동료.
그리고…
여명의 아들을 숭배하는 자, 아스테어가 나타난 것이다.
“오랜만입니다.”
섬뜩할 정도로 창백한 피부와 어울리지 않는 온화한 미소.
아스테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조니, 정말 기억을 거의 되찾았구나? 날 바로 알아보네?”
나름대로 표정 관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 역시 경험하면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고위 요원이라 속이기 어렵다.
“…”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너무 많은 질문이 생각나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
그런 나를 보고 무언가 느꼈는지, 아스테어가 담담히 말했다.
“질문이 많겠네. 왜 본인 기억을 지우면서 관리했는지도 궁금할 테고.”
“…”
“오래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첫 시작은 다소 뜬금없었다.
“관리국 내에 전해 내려오는 은밀한 소문이 있어. 시작과 끝을 무수히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이지 위대한 역사가 있다.”
“…”
“우리의 선조는 지금 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지고한 문명의 건설자들이었다. 믿기 힘들지?”
믿기 힘드냐는 아스테어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나는 믿는 정도가 아니라, 위대한 역사가 명백히 사실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스테어가 말하는 관리국의 은밀한 소문이란 바로 최초의 문명을 말한다.
“두 번의 몰락이 있었다고 해.”
“두 번의 몰락?”
“두 번째 몰락을 일으킨 자는 희대의 천재이자 광인이었다고 해. 천재는 천재인데, 미친놈이었다는 말이지.”
“…”
두 번째 몰락을 일으킨 천재이자 광인.
“그는 광기 어린 달의 창조자야. 덕분에 모두의 운명이 영원한 어둠 속에 처박혔지. 기회가 된다면, 그 사람을 만나서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어.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런 짓을 했냐고.”
순간 당황해서 말문을 잃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인 군이 아닌 다른 사람이 관측 중이길 바란다.
“두 번째 몰락이 인류의 역량을 10에서 1로 만들었다고 치자.”
10에서 1.
알레프 이전과 이후의 문명을 말하는 것 같다.
“첫 번째 몰락은100에서 10으로 만들었어.”
100에서 10.
최초의 문명과 알레프 전 문명의 차이를 말하리라.
“우리는, 첫 번째의 원인으로부터 두 번째의 답을 얻고자 했어.”
“뭐?”
첫 번째의 원인으로부터 두 번째의 답을 얻는다?
당황해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려는 순간 –
– 갑자기, 아스테어가 공손한 태도로 손을 모았다.
“… 여명의 아들을 경배하라. 그는 천상에서 떨어진 자이니, 누군가는 그를 해탈을 막는 자의 일원이라 여겼다.”